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까이(2)
왜 썼나요?
기원전 538년에 페르샤의 고레스가 바빌론을 함락시킴으로써,
바빌론에 유배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고국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바빌론에서 안정된 터전을 잡은 사람들은 귀환하기 보다는
바빌론에 눌러 살기를 희망했어요.
바빌론에 함락된 채 반 세기가 다 되도록 버려져 있어서
황폐하기 이를 데 없는 예루살렘에 돌아간다는 것은,
바빌론에서 닦아놓은 기반을 모두 포기하는 것을 뜻했으니까요.
물질적인 안정보다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던 사람들도
계속되는 흉작을 겪으면서, 민족 공동체를 재건한다는 희망은 다 사라지고
오직 생계유지에만 급급했지요(1,5-9).
이 때에 하깨 예언자는 사람들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고자 했어요.
흉년으로 먹고 살 식량마저 없는데 무슨 성전을 짓느냐는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에,
하느님의 성전을 짓지 않고 생활하는 까닭에 풍성한 수확이라는 축복을 받지 못함을
일깨웠던 거지요.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전을 세울 때 그 옛날처럼 뭇 나라들이 조공을 가져다 바치는
다윗 시대의 영화를 다시 누리게 될 것임을 선포했던 거지요.
실제로 하까이가 본격적으로 예언활동에 나섰을 때에는
다리우스 왕의 취임을 기해 페르샤 제국 전역에서 봉기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었죠.
이러한 제국의 불안정한 정국이
이스라엘의 민족국가 수립을 꿈꾸게 해주었어요.
<새김과 나눔>
이스라엘은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힘을 모읍니다.
날마다 바쁘게 생활해 나가는 우리는 어떤 일에 내 힘을 쏟고 있습니까?
성서와 함께 (공동번역성서 해설) 제공
가톨릭 사랑방 cafe.daum.net/catholicsb
출처: 가톨릭 굿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