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戰雲)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메시지,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
'랄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는 1872년 영국의 전원 '코츠월즈(Cotswolds)'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의 수 많은 민요를 수집하여 영국 민속음악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셰익스피어', '셸리', '테니슨' 등 여러 영국 문학가의 작품을 소재로 하여 주옥과 같은 명곡들을 많이 남겼다. 또한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와 같은 16세기 영국 작곡가의 곡들을 발굴하여 그 선율을 토대로 관현악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쓰여졌는데, 그 당시 작곡가는 왕립 육군병원부대에 근무하던 중이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작곡가인 '조지 버터워쓰(George Butterworth)'는 이 곡을 쓰기를 종용하였다. 그러나 친구는 전쟁 중에 전사하였다. 그는 이 작품을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구상하였는데, 당시 유럽은 제 1차 세계 대전의 와중에 있었고, 영국 해협을 가로지르는 배 안에서 메모지를 꺼내어 악보를 그리는 모습을 본 어떤 소년이 그것을 암호문으로 오해하여 경찰에 신고하여 오해와 봉변을 치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작곡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1920년에 악보가 마무리되었고, 영국의 항구도시 '브리스틀(Bristol)' 인근의 '킹스웨스톤(Kingsweston)'에서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메리 홀(Marie Hall)'과 함께 교정을 본 뒤, 그녀에게 헌정하였다. 초연은 런던 퀸즈홀에서 1921년 6월 14일. '애드리언 보울트(Adrian Boult)'의 지휘에 의해 이루어졌고, '메리 홀'이 독주를 담당하였다. 전운(戰雲)이 감도는 유럽에서, 한 영국 작곡가가 희망의 음악을 선사한 것이다.
이 곡은 작곡가가 영국의 시인'조지 메레디스(George Meredith:1828-1909)'의 122행 장시(長詩), <종달새의 비상:The Lark Ascending>에 영감을 받아 지은 것으로, 악보 첫 페이지에 그의 시 구절이 씌여져 있다.
이 시는 전원생활로 회귀하여 근심 걱정없이 사는 것에 대한 동경과 진심어린 갈망이 종달새라는 피조물을 통해 표출되고 있으며, 그 서사적 맥락이 창조적이고 강렬하며, 행과 구절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환희가 넘치고 있다. 여기에 작곡가는 시의 문맥이 전해주는 감흥을 온전히 흡수하여 이를 악곡을 통해 거의 동일한 감수성으로 배출하고 있다. 작곡가는 이 작품을 '독주 바이올린의 카덴짜(cadenza)와 관현악을 위한 로망스'의 형식으로 작곡하였다.
작곡가는 그의 작품 속에 그 어떤 표제적인 설명을 남겨놓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곡을 들으면 종달새를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이 곡에는 종달새가 날아오르는 풍경과 감흥이 배어 있다. 이 곡은 영국의 한 시골의 봄풍경을 연상케 하며, 특히 작곡가의 고향이었던 '코츠월즈(Cotswolds)'의 전원 풍경을 많이 닮아 있다.
'코츠월즈'의 전원 풍경
이 종달새를 위한 로망스는 관현악이 거의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의 약한 음으로 미묘하게 화음을 지속시키면서 느리게(안단테 소스테누토:느리고 더디게) 시작된다. 이에 맞추어 바이올린이 종달새를 하늘에 날린다. 종달새는 작고 갸날프지만 힘차게 하늘로 솟구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 암팡지고 날쌘 수다쟁이 종달새는 공중을 유유히 선회하다가 갑자기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 또 다시 솟아오르는 등 상쾌하고 명랑한 비상(飛翔)을 계속한다. 종달새의 이 매혹적인 유희는 고스란히 음표의 오르내림을 통해 악보에서 시각적으로 확인이 되고 있다.
작곡가는 이 아름다운 소품에서 시의 정서와 감정을 전달하는 합당한 도구로 바이올린을 운용하고 있다. 특히 그는 평소에 자주 쓰던 5음음계를 통해 동양의 이국적인 이미지로 이 악곡을 채색하고 있는데, 그 결과 바이올린의 색감이 중국의 두 줄짜리 전통 현악기 '얼후(二胡:Erhu)'를 빼닮아 있다. 이러한 시도는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세헤라자데>에서 이미 쓰여진 바가 있다.
한순간 관현악이 호흡을 멈춘 후, 홀로 남겨진 솔리스트는 활을 가볍게 날리며 종달새를 하늘 높이 띄우고는 상공에서 노래부르며 거닐게 한다. 이 부분은 클래식 음악에서 바이올린 독주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기교와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종달새는 창공 높은 곳에서 초록과 황토의 조각보를 덧댄 듯한 너른 들판을 굽어본다. 독주가 잦아들면서 나타나는 고상한 현악 합주와 미묘한 목관의 변주들은 하늘 아래 펼쳐진 초여름의 평화스러운 파노라마를 그려내고 있다.
'고흐(Gogh)' 작, <종달새가 나는 밀밭>
종달새는 자유로운 카덴짜를 햇빛처럼 반사하며 자신만의 자유를 만끽한 후 땅으로 곤두박질하며 마을 축제가 벌어지는 마당으로 날아가 흥겨이 노닌다. 작지만 힘찬 종달새의 고동소리는 오른손의 운지(運指)에 의해 들려오는데, 흡사 시름에 잠긴 불쌍한 영혼들을 깨끗이 여과시키듯 듣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있다.
음악의 호흡이 바뀌어 잠시 조용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알레그로 트란퀼로:빠르고 고요하게) 다시 종달새의 바이올린이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새의 날갯짓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관현악의 평온하고 기품있는 반주 위에서 발그레하게 달아오르며 한 번 더 화려하게 비행한다.
이윽고 모든 관현악 주자들이 할 일을 끝내고 악기를 내려놓으면, 홀로 남은 바이올린은 종달새를 먼 하늘로 떠나 보내며 가느다란 배웅의 인사를 전한다.
원 시는 매우 길기 때문에 앞 부분의 구절만 인용해 본다.
The Lark Ascending George Meredith
In chirrup, whistle, slur and shake,
And ever winging up and up,
Till lost on his aerial rings, |
종달새가 날아 오르네
조지 메레디스
지저귀고, 휘파람불며, 읊조리고, 들썩이며,
하늘 위로 솟구치고 오르는 날개짓은,
허공에 부서지는 그의 날개 춤사위 뒤로, |
이 매력에 넘치는 곡은 영국 국민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클래식 레퍼토리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명한 곡이며, 특히 여러 나라의 FM 방송국에서 리퀘스트 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특히 피겨 요정 김연아가 2006년 ‘ISU 시니아그랑프리 프리스케이팅’에서 이 곡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면서 갑자기 유명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이 곡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며, 이 곡을 ‘유튜브’ 등에서 검색하면 바로 김연아의 스케이팅 VOD가 뜰 정도로 전세계인의 감성에 각인되어 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이즈음에, 힘차게 용약(踊躍)하는 <종달새의 비상>을 들으며 지친 나의 심장에 새로운 희망의 활력을 채워 나간다면, 올 한해 동안 그 어떤 어두움과 근심의 그림자도 사라질 것같은 생각이 든다. 시인이 ‘황금빛 술잔의 흘러 넘치는 포도주’를 노래했고, 빛나는 요정 스케이터가 한 마리 종달새가 되어 ‘황금빛 메달’을 목에 걸었듯이, 우리도 찬란한 영광과 환희의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면 좋으리라 여겨진다.
Ralph Vaughan Williams : Romance for violin and orchestra "The Lark Ascending"
바이올린:힐러리 한(Hilary Hahn:1979-/미국)/콜린 데이비스(Colin Davis)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