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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과 뮤즈

상실과 체념의 輓歌, '말러'의 <대지의 노래>

작성자이성준|작성시간10.11.20|조회수175 목록 댓글 1

상실과 체념의 輓歌, 말러의 <대지의 노래>

 

 고려시대의 서정시인 鄭知常(정지상)은 그의 시 <送人(송인)>에서 '別漏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님을 보낸 슬픔에 포구에서 해마다 눈물을 그 푸른 물결에 적시니, 대동강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절묘한 서정이 천 년이나 지난 오늘날까지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그러나, 남포 포구에서 눈물을 흘린 이가 어찌 西京(서경)의 시인 정지상 뿐이겠으랴?

물결 흔들리는 강가에서 벗을 송별할 제,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옷소매에 눈물자국을 훔쳤겠는가?

 

   당나라 시인 白居易(백거이)는 時空(시공)을 달리 한 또 하나의 '이별의 페르소나(Persona)'이다. 좌천되어 시름을 앓고 있던 그를 보러 친구가 찾아왔으나 이윽고 헤어져야 할 시간, 잔을 들어 술을 설움에 보태 강물에 던질 때 衰落(쇠락)한 어떤 여악사가 琵琶(비파)를 뜯으며 그 情恨(정한)의 심경을 연주하였다. 쫓겨난 이와 그 친구, 노쇠한 藝人(예인)이 同病相憐(동병상련)의 사무침으로 저문 가을녘에 포구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렇듯 기약할 수 없는 정한은 당사자와 지켜보는 이 모두에게 상실과 체념의 슬픔을 느끼게 해 준다. 여러 작곡가들이 숱한 이별의 곡을 썼는데, '말러'의 <대지의 노래>는 인생의 황혼기에서 지난 세월을 한탄하며 고독 속에서 세상을 이별하는 한 남자(혹은 작곡가 자신)의 輓歌(만가)이다.

 

 독일의 후기낭만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는 '주변인'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유태인으로 태어나 생애 내내 '게르만 순혈주의'의 위세에 눌려 지냈으며, '보헤미아' 태생으로 독일 주류사회에 들지 못하였다. 그가 지녔던 예술적 재능은 그를 유럽의 최고 지휘자 및 대작곡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나, 또한 걸림돌이 되기도 하였다. '말러'는 여러 선배 작곡가와 동료들의 도움으로 30대 중반까지 승승장구하며 유럽 도처에서 활약하였다.

 

 불운의 그림자는 그의 나이 40대에 찾아왔다. 마흔 한 살에 미모의 여성과 결혼하여 두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그 중 하나가 몹쓸 병을 앓다 죽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를 시기하던 반유태주의자들이 그를 '빈(Wien)'에서 쫓아냈다. '말러'에게 '빈'은 10여 년간 혼신의 노력을 다해 이룩한 삶의 터전이자 제 2의 고향이었다. 유럽은 그가 다른 곳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도 배려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유럽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덜컥 심장병이 걸렸다. 딸을 잃은 슬픔에 자신의 입지마저 흔들린 데 대한 충격으로 인한 병이었다.

 

 당시 작곡가가 처했던 심경을 원로 피아니스트 이경숙 님은 그의 저서 <대지의 노래>에서 다음과 같이 대신 피력하고 있다.

 

 "그는 나무가 쓰러지듯 허물어지고 만다. 이 어두운 죽음의 골짜기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 1, 제 5 교향곡의 확언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교향곡 2, 3, 4번의 신앙심으로도 그것은 해결할 수 없었고, 교향곡 6번의 니힐리즘도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정신적 패배가 '말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불굴의 정신이 삶에 대한 강한 사람으로 그를 붙들어 일으켰다."

 

 이러한 상태에서 <제 8 교향곡>에 이어 완성한 새로운 '교향악적 연가곡'이 바로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이다. 이 곡은 그가 절체절명의 위기와 절망 속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삶에 대한 아름다운 확신과 소망을 포기하지 않은 증표이다. '말러'는 체관(체념과 달관)이라는 동양적 인생관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고, 그것이 <대지의 노래>에 담겨 있다. 이 작품은 '말러'의 창작 시기 말년에 완성한 걸작으로, '말러'의 뿌리깊고 폭넓은 문학적, 철학적 소양이 잘 결합되어 이루어진 교향적 가곡집이며, 그의 교향곡의 정신을 가장 극단적이고 순수한 형태로 구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곡가 '말러'는 이 곡의 텍스트로 1907년 10월 5일 경에 친구 '테오발트 폴라크(Theobald Pollak)'에게서 받은 독일어 번역 한시집(漢詩集) <중국의 피리:Die Chinesische Floete>를 모태로 하였다. 이 시집은 독일 문학가 '한스 베트게(Hans Bethge:1876-1946)'가 프랑스 시인 '레옹(Marie Jean Leon)'과 '생 드니(Marquis d'Hervey-Saint-Denys)'가 번역한 <哀喪의 노래:La chanson du chagrin>를 다시 번안(飜案)하여 출판한 시집이다. '말러'는 이 시집에 수록된 83편의 시 중에서 일곱 편을 골라 여섯 곡의 관현악 반주가 딸린 연가곡으로 완성한 것이다. 이로써 '말러'의 염세주의와 탐미주의가 동양이라는 환상적인 나라의 사상과 혼화(混和)된 것이다. 중국사상 만큼이나 이 작품에 영향을 미친 것은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1788-1860)'와 '니체(Friedrich Nietsche:1844-1900)'의 페시미즘 철학이다.  인도나 중국이라는 동양에서 사상의 원점을 찾은 '쇼펜하우어'와, 중국의 시에서 음악적 발상의 거점을 찾은 '말러'가 20세기 초입 1차 세계대전의 戰運(전운)이 시작될 무렵 세상에 내놓은, 페시미즘의 아름답고 슬픈 작품이 바로 이 <대지의 노래>인 것이다.

 

 이 곡은 관현악과 두 명의 솔로 가수에 의해 연주되며, 테너와 알토, 혹은 테너와 바리톤이 악장별로 번갈아가며 노래한다. 악장별로 제목이 붙여져 있는데, 1악장은 "술의 노래", 2악장은 "가을에 서글픈 것", 3악장은 "청춘에 대하여", 4악장은 "아름다움에 대하여", 5악장은 "봄에 취해버린 사람들", 6악장은 "고별" 로 되어 있으며, 중국의 시인 '李白(이백:701-762)'과 '孟浩然(맹호연:689-740)', 王維(왕유:699-759)', 그리고 錢起(전기:710-782)가 지은 漢詩(한시)를 시인과 작곡가가 나름대로 飜案(번안)·개작하였다. 특히 마지막 곡에는 작곡가가 직접 지은 시를 말미에 결론처럼 첨가하였다.

 

제 2 곡 <가을에 고독한 자 :Der Einsame im Herbst >- 천천히 기어가는 것처럼. 지친 듯이
 
 제 2곡은 알토의 독창으로 불리어지며, 그 시상(詩想)이 '슈베르트(Schubert)'의 <겨울나그네> 중 10곡, <휴식:Rast>와 매우 닮아 있다. <겨울나그네>의 작가 '빌헬름 뮐러(Wilhelm M ller)'는 <휴식>에서 "소박한 숯구이 움막에서 휴식처를 얻었으나, 아픈 상처가 쑤셔 온 몸이 편치 않음"을 노래하고 있으며, '말러'의 <가을>에서는 당나라 시인 '전기'의 시는 "안식처를 얻었으나 고독과 번민 속에서 목놓아 우는" 방랑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사의 모태가 된 한문 원시는 다음과 같다.

 

                    效古秋夜長(효고추야장)

 

                                                       錢起(전기)

 

秋漢飛玉霜,北風掃荷香。(추한비옥상,북풍소하향)

含情紡織孤燈盡,拭淚相思寒漏長,(함정방직고등진,식루상사한루장)
前碧雲靜如水,月弔棲烏啼鳥起。(첨전벽운정여수,월조서오제조기)

誰家少婦事鴛機,錦幕雲屛深掩扉,(수가소부사원기,금막운병심엄비)
白玉窓中聞落葉,應憐寒女獨無衣。(백옥창중문락엽,응련한녀독무의)


가을철 한수(漢水)는 옥같은 서리가 내렸는데, / 북풍은 연꽃 향기를 쓸어가 버리는구나.
정을 담아 베를 짜매 홀로 등불이 다하고, /  눈물을 닦으매 님 생각에 찬바람이 입에서 길게 새어나오는구나.
처마 앞에 흰 구름이 마치 물처럼 깨끗하고, /  달님은 까마귀와 새가 깃들어 우는 것을 비추는구나.
어느 집의 가녀린 여인이 원앙의 좋은 때를 기억하리오, / 비단 천막과 구름같은 병풍에 깊은 문에 감추어져,
흰 옥과 같은 창문 밖에 잎 떨어지는 소리 들리는데, / 의지할 데 없이 홀로 된 여인의 차디찬 마음이 어찌 가련하지 않으리오.

 

 제 2곡의 음악은 쓸쓸한 시정(詩情)만큼이나 고독하다. 정제된 관현악과 구성진 알토의 선율이 가을날 고독 속에 슬피 울면서 눈물을 말려줄 사랑의 태양을 기다리는 남자의 탄식을 노래한다. 실내악적으로 대단히 섬세하게 짜인 악상은 매우 애상적이고 쓸쓸하게 들린다. 특히 성악이 등장하기 전까지 오보에 솔로로 시작되어 클라리넷과 오보에의 앙상블로 이어지는 멜로디는 '말러'가 남긴 음률 중에서도 가장 절절하게 마음을 파고 들어간다. 고요히 물결치는 바이올린 음형과 온화하고 풍요로운 관악의 앙상블이 서로 교대하며 곡을 이끌어 간다.
현악 사운드는 다채로운 오묘함을 선사하며, 시들어가는 대지를 輓歌(만가)처럼 노래한다. 죽음을 앞둔 인물이 가을에 느끼는 외로움과 조용한 명상이다.

 

                <Der Einsame im Herbst>
 Herbst nebel wallen bl ulich  ueberm See,
 Vom Reif bezogen stehen alle Graeser;
 Man meint', ein Kuenstler
 habe Staub vom Jade Ueber die feinen Blueten ausgestreut!

 

 Der sueße Duft der Blumen is verflogen;
 Ein kalter Wind beugt ihre Stengel nieder.
 Bald werden die verwelkten, goldnen Blaetter
 Der Lotosblueten auf dem Wasser ziehn.

 

 Mein Herz ist muede.
 Meine kleine Lampe erlosch mit Knistern;
 es gemahnt mich an den Schlaf.

 

 Ich komm zu dir, traute Ruhestaette!
 Ja, gib mir Ruh,
 ich hab Erquickung not!
 Ich weine viel in meinen Einsamkeiten.

 

 Der Herbst in meinem Herzen wahrt zu lange.
 Sonne der Liebe, willst du nie mehr scheinen,
Um meine bittern Traenen mild aufzutrocknen?

                < 가을의 외로운 자 >
 가을의 안개가 푸르게 호수 위에 피어오른다,
 풀들은 이슬에 흠뻑 젖어 있다;
 마치 이름난 예인(藝人)이
 아름다운 꽃에 비취가루를 뿌린 듯 하다.

 

 꽃의 달콤한 향기는 사라지고;
 차가운 바람이 꽃 줄기를 휘게 한다.
 이제 곧 황금빛 연꽃이 시들어
 물 위로 떠오를 것이다.

 

 나의 마음은 번민에 가득차고,
 나의 작은 등불은 바스럭거리며 꺼져가고;
 달콤한 잠이 엄습해 온다..

 

 편안한 안식처여! 너에게 내가 가리니,
 그래, 내게 휴식을 다오,
 나에게는 안식이 필요하다!
 나는 고독 속에서 목놓아 울 것이다.

 

 내 마음의 가을은 너무나 길다.
 사랑의 태양이여, 다시 한 번 떠오르지 않으려는가,
 나의 애처러운 눈물을 부드럽게 마르도록 해주지 않겠는가?

 * 참고로,  '에저스트(Emily Ezust)'에 의한 영문 번역시와 또 다른 번역문을 첨부파일로 싣는다.

 

  세기말의 불안한 시대상을 온몸으로 살다 간 음악가 '말러'는 죽음의 문제에 집착하여 번뇌한 철학자요 사색가였다. 그러나 그는 '차이콥스키(Tchaikovsky)'처럼 현세의 운명을 체념하지도 않았고, '브루크너(Bruckner)'처럼 생과 사를 超克(초극)하지도 못하였다. 다만 이 부조리한 현실에서 삶을 긍정하며 환희와 평온을 노래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헤쳐나가기에는 너무나 성격적 破産者(파산자)였으며, 그렇다고 이를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野心家(야심가)였기에 결국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말러' 음악의 참 모습이라고 보여진다. 그의 아홉 개의 교향곡들은 그가 고뇌하고 투쟁했던 여정의 궤적들이다. 1번부터 9번까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1번에서 청춘을 고뇌했고, 2번에서 神에 귀의했으며, 3번에서 자연을 명상하다가, 4번에서 다시 천상의 세계로 회귀하였고, 5번에서 한때 환희의 세계를 동경했으나, 6번에서 다시 체념하여 운명에 굴복하였으며, 7번에서 낭만적 환상에서 머물고, 8번에서 현세와 내세의 일체를 통한 죽음에의 승리를 꿈꾸다가, <대지의 노래>에서 동양적 諦觀(체관)에 빠졌고, 9번에서 구원과 파멸의 딜레마 속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말러'가 이토록 평생동안 교향곡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 인류의 불행과 구원의 문제에 매달렸기에 우리는 그의 교향곡을 들으며 삶의 위안을 받고 새로운 긍정의 메시지를 전해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대지의 노래>를 통해서 그의 인생 철학과 탐미적인 정취, 그리고 그가 꿈꾸어 왔던 영원한 세계를 표현해 놓은 '말러'는 이 곡의 초연을 보지 못하였다. 그는 이 곡을 지은 후 3년 후에 꿈에 그리던 理想鄕(이상향)을 찾아 떠났다. 1911년 5월이었다. 작곡가 자신은 이 곡의 초연을 생전에 듣지 못했다.  

 작곡가가 죽은 후 1911년 11월 20일, 사랑하는 제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가 이 곡을 '뮌헨'에서 초연하였다. 곡이 초연된 지 100년이 지난 오늘, '말러'를 생각하면서 이 곡을 올린다.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 지휘, 뉴 필하모니아 관현악단
알토 크리스타 루드비히(Christa Ludwig)

 

첨부파일 가을의 외로운 자.hwp

첨부파일 상실과체념의만가 대지의노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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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성태 | 작성시간 10.11.27 역시 좋은 글 감사하구요. 글을 좀 분할해주시면 읽기가 더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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