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名詩속의 金言

열차는 의기양양하게 하얀 행복의 시대로 돌진한다.

작성자이성준|작성시간11.07.09|조회수117 목록 댓글 0

 

열차는 의기양양하게 하얀 행복의 시대로 돌진한다. 

 

 

The Express

 

                                                      Stephen Spender

 

 After the first powerful, plain manifesto
 The black statement of pistons, without more fuss
 But gliding like a queen, she leaves the station.
 Without bowing and with restrained unconcern
 She passes the houses which humbly crowd outside,

 

 The gasworks, and at last the heavy page
 Of death, printed by gravestones in the cemetery.
 Beyond the town, there lies the open country
 Where, gathering speed, she acquires mystery,
 The luminous self-possession of ships on ocean.

 

 It is now she begins to sing --- at first quite low
 Then loud, and at last with a jazzy madness ---
 The song of her whistle screaming at curves,
 Of deafening tunnels, brakes, innumerable bolts.
 And always light, aerial, underneath,

 

 Retreats the elate metre of her wheels.
 Streaming through metal landscapes on her lines,
 She plunges new eras of white happiness,
 Where speed throws up strange shapes, broad curves
 And parallels clean like trajectories from guns.

 

 At last, further than Edinburgh or Rome,
 Beyond the crest of the world, she reaches night
 Where only a low stream-line brightness
 Of phosphorus on the tossing hills is light.

 

 Ah, like a comet through flame, she moves entranced,
 Wrapt in her music no bird song, no, nor bough
 Breaking with honey buds, shall ever equal.
 

 급행열차

 

                                                           스티븐 스펜더

 

 처음에는 강력하고 명백한 선언
 피스톤의 검은 성명이 있고 나서, 조용하게
 여왕처럼 미끄러져 그녀는 역을 떠난다.
 인사도 없이 억제된 마음으로
 교외에서 초라하게 밀집된 집들과 가스 공장을 지나

 

 그리고 마침내 공동 묘지 비석에 새겨진
 죽음의 따분한 페이지를 지나간다.
 도시를 넘으면 환히 트인 시골이 있고
 거기에서 그녀는 속도를 더해 신비와
 대양의 기선이 갖는 밝은 침착함을 갖는다.

 

 그녀가 노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때 - 처음에는   나직히

 그리고 나서 더 높게 마침내는 재즈처럼 미쳐서 -
 커브에서 소리치는 기적의 노래와,
 귀머거리 터널과 브레이크, 또 무수한 나사의 노래.
 그리고 언제나 경쾌하고 공기처럼 밑으로,

 

 차륜의 의기양양한 운율이 달린다.
 선로의 금속성 풍경 속으로 달리며 그녀는,
 하얀 행복의 새로운 시대로 돌진한다.
 이 곳에선 속도가 기이한 형체를 넓은 커브를,
 그리고 대포의 탄도처럼 깨끗한 평행선을 던지고.

 

 그리하여 마침내 에든버러나 로마보다 더 멀리,
 세계의 정상을 넘어 그녀는
 단지 낮게 파도치는 언덕 위에
 한 가닥 밝은 인광이 흐르는 밤에 도착한다.

 

 아, 불꽃 속의 혜성처럼 / 어느 참새의 노래도,
 꿀의 새 순이 터지는 / 어떤 나뭇가지와도 비길 수 없는
 노래에 싸여 그녀는 황홀하게 움직인다.

 

 

 스티븐 스펜더(Stephen Harold Spender,1909~1995)는 오든(Wystan Hugh Auden:1907-1973), 루이스(Cecil Day Lewis:1904-1972) 등과 더불어 20세기 중반에 활약하던 2세대 작가들이다. 이들은 비교적 어린 시절에 제 1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전후에는 경제 공황과 허무주의적 위기를 맛보았으며, 또 다른 세계대전의 조짐 속에서 불안한 시절을 보내었다. 당시의 정황은 그들을 안일한 현실도피나 예술 지상론에 머무르게 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선배 시인 홉친스(Hopkins), 예이츠(Yeats), 오웬(Owen), 엘리엇(Eliot)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들은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를 통해 지적 영감과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받았다.

 

 스펜더는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한 때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傾倒)되어 좌익사상의 시를 발표하여 엘리엇 이후의 촉망받는 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같은 그룹의 다른 시인과 비교할 때 기교와 문체면에서는 뒤졌지만, 그 강렬한 정서와 풍부한 서정미는 앞서 있었다. 그는 당대의 여러 작가들 중 가장 자성적(自省的)인 시인으로 시의 주제를 자기 내면에서 찾으려는 경향을 짙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초기에 정치적이고 투쟁일변도의 시를 창작했지만, 중견시인이 된 이후 이념을 내던지고 순수한 서정적 재능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현실을 도피하거나 부정하지도 않았으나, 현실의 아픔과 부조리를 그대로 용납하면서 1930년대의 정치.사회적 한계상황을 지적하고 풍자하였다. 그는 꽤 많은 시를 남겼으나 상당수를 파기한 후 <전시집:Collected Poems>이라는 한 권의 시집에 전 작품을 편집해 195년 출판하였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문예비평가로 활약하며 다수의 평론집을 남겼고, 캘리포니아 대학을 비롯한 여러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생애를 마쳤다.

 

 

 위의 시는 ‘급행 열차’라는 근대의 발명품을 빌어 현대 문명의 발전을 예찬하면서 낙관적인 시각으로 인류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이 시에서 급행열차의 위풍당당함은 ‘여왕(Queen)’으로 비유되고 있는데, 대체로 배나 자동차 등 ‘탈 것’에 대한 어휘들이 여성형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시에서의 여왕이라는 표현은 ‘제국주의 영국’의 은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 영국은 빅토리아(Victoria) 여왕의 치세 때 번성하였다. 영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전성기를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Wueen Victoria:1819-1901)은 1세기 가까운 생애와 60여 년의 재위기간 동안 영국을 “영원히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발전시켰다. 그녀의 치세 때에 영국은 지구 표면적의 1/5, 총 인구의 1/4을 아우르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여왕은 전성기 때 대영 제국의 거침없는 기상과 융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여왕폐하 급행열차는 ‘강력한 선언’을 외치며 여행을 떠난다. 이 선언(manifesto)과 성명(statement)은 마치 국왕의 칙령이나 포고문처럼 냉정하고 권위있다. 빅토리아 여왕은 여러 포고령을 통해 거대 제국 영국의 정책을 이끌어 나갔다. 심사령과 해방령을 반포하여 신교도들의 노동력을 확보하였으며, 선거법 개정을 통해 신흥자본가와 중산계층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또한 항해조례를 선포하여 세계를 선도하는 자유무역 국가가 되었다. 이들 일련의 정책과 포고들은 영국을 내적으로 건실하게 굳히고 외적으로 번성하게 하였다.

 

 

 여왕이 이끄는 제국의 급행열차는 빈민촌과 공단을 지나 ‘공동묘지’를 통과한다. 이로써 영국은 ‘죽음의 따분한 페이지’와도 같았던 어두운 과거사를 떨치고 미지의 도시와 새로운 대양을 만나 번영의 노래를 구가(謳歌)하며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나아간다.

 급행열차는 속력을 올려 ‘재즈’의 광란처럼 거침없이 달려 나간다. 여기서 새로운 음악양식인 재즈(Jazz)는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경쾌하고 매혹적인 광란의 음률을 상징하며, 기관차의 낯선 기계음과 기적소리를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광란의 재즈와 커브의 외침, 기계부품들이 만들어 내는 금속성 노래들은 신기하고 경이로운 기관차의 존재를 효과적으로 인식케 하는 장치들이다.

 

 급행열차는 이제 질주와 쾌속의 주행을 계속하며 인간의 새로운 행복과 질서를 찾아 돌진한다. 열차의 승객들은 철로와 바퀴가 평행으로 만나 보여지는 금속성 풍경 속에서 ‘하얀 행복’의 미래로 향한다. 여기에서 “하얀 색”은 순수와 정결의 상징이자, 차별과 분쟁이 없는 평화와 평등의 색깔로 인식된다. 또는 흑인과 유색인종의 행복이 아닌, 백인(Pale-Skinned Caucasian)의 - 유럽과 북미 선진국민들만의 - 행복한 시대를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기차는 최고의 속력지점에 다다른다. 석탄을 집어삼킨 화차는 맹렬하게 날뛰며 마치 탄도(彈道)를 통과하는 대포알처럼 나아간다.

 

 런던에서 출발한 급행열차는 셰필드(Sheffield)와 뉴캐슬(New Castle)을 지나 잉글랜드의 종착점 에든버러(Edinburgh)에 도착한다. 북해의 입구에서 열차는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떠난다. 행선지는 세계 최대의 제국 로마이다. 영국의 번영, 로마제국의 번영에까지 다다른 기관차는 이제 세계의 대제국을 성취하여 하늘 끝에 그 번영의 깃발을 꽂으려 한다.

 
이제 이 기관차와 승객은 평화와 복락의 바닷가 작은 언덕의 밤 하늘에 혜성같은 궤적을 그리며 황홀한 여정을 마무리한다.

 20세기 초반까지 기차는 과학과 기술문명이 이룩한 새로운 시대의 교통수단으로 다가왔다. 최초의 기관차 로코모션(Locomotion)호가 1825년 9월에 성공적인 운행을 거둔 후 기차선로와 기관차는 급속도로 건설되고 퍼져 나갔다. 철도를 통한 기차교통은 1840년대 미국 대륙횡단철도와 1890년대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확대되었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고속철도로 발전하였다. 육중한 강철 피스톤과 바퀴로 상징되는 기관차의 위용은 오늘날의 우주선과 맞먹는 경이와 찬탄의 대상이었다. 체코의 작곡가 드보르작(A.Dvorak)은 미국 체재시 뉴욕의 기차역을 매일같이 방문하여 각 기관차의 행선지와 모델명을 탐구하면서 보냈다. 프랑스의 음악가 오네게르(A.Honneger)는 미국의 북대서양횡단철도를 왕복하는 장거리 특급열차인 <Pacific 231>호를 기리면서 동명의 관현악곡을 썼다. 그렇게 기차여행은 경이로움과 안락함, 생활과 낭만의 대상으로 각인되었다.

 

 이제 철로와 기차는 지구상의 오지(奧地)에까지 뻗어나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철도는 가장 중요하고 비중있는 교통수단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물산들이 이 금속 레일을 통해 오고 간다. 기술문명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철도의 탄생을 ‘산업혁명’의 가장 큰 성과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인류 문명과 산업은 발전시켰을지 몰라도 인간의 행복과 안락을 보장하지는 못하였다.

 

 시인 스펜더는 철도와 기관차를 통해 인류 문명의 낙관적인 미래를 보았다. 그의 시대적 상황은 암울하고 비관적이었다. 제국주의와 전체주의가 팽배했던 20세기의 유럽은 반목과 갈등, 분쟁과 살육이 끊이지 않았다. 시인은 기차의 약진하는 기상을 지켜보며 인류가 이처럼 화합과 조화로 매진해 나간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밝고 찬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시를 썼다. 철도가 성대하고 빛나는 번영을 구가하던 1930년대의 시민들은 기차를 바라보거나 타면서 새로운 이상향이 자신의 앞에 펼쳐질 것 같은 착각을 하였다. 그러나 기관차의 강철 근육와 철로의 혈관으로는 세계평화를 굳건히 하고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맺어지지는 못한다. 기술문명은 문제해결의 도구로 존재할 뿐이다. 스펜더가 바라보고 염원했듯, 우리 인간들이 한 열차에 탄 운명 공동체의 의식을 가지고 공존 공영을 모색한다면 우리 인류의 앞날을 밝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펜더가 바라보았고 우리가 느끼는 현대 문명의 딜레마가 아니었던가 한다.

 

 

첨부파일 110707 열차는 의기양양하게 하얀 행복의 시대.hwp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