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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 마을을 가로지르는 가브 강변 절벽 한 가운데에 있는 마사비엘 동굴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성모님께서 베르나데트 성녀에게 발현하셨고, 이를 기념해서 동굴 위에는 대성당이 건립되었습니다. 2006년 6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루르드 성모 발현 150돌] 2. 루르드 성모 발현 동굴
성모님의 따스한 품인 양 아늑한 그곳에서 치유의 기적이...
▲ 성모 발현 동굴을 찾은 순례자들이 성모 마리아의 권유에 따라 무릎을 꿇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회개 치유 기적의 시작지
루르드 성지를 개괄적으로 파악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순례를 시작하자. 매년 루르드를 찾는 순례자 400여만 명은 누구할 것 없이 제일 먼저 성모 발현 동굴을 찾아간다.
성모 발현 동굴은 루르드 도심을 가로지르는 가브 강가 절벽 한 가운데에 있는데 주민들은 이곳을 '마사비엘'(massabielle)이라 부르고 있다.
마사비엘은 루르드 성지 중에서 성모님의 따스한 품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늑한 곳이다. 이 곳은 루르드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헤아릴 수 없는 회개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시작점이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던 바로 그 장소에는 목격자 성녀 베르나데트의 증언에 따라 발현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성모상이 서 있다.
베르나데트의 목격 증언에 따르면 루르드에 발현한 성모는 "이 세상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머리에 후광이 빛나고 흰 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색 허리띠를 두르고, 두 손은 가지런히 합장을 한 채 묵주를 오른 팔에 늘어뜨리고, 맨 발 위에 노란 장미가 있었다"고 한다.
성모상 아래에는 'QUE SOY ERA IMMACULADA COUNCEPCIOUN'(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이다)라는 라틴 말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루르드 성모의 주요 메시지
성모 마리아는 150년 전인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이 동굴에서 땔감을 주우러 온 14살의 가난한 소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성인, 1844~1879년)에게 18차례 발현했다. 특히 성모 마리아는 2월 18일 세 번째로 발현해 베르나데트에게 보름간 계속 동굴에 와 줄 것을 부탁하고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프랑스 교회는 이 날을 특별히 기념해 베르나데트 성녀 축일을 선종일인 4월 16일이 아닌 2월 18일로 지내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베르나데트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 "죄인의 회개를 위한 상징으로 무릎을 꿇고 땅에 입맞춰라" "당신이 가르킨 곳에 샘을 파 그 샘물을 마시고 씻도록 하고, 이 곳에 성당을 지어라" "나는 원죄없는 잉태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너무나 간단명료하다. 자신의 단순성을 드러내는 듯한 이 메시지는 루르드를 찾는 모든 순례자들을 무릎 꿇어 회개하게 하고, 물로써 새로 나게 하고 있다.
기적수 발원지
▲ 1983년 루르드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성모 발현 동굴 샘에서 '기적수'라 일컫는 샘물을 마시고 있다.
마사비엘은 순례자들이 '기적수'라고 하는 샘물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성모 마리아는 아홉 번째 발현 날인 1858년 2월 25일에 베르나데트에게 자신이 가르킨 곳을 파서 그 샘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씻도록 했다.
베르나데트는 샘을 파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성모 마리아는 마치 우리가 세례 때 물과 성령으로 죄에서 해방되었듯이 그리스도의 새 몸을 입을 것을 원하신 것을 아닐까?
마사비엘 안으로 들어가면 성모 마리아의 지시로 베르나데트가 손으로 판 샘물의 발원지를 직접 보고 그 물을 마실 수 있다. 유리판을 덮어 잘 보존하고 있는 이 수원지에서 지금도 하루 12만2400리터의 샘물이 샘솟고 있다.
제대로 순례하기
마사비엘은 언제나 붐빈다. 루르드를 찾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이 곳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홀로 조용히 성모 마리아와의 깊은 대화를 원한다면 새벽에 이 곳을 찾아라. 계절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나지만 루르드는 일반적으로 새벽 5시께 개방해 밤 12시께 문을 닫는다.
마사비엘에선 매일 첫 미사가 새벽 6시께 봉헌된다. 어느 나라 말이건 새벽 공기를 깨우는 기도는 세상의 그 어떤 소리보다 아름답다. 이른 새벽 루르드 샘물 한 모금으로 심신을 깨우고 피레네 산맥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며 새벽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더없이 상쾌한 일이다.
일정상 낮에 마사비엘에 도착했다면 먼저 동굴 앞에서 미사 참례를 하거나 기도한 후 강 건너 동굴 맞은 편 정원 벤치에서 동굴 전경을 바라보는 시간을 꼭 갖길 추천한다. 그 어떤 이라도 그 자리에선 철학자가 되고 기도하는 신앙인이 된다.
동굴 앞에선 성모 마리아가 원한 것처럼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드린 다음 땅에 입을 맞춘다. 머리를 떨구는 것은 마치 십자가 위에서 고개를 떨구신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는 사랑과 겸손의 표현이다. 자신을 낮추는 이 겸손의 표현은 하느님의 사랑 앞으로 우리를 분명히 끌어줄 것이다.
무릎 묵주 기도를 마치면 마사비엘 안으로 들어가라. 동굴 벽면에 손을 대며 묵주기도를 하며 천천히 걸으면 성모 마리아의 사랑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굴을 돌아 나오면 성모상 아래 바위에다 성모께 대한 사랑과 존경의 의미로 입맞춤하고 나온다.
▲ 성모 마리아가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한 마사비엘 동굴 새벽 전경. 성모 마리아와 깊은 대화를 나누길 원한다면 새벽에 이 곳을 찾길 적극 추천한다.
마사비엘에는 365일 초가 꺼지지 않는다. 초 봉헌을 하려면 동굴 근처에 있는 무인 판매대에서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해 1유로부터 5유로까지 있다. 구입한 초는 동굴 앞과 오른편에 있는 초 봉헌대에 봉헌하면 된다.
마사비엘 동굴을 순례한 기념으로 무인 판매대에 가면 루르드 성지 메달 자판기가 있다. 메달도 성모상, 성당, 동굴 등 여러 종류다. 2유로를 넣고 마음에 드는 메달을 골라 기념품으로 간직해도 좋을 듯하다. 꼭 2유로 짜리 동전을 넣어야 한다. 다른 동전은 그냥 삼켜버리고 만다. [평화신문, 제954호(2008년 1월 20일), 리길재 기자]
루르드(Lourdes)
루르드는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성모 마리아의 대표적인 발현지이다.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성모 마리아가 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Maria-Bernardette Soubirous)에게 발현함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많은 병자들이 이곳을 방문한 후 병이 치유됨에 따라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베르나데트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목격한 열네 살까지 문맹이었고, 종교교육조차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천식까지 앓고 있었다. 1858년 2월 11일 목요일 정오경 땔감 나무를 줍기 위해 마을에서 서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가브(Gave) 강변의 동굴 근처로 간 베르나데트는 강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고 있었는데 이상한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베르나데트는 동굴의 움푹 들어간 자리에서 후광이 빛나고 흰 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 색 허리띠를 두르고 양발 위에는 노란 장미가 있는 아주 ‘젊게 보이는 어떤 여인’을 보았다. 베르나데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미소를 띠고 서 있는 그 여인 앞에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베르나데트는 2월 14일과 18일에 또다시 동굴로 갔다. 그때 ‘동굴의 젊은 여인’이 “앞으로 15일 동안 매일 이곳에 와주시겠습니까?” 하고 묻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베르나데트는 2월 19일 금요일부터 3월 4일 목요일까지 매일 아침 동굴로 갔으며, 2월 22일 월요일과 2월 26일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동굴의 젊은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매번 그 ‘여인’은 조금씩 베르나데트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하였다. 8일째인 2월 24일 수요일에 “회개하시오. 조인을 위해 기도하시오. 죄인의 회개를 위한 상징으로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시오.”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그 다음날에는 손가락으로 샘물의 원천을 가리키며 그 물을 마시고 씻도록 하였다. 또 13일째인 3월 2일 화요일에는 “사제들에게 전해 이곳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게 하고, 이곳에 성당을 짓게 하시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이야기는 곧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져 ‘동굴의 젊은 여인’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2월 21일에는 100여 명에 불과했으나 15일째 되는 3월 4일에는 8,000여명에 달했다. 이들은 모두 위대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고대하고 있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실망하고 흩어졌다.
3월 25일 목요일 아침, 베르나데트가 다시 동굴로 갔을 때 ‘젊은 여인’을 볼 수 있었는데, 그때까지 네 번에 걸쳐 반복된 질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던 그 젊은 여인이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라고 처음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베르나데트는 곧바로 마을의 주임신부에게 보고했다. 이 발현이 있기 4년 전인 1854년에 이미 당시 교황 비오 9세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교리를 믿을 교리로 반포했으나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이로써 베르나데트는 전 세계에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알리는 전령사가 되었다.
그 후 베르나데트는 4월 7일 수요일과 7월 16일 금요일에 다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볼 수 있었는데, 4월 7일에는 촛불이 베르나데트의 손가락에서 오랫동안 탔지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기적이 있었고, 이 일은 7월 16일에도 반복되었다. 그러나 7월 16일 발현에 대해서는 그녀가 자세하게 언급하기를 회피하여 아직까지 비밀로 되어 있다.
타르브(Tarbes) 교구의 로랑스(Laurence) 주교는 성모 발현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에 착수하여 베르나데트의 증언, 기도와 회개운동, 많은 치유 기적에 근거해 1862년 1월 18일에 루르드의 성모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이로써 많은 신자들이 베르나데트와 성모 발현 동굴을 보기 위해 루르드에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1864년 4월 4일에 루르드 성모상이 축성되었고, 1862년 처음으로 구상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13세기 고딕양식 설계로 건축되어 1876년에 축복식을 가졌다. 신 비잔틴양식의 로사리오 대성당은 1889년에 완공되어 1901년 10월 교황 레오 12세의 교황대사에 의해 축복식을 가졌다. 현재 루르드에는 매년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찾고 있다.
성녀 베르나데트 수비루(Mary-Bernadette Soubirous, 또는 벨라뎃다, 1844-1879)
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Maria-Bernardette Soubirous)는 1844년 1월 7일 루르드에서 가난한 방앗간 주인인 프랑수아의 여섯 아이 중 맏딸로 태어났다. 몸이 허약해 보통 아이들보다 키가 작은 편이었던 그녀는 열 살 때에 콜레라를 앓았고, 평생 천식을 비롯해 갖가지 질병으로 고생했지만 단순하고 감상적이며 유쾌한 성격을 지녔다.
1858년 2월 11일과 7월 16일까지, 그녀는 루르드의 가브(Gave) 강변에 있는 마사비엘 바위에서 동정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체험하였다. 18 차례에 걸쳐 그녀는 매우 젊고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는데, 그 부인이 자신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였다. 이 부인이 나중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로 호칭하게 되는 동정 마리아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마리아 베르나데트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 ‘부인’을 보지 못하고 그 말씀도 듣지 못하였으나. 무슨 혼란이나 정신적인 이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발현이 있고난 다음부터 거짓 환시가 유행병처럼 번졌으나, 교회 당국은 그녀의 체험에 대하여 올바른 자세를 견지하였다. 몇 년 후 그녀는 의심 많은 불신자들로부터 심한 고통을 받았으나, 이 모든 것을 영웅적인 용기와 품위로써 물리쳤다. 1866년에 그녀는 프랑스 느베르(Nevers)의 사랑의 자매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여기서 그녀는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일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무슨 일이오?” 이때 그녀의 대답은 “아픈 일”이라고 하였다.
1879년 4월 16일 건강이 악화된 그녀는 35세의 나이로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1862년 1월 18일 타르브(Tarbes) 교구의 로랑스(Laurence) 주교에 의해 공식 인정된 후 루르드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모 성지중 하나가 되었지만 성녀 베르나데트는 루르드가 순례지로 발전하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다만 1866년 그녀가 참석한 가운데 지하성당이 봉헌되었고, 1876년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축성되었다. 성녀 마리아 베르나데트는 1925년 6월 14일 복자품에 오른 후, 1933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베르나데트가 시성된 것은 그녀가 성모 발현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겸허한 단순성과 그녀의 전 생애를 통해 보여 주었던 절대로 의심하지 않은 신뢰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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