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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중 제9주간 금요일 / 김동환 마티아 신부, 이기양 요셉 신부, 신문갑 비오 신부

작성자박인석마르티노|작성시간26.06.05|조회수21 목록 댓글 0

 

김동환 마티아 신부

 

연중 제9주간 금요일

마르 12,35-37

 

현세적인 것과 영적인것에 어느쪽에 비중을 더두고 살아가는지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 아래 잡아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마르 12,35-­37)

 

현세적인 것과 영적인것에 어느쪽에 비중을 더두고 살아가는지 조금어려울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오늘 복음에서 보면 율법학자들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후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는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번째 질문으로는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의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자신이 다윗의 후손이라고 생각하셨을까요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셨을까요?

 

실제로 다윗왕은 장차 자기 후손으로 나타나실 분을 "나의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리스도가 다윗왕의 자손이라면 어찌하여 다윗이 그리스도를 가리켜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셨으며

자신도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다윗의 자손인 동시에

다윗의 주님이시라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문제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이 담고 있는 의미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똑바로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사시는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다윗 가문에서 나타날 하느님의 구원자,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망하던 '다윗의 후손'이라는 호칭속에는

이스라엘을 회복할 정치적 민족적 정복자로서의 왕의 의미가 그들의 생각과 마음속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에 정복을 당하여 고통을 겪고 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로마에서 해방시켜줄 지상 왕국의 건설자로서의 그리스도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라는 호칭의 의미를

똑바로 알려주고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과연 다윗의 후손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의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지상왕국의 건설자 정복자로서의 그리스도 개념을 고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자신을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자로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참 모습을 알리고

그분의 사랑을 가져다주며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도록

이런 질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혹시 이렇게 생각해보신적은 없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내 생활안에서 나의 현세적인 평안함과 내가 바라는 일들의 성공을 위해서

나를 지켜주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하신적은 없으십니까?

 

이렇게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은 바로 옛날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것과 똑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똑똑히 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로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참 모습을 알리고

그분의 사랑을 가져다 주며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내 자신은 내 생활에서 현세적인 것과 영적인것에 어느쪽에 비중을 더두고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부산교구 김동환 마티아 신부

 

*************

 

이기양 요셉 신부

 

연중 제9주간 금요일

마르 12,35-37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마르10,47)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예리코라는 동네에 들렀을 때 앞 못 보는 거지 하나가

나자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간절히 부르짖으며 애원하던 소리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여러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을 정도로 소경이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을 외치자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 소원을 물으시고

볼 수 없던 그의 눈을 치유해 주셨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시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듯 합니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마르12,35-37)

 

우리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증명해 주는 대목을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요.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마태1,1)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족보나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루카1,27) 마리아에 의한 아기 예수 잉태와 탄생이

그 예이지요.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 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루카2,4)

 

또 구약의 여러 예언서에서도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시며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심이

드러나 있습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예레23,5)

 

이렇게 예언서와 신약성경 등에서 분명하게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는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왜 예수님께서는 오늘 율법 학자들에게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마르12,37)고 하시며

다윗의 자손이 아닌 듯한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율법 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만의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사실 예수님께서 사시던 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다윗 가문에서 나타날 하느님의 구원자, 메시아였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망하던 ‘다윗의 후손’이라는 호칭 속에는 이스라엘을 회복할

정치적, 민족적 정복자로서의 왕의 의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에 정복을 당하여 고통을 겪고 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로마에서 해방시켜 줄 지상 왕국의 건설자로서의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라는 호칭의 의미를 똑바로 알려주고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과연 다윗의 후손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지상 왕국의 건설자, 정복자로서의 이스라엘만의

그리스도 개념을 고치시려고 하신 것이지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시며 다윗의 후손이십니다.

그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써 단지 다윗 나라의 영광과 가문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인물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참 모습을 알리고

그 분 안에서 참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주며 온 인류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온 인류의 구세주이시지 이스라엘만의 구세주가 아님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이런 질문을 던지신 것이지요.

 

예수님을 단지 나의 현세적인 평안함과 내가 바라는 일들의 성공을 위해서

나를 지켜 주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은 바로 옛날 유다인들이 생각하던 것과 똑같은 생각이지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나만의 예수님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인류의 구세주이시지요.

편협한 나만의 기도와 축복만을 바란다면 오늘 복음의 율법 학자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기도가 바로 나를 위한 기도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이기양 요셉 신부

 

**************

 

신문갑 비오 신부

 

연중 제9주간 금요일

마르 12,35-37

 

메시아가 다윗의 아들?

 

이번 주 복음은 예수님과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층간의 치열한 전쟁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본격적인 수난의 길의 가시기로 결심하시고

그 결심의 증거로 이스라엘의 중심부인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중심부인 성전을 정화하시는 사건을 시작으로

메시아로서 당신의 소명을 강렬하게 표출하셨고

이것은 스스로 하느님과 제일 가깝다고 믿고 백성을 가르치던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증거와

메시아로서 예수님의 권한에 대해 집요하게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지난 화요일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예수님을 정치범으로 몰아가려고 했고

지난 수요일 복음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도 부활 논쟁을 통해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부정하려 들었습니다.

 

이제 오늘 복음에서 또 한번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권위를 깎아 내리려고 합니다.

 

다윗의 아들이라는 메시아의 칭호는 예수님의 부활 이전까지의 모습은 담을 수 있지만

부활 후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칭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메시아의 권위를 부정하는 율법학자들에게

시편 110편을 인용하시면서 다윗 또한 메시아를 주님으로 불렀음을 깨우쳐 주시며

참으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다시 한번 선포하십니다.

 

이토록 집요하게 예수님을 깍아 내리려는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왜저러나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스러운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왜 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모습과 지금 우리의 모습이 조금은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우리도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처럼 다른 사람보다는 내가 더 인정받고,

사람들로부터 더 칭송받고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더 높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사람의 본성일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송받으며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높아 보이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하기에

많은 힘이 들어가는 방법이기에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방법은 좀 더 쉬운 방법입니다.

내가 높아지기 힘드니까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서 상대적으로 내가 높아지는 방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방법은 상대방을 많이 깎아 내리면 내릴수록 내가 더 많이 올라 가는 것처럼 보이기에

너무나도 쉽고 매력적인 방법 같지만 결국 상대방도 나도 그 자리에 항구히 멈춰 버리는

허무한 방법입니다.

 

예수님께 이 방법으로 다가 갔던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은

이 방법을 통해 자신들이 더 높아진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들이 믿던 가장 중요한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사랑하며 살라는 가장 큰 계명을 들었습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고 더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가려

정작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을 놓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부산교구 신문갑 비오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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