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성화의 날 미사
2026. 06. 12. 범어대성당
옛날 제가 신학생 시절에 박도식 신부님이 쓰신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라는 교리서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박신부’하고 ‘송군’이라는 사람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된 책인데,
교리서를 그렇게 재미있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떤 청년이 산적이 되고자 산적 소굴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같으면 조폭이 되고자 조폭 소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청년이 산적 소굴에 들어가 두목을 만났더니,
그 두목이 하는 말이, “네가 산적이 되고 싶으면 집에
가서 네 어머니 심장을 가져오너라. 그
러면 우리가 믿을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집에 가서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고
심장을 꺼내어 안고 다시 산적들이 사는 곳으로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그런데 개울가를 건너다가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안고 있던 어머니의 심장을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심장이 바위 위를 떼굴떼굴 굴러가면서
들여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얘야, 다치지 않았니?” 어머니의 목소리였던 것입니다.
저는 예수 성심 대축일에 예수님의 성심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가 가끔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예수 성심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처럼 무한한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 제2독서인 요한 1서에서도
‘하느님은 사랑’ 이시라고 요한 사도께서 몇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요한 1서 4,16)
오늘 복음(마태 11,25-30)에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11,28)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소위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린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11,29)
이 말씀처럼 사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본받고 배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제는 예수님한테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에게서도 배우고 세상으로부터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사제이고 성직자이기에 듣고 배우기보다는 말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훌륭한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기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듣기만 잘해도 훌륭한 상담을 한 것으로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좀 적게 말하고
대신에 많이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신자가 개인이든 단체든 무얼 건의하거나
제안하면 생각이 다르더라도 일단
경청하고 존중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이 더디더라도 혼자 결정하기보다는 회의를 열어서
의견을 듣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노드 정신이고 시노드적인 교회를
지향하는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작년 12월에 어느 성당의
교사회장인지 자모회장인지 하는 분이
저에게 손 편지를 보냈었습니다.
너무 감동스러워서 다 읽고 난 뒤에 코끝이 찡해왔었습니다.
편지를 쓰신 분은 아마도 1월이 되면 보좌신부님이
본당을 떠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신부님을 보낼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들어보면
신자들이 어떤 사제를 원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늘 먼저 웃어주시던 신부님의 미소.
성당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반겨주시던 그 따뜻한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아이들이 너무 슬퍼합니다.
2. 어떤 순간도 귀 기울여 주신 마음.
아이들의 작은 이야기에도 ‘그랬구나,
그래.’ 하고 진심으로 들어주시는 그 배려가 우리 성당 친구들에게는 큰 힘이었습니다.
3. 신부님의 진심이 담긴 강론의 온기.
힘든 날엔 위로가 되고,
흔들릴 땐 길잡이가 되어주던 신부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4. 아이들을 향한 아낌없는 사랑.
주일학교 아이들 이름 하나하나 기억해 주시고,
눈높이를 맞춰주던 따뜻한 모습이 너무 소중합니다.
5. 신자들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시는 포용력.
잘못보다는 가능성을 먼저 보시고 청년들과 교사들,
그리고 주일학교 아이들,
자모회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는 신부님의 넓은 마음을 우리 모두 잊을 수 없습니다.
6. 언제나 겸손한 모습으로 보여주신 본보기.
말보다 행동으로 책임보다 사랑으로 우리 성당을 이끌어오셨기에 보낼 수 없습니다.
7. 성당을 집처럼 느끼게 해주신 편안함.
우리 아이들에게 신부님과 함께라면 성당은 늘 ‘머물고 싶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8. 어려운 일을 함께 짊어져 주신 용기.
성당의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늘 앞장서 주셨던 그 든든함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9. 기도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품어주신 깊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 바치신 그 수많은 기도를 잊을 수 없어 더더욱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10. 우리 성당 주일학교와 청년회의 마음 한가운데 계셨기 때문에.
신부님은 단지 ‘사목자’가 아니라 우리 성당 주일학교와
청년회의 마음과 삶 속에서 깊이 자리한 ‘가족’이기 때문에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타대오 대주교님, 저희 아이들이
우리 신부님과 함께 주님을 더 알아가고 사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