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15:20-24, 33-39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찬송
O love divine, what hast thou done! | 오 거룩한 사랑, 주께서 하신 일을 보라! 불멸의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네! 아버지와 동일하게 영원하신 성자가 나의 모든 죄를 지고 나무에 달리셨네 영원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네! 나의 주, 나의 사랑이 못 박히셨네! |
Behold him all ye that pass by, | 지나가는 모든 이여 그를 보라 피흘리시는 생명과 평화의 왕을 벌레같은 이들아 와 보라, 너희의 창조주가 죽으시며 더 없는 슬픔으로 말씀하신다 와서 그 흐르는 보혈을 나와 함께 느껴 보라 나의 주, 나의 사랑이 못 박히셨네! |
Is crucified for me and you, My Lord, my love is crucified. | 나와 너를 위해 못 박히셨네 거역한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가시려고 믿으라, 그 말이 사실임을 믿으라 예수의 피로 우리 모두를 사셨네 나의 주, 나의 사랑이 못 박히셨네 나의 주, 나의 사랑이 못 박히셨네 |
Then let us sit beneath his cross, | 십자가 아래 앉아 치유하는 샘물을 기쁨으로 만나자 그에게는 모든 것이 세신 바되고 잃어버림이 없네 우리 모두 마음을 그 분께 순복하자 아무 것도 더 생각하거나 말할 것이 없네 나의 주, 나의 사랑이 못 박히셨네 |
HSP [1742], 26-27쪽
묵상
웨슬리의 찬송시를 여는 첫 두 소절은 가장 깊은 질문, 그리고 우리가 묵상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신비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오 거룩한 사랑, 주께서 하신 일을 보라!
불멸의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네!
경외감과 놀라움으로 오늘 우리는 십자가 발치에 서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이전의 그 어떤 것 보다도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의 가장 통렬한 감정(pathos)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찌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의 고백은 하나님이 어떻게든, 신비로 '그 속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하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고난을 받고 계셨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상한 마음들, 그리고 비틀린 삶들의 슬픔을 떠 안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바 된 것이며, 우리 눈에 오랜동안 감춰져 있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도 고난에 익숙했던 사람으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하지 않으며 (갈 6:14),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고 (고전 1:23), 몸소 우리의 상처들을 짊어지신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고전 2:2) 작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최악의 상황과 마주하고 인간의 비참함 그 깊음 가운데로 내려가서 십자가를 지는 그 길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우리 주님의 복음의 승리와 영광을 전하도록 말이죠. 그리고 승리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눅 9:23-24)"
웨슬리는 십자가를 네 가지 측면으로 이야기하면서 계속 우리가 경외감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첫째, 웨슬리는 '불멸의 하나님(immortal God)'의 신비를 묵상합니다. 그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고, 동일하게 영원하신 성자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십니다. 현대의 가사 중 어떤 것은 '불멸의(immortal)'라는 단어를 '성육신(incarnate)'으로 부드럽게 바꾼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 난해한 역설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와서 "우리 창조주가 죽으시는 걸 보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둘째, 웨슬리는 삶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 발 앞에 멈춰 서서 이 장면을 깊이 묵상하라고 모든 사람을 부릅니다. 웨슬리는 우리 앞에 있는 삶을 실재로써 보게 하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하나님 사랑의 깊이를 바라보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 십자가를 '바라 볼'뿐 아니라, 생생히 '느끼고', 우리의 마음을 깨뜨릴 수 있게 하라고 호소합니다. 셋째, 십자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죽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거역한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가까이(near to God)" 혹은 다른 단어로 된 찬송처럼 "다시 하나님께로(back to God)" 인도합니다. 넷째로, 십자가 밑에서 우리는 "치유하는 샘물을 만납니다." 이 놀라운 광경이 우리를 집으로 이끌어 줄 뿐아니라 우리를 온전하게 합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삶은 우리 삶의 기초와 목표가 됩니다. 또한 우리가 선포할 오직 한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주, 나의 사랑이 못박히셨다."
기도
못 박히신 하나님, 십자가의 신비를 생각하면 우리는 작아지면서도 그 신비와 능력에 어떻게 설명할 수 없이 빠져듭니다. 오 거룩한 사랑, 그 하신 일이 무엇인가요! 불멸의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