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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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
Lord Byron, George Gordon
There is a pleasure in the pathless wo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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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바이런 경, 조지 고든
길 없는 숲에 기쁨이 있다, 번역 : 김명희 |
(출처) '바이런(Byron)'의 시집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Lord Byron:1788-1824)은 낭만적 반항아의 기질을 타고난, '방황하는 지성'이었다. 그는 귀족으로 유복하게 태어났으나 항상 정서적 결핍을 느끼며 살았다. 그는 숱한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으나, 정작 여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바람둥이였다. 조국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영국을 스스로 버리고 생애 대부분을 유럽 여러 나라를 주유(周遊)하는 데 바쳤다. 그는 이탈리아의 독립을 돕다가 다시 그리스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던 중 열병에 걸려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토머스 필립스(Thomas Phillips) 작, <베니젤로스(Venizelos) 정상을 바라보는 알바니아 민속의상의 바이런 卿(1813)>
일찍이 바이런은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을 졸업하면서 처녀시집 <나태의 시간들"Hours of Idleness>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문예비평가 브로엄(Brougham) 경이 이 시에 대해 혹평을 하며 시작(詩作)을 그만두는 것이 어떠냐는 충고를 하게 되자, 그는 몹시 울적하고 자존심이 상하였다. 이에 바이런은 그 이듬해인 1890년 7월 2일, 영국의 팔머스(Falmouth)를 떠나 남부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는 친구 플레쳐(Fletcher)와 머레이(Murray), 그리고 소작인의 아들인 루쉬턴(Rushton)이 동행했다. 그들은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 상륙하여 그 곳의 촌락과 유서 깊은 곳을 살피고 난 후, 말을 타고 스페인을 가로질러 지브롤터(Gibraltar)해협 인근의 카디즈(Cadiz)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이슬람풍 도시문화의 아름다움과 투우(鬪牛)의 장쾌함을 구경하였다. 그 후 영국 군함에 편승해 지중해 동쪽으로 항해하였다. 여기까지가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 제 1부(Canto I)가 끝난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두 번째 여행지로 이탈리아를 택하였다. 그는 사르데냐(Sardegna)섬을 들렀다가 시칠리아 팔레르모(Palermo)항에 잠깐 기항(寄港)한 다음, 영국령 몰타(Malta)섬을 거쳐 그리스 펠로폰네소스(Pelopponnesos)에 상륙했다. 그 곳에서 알바니아(Albania)로 길을 떠났다가 아테네(Athene)에 돌아와 석 달간을 묵었다. 그는 다시 영국 군함 편으로 터키의 스미르나(Smyrna)에 갔다가 계획을 바꾸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과 아테네를 거쳐 영국에 돌아왔다. 제 2부의 여정은 여기까지이다.
귀국 후의 바이런에게는 여러 희비(喜悲)의 일들이 교차되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고, 친한 친구들이 요절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국 상원(上院)에서 의원이 된 지 삼년 만에 첫 연설을 하여 큰 칭송을 받았고, 그런 일이 있은 지 이틀만에 장편 서사시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를 발표하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시집은 그 후 11개월 동안에 5쇄(刷)를 거듭하여 일약 문단의 혜성(彗星)이자 사교계의 총아(寵兒)가 되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내가 유명해져 있었다: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라는 말은 널리 알려진 그의 명언이다.
그는 1815년 이사벨라(Anne Isabella)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았으나, 방탕한 생활로 인해 이혼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사회의 비난까지 받게 되어 그는 다시 여행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 이번 여행에도 플레쳐(Fletcher)와 루쉬턴(Rushton)이 동행했다. 그들은 1816년 4월 25일 영국을 출발하여 벨기에의 플랑드르(Flanders)지방 오스텐트(Ostend)에 상륙하여 브뤼셸(Brussels)와 워털루(Waterloo)를 거쳐 스위스의 제네바(geneva)에 도착했다. 마침 그 때 시인 셸리(Shelley)가 와 있었으므로, 그들은 몇 달 동안 한 집에서 묵었고, 그해 6월 말 경에 <차일드 헤럴드의 편력> 제 3부가 완성되었다.
그는 9월 경 셸리와 작별한 뒤 이탈리아의 밀라노(Milano)와 베로나(Verona)를 거쳐 베네치아(Venecia)에 도착했고, 이듬해 봄에는 플로렌스(Florence)를 거쳐 수도 로마(Rome)에 이르렀다. 한달 남짓 로마를 구경한 그는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와 7월 말경 제 4부를 탈고하여 방대한 장편시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가 완성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여행을 통해 완성된 이 시집을 통해 시인 바이런은 고독의 영혼을 자연 속에 몰입시켜, 자신의 고뇌와 우울을 치료하면서, 자신의 낭만성으로 단조로운 현실을 초자연적인 정신세계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특히 이 시집에는 그가 여행하였던 자연 풍광에 대하여 명상하고 감탄하는 장면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 자신이 자연을 통해 시적 영감과 삶의 활력을 찾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시인 바이런은 프랑스 혁명의 혼란기를 살면서 당대에 만연한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몸소 경험하였다. 혁명의 자유주의 정신은 유럽 각지에 새로운 희망과 약동하는 정신을 퍼뜨렸으나, 또 한편으로는 반동(反動)정치로 인해 약소민족이 핍박받고 독립운동가들이 좌절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유럽의 모태(母胎)인 그리스가 야만인 터키의 힘에 굴복을 당할 때 그 곳을 방문하여 고전 고대의 영광이 쇠잔해 가는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또한 그는 숙명적으로 순수한 이성과 욕정에 가득 찬 감성을 동시에 소유한 이중적 자아의 인물이었다. 그의 방탕함과 무절제함에 관한 소문은 이미 영국뿐 아니라 온 유럽에 퍼져 있었다. 그는 숱한 연애를 통해 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가졌으나 대부분 혐오스러운 결말로 끝났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내면에는 지순(至純)한 동경과 원천적 열정이 넘치고 있었다. 이 이중적 자아의 충돌로 그는 항상 우울하였고 방랑을 일삼았다. 그는 이 우울과 방랑벽을 자신만의 고민으로 치부하였으나, 여행을 통해 그 번민을 낭만정신의 사회적 표출로 바라보게 되었다. 즉 그의 방랑행은 일상성과 결별하여 자기를 극복하기 위한 도망이었던 것이다.
안톤 라파엘 멩스(Anton Raphael Mengs) 작, <Parnassus(1761)>
| Oh, thou Parnassus! whom I now survey, Not in the phrensy of a dreamer’s eye, Not in the fabled landscape of a lay, But soaring snow-clad through thy native sky, In the wild pomp of mountain-majesty! What marvel if I thus essay to sing? |
오, 그대 파르나수스 산이여! 내가 그대를 보는 것은, 몽상가의 미친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시에 꾸며진 풍경으로 나타난 것도 아니다, 그리스의 하늘에 눈을 둘러 쓴 산의 위용을 분방(奔放)하게 뽐내는 그대여, 이렇게 내 노래하려 하노니, 무엇이 놀라우랴? |
그는 그리스의 파르나수스 산의 위용을 통해 자아의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지난 세월 의연히 떨쳤고 또 허무하게 사라진 청춘과 정신과 명예를 버림으로써 자신을 극복했다. 그리고 그 공허한 마음에 라인(Rhein)의 평원과 알프스(Alps)의 장엄, 레만(Leman)호수의 장관 등 자연의 아름다움이 채워졌다. 레만 호반에 선 바이런은 더 이상 욕정과 번민의 노예가 아닌, 대자연의 일부였다.
| Clear, placid Laman! Thy contrasted lake With the wild wold I dwelt in, is a thing Which warns me, wiht its stillness, to forsake Earth's troubled waters for a purer spring. |
맑고 고요한 레만 호수여! 너는 얼마나 내 살아온 어지러운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가 너의 정적은 나에게 거친 세상의 물결을 버리고 보다 깨끗한 샘에 오라고 한다. |
또한 스위스 산록(山麓)에서 폭풍우를 만났을 때, 뇌성(雷聲)을 통해, 지난 나날 그를 괴롭혀 왔던 맹목적인 격노(激怒)의 밑바닥에서 순수한 사랑을 되찾아 높은 이상(理想)의 날개로 승화된다.
| But where of ye, oh tempests! is the goal? are ye like those within the human breast? Or do ye find, at length, like eagles, some high nest? |
그러나 너, 폭풍은 어디에 있느냐! 종착지에 가버렸나? 너는 인간의 가슴속에 있는 것들과 같은 것이냐? 아니면 마침내 독수리들처럼 높은 곳을 발견한 것이냐? |
바이런은 또한 그 산록에서 빛나는 아침을 만난다. 시련 속에서도 본래 모습을 되찾는 자연을 바라보며 그는 인간의 영원성과 인간 이상의 무한함을 꿈꾼다.
| The morn is up again, the dewy morn, With breath all incense, and with cheek all bloom, Laughing the clouds away with playful scorn, And lining as if earth contained no tomb! |
아침은 다시 떠오른다, 이슬 맺힌 아침에 느껴지는 숨결은 모두 향기롭고, 뺨은 꽃에 묻혀, 장난 어린 조소를 보내며 멀리 가는 것은 웃는 구름. 아침은 무덤 없는 땅인 듯 하다! |
그렇게 바이런은 자신의 분열의식을 자연의 진실한 가르침으로 용해시켜 미망(迷妄)과 혼돈을 깨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련과 방황의 여정들은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라는 보석으로 꿰어져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전-낭만 시대에 숱한 위인과 지성들이 자연 속에서 위안을 찾고 자아를 발견하였다. 베토벤(Beethoven)은 비엔나 숲을 산책했고, 괴테(Goethe)는 한적한 초원과 동굴에서 명상을 즐겼다. 밀레(Millet)와 컨스터블(Constable)은 자연의 친화적 정서와 감흥을 캔버스에 옮겼고, 라마르틴(Lamartine)과 노발리스(Novalis)는 시를 통해 자연의 영감과 자양분을 펼쳐 보였다.
시집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 표지
위의 시에서 바이런은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다"는 경구를 남기고 있다. 우리는 사람에게서 불행과 갈등을 얻고 자연에게서 행복감과 온화함을 선사 받는다. 사람의 성정(性情)은 선악의 모자이크로 짜여 있으나, 위대한 자연은 순선(純善)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 속에서 고독하고 자연 속에서 충만을 느낀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떠올리고, 역사와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그리고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절실한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주의 심연과 대양의 극단까지 펼쳐지는 무한한 상상력과 초월적 정서를 또한 향유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