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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과 뮤즈

전몰장병을 기리는 플랜더스와 몬테카시노의 양귀비

작성자이성준|작성시간11.06.06|조회수672 목록 댓글 0

전몰장병을 기리는 플랜더스와 몬테카시노의 양귀비

 

 양귀비는 영어로 포피(Poppy)라고 불린다. 독일에서는 모온블루머(Mohnblume), 프랑스에서는 파보(Pavot), 이탈리아에서는 파파베로(papavero), 스페인에서는 아도미데라(Adomidera), 폴란드에서는 마키(Mak)라고 부른다. 양귀비의 다른 명칭은 앵속(罌粟), 약담배, 아편꽃이다. 여러 명칭에서 짐작하듯, 양귀비는 약용식물이다. 양귀비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과 소아시아 지역이다. 땅에서 줄기가 곧바로 솟아나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높이는 사람의 키를 넘지 않는다. 긴 달걀 모양의 잎이 밑에서 줄기를 반 정도 감싸며 어긋나 자란다. 잎 가장자리에는 깊이 패어진 톱니가 나 있다.

 

 양귀비는 5,6월 경에 소담스러운 꽃을 피운다. 빨간색이 주종이나 흰색, 노랑색, 자주색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꽃은 줄기마다 하나씩 달리며 꽃봉오리 때에는 밑으로 쳐졌다가 꽃이 피어나면서 위로 벌어진다. 꽃받침조각은 두 개로 타원형의 배 모양인데, 꽃이 피고 난 다음 저절로 떨어진다. 꽃잎은 네 장이고 둥글며 안으로 모아져 있다. 여러 개의 수술에 한 개의 암술이 있으며, 암술머리는 사방으로 갈라져 있다. 열매는 삭과이고 손바닥 크기의 둥근 달걀모양이며, 다 익으면 과일의 윗구멍에서 씨앗이 터져 나온다.


 양귀비의 익지 않은 열매에 상처를 내어 받은 유즙(乳汁)을 말린 것이 바로 아편(阿片)이다. 아편은 모르핀과 파파베린, 코데인 등의 알칼로이드 성분으로 되어 있다. 아편은 인체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진통과 진정, 지사(지사)효과를 내며, 복통과 기관지염, 불면증과 만성 장염 등에 특효가 있다.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화단에 양귀비 두어 송이를 키웠다. 꽃이 떨어진 후 열매를 받아두었다가 가정 상비약으로 사용했다. 60년대 이후 정부에서 단속하여 앞마당에서 사라졌다. 아편을 담배와 함께 피우면 마취상태에 빠져 몽롱함을 느끼고, 습관성이 되면 중독이 된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고 있으나, 불가리아와 그리스,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는 아편을 합법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양귀비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꽃으로서의 양귀비와 실존인물로서의 양귀비이다. 양귀비(楊貴妃)는 당나라 현종(玄宗)의 황후이며 당대의 미인이었다. 그러나 오빠 양국충의 실정(失政)으로 절도사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켜 도성이 함락되자, 황제는 귀비와 더불어 사천성 방향으로 도주하였다. 그런데 도중에 호위 군대가 “양귀비에게 나라를 기울게 한 죄를 물어야 한다“고 우격다짐을 하여 서쪽 변방의 마외(馬嵬)역에서 양국충과 양귀비를 죽여 버렸다. 그녀의 나이 서른 여섯이었다.


 그러나 양귀비는 여러 문학에서 되살아나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당대의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그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후대의 백거이(白居易)는 현종과 양귀비 사이의 깊은 애정과 이별을 모티브로 하여 <장한가(長恨歌)>라는 장시를 짓기도 하였으며, 여러 희곡 작품들이 후대에 출판되어 상연되고 있다.

 

 서양에서 양귀비는 잠과 죽음의 상징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곡물과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Demeter)가 저승의 지배자인 하데스(Hades)에게 빼앗긴 딸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찾아 헤매다가 이 꽃을 꺾어서 잠에 빠져 스스로 위안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늘날에도 그리스 사람들은 죽은 이의 무덤 가에 이 꽃을 심어 놓는다. 유명한 동화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에서는 마녀가 양귀비 숲에 잠이 드는 독을 뿌려, 그 곳을 지나던 도로시 일행이 향기에 취해 잠이 드는 장면이 나온다.

 

 영국에서는 전몰용사 추모일을 ‘양귀비의 날(Poppy Day)'라고 부른다. 우리의 현충일과 같은 날이다.  1차 대전이 한창인 1915년 5월 3일. 서부전선 플랜더스(Flanders/플랑드르) 들판 전투에 참전한 캐나다 소령 존 맥크래(John McCrae:1872-1918)는 온 들판이 전사자와 부상자로 뒤엉켜 있는 것을 보고 그 반인륜적 참상에 괴로워 했다. 그러다가 병사들의 시신 사이로 붉은 야생 양귀비가 무수히 돋아나 있는 것을 보고  <플랜더스 들판에서(In Flanders Fieds>라는 시를 지었다.

 

  In Flanders fields the poppies blow
  Between the crosses, row on row,
  That mark our place; and in the sky
  The larks, still bravely singing, fly
  Scarce heard amid the guns below.

 

  We are the Dead. Short days ago
  We lived, felt dawn,
  Saw sunset glow,
  Loved, and were loved, and now we lie
  In Flanders Fields.

 

  Take up our quarrel with the foe:
  To you from failing hands we throw
  The torch; be yours to hold it high.
  If ye break faith with us who die
  We shall not sleep, though poppies grow
  In Flanders Fields.
 

  플랜더스 들판에 양귀비꽃 피었네.
  줄줄이 서 있는 십자가들 사이에,
  그 십자가 우리 누운 곳 알려주기 위함이네.
  하늘에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아오르건만
  저 밑에 요란한 총소리 있어 잘 들리지 않네.

 

  우리는 이제 운명을 달리한 자들,
  며칠 전만 해도 살아서 새벽을 느꼈고,
  석양을 바라보았네.
  사랑하기도 하고 사랑받기도 하였건만
  이제 우리는 플랜더스 들판에 이렇게 누워 있네.

 

  원수들과 우리들의 싸움 포기하려는데,
  힘이 빠진 내 손으로 그대 향해 던지는 이 횃불
  그대 붙잡고 높이 들게나
  우리와의 신의를 그대 저버린다면
  우리는 영영 잠들지 못하리
  비록 플랜더스 들판에 양귀비꽃 자란다 하여도


이 시는 잡지에 게재되어 일반인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감명을 받은 미국의 모이라 마이클(Moira Michael)이 답시 <우리는 신뢰를 지킬 것이다(We shall keep the faith)>를 발표하고 붉은 양귀비꽃을 자신의 옷깃에 꽂아 참전 용사들을 기렸다. 그 후 이 풍습은 영국 연방 국가에 두루 퍼져 매년 11월 11일 국민들이 양귀비꽃을 사 들고 묘지에 헌화하고 있다.

 


몬테 카시노 전투 추모묘지

 

  2차 대전 당시 폴란드 병사들이 이탈리아 로마 근처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전투에서 대규모의 독일군 병력과 격돌하였다. 이 언덕은 야생 양귀비가 지천에 피어 있었다. 네 차례의 격전이 있었고, 그 때마다 폴란드 군대가 번갈아 투입되었다. 1944년 5월 11일, 드디어 전투가 끝나고 독일군은 물러났으나 몬테 카시노의 들판은 온통 병사들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참전 시인이자 작곡가였던 알프레드 쉬츠(Alfred Schuetz)는 이 장엄한 현장을 기리기 위해 <몬테 카시노의 붉은 양귀비:Czerwone maki na Monte Cassino>라는 노래를 지었다. 이 노래는 후일 폴란드 군대의 찬가로 불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다음에 그 후렴구 가사를 소개한다.

몬테 카시노 언덕의 붉은 양귀비들은
아침 이슬 대신에 폴란드 병사의 피를 마셨네
양귀비 꽃밭 너머로 병사들은 진군했고

죽음 가운데서도 그들의 분기(憤氣)는 솟아올랐네
해가 가고 세월이 지나갔으나
몬테 카시노 언덕의 붉은 양귀비꽃과 함께
그들의 용맹스런 전투는 길이 간직되었네,
폴란드 병사들이 그 땅에 뿌린 피는
몬테 카시노 언덕의 양귀비보다 더 붉으리.


 위의 노래 가사는 변영로 시인의 시, <논개>와 일맥상통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온 몸을 던져 왜군 적자을 무찌른 논개의 충절과, 몬테 카시노 언덕에서 장렬히 전사한 폴란드 병사들의 애국심은 시공을 초월해 공감이 된다.

 

 양귀비의 열매를 가공한 마약, 아편(鴉片:Opium)은 세계사를 변화시켰다. 1840년, 영국은 대청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대거 유입시켜 중국 경제를 혼란시키고 인민들을 중독에 빠뜨렸다. 청나라 대신 임칙서(林則徐)가 무역항 광주(廣州)에 가서 아편상자를 몰수해 불태웠다. 이를 빌미로 영국 함선 50척과 병력 4,000명이 청나라를 침범하였는데, 청나라는 2만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고 패퇴하였다. 이후 청나라는 급격히 쇠퇴하고 유럽 열강은 중국과 아시아를 식민화하기 시작했다.


 아편은 오늘날 헤로인(Heroin)이라는 주사약물로 가공되어 전 세계에 거래되고 있다. 순수의약용으로 유통되는 경우는 0.2%밖에 되지 않는다. 종합병원에서 아편 추출물은 유용한 치료제로 쓰이나, 비공식적으로 거래되는 아편은 수 많은 중독자와 폐인을 낳는다. 원래 약은 독과 한가지라고 하였다. 양귀비는 독으로 사람을 해치나, 그 독이 약이 되어 사람과 조국을 구할 수 있다.

 

 

 양귀비는 그 빛깔과 자태에서 가장 뇌쇄(惱殺)하고 화려한 꽃이다. 한 번 양귀비를 본 사람은 그 치명적 유혹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아편의 선연(鮮然)한 붉은 빛깔은 세상을 매혹시키나 그 속에서 나온 독은 사람을 망치게 한다. 그런데 그 꽃이 전몰장병을 기리는 꽃이 되었다. 그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 독을 스스로 삼키고 붉은 빛깔로 산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혈(鮮血)의 붉은 핏빛 꽃이 되어 전장(戰場)을 물들이며 해마다 들판과 묘원에 가득 피어나고 있다. 삼가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호국정신을 가슴에 새겨 본다.

 

감상곡

 

01 플랜더스 들판에서(In Flanders Fieds) 웨스트민스터 소년 합창단

 

 

02 몬테 카시노의 붉은 양귀비(Czerwone maki na Monte Cassino) 바르샤바 알렉산드라바 합창단

 

첨부파일 양귀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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