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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과 뮤즈

장미와 나눈 치명적인 사랑의 약속, <사포의 송가>

작성자이성준|작성시간10.11.13|조회수745 댓글 2

장미와 나눈 치명적인 사랑의 약속, <사포의 頌歌>

 

 '사포(Sappho:Σαπφ )'는 기원전 7세기 후반 그리스 '레스보스(Lesbos)'섬에서 활약한 여류시인이다. 기원전 612년 경 귀족의 딸로 태어나 기원전 570년 경에 사망하였다. '피타쿠스(Pittacus)'가 정변을 일으키던 혼란한 시절에 '시칠리아'섬으로 십여 년 간 망명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항구도시 '미치레네(Mytilene)'로 가서 소규모의 학교를 세워 시집 안 간 소녀들을 모아 음악과 무용, 시가 등을 가르쳤다. 여학생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까닭에 그녀가 '동성애자(Lesbian)'이라는 소문이 돌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폼페이(Pompei)에서 출토된 '사포'의 초상


         '레스보스'섬의 위치
            
그녀가 남긴 여러 사랑의 노래는 이 시절에 지어진 것들이다. 그녀는 주로 서정시를 많이 썼는데, 그 명성이 당대에 '호메로스(Homeros)'와 견줄 만큼 높았다. 그녀의 시는 자신의 내적 생활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로, 간결한 구성에 우미(優美)한 감성과 따뜻한 인간애가 함축되어 있다. 그녀의 시는 남성적 영웅주의의 풍토 속에서 여성이 지니는 정열적 감성과 온화한 고결함을 강조하여 당시의 서정주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그의 시는 아홉 권에 달하였다고 하지만, <아프로디테 찬가>와 두 세 편의 시가 완전한 형태로 전해질 뿐이다. 그녀에 대해서는 숱한 전설이 있으며, 후대의 시인과 화가들이 그녀를 사모하여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세계 최초의 여류시인으로 기억되는 그녀는 불행히도 '레우카디아(Leucadia)'절벽에서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녀와 관련된 전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청년 '파옹'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의 시를 짓고 있던 '사포'는 어느 날 신전에서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에게 바칠 시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시각 '아프로디테'를 찾아온 '파옹(Faon)'이란 늙고 추한 이방인 청년이 '사포'를 보고 첫눈에 반하였다. 너무나 황홀한 그녀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파옹'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신전에 왔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아프로디테'에게 마법을 청하였다. 젊고 잘생긴 청년의 모습으로 보이도록 하는 특별한 향(香)을 부탁한 것이다.

 

 '다비드(Jacques-Louis. David)'작, <레스보스 섬의 사포>

 

며칠 후 신전으로 찾아온 '사포'를 본 '파옹'은 그 향을 신전 한구석에 몰래 피워 두었다. 그리고 향로 옆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향기에 취해 무의식중에 마법에 걸려든 '사포'는 '파옹'이 지닌 본래의 추한 모습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를 오랫동안 꿈꿔 온 이상적인 배우자로 생각하였다. 그때를 틈타 '파옹'이 '사포'에게 다가가자 환각에 취한 '사포'는 그에게 얼굴을 기대고 사랑을 고백하였다. 그러나 한창 사랑을 고백하던 중 향로의 연기가 사라져 '사포'는 결국 '파옹'의 정체를 알게 되어 버렸다. 그녀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채 그만 충격으로 실신해 버렸다. '사포'는 나중에 정신을 차렸지만 이상하게 '파옹'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절망한 나머지 그녀는 사랑을 노래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거짓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모로(Moreau)'작,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사포>

 

 '사포'는 당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평판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즉, '열 번째 뮤즈(Muse)'라는 칭호를 듣는 최고의 여류문학가로서의 그녀와, '동성애'의 부정(不淨)한 행실을 서슴지 않고 정치적 야망을 가졌던 부도덕한 여인으로서의 그녀이다. 그러나, 전근대(前近代) 문화사의 각 장면에서 여류시인이나 예술가가 정당한 평가를 받은 적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수많은 여류 천재와 위인들이 잊혀지고 폄훼(貶毁)되는 것을 역사가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사포'는 지금껏 저평가된 작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살아서는 정쟁(政爭)의 위험과 성(性) 정체성의 오해 속에서 고초를 당했고, 죽어서는 그 명성이 잊혀지고 침해되었던 그녀는, 아직까지 그 고귀하고 탁월한 진면목을 세상에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여류 작가로 남아 있다.

           독일 작가  '지그프리트 오버마이어(Siegfried Obermeier)'는 소설 <사포(Sappho>를 통해 이 비운의 여류시인을 '레스보스' 출신 예술인으로 그리고 있는데, 특히 그녀의 망명생활 당시 정황을 사료에 입각하여 밀도있게 서술하고 있다. 다만 동성애의 대목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고 있음이 눈에 거스른다. 그 소설의 한 대목을 여기에 소개한다.
                                                
 '제우스' 신전의 앞뜰에서 소녀합창단과 처음 만났을 때 조용함 속에 긴장감이 흘렀다. 아이들의 커다란 눈동자에서 호기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미 이 곳에서 사용하는 '도리아'식 그리스어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자기 모국어의 억양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내 말이 아이들의 귀에는 약간 낯설 게 들린 것 같았다.
 '미론'은 축제 때 '호메로스'의 <헤르메스 찬가>일부분을 무대에 올릴 생각이었다.
  그 시는 상당히 긴 시였기 때문에 어린 소녀들이 전체를 다 부르는 것은 무리였다.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소녀들에게 질문이 있으면 해보라고 말했다.
 "우리 여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끝없는 호기심이란다. 그렇지 않니? 나는 이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레스보스'라는 섬에서 왔다. 너희들은 모두 '시쿨리아' 사람들이지. 우리가 비록 같은 그리스 사람이기는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지역마다 차이점들이 생겨났단다. 그러니 먼저 궁금한 걸 물어보는 시간을 갖고, 그 후에 연습에 매진하도록 하자."


 여학생들은 낯선 사람에 대한 수줍음 때문에 처음에는 감히 질문 같은 것으로 이 위대한 시인 '사포'를 괴롭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우리 고향 '레스보스'와 나 자신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레스보스'를 다섯 개의 도시, 즉 '펜타폴리스'로 묘사하였고, 인근에 있는 섬들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이어서 '미치레네'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 곳의 신전들, 특히 '헤라이온' 신전에 대해 말해 주었다. 나는 내 출생에 대해서도 대강 이야기했고, 가족도 소개해 주었다. 도망친 남편에 대해서는 항해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우리 가족으로 하여금 망명길을 떠나도록 만든 정치적인 사건들을 쭉 설명해 주었다.
 "그럼 선생님 가족은 영원히 추방되신 건가요?"
 약간 나이가 많은 아이가 물어보았다.
 "아니야, 한 이삼 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어. 어쩌면 오 년 정도 걸릴 수도 있고, 아무튼 정확한 기간은 아무도 알 수 없단다."
 "이 곳이 마음에 드세요?"
 두 명의 밝은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물었다. (중략)

 

 나의 학생들이 그늘이 드리워진 스토아 무대 위로 올라갔다. 키오스에 있는 아테나 신전에서 데려온 두 명의 플루트 연주자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나는 호메로스의 혼령이 목동과 사냥꾼의 신에게 바친 자신의 짧고 유쾌한 찬가가 아름다운 여자아이들의 노래 소리로 울려 퍼지는 것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랐다.

                                                                               헬레니즘 시대에 제작된 '사포'의 흉상

 

 뮤즈의 여신이여, 헤르메스의 귀한 아들에 관한 노래를 불러주소서!
 염소의 다리와 두 개의 뿔을 가진 그 아이는 시끄러운 소리내는 것을 즐기네,
 또한 그는 춤추는 요정들과 함께 나무가 많은 목초지를 찾아다닌다네.
 요정들이 가파른 바위 위를 기어오르며 소리치네,
 그 소리가 커다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네,

 


 피부에 온통 털이 덥수룩한 가축의 수호자 판(Pan) 신,
 그는 눈으로 뒤덮여 반짝거리는 모든 산꼭대기의 통치자라네,
 높은 산악지대 곳곳에 솟아 있는 봉우리들과 돌 투성이 길의 지배자라네,
 그가 빽빽한 덤불 숲을 헤치며 이쪽 저쪽으로 도망쳐 다니네,
 그러다 가끔 사랑스럽게 졸졸 흐르는 시냇물의 유혹에 넘어가네.

 

( 강명순 역, 작가정신)


 '한스 슈미트(Hans Schmidt:1856-1923)'라는 작곡가이자 시인이 '사포'에 대한 시를 써서 '브람스'에게 넘겼다. 당시 '브람스'와 '슈미트'는 '빈 클럽'이라는 음악가 사교모임의 같은 멤버였는데, 이 모임에서 그 시를 전한 것이다. 2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시, <Gereimte sapphische Ode:拙詩, 사포 찬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Rosen brach ich nachts mir am dunklen Hage;
 Sueßer hauchten Duft sie als je am Tage.

 

 Doch verstreuten reich die bewegten  Aeste
Tau, der mich naeßte.

 

 Auch der Kuesse Duft mich wie nie berueckte,
 Die ich nachts vom Strauch deiner Lippen pflueckte:
 Doch auch dir, bewegt im Gemuet gleich jenen,
 Tauten die Traenen.

 밤중  어두운  꽃 넝쿨 담장에서 꺾은  장미 송이들;
코끝으로 스며든 아찔한 달콤함이
 한낮의 것보다 더 진동하더이다.
그래요, 흔들거리는 가지에서 후두둑 떨구는 이슬방울로
온 몸이 흠뻑 젖고 말았습니다.

 

어이하여 그대의 입맞춤은 오늘따라 그리 달콤하던지요,
내 그대의 꽃 입술을 밤중 은밀히 따버린  때문이죠;
그래요, 떨리는 입술처럼 당신 영혼도  떠시더군요,
이슬같은 눈물 방울 후두둑 떨구시더이다.

 

 다음은 '조지 쿠퍼(George Cooper)에 의한 독일어 가사의 영어 번역본이다.

 

 

 Roses from the dark hedge I plucked at night;

 They breathed sweeter fragrance than ever during the day;
 But the moving branches abundantly shed
 The dew that showered me.

 

 Thus your kisses' fragrance enticed me as never before,
 As at night I plucked the flower of your lips:
 But you too, moved in spirit as they were,

 Shed a dew of tears.

 

   '한스 슈미트'                       '사포'의 작품이 기록된 파피루스 파편

 

 

 

 독일 낭만주의의 대작곡가 '브람스(Johannes Brahms:1833-1897)'는 이 시를 읽고 두 소절의 담백하고 짧은 노래를 지었다. 바로 작품번호 94의 네 번째 곡인 <사포의 頌歌:Sapphische Ode>이다. 1884년 가을의 일이다. '파옹'과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이 가사에 함축되어 있다. 이 곡은 '브람스'의 여러 노래 중 오늘날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노래 중의 하나이며 여러 기악곡으로 편곡되기도 하였다.

 

시에 등장하는 장미는 ‘사포’의 화신이다. 또한 그녀가 동경하는 사랑과 예술의 표징이자, 치명적인 독(毒)이다. 본래 사랑은 그 연인에게 감미로운 음료이자 매운 독이 되곤 한다. 그녀는 길지 않은 생애동안 그 넘치는 연정(戀情)을 예술혼으로 불사르고 신화(神話)가 되어 버린 한 떨기의 여류 가객(歌客)이다.

  곡은 3화음 중심의 간단한 반주와 선율로 되어 있다. 단순한 선율은 평온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불러내지만, 단조로운 음표 속에 제어된 감정이 숨어 있다. 평이한 구성에 고대 그리스인의 아취(雅趣)가 느껴진다.


짧지만 격조높고 아름다운 곡이다.


 감상의 이해를 돕고자 그 악보를 따로 싣는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리라
파온이여
멜리타여

 


내가 죽은 것은 생(生)에 지친 까닭이다.
더 이상 살 의욕을 잃었고 이 상황에서 한 줄의 시(詩)도 나오지 않는다.
녹슨 하프와 갈라진 심장을 내던지고
나의 영혼의 고향, 피안(彼岸)에 휴식하러 돌아가고 싶다.
너희와 나는 다른 고향의 사람이다.

 


그것이 우리의 죄(罪)의 전부이다.
따라서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잘 있거라.


 - '사포'의 유언 중에서

 

                         

                연주 : 콘트랄토 - 나탈리에 스투츠만(Nathalie Stutzmann) / 반주 - 잉게르 졸더그렌(Inger Soeldergren)

 

첨부파일 Brahms_Sapphische Ode.pdf

 

 

 

첨부파일 브람스 사포의 송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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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성태 | 작성시간 10.11.14 훌륭한 내용이군요. 2~3개로 나누어서 올리면 읽기가 좋을텐데요...
  • 작성자정경희 | 작성시간 10.11.15 영원한 주제인 "사랑" ,벗어날 수 없죠.
    멋지십니다. 이런 멋진 송가를 올려주시다니.감사합니다.
    언제나 "사랑"하는 멋진 나날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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