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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작성자천사( 최명숙 )|작성시간26.06.09|조회수0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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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의 즐거움
인지의 즐거움408 - 전라도 서남부지역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활동과 성격-무안·함평·영광을 중심으로-
향토학인
2025. 8. 17. 02:55
인지의 즐거움408


전라도 서남부지역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활동과 성격-무안·함평·영광을 중심으로-


김희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약칭 동학농민명예회복법)에 따라 등록된 동학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통해서 전라도 서남부의 동학농민전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대상 지역은 무안, 함평, 영광이다.

이 지역을 택한 것은 이미 살펴본 다른 지역과 바로 연결되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접근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장흥과 강진을 살펴본 바 있고 나주도 정리 한 바 있다. 이같은 권역별 정리와 분석을 통해서 최후까지 동학농민전쟁에 나섰던 현장과 기록과 인물을 살펴 보고자 함이다. 먼저 동학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활동에 대해서 분석해 보겠다. 이어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성격을 몇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제안사항을 함께 정리하였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 등록된 동학농민혁명군은 2025년 5월 1일 기준으로 3,913명이다. 이 가운데 직권등록은 3,347명(85,54%), 1차 등록은 496명(12.68%), 2차 등록은 70명(1.79%)이다.

지역명을 검색어로 하여 확인하여 가장 많은 수치로 들자면, 무안은 69분, 함평은 98분, 영광은 39분 등 206분이다. 이 가운데 중복된 인물 제외하면 196분이고, 추가검색을 통해 확인한 분을 포함하면 201분이다. 201분 가운데 직권등록은 159분(79.10%), 1차 등록은 37분(23.27%), 2차 등록은 5분(0.03%)이다. 무안·함평·영광 등 전라도 서남부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활동에 대해서는 일자별로 관련 연표와 인물별로 활동 내용등을 정리하였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성격은 몇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하나는, 참여자에 대한 것으로 신분이나 직업에 관해서 농업(농민)과 유학자의 경우를 무안 나주김씨 김응문 일가 사례이다. 그리고 당대 동학인들의 행적에 대해서 입도와 변절, 밀고, 처형과 관련하여 함평의 ‘이고창’ 사례이다. 동학농민혁명 직접 참여자가 아니지만 참여자를 보호했던 참여자와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살펴 보았다.

다른 하나는, 참여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해의 보존, 유적지의 보존과 현양 등에 대해서이다. 무안 김응문장군 유해의 국가유산 등록, 고막포 전적지의 국가유산 추진 등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제안을 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은 농민이 주축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해 오고 있다. 무안, 함평, 영광의 등록 참여자의 경우에도 참여자 대부분이 직업을 ‘농업’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농민과 유학자는 구분이 어렵기도 하다.

무안의 나주김씨 김응문의 경우에는 무안 향교 재장을 역임하고 노사 기정진의 문인록에 들어 있는 유학자이다. 특히 무안 출신으로 노사 기정진의 문인록에 오른 사람은 모두 30명인데 절반에 해당되는 14명이 나주김씨라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김응문이나 김효문의 직업은 농업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무안향교 재장 역임 등 유학자로서 활동했던 터라 직업이나 신분을 다시 한번 살펴야 하고, 이같은 사례가 집성된다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신분에 대한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

함평 이태형(1841~1894)의 경우도 ‘농업’으로 표기되었지만, 무과에 합격하여 고군산첨사(1890.10~1891.07)를 지낸 적이 있다. 이를 ‘농업-농민’의 범주로 분류하기 보다는 또 다른 검토가 필요하다.

함평의 ‘이경인 밀고 사건’은 ‘이고창 사건’이라고 하는데, 동학도였던 이경인(1851~1895)이 같은 동학도이자 의병장으로 알려진 이태형(이상삼, 1841~1894)과 함평현감 권풍식(1860~1922)을 밀고하였다. 이 밀고로 인하여 이태형이 1894년 12월에 처형당하여 순국하자, 이태형의 아들 이두회(1869~1926)는 1895년 2월 함평에서 이경인을 살해하고 만다. 이경인은 동학도였지만 같은 동학도를 밀고하여 처형받아 순국하게 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달리하고 있지만, 또 다른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동학농민군을 '주어'로 삼는 역사 사건의 표기 방식 마련도 필요한 일이다.

영광의 이현숙은 홍농면의 동학 접주 송문수를 죽여 그 머리를 관아에 바치고 의병장이 되었으나 결국은 일본군에게 처형당한 바도 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전쟁에 직접 참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전쟁 현장에서 전사 순국하거나 포살당해 순국하기도 하고 교수형이나 화형 당하여 순국하기도 한다. 부상을 당하거나 피신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도 전쟁에 직접 참여한 것이다.

그런데 동학농민혁명참여자 등록 기준에는 물자를 지원하거나 보호를 해 준 경우도 등록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보호’와 관련하여 등록된 여성 동학 참여자 정동화의 사례가 있다, 나주 본적으로 등록되었지만, 함평출신이고, 함평의 친정 동네로 남편 나동환을 피신시켰고, 관군이 행선지를 문초해도 알려 주지 않았다. 이같은 열행을 기려 열부 포장을 하고 행적비를 세웠다. 이들 자료를 근거로 하여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동학참여자로 등록되었다. 나주 나동환을 등록 조사하면서 건의한 결과가 반영된 것이다.

자료상의 제약이 있겠지만, 이 조항에 따른 참여자 등록이 더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 인명이 알려진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고려하여 별칭이나 직임으로 보이는 ‘조이(召史, 소사)’로 표기된 경우도 우선 직권 등록을 했으면 한다. 남성의 경우에도 능주 장강다구(張江多九), 남원 강감역(姜監役) 등 별칭이나 직임으로 보이지만, 기록이 있어 등록(직권등록)된 사례와 비교해 볼 필요도 있다.

“양조이(梁召史)를 묶어서 총을 쏘아 죽였다.”, “허내원(許乃元)의 처 이조이(李召史)·정국찬의 처 김조이(金召史)”, “[광주] 접주 전유창(全有昌)의 처(妻) 이소사(李召史, 조이), “엄조이[召史]는 동학의 통령[東學通靈]을 일컬으며”, “장흥 여자 동학 이소사(李召史)의 남편 김량문(金良文)” 등 기록 사례가 많다. 이 분들에 대해서 먼저 직권등록을 추진했으면 한다. 장흥 이소사 (李召史) 의 경우, 동학군의 '지원이나 보호'를 뛰어 넘어 직접 동학군으로 참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유해(遺骸)에 대해서 문화재(국가유산) 차원에서 추진한 사항을 정리해 보았다. 현행 관련 법규상으로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유해도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과 관련되고 이를 정신사적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신청서 작성 작업에 참여하였다.

무안 김응문 장군은 접주로서 고막포전쟁에 참여하였다가 12월 9일 처형당하여 순국하였다. 효수당한 것으로 전해 오며, 호남초토사 문서에는 경신후치폐(經訊後致斃)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최종 판결 이전에 고문 등으로 인해 순국한 것을 말한다. 참여자로 등록되었고 2022년 4월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해를 발굴하였다. 전문적인 검토를 거쳐 유전자검사를 하였고 후손과 일치하였다. 유일한 사례이다.

문화재[국가유산] 관련 법규 검토를 통하여, 기념물로서 생물학적 생성물이라는 점에서 기념물, 분묘 구조물이나 고고자료로 생활유적 출토품이라는 점에서 유형문화재(유형문화유산)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매장유산법도 교육 연구분야에서 전문가 검토를 거쳐 보존이 가능할수 있다는 내용이 개정되었다.

지정신청서를 작성하고 절차(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김응문인골특별위원회, 무안군, 전라남도 문화재위원회, 전라남도)를 거쳐 문화재청(국가유산청)에 국가등록문화유산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구분되면서 “생물학적 생성물”은 자연유산에 해당되고, 자연유산은 등록문화유산에세 제외된 바 있어 어려움이 따랐다.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는 역사인물 유해에 대해서는 정신적, 역사적, 문화적인 검토와 적용이 필요하고 문화유산 차원에서 다루어질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동학농민혁명 전적지는 정읍 황토현 전적, 공주 우금치 전적, 장성 황룡 전적, 장흥 석대들 전적, 고창 무장기포지 5개소가 국가지정 문화유산 사적이며, 완주 대둔산 동학농민혁명 전적지는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전라도 서남부의 대표적 전적지이자 가장 많은 순국자가 나온 고막포 전적지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야 할 것이다. 전적지 외에도 관련 유적[주둔지, 훈련지, 인물 생가지, 묘소, 기념비 등]이나 유물[고문서, 문헌 등] 등에 대해서도 국가유산 지정을 점진적으로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다음 발표문의 맺음말 격인데, 발표자료집에는 싣지 못하고 당일 요약 발표하였다. 추후 본문의 보완문과 함께 책자에 실을 예정이다.

*김희태, 전라도 서남부지역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활동과 성격-무안·함평·영광을 중심으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지역별 활동과 성격-2025 정읍 동학농민혁명 학술대회->, 정읍시‧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 2025.06.25., 67~110쪽.

*본 발표문을 정리하면서 두가지 표를 함께 작성하였다. 참여자 관련 세부 연표와 참여자 현황이다. 이 작업을 통하여 중복 부분이나 일자 등이 다른 부분은 일부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두가지 표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표1> 전라도 서남부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관련 연표(부분)*

시기 구분 참여 내용 미등록 비고
1894.12.03 영광 양경수 피체 영광 양경수, 진사 김응선을 중심으로 조직된 수성군에 잡힐 때 총살당해 순국(『巡撫先鋒陣謄錄』 )
1894.12.05 함평 이화진 포살 순국 함평 이화진 포살당해 순국. 수종 6명 붙잡음.
영광 서우순 등 처형 순국 영광 서우순, 함평 동학지도자들과 함께 피체 처형 당해 순국 최준숙((『各邑所捉東徒數爻成冊』)
영광 접주(적괴) 송문수, 오태숙 효수[효경] 당해 순국
영광 최준숙 등 9분, 잡힐 때 포살당해 순국
영광 박인지 등 10분, 압송당하여 장위영[장위대관]에 넘겨짐.
1894.12.06 함평 접주 5인 처형 순국 함평 접주 김치오, 정원오, 정곤서, 김경선, 윤경욱 등 처형당해 순국.
함평 접주 이화진 수종 6명 피체 이화진의 수종 조병묵, 서우순, 김문조, 이응모, 김봉규, 박준상 등 피체 구속해 처분 기다림(함평현감 첩보)
1894.12.07 무안 동학군 이동 무안 배상옥 영암, 강진 등지로 이동
함평 접주 5분 처형순국 함평 접주 이두연, 김학필, 이관섭(『전남동학사』 이만섭), 이창규, 공명오 처형당해 순국(12.10 현감 보고)
1894.12.08 무안 2분 처형 순국 무안 접주(접괴) 배정규, 박순서 포살당해 순국. 배정규((『各邑所捉東徒數爻成冊』))
무안 서여칠 등 6명, 죄의 경중을 가려 처리하도록 함

*무안, 함평, 영광의 동학농민혁명 자료와 참여자 자료를 정리하여 일자순으로 재 배열함. 일부 중복이 있거나 동일인명인데 표기가 다른 경우(본명, 관청기록명, 족보명, 호적명, 자 호 등)도 있을 것이다. 미등록자는 기록에 나오는 인명이지만 등록 명단에 없는 경우이다. 등록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표2> 전라도 서남부(무안 함평 영광) 지역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부분)*

연번 참여자 참여내용 참여지역 출생‧순국일** 순국장소 출신지(본적) 유산 등록일 등록 검색
○무안
◉영광
◎함평
직 1 2
1 강대진(姜大振) 강대진은 접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전라도 영광에서 체포되어 나주로 압송된 후 1894년 12월 30일 일본진영에서 총살당해 순국함. 전라도 영광 ?~1894.12.30. 2009.11.25 〇 ◉
2 강봉희(姜鳳熙) 1887년 동학에 입도하여 1892년 삼례집회, 1894년 3월 백산봉기, 이후 함평점령과 나주성공격에 참여한 후 전사 순국함 전라도 부안 1863.5.4.~1894. 2006.11.20 〇 ◎
9 김기봉(金基鳳) 1894년 전남 무안지역 대접주 배상옥, 김응문, 김효문 등과 함께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였으며 관군에게 체포되어 12월 처형당해 순국함 전라도 무안 1868


1894년 전남 무안지역 대접주 배상옥, 김응문, 김효문 등과 함께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였으며 관군에게 체포되어 12월 처형당해 순국함 전라도 무안 1868.~1894.12.12. (무안) 2009.01.16 〇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검색(등록참여자)에서 ‘무안’, ‘함평’, ‘영광’을 검색어로 하여 검색된 인명을 초성의 가나다 순으로 정리하고 중복된 인명은 제외하였다.
**출생‧순국일 : <동학재단> 자료에 ‘출생·사망연월’을 바꿔 표기하였다.

참고문헌
김희태, 「유족 증언과 자료로 본 전라도 장흥·강진지역 동학농민군의 순국」, 『유족 증언을 통해 본 동학농민군의 삶』-동학농민혁명연구소 학술총서1-,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 2024., 63~121쪽.
김희태, 「동학농민혁명군의 나주로의 압송과 처형」, 『나주 동학농민혁명의 재조명』-나주학 총서 2집-, 나주시, 2022., 121~150쪽.



전라도 각읍소착 동도수효 급 장령성명 병록성책(開國五百四年 正月 日 全羅道各邑所獲東徒數爻及將領姓名並錄成冊, 1895.01 규장각 17190)
-법성진法聖鎭 동도 남궁달南宮達과 박복암朴卜巖은 1월 20일에 압송하여 진영에 넘겨 엄중히 조사하여 실정을 파악하도록 하였다. 거괴巨魁 오홍순吳弘順과 이만순李萬順 및 김풍종金豊宗은 같은 날 [1월 20일]에 잡아서 엄중히 조사하여 실상을 파악하도록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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