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미워하며 사랑한다 |
|
I Hate and I Love
I hate and I love. |
나는 미워하며 사랑한다 카툴루스
나는 미워하며 사랑한다. |
중국 제자백가서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고대 위(魏)나라에 국왕 영공(靈公)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라는 미동(美童)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전갈을 받은 미자하는 급한 나머지 왕의 가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 당시에는 허락없이 왕의 가마를 탈 경우 발의 뒤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의 형벌을 내렸으나 왕은 오히려 그의 효심에 감복하여 용서하였다. 또 한번은 왕과 과수원을 거닐던 미자하가 복숭아를 따서 먹어보니 맛이 있어 왕에게 그것을 바쳤다. 왕은 "자신이 먹을 것도 잊고 나를 먹이다니…" 하며 기특하게 여겼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자태는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왕의 총애도 식어져 갔다. 어떤 잘못한 일로 미자하가 처벌을 받게 되자 왕은 지난 일을 돌이키며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몰래 과인의 가마를 타기도 하고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먹인 적도 있도다." 여기에서 ‘여도지죄(餘桃之罪:먹다 남은 복숭아로 인한 죄)란 고사가 나왔다. 이와 비슷한 사자성어로 ’가슬추연(加膝墜淵)‘이라는 말이 있는데, “한 때는 무릎에 앉혀 귀여워 하다가, 애정이 식으면 연못에 빠뜨려 버린다”는 뜻이다.
19세기 프랑스 사교계를 흔들었던 것으로 ‘베르테(Berthet)사건’이 있다. 앙투완 베르테(Antoine Berthet)라는 청년이 교회에서 미슈(Michoud) 부인을 총으로 저격한 죄로 사형당한 이 사건은 당시 <법정 신문>에 1827년 12월 28일부터 31일에 걸쳐 상세하게 게재되었는데, 이 이야기를 토대로 창작된 소설이 유명한 스탕달(Stendhal)의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이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베르테는 마을 사제의 도움으로 신학 공부를 하는 청년이었다. 그는 미슈 집안에 가정교사로 채용되어 부인의 호의와 신임을 얻게 되나 남편의 질투에 의해 해고당한다. 뒤이어 베르테는 코르동(Cordon)이라는 귀족 집안에 가정교사로 들어가지만, 그 집 딸과의 관계를 의심받아 그 집에서도 쫓겨난다. 자신이 코르동 가문에서 내쳐진 것이 미슈 부인의 편지 때문이라고 의심을 품은 베르테는 자신의 야심이 좌절된 것에 복수하기 위해 그녀를 살해하려 했던 것이다. 미슈 부인은 총격으로부터 목숨을 건졌고 그를 용서하였다. 그러나 베르테는 사형 선고를 받고 1828년 2월에 기요틴(Guillotine) 으로 처형되었고, 미슈 부인은 베르테의 시신을 고이 묻어 주었다. 그 일 년 후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다. 가구세공인이었던 가난한 청년 라파르그(Lafargue)가 변심한 애인 테레즈(Therese)를 질투심 때문에 살해하였는데, 여인의 바람기를 인정한 법정에서는 청년에게 5년형을 선고하였다. 소설은 그 다음 해인 1830년에 나왔다.
위나라 국왕은 신하에 대한 애착과 호의로 그의 잘못을 용서하였다. 그러나 그 거품이 사라지자 그를 미워하고 버렸다. 진실된 사랑이 바탕이 되지 못한 만남은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
베르테는 정략적 목적으로 사교계 부인들에게 접근했다. 그에게 여인들은 야망을 실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인들은 그에게 매혹되었다. 그 치명적인 사랑을 돌려 받은 베르테도 그녀들을 사랑했다. 이후 여인들과 베르테의 사랑의 싱강이는 계속되어 오해와 질투, 배신과 용서의 우여곡절 속에서 베르테는 몰락하고 여인은 절망하였다. 소설 <적과 흑>에서 적(赤)은 군복, 흑(黑)은 사제복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달리 보면 빨강은 사랑, 검정은 미움이다.
이 두 가지 예화는 모두 거짓 사랑이 빚어낸 비극이다. 모름지기 사랑은 한결같고 영원하며 완전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랑은 인간에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신의 사랑 외에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사랑이 아니다. 오직 그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이 베푸는 무조건적인 사랑 뿐이다.
사람들은 단순한 친애와 사모의 감정으로 상대방의 인생을 품에 안으려 한다. 그를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순간의 열정과 애착으로 그를 즐기고 소유하고 향락하고자 한다. 철없는 사랑을 하는 이에게 “그대는 상대를 위해 죽을 수 있는가?”라고 물어보면 반드시 “나는 그녀를(그를) 사랑하기에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머지 않아 그는 그녀를, 그녀는 그를 버린다. 그 때 다시 물어보면 “나는 그녀가(그가) 미워졌기에 그를 버렸노라”고 대답한다. 이 무슨 섣부른 말장난이고 유치한 인생노름인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격과 존재와 꿈을 다 바쳐 상대를 위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시간과 그가 밟고 서 있는 이 우주공간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그대를 영원히 나의 주인으로 섬긴다는 것이다. 사랑은 죽음마저 넘지 못하는 위대한 강물이요, 천사와 악마 심지어 창조주까지도 그 사이를 갈라놓지 못하는 숭고한 인간의 드라마이다. 사랑은 말이 필요없는 것이며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어떤 생각이나 이념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일상 속에서 주워담는다. 인격이 없는 사랑, 가슴 속에서 삭히지 않고 내뱉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무르익기 전에 함부로 내뱉으면 그 안에서 미움이라는 독이 함께 나온다. 진실한 사랑을 하지 않기에 오늘날 사랑은 그 고귀함을 잃어버리고 있다. 마치 시정잡배의 신소리나 장사꾼들의 흥정과 다름없다. 아무리 두 손을 머리 위에 모아 하트를 그리며 ‘사랑합니다’하여도 그 안에 가슴은 빠져 있다. 그렇기에 사랑하다가 미워하고 미워한 다음에 헤어진다. 사랑을 핑계로 질투하고 불평한다. 무관심과 냉대는 미움으로 변해 자신과 상대의 마음을 갉아 먹는다.
사랑을 시작하려 하는 이들에게 미움이라는 불청객은 항상 따라다님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 완전한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은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여야 한다. 사랑과 미움, 빨강과 검정의 카드놀이로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는 어리석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태양은 한결같이 밝은 빛을 우리에게 베풀지만 밤이 찾아오면 어두운 기운을 타고 의심과 질투가 도둑처럼 연인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온다. 사랑을 지속하려면 항상 태양같이 밝은 마음으로 서로를 비추어주어야 한다. 만일 사랑하는 마음에 의혹과 불안이 깃들면 타인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자기 내면을 비추고 돌아보아야 한다. 미움이라는 가시가 돋히기 전에 더욱 더 헌신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을 온전히 지키고 다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