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숨만 걷어가세요
지연 제4회 구지가문학상
까마귀가 뛰어요 손을 폅니다 손금에 운명이 있다고 했어요
운명을 매일 비누칠 해서 흘려보내는데 남아있는 운명이 있네요 물 빠짐이 좋은가 봐요 밭을 경작할 때 물길이 선행돼야 해요
물길을 열어줘야 나머지가 자랍니다 나는 물길의 나머지에요
낮에는 금줄을 비비다가 밤마다 검은 숯을 들고 나를 측량하는 할매가 있어요 사람들은 삼신할매라 부르는 것 같아요 그 할매가 나에게 와서 아가 이만큼 오느라 애썼네 모래가 쏠렸어 개울을 만들어줄 게 호미로 내 손바닥을 긁어요
내 사주는 물이 많다고 했어요 물 가까운 곳에 살면 빠져 죽는다고요 그래서 아파트에 사는 건 아니지만요 손바닥을 보면 하루가 다르게 잔주름이 많아져요
손에 박힌 돌을 빼서 할매는 울타리를 만들어요 내 손에서 할매 등이 굽었어요 나는 손등을 보며 아휴 이게 뭐예요 그러면 이게 내 운명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덕분에 내 밭에는 바다가 열립니다 파도가 솟구칠 때 너울마다 물외가 열려요 물외가 노각이 될 때까지 빠져 죽어버릴 거야 그러면서 살아요
스스럼없이 오랜 어둠 속에서 물을 먹은지라 나는 어디서든 자랍니다
오늘 마른 숨만 걷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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