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정적 신학자이자 음악비평가 찰스 웨슬리
찰스 웨슬리의 음악성
찰스가 음악적 훈련을 받았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그의 형과 함께 엡워드의 목사관에서 시편을 찬송하고, 성 안드레의 엡워드 교구 교회 성가대의 찬양을 부르는 경험을 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까운 웨스트민스터 학교의 학생으로서, 그는 수도원의 예배생활에 참여했으며, 아마도 성가대와 오르가니스트 윌리엄 크로프트(William Croft)에 의해 성가대의 전통을 음미하기도 배웠을 것이다. 여기에서 「공동 기도집」(The Book of Common Prayer) 속의 시편들이 그의 기억 속에 새겨졌으니, 이는 「성서에서 뽑은 구절들에 대한 짧은 찬송」(Short Hymns on Select Passages of Holy Scripture, 1762)에 있는 114편의 시에 이 기도집에서 67구절의 시편구절을 사용한 것으로도 입증된다.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교회에서, 성결클럽의 창시자로서, 또 “감리교도”라 불린 최초의 인간으로서, 그는 테이트(Tate)와 브래디(Brady)의 시편에 대한 1708년의 음악적 부록을 이용하고 있던, 운율이 붙어 있는 와츠의 글들을 노래로 불렀다.
모라비아 교도들의 찬송가와 그들의 음악에 대한 찰스의 매혹은 그의 형 못지 않다. 회심이 존의 회심보다 3일 먼저였다는 점과, 찰스의 변화체험이 그의 최초의 복음찬송인 “의아해 하는 내 영혼 어디서 시작할까”(Where Shall my wondering soul begin, 342)에 표현되어 있다는 점을 보통 간과하고 있다.
음악과 예배에 대한 찰스의 관심은 성공회 교구와 수도원, 대학, 성당 등의 예배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가 브리스톨과 런던에 머무는 동안, 이러한 관심이 교구 예배를 통해 점점 더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가 22년간 브리스톨에 거주하는 동안, 16년은 아마도 찰스가(街) 19번지에서, 나머지는 찰스가 4번지에서 살았는데(Brown 1993), 그와 그의 가족은 성당에 뿐 아니라, 지금은 페쇄된 성 제임스 교회에 다녔다. 1771년 런던으로 이사한 후, 그들은 메어릴 본 교구교회(1049년 부서졌다)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이 교회는 그레이트 체스터필드가(街)(현재 웨슬리가) 1번지에 있던 그들의 집에 가까웠으며, 그와 샐리는 여기서 결혼했다.
찰스의 작은 아들 새뮤얼의 「자서전」(Autobiography)에서 발췌한 다음 글은 그의 부친의 음악체험을 보여 준다.
내 아버지는 음악을 너무도 좋아하셨으며, 내가 믿기로는 어린 시절에 플루우트를 좀 연주하셨다. . . . 그는 박자에 대해 아주 정확한 감각이 있으셨다. . . . 그에게는 성악적 재능은 없었지만, 찬송가나 박자가 잘 맞는 단순한 곡은 함께 부르실 수 있었다. . . . 나의 아버지는 내 형과 나에 대해, “얘들은 제 엄마를 닮아서 음악적 재능이 있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Baker 1962, 177).
프레데릭 질(Frederick C. Gill)은 찰스의 음악성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찰스에게는] 훌륭한 귀와, 옛 교회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고, 아마도 그가 리치 부인의 집에서 만났을 핸델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옥스퍼드 시절 플루우트를 연주한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악기를 연주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그의 오르간이 시티 로드 채플에 보존되어 있으며, 그가 그것을 연주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Gill 1964, 192).
이 시인이 1736년부터 1756년까지 써 온 「일기」(Journal)는 초기 감리교 예배의 음악, 찬송가, 찬양, 음악활동 등에 대한 그의 견해를 알아보는 데 무한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일기」에서 발췌한 글들(뒤에 나옴)은 음악과 설교의 통일적인 관계 및 감리교 설교자들이 강력한, 어떤 면에서는 훈련된 목소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말할 때와 찬양할 때 찰스의 목소리가 어땠는지에 대해, W. L. 도오티(W. L. Doughty)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훌륭한 재산 중 하나였다. 그는 브리스톨에서 회중들에게 어떻게 설교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회중들이 “수많은 메뚜기떼 같이 골짜기와 언덕을 메웠다. 그러나 내가 그들이 거룩한 이름을 경배하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목소리는 가장 먼 데까지 미쳤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팔같은 목소리를 주셔서, 말씀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데까지 이르게 하셨다.” 그는 또한 찬양하기에 좋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으며, 때때로 설교할 때 강조하는 구절을 노래로 하기도 했다 (Doughty 1958, 266).
찰스 웨슬리 찬송가의 음악
찰스가 자신의 음악적 재능에 대해 말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우리는 보통 두 아들의 음악적 재능이 자기들의 어머니 샐리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그의 아들 새뮤얼의 회상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시에서, 찰스는 자신이 왜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는지 의아해 하며, 자기 자신의 음악성과 음악에 대한 인식을 확신하고 있다. 여기 그 시의 일부분을 싣는다.
그대들 나의 행위를 이끄는 권능들이여, 말하라
내 속에 음악의 씨앗들이 있는데
나 음악의 능력과 빼어남 그토록 찬탄하는데
내 마음 곧 하나의 수금인데
왜 내가 소리를 마음대로 구사하는
저 행복한 기술 배우지 않았는지
프랭크 베이커는 찰스의 찬송가에 나타난 음악, 즉 샐리의 음악성과 결합되어 그의 아들들인 찰스와 새뮤얼 및 그의 손자인 새뮤얼 세바츠천(Samuel Sebastian)에게 전해진 음악성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인물이다.
찰스 웨슬의 많은 찬송가 속에는 처음에 분명히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은 신비가 있다. 특히 익숙한 곡조에 귀가 둔감해졌을 때 그렇다 (Baker 1988, 80).
비록 그[찰스]가 성악가나 기악가와 작곡가로서 위대한 음악적 주장을 내세울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의 아들들은 그의 귀가 완벽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그의 영혼 속에 음악이, 쾌활하고 황홀하고 경건한 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시 속의 지루함에 갇혀 있을 수 없었다. 서정시는 그의 장기(長技)였다. 서정적 형태에서 그의 뛰어남과 창조성은 그 시대의 시에서 적수가 없었으며, 아마도 그 다음 세기의 셸리(Shelley)가 유일하게 필적할만 했을 것이다 (Baker 1988, 68).
베이커는 그 시인의 음악적 상상력이 어떻게 운율형식으로 표현되었는지 말하고 있다. 특히,원래의 이중 형태로 된 크로스 리듬을 지닌 이중의 장운율(“오 하늘에서 오신 당신이시여”[O Thou who camest from above], 501장), 이중 단운율(“그리스도의 군병들아 일어나라”[Soldiers of Christ arise], 513장과 기타 장중한 행진풍의 시들)과 이중 보통운율(원래 이중형태로 된 “큰 은혜로 묶어 주신”[Allpraise to our receeming Lord], 554장, 통일찬송가 527장과, “위대하신 주님을 찬양하라”[Sing to the great Jehovah's praise])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그런 표현은 1만 3천 행의 시구 하나하나 도처에 있다 (Baker 1988, 70-71).
베이커에 의하면, 웨슬리가 약강격 운율과 강약격 운율, 그리고 상승 비트와 하강 비트를 교대로 쓰는 것은(음악에서 이에 상응하는 것은 싱코페이션[切分]과 크로스 리듬이다), 그가 모라비아 교도들을 만난 데서 나온 것이다 (Baker 1988, 75).
음악가라면 누구나 한 건반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지루해진다는 것을 안다. 그는 변조와, 관계는 있지만 다른 건반에 있는 구절, 길거나 짧은 구절, 곡조 아래 명백하게 또는 미묘하게 숨겨진 구절, 경우에 따라 변화하고, 작곡자의 기술적 명령과 음악적 감각에 따라 변하는 구절들을 가지고 이러한 지루함을 피하려 했다. 똑같은 일이 시에서도 진실이다 (Baker 1988, 77).
찰스 웨슬리가 일기에서 말한 찬양, 찬송가, 음악, 음악가들
「찰스 웨슬리 목사의 일기」(Journal of the Rev. Charles Wesley, M. A.). 토마스 잭슨 해설 및 주(2 vols. 1849. Reprint. Grand Rapids, MI : Baker Book House, 1980). 이 「일기」는 찰스의 생애 거의 반에 해당하는 1736-56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주로 부흥운동의 설교자이자 찬송지도자, 시인으로서, 성공회 순회신부로서 그의 체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내용은 1736년 3월 25일, 조오지아의 프레데리카에서 시작하여, 1756년 11월 4일, 브리스톨에서 끝난다. 일기는 2년 정도의 공백을 포함하여 여러 군데 빈 곳이 있지만, 그 내용은 초기와 중기 부흥운동기간의 힘과 활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운동의 모범적인 순회설교자요, 찬송지휘자요, 목사요, 지도자요, 조직가요, 남편이요, 아버지로서, 또 그의 형 존의 가장 신임 받는 동료로서 찰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 글은 분명히 전적으로 음악과 찬송가라는 입장에서만 「일기」를 연구하는 최초의 시도이다. 발췌문들은 거의 예외 없이 노래하기, 찬양, 노래, 음악, 음악가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주께서 그녀의 입에 새로운 노래를 넣어 주셨다”(1747년 10월 11일)와 같이 찬송과 노래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은 포함하지 않았다.
웨슬리는 분명히 “찬송”(singing)라는 말과 함께 “찬양”(praising)과 “기뻐함”(rejoicing)이라는 말을 서로 바꿔 가며 썼다. 예를 들면, “우리는 그것을 계속하라는 도전으로 받아 들여, 한 시간을 더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기를 계속했다” (1741년 5월 24일, 일요일)가 그것이다. 또 “기뻐하며”(rejoicing), "새벽 1시까지 기뻐하기를 계속했다“, ”우리는 3시간 동안 기뻐하고 감사했다“ (1741년 8월 25일)고도 되어 있다.
여러 경우에 웨슬리는 수많은 찬송가에서 발췌한 것 뿐 아니라 전문(全文)도 싣고 있다. 이것들은 웨슬리 식의 찬양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경우나, 그의 목회에서 특별했던 사건들을 말할 때 나온다. 자료를 제시하거나, 「일기」에 있는 가사를 다른 인쇄본에 있는 다른 판본과 비교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발췌문 앞에 괄호를 하고, 나라, 마을, 도시, 지역을 써 놓았다.
기도와 찬양, 설교와 찬송에 대한 언급이 종종 결합되어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7시 전에 엘뎀에 갔다. . . . 우리는 기도하고 찬송하고 계속 부르짖었다” (1738. 6. 8. 목요일).
찬송하고 설교하는 찰스의 강력한 목소리는 그의 설교를 방해하려는 자들에 대한 방어라고 말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한 무리가 이웃에 있는 술집에서 쳐들어와 나에게 대항하여, 학교선생인 한 투사를 긴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그는 그의 스승에 대해 말하였고, 나는 나의 스승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내 목소리가 승리했다” (1740. 3. 17. 월요일). 야외 설교를 하는 동안, 찰스의 목소리는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5시에 나는 다시 야외로 나갔다. 그러나 나는 전에 그런 광경을 본 일이 별로 없다! 개신교도와 교황주의자들, 높거나 낮은 자들 . . . 수 천명이 몇 시간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 . . 나는 그들을 향해 내 목소리가 할 수 있는 한 멀리까지 들리게 소리쳤지만, 아직도 목이 쉬거나 피곤하지 않다“ (1748. 8. 21. 일요일). 몇 번인가 목이 부어 설교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면, 1749년 9월 15일의 경우인데, ”나의 목이 자꾸 나빠졌으므로, 저녁에는 설교할 수 없었다“고 되어 있다.
때때로 회중찬양은 감리교예배를 방해하려는 사람들을 막는데 사용되었다. “우리는 가장 의기양양한 철야를 했다. . . .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가 압도해 버렸다. 우리는 ”소란 속의 찬송“(Hymns in a Tumult)을 불렀으며(「고난과 박해의 때를 위한 찬송가」[Hymns for Times of Trouble and Persecution, 1744]에 있다), 아주 평안해지고 큰 위로를 얻었다” (1756. 10. 1. 금요일).
찬송은 종종 장례식과 무덤가에서 있었는데, 이는 분명히 죽음과 죽는 일에 대한 웨슬리 식의 독특한 찬송가를 짓고 쓰는 일을 촉진했다. 예를 들면, 1741년 5월 8일 금요일 일기에, “우리의 자매 후퍼의 장례식을 엄수하고, 그녀를 찬송으로 축하했다. 특히 그 찬송에는 다음 구절이 있다.
이처럼 우리 모두 호흡이 떠나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노니,
오 자매여, 나 또한 자매같은 죽음 맞아
자매의 임종이 내 임종 되게 하기를!
찬송은 또한 찰스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예를 들면, “나는 하루와 한 달을 마감할 때, 인생을 마감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했다” (1744. 7. 30.).
찰스는 샐리와 연애하면서 그녀와 다른 이들과 함께 공적으로 노래를 한 때가 있다. “속회를 점검하며 조용히 보냈는데, 버독양과 샐리와 더불어 노래함으로 힘을 얻었다” (1748. 6. 28. 화요일).
유명한 음악가들과 극장주들과 찰스의 관계 및 접촉에는, 예를 들면 존 F. 람페와 리치부인 이야기가 1746년 3월 29일자에 적혀 있고, 리치부인과 요한 C. 페푸쉬의 이야기는 1748년 4월 29일치에 쓰여 있다. 니콜라스 템퍼얼리는, 복음주의자들과 웨슬리 형제는 자선사업에 대한 지원을 받기 위해 극장주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매음의 온상이라고 여겨지고 있었고, 감리교와 복음주의 목사들에게 그렇게 비판받고 있던 극장들이, 또한 매음의 가장 나쁜 결과 중 하나[성병]를 경감시키려 한 바로 그 목사들이 지원하는 자선의 주요 원천이었다는 사실은 분명 좀 아이러니하다. [락] 병원에 있는 환자들 다수가 극장계와 음악계에서 직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옛 동료들이 그들을 돕는 데 특별한 의무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로 이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Temperley 1993, 46).
「일기」에는 영국교회의 순회신부로서 찰스의 계속되는 증언, 특히 그가 성만찬에 성실하게 참여했다는 것이, 성체성사 집전 중에 일어나는 느낌의 재점검과 함께 실려 있다. 찰스는 부흥운동의 즉흥적인 경향에 대해서 뿐 아니라, 제의에도 정통해 있음을 보여 준다. 예컨대, 그는 옥스퍼드의 크라이스 교회와 킹스우드에서 1744년 8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 열흘간 성체성사에 참여하거나, 성사를 집전했다는 것을 네 번이나 말하고 있다.
몇 가지 예에서, 그는 사람들을 감동시켜 울게 하는 성만찬의 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성만찬에서 모두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런던, 1월 4일)고 했으며, 또 [킹스우드에서, 1745. 3. 31. 일요일] “나는 선교회 모임 사람들에게 성만찬을 집전했다. . . . [그러자] 모든 회중이 감동하여 그를 따라 울었다”고 했다. 적어도 한 번, 성만찬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나는 중간에 찬송도 하지 않았으며, 끝난 후 기도도 하지 않았다” (1751. 2. 3. 일요일). 성만찬에서 흘러나오는, 용서하시는 은혜에 대해 찰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대화하면서, 나는 성만찬 중에 사죄를 얻는 사람이 있음을 알았다” (1748. 8. 31). 그는 또한 한 명의 퀘이커교도와 한 명의 침례교인[재세례파?]에게 세례를 베풀었는데, 그 때 “모든 사람이 성령의 강림에 의해 감동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울고 진동했으며 기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 (1751. 6. 2..).
또 다른 경우에는 두 가지 성례전이 결합되었다. “나는 킹스우드에서 한 어린 퀘이커교도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모두는 주의 만찬에 참여했다. 주님은 두 가지 성례전 모두에서 권능으로 임하셨고, 후에는 나에게 듣는 자의 영혼을 뒤흔드는 말씀을 주셨다” (1751. 6. 16.).
흥미있는 일은 찰스가 찬송가를 쓰는 노력에 대한 댓가로, 존의 출판활동에서 온 수입으로부터 연간 100파운드라는 적당한 보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1748. 1. 30.). 이것은 존 웨슬리가 샐리를 찰스와 결혼시키자고 제안하기 위해 그윈씨와 계약을 맺을 때 하나의 협상조건이 되었다.
1736년
3월 25일, 목요일 [프레데리카, 조오지아] 캠프에서 상황에 맞는 찬송을 부르며 1시간을 보낸 후, 나는 오두막으로 자러 갔는데, 오두막이 그날 내린 비로 흠뻑 젖어 있었다.
1737년
10월 11일, 화요일. 런던으로 출발했다. 한 시간 동안 달리고 나자, 내 말이 다리를 절었다. 나는 시편 91장을 노래 부르고, 하나님의 보호 아래 나를 맡겼다.
10월 30일, 일요일. [아이언몽거스 레인], [세인트 헬렌스 레인에서 한 것과] 똑같은 설교를 여기서 한 후, 우리는 차드윅씨와 차를 마시고, 컬리지 가로 가는 마차를 탔다. 그들은 거기서 찬송하는 것을 매우 기뻐했으며, 조지 휫트 필드의 모범을 보고 많이 배웠다(그렇기를 나는 바란다). 그들의 집에서 내가 그들과 헤어졌을 때는 거의 11시가 되었다.
1738년
1월 3일, 목요일. [블랜돈] 우리는 벡슬리의 목회자[벡슬리의 보좌 신부]인 [헨리] 피어스씨와 함께 했는데, 그는 우리와 대화하고, 찬송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을 언제나 기뻐했다.
2월 18일, 토요일. 존과 누이를 보기 위해, 말을 타고 스탠튼 하코트에 갔다. 형[존]이 나를 맞았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찬양했다.
4월 8일, 토요일. [옥스포드의] 크라이스트 교회의 저녁기도를 위해 나갔다. 강론과 성가에서 위안을 받았다.
4월 25일, 화요일. 5시 직후, 우리가 [블렌돈에 있는] 우리의 작은 예배당에서 선교회 모임을 하고 있을 때, 델라모트씨가 찾아왔다. 우리는 찬양을 하고서 회심이 점차적인지 즉각적인지 하는 토론을 했다.
4월 26일, 수요일. 피어스씨 댁에서 찬송하고 독서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5월 13일, 토요일. [런던] 밤에 형이 극도로 힘든 상태로 찾아왔다. 나는 [형이 종종 나에게 강권하듯이] 형에게 그리스도께 찬송을 부르라고 강권했다. 나는 우리가 찬송하는 동안 주님이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5월 22일, 월요일. [찰스의 회심은 전날인 오순절에 일어났다] 형이 와서, 우리는 함께 형을 위한 중보기도를 했다.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형에게 임하셨다고 나는 거의 확신했다. 저녁에 우리는 다시 찬송하고 기도했다.
5월 23일, 화요일. 9시에 나의 회심에 대한 찬송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만할까 두려워 중지하고 말았다. [리틀 브리테인의 기술자인] [존] 브레이씨가 와서 사탄의 방해가 있어도 전진하라고 나를 격려해 주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고 찬송을 끝마쳤다.
5월 24일, 수요일. [존의 회심일] 나는 오늘 비통과 두려움과 사랑에 가득 찬 어린아이인 에인스워드씨를 보고 몹시 기뻤다. “이제 강림하사 땅을 흔드소서”라는 찬송가 가사를 반복하는데, 그는 번민하듯 땅에 쓰러졌다. 나는 사람들의 찬송에 기쁨이 차 있으나,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후를 기도와 찬양과 회의로 보냈다. . . . 10시경, 형이 우리 친구들에 의해 승리를 얻고 외쳤다. “제가 믿나이다”(I believe). 우리는 기쁨에 차서 찬송을 부르고[「찬송가와 시편」에 있는 706번 <십자가의 수난곡> (CRUXIFICATION TUNE)이었을까?], 기도하고 헤어졌다.
5월 28일, 삼위일체 주일. 제임스 허튼(James Hutton)과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기뻐하면서 오전을 보냈다.
6월 3일, 토요일. 저녁에 브라운씨, 홀랜드, 기타 몇몇이서 전화했다. 나는 그들에게 가는 것이 매우 싫었지만 억지로 가서, 찬송하고 성서를 읽고 기도하며 두 세 시간을 보냈다. 이것이 나를 좀 살아나게 했다. 그래서 나는 기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알았다.
6월 5일, 월요일. 오후에 이슬링튼에서 심스부인을 버튼부부와 함께 만났다. . . .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기쁨을 나누고, 그러한 말할 수 없는 은사를 기다리느라 매우 고양되어 있는 나머지 찬구들을 두고 떠났다.
6월 7일, 수요일. 심스 부인에게 가서 찬송하고, 주님의 약속을 읽으며 오후를 보냈다.
6월 8일, 목요일. 7시 전에 엘뎀에 갔다. . . . 우리는 줄곧 기도하고, 찬송하고. 소리쳤다.
6월 9일, 금요일. [벡슬리] 브레이씨가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내적인 사역에 대해 말하고, 나는 그가 최근에 나와 런던에 있는 내 친구들을 위해 해 준 훌륭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정원에서 산책하고, 찬양하고, 기도했다.
6월 11일, 일요일. 우리는 마차를 타고 교회에 갔다. 찬송할 때, 나는 헤티가 두려움과 기쁨이 뒤섞여 있음을 보았다. 나는 그녀가 예배 속에서 확신을 주는 무언가를 체험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대했다. 시편[찬송?]과 일과(日課, lessons : 아침저녁으로 읽는 성서 구절 - 역주)는 위로가 넘쳤다.
6월 16일, 금요일. 저녁식사 후 잭 델라모트(Jack Delamotte)가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마차를 탔다. 도중에 그는, 우리가 전에 블렌돈에서
날 위해, 날 위해 죽으신 이
라는 찬송을 불렀을 때, 그 말들이 영혼 깊숙이 와 닿았으며, 환희와 기쁨에 가득 차 영원히 부를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6월 24일, 토요일. [블렌돈으로 말을 타고 가면서] [델라모트가] 하나님이 죄인들을 수년 간 수고한 우리와 동일하게 여기시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우리는 찬송가를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는 “그리스도 안의 믿음”이라는 제목을 보자, 자신이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6월 26일, 월요일. 나는 피어스씨와 함께 찬양했다.
내가 연약한 인생을 두려워하여
내 안에 있는 당신 영의 길 막으리이까?
그리고 델라모트 부인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6월 28일, 수요일. 그리스도를 바라면서 심스씨 댁에 갔다. 운 좋게도 우리 친구 몇 명이 거기에 왔다. 우리는 함께 찬송하고 기도했다. 마지막에 기도를 했을 때, 나는 떠날 수가 없었지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7월 1일, 토요일. 클라게트부인 집에서 . . . 우리는 찬양하고 함께 기뻐했으며, 친구로서 하나님의 집으로 갔다.
7월 2일, 일요일. 심스씨 댁에서 . . . [무리 중 한 명인] 하퍼씨가 . . .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성령을 받았지만, 그 사실을 고백하기를 두려워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찬송을 드렸다. “날 위해, 날 위해 죽으신 이”라는 구절에서,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외쳤다. “제가 믿나이다. 제가 믿나이다!” 그리고는 주저앉았다. . . . 우리는 다시 찬송하고 기도했다.
7월 10일, 월요일. 채프맨씨 댁에 가다가, 마가렛 뷰티맨을 만나 따라 오라고 했다. 우리 몇 명이 거기서 기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우리는 찬송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변호했다. 기도하는 중에 마가렛이 죄사함을 받고, 주저 없이 자기 신앙을 고백했다. 브레이씨의 누이인 스토러부인이 자기 마음이 굳어 있음을 불평했다. . . . 우리가 아버지께 찬양하는 동안, 그녀는 그렇게도 찾던 평안을 발견했다. 그녀의 말로는, 그것이 마음을 완전히 꿰뚫고 들어 와 터질 것 같고, 온 존재가 압도당했다고 했다.
7월 15일, 토요일. [뉴 게이트] 메트카프와 함께 마차를 탔다. 나는 담대하게 삼위일체에 대해 설교하고, 성만찬을 집전했다. 거기서 클라케트 부인 댁에 가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이제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으로 교회의 일원이 된 두 하녀를 대신해 감사했다.
7월 18일, 화요일. 밤중에 나는 브레이씨와 함께 [뉴 게이트 감옥의] 한 감방에 갇혔다. 우리는 힘있는 기도로 씨름했다. 온갖 종류의 범죄자들이 있었는데, 모두들 기뻐하고 기꺼워했다. 특히 한 군인이 위로를 얻어 매순간 기쁨이 늘었다. . . . 우리[새무얼 웨슬리 1세 등]은 찬송을 했다.
보라, 인류의 구주
수치스런 나무에 못 박히셨도다!
당신 위해 그 분 피 흘려 죽게 하신
그 사랑 한없이 크도다.
그것은 내가 아는 승리 중 가장 큰 승리의 시간이었다.
7월 19일, 수요일. 일어나자 몸이 몹시 피곤했다. 망설였으나 그들을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6시에 그들 모두와 기도하고 찬송했다. [티번 교수대에서] 그 흑인이 마차에서 나오면서 나를 발견하고는 눈짓으로 내게 인사했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는 내가 본 얼굴 중 가장 차분하고 기쁜 얼굴로 미소지었다. . . . 나는 죽음에 대한 그렇게 평온한 승리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태연함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몇 곡의 찬송을 불렀다. 특히,
보라, 인류의 구주
수치스런 나무에 못 박히셨도다!
와 “그리스도 안의 믿음”이라는 제목의 찬송가였는데, 그 끝 절은 이렇다.
죄 많고 연약하고 무기력한 벌레를
당신 손에 맡기오니,
당신은 나의 생명, 나의 의(義)
나의 예수, 나의 모든 것이니이다.
8월 12일, 토요일. 우리는 조지 휫트 필드의 일기를 읽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메트가프씨 등과 산책하며 매우 기뻐했고, 찬송할 곳을 찾았는데, 그때 한 대장장이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우리는 그의 집으로 들어가 찬송하고, 기뻐하며 우리의 갈 길을 갔다.
8월 18일, 금요일. [이슬링튼] 나는 [브록크마 부인과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고 찬송했다. 우리는 열정과 생명과 위로에 가득 차서 양철[양철지붕 덮개]에 올라 가 찬송했다. 나는 기도문을 읽고, 브로크마씨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스톤하우스[이슬링튼의 성 메어리 성당 보좌신부]씨 댁에 돌아가서 찬송했다. 그는 우리에게 설교집을 읽어 주었다. 7시에 우리는 모두 산책하러 나갔다가, 심하게 내리는 비에 쫓겨 어떤 헛간으로 가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찬송하고 설교했다. 나는 비에 흠뻑 젖어 브레이씨 댁으로 와서, 우리 친구들과 함께 찬송하고 성서를 읽고 기도했다. 한 젊은이가 그 시간에 믿음을 받아들였다.
8월 19일, 토요일. 스톤하우스씨 댁에서 약간의 생명력을 느끼며 기도문을 읽었다. . . . 우리는 전처럼 양철 위에 올라가 찬송했다.
8월 31일, 목요일. 선교회 모임에서 나의 설교 “성서가 죄 아래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를 읽고, 각 사람에게 “당신은 정죄받을 만한가?”라는 질문을 했다. 플래트 부인이 격렬하게 소리쳤다. “예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 . . 나는 그녀에게 예수를 믿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확신에 가득 차서 대답했다. 우리는 그녀에 대해 찬송하고 기뻐하고 (그녀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함께 감사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가 우리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9월 24일, 일요일. [이슬링튼 교회에서 설교하고 나서] 그들이 위협하고, 지금까지 자주 그랬던 것처럼 했기 때문에 아무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특히 옷을 잘 입은 청중들은, “내가 겸손한 사람들에게 지옥을 말할 때마다”, “당신은 저주받을 만한가?”라는 무례한 질문을 할 때마다 . . . (이 부분은 본문이 누락된 듯함 - 역주). 우리는 스톤하우스씨 댁에서 그리고 다시 핸킨스 부인 댁에서 찬송하고 기뻐하고 감사했다.
9월 27일, 수요일. 옥스퍼드로 가는 길에 동료여행자인 콤부즈씨와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믿음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나는 감동을 받아 “믿음에 의한 구원”과 “그리스도 안의 믿음”을 찬송했다. . . . 우리는 옥스퍼드로 가는 도중 내내 찬송하고 소리쳤다.
10월 2일, 월요일. [옥스퍼드] 브로크마씨 댁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우리는 시편과 찬송가와 영가로 서로 권면했다. 나는 세 명의 클라게트 양과 [존 웨슬리와] 함께 가난한 병든 여인에게로 갔다.
10월 15일, 일요일. 나는 성 로렌스 성당에서 허친스(Hutchins)의 노래를 듣고, 성만찬 후에 기도하는 도중 많은 위로와 감명을 받았다. 이슬링튼에서 필요한 한 가지 설교를 하고 즉석에서 많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스톤하우스씨 댁에서 찬송했다.
11월 16일, 목요일. 아침기도 후에 벨 부인에게 임시세례를 주었다. 스톤하우스씨 댁에서 찬송하고 기도했다.
12월 19일, 화요일. 내 친구 스톤하우스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제 내가 믿는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믿음의 영 속에서 찬송하고 (핸킨슨씨가 우리와 함께 했다), 우리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했다.
12월 23일, 토요일. 블렌든에서 찬송하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적한 곳으로 가서 사랑을 위한 기도를 하며 내 영혼을 쏟아 부었다.
1739년
1월 22일, 월요일. 크리스양이 나를 불러서 갔더니 스톤하우스씨가 거기 있었다. 그녀는 매우 품위 있게 행동했다. 나는 [이름이 없음]양을 위해 찬송가 하나를 베껴 주었다. 저녁식사 후 그녀가 결혼을 찬양하는 이야기를 큰 소리로 했다. 나는 나의 가련한 친구가 매우 화가 나 있는 것을 보고 연민을 느꼈다. 우리는 찬송했다. 매우 늦게 헤어졌다.
1월 26일, 금요일. 뉴튼 박사의 집에서 그들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했다. 많은 감동을 받았다. 어젯밤은 매우 즐거웠다.
1월 27일, 토요일. 브레이를 휘트콤 부인 댁에 데려 갔다. 클라게트가(家) 사람들과 메트가프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헤스터 홉슨이 거기 있었다. 우리는 커다란 생명과 위로를 느끼며 교제하고 기도하고 찬송했다. 나는 블렌든에서 잤다.
2월 14일, 수요일. 뉴 게이트[감옥]에서 기도문을 읽고, 먼저 율법에 대해 설교하고, 다음에 복음을 전했다. 우리는 “죄인에 대한 초대”를 찬송했다. 모두들 감명 받았다.
2월 15일, 목요일. [이슬링튼] 선교회 모임에서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 설교했다. 내가 말을 끝냈을 때에 그녀[크리습양의 딸]가 나에게로 달려와 소리쳤다. “내가 믿나이다. 내가 믿나이다!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힘있게 다가왔어요. ‘내게 오는 자를 나는 결코 내치지 않으리라’라는 말씀이요. 알 수 없는 평화가 그 말씀과 함께 내 영혼으로 흘러 들어왔어요.” 우리는 찬송하고 기뻐하고 그녀를 대신해서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2월 19일, 월요일. 감옥에서 앤 다드와 함께 기도했는데 그녀는 매우 성격이 좋으나, 죄에 지치고 안식을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제 힘있게 설교했다. 나는 그 가련한 창녀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우리의 자매들이 한 사람을 승리하게 했다. 나는 M. 핸든씨 댁으로 따라 갔는데, 그는 탕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에는 그녀에 대한 연민이 넘쳐흘렀다. 그녀는 어리둥절하여 말이 없는 듯 했으며, 오직 눈물로만 그녀의 기쁨과 사랑을 증거했다. 우리는 매우 확신에 차서 그녀를 위해 찬송하고 기도했다.
2월 20일, 화요일. 나는 가난한 창녀에 대한 관심에 가득 차서 깨어나, 그녀를 위해 찬송가를 한 곡 불렀다. 다섯 시에 크리습 양을 방문했고, 그후에 스톤하우스씨 댁을 방문했는데, 거기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 이야기를 했다.
3월 12일, 월요일. 뉴 게이트에서 브레이와 함께 있었다. 나는 생명력에 가득 차서 힘있게 기도하고 찬송하고 권면했다.
3월 25일, 일요일. 베티 홉슨이 와서 오늘 우리가 훌륭한 잔치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스톤하우스씨가 사랑에 넘쳐서, 믿음에 대한 훌륭한 설교를 했다. 성만찬 후 우리는 승리를 계속했다. 나는 힘있게 “라자로가 살아났다”는 설교를 했다. 사람들은 방에서 찬송하고 기도했다. 주 안에서 우리의 기쁨이 컸다.
3월 27일, 화요일. 미스터 크라우취씨 댁에서 나는 박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 사람이 소리치기를 “그것을 거짓말이야”라고 했다. 우리는 기도와 찬송에 전념했다. 왕(그리스도 - 역주)의 외침이 우리들 가운데 있었다. 한 사람이 매우 상냥하게 다가왔다. 또 다른 사람이 그 위로와 기쁨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가 그것을 체험하도록 조용히 그를 초대했다.
4월 1일, 일요일. 성 캐더린 성당에서 설교했는데, 거기서 나의 옛친구, 이스트 그린스태드 출신의 패인 부인을 만났다. 성만찬을 집전했다. 크리시 앤더슨 집에서 저녁을 먹고, 그녀와 에스더와 함께 마차를 타고 이슬링튼으로 가면서 찬송을 하며 위로를 받았다. . . . 패터 레인에서,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고, 현저한 응답을 받았다. B. 하우어스가 심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비명 지르고 울부짖었다. 나는 그것에 방해받지도 않고, 훈계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11시까지 집에 갈 수 없었다.
5월 22일, 화요일. 레이몬드 양이 나를 자기 마차로 이슬링튼에 데려다 주었다. 내 친구 스톤하우스는 나를 보고 기뻐했다. 우리는 지난 여러 달들처럼 함께 찬송하고 기도했다.
5월 2일, 목요일. (거의 매일 그랬듯이) 레이몬드 양을 만나, 그녀와 내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고 찬송했다.
5월 27일, 일요일. [브로드오우크스?] 여전히 클라게트씨는 내 설교에 반대했다. 나는 교회로 가서 신생에 대해 설교했다. 우리는 찬송하며 돌아왔다.
6월 6일, 수요일. 60명[이상]의 가난한 사람들이 델라모트씨의 헛간에서 찬송하고 기뻐하며 밤을 보냈다. 나는 문 앞에서 그들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했다.
6월 7일, 목요일. 유명한 여자 예언자 레빙튼을 비난하도록 요청받았지만 . . . 나는 가만히 앉아서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찬송하기를 제안했고, 그녀는 수락했지만 함께 하지는 않았다.
6월 18일, 월요일. 살아 있고 자애로운 영혼인 유스터 부인 댁에서 찬송하고 기도했으나, 그녀의 내면의 느낌에 그리 의존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6월 19일, 화요일. 마음속에 평화만을 느꼈다. 브레이 집에서 기도하고 찬송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웨스트의 집에서 매우 침울하고 좌절하여 가라앉았다.
7월 3일, 월요일. [딘씨가] 나의 야외 설교와 집안에서 하는 강론과 시편 찬송을 못하게 하려고 극단적인 말을 했다.
7월 9일, 월요일. 출판을 위해 채닉씨의 찬송가를 교정했다.
8월 20일, 월요일. [브리스톨] 슈어드씨의 사촌 몰리는 기도할 수 없었고, 우리의 찬송가도 견디지 못하고, 영혼에 아무런 평안도 없었다.
8월 21일, 화요일. 정원에서 우리가 찬송을 부르자 두 명의 진지한 여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는데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슬퍼하신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8월 22일, 수요일. 오늘 아침 가련한 로빈에게 일어난 일이 하나님의 사역인 듯 했다. 첫인상을 준 말씀[st. 3: 5-6, "내가 그것을 얻을 수 있을까“]은
오 나의 주여 나를 발견한 것은
무한하고 거저 주신 자비였나이다!
였다.
8월 26일, 일요일. [케닝튼 교구] 찬송과, 죄인에 대한 부름으로 설교를 맺었다.
8월 27일, 월요일. [엘비에서] 우리는 믿음이 와서, 하나님이 그의 바람을 부사, 물이 흘러가게 되기까지, 교대로 기도하고 찬송했다.
9월 16일, 일요일. [핸햄-마운트] 나는 목소리를 나팔처럼 높여, 몇 분 후에 그[사탄]를 그곳[볼링장]에서 몰아냈다. 약 한 시간동안 나는 전에 없던 권능으로 복음을 전했다.
10월 3일, 수요일. [베스?] 세라 타운센드가 나에게, 일요일 저녁 우리가 “심판으로 오라, 오라”(Come to judegement, come away)를 찬송하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 안에서 그녀가 <감히> 나아간 것을 발견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 순간 성령께서 그녀의 마음에 용서를 확인해 주셨다는 것이다.
10월 5일, 금요일. 우리는 전심을 다해서 그녀[그래닐 부인]가 기도하게 했다. 나는 그녀같이 기도하는 것을 들어 본 일이 없다. 우리는 위로자(성령 - 역주)가 오기까지 그녀에게 약속을 하고 찬송하고 기도했다.
10월 30일, 화요일. [브리스톨의 감독에 대한 편지에서] 뱁티스트 - 밀즈에서 제인 코너가 자신을 치유하는 주의 권능이 임재하셨음을 발견했다. 제인 파커도 우리가 찬송하는 동안 같은 경험을 했다.
1740년
3월 16일, 일요일. [글라우체스터] 시장이 보낸 한 경찰관이 와서 나를 시장에게 데려가려고 했다. 나는 먼저 주님을 예배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 . . 나는 갔다. 핸리씨가 위협과 욕설로 나를 맞았다. 나는 찬송하기 시작했다.
연약한 인간을 두려워하여
내 안에 있는 성령의 길 마다하리이까
나는 T. 맥스필드와 함께 찬송을 불러,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데리고 가게 했다. 그들은 길가의 다리에 나를 버렸다. 나는 거기 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한 해방감으로 노래했다.
하나님의 천사여, 무슨 일이 있든지
나 그 부름에 응하리이다
[학교에서] 특히 나를 경멸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확신을 갖고 말했는데, 그들은 내 말을 오랫동안 견디지 못했다. [웨슬리는 그의 송영시에서 이렇게 인용한다]
높이 계신 주님께 찬양하라
그의 사랑처럼 영원히 찬양하라!
3월 17일, 월요일. [글라우체스터?] 이웃의 술집에서 한 무리가 쳐들어와, 학교 교사인 그들의 대표를 나에게 대항하여 의자 위에 세웠다. 거의 한시간 동안 그는 그의 주님에 대해 말했고, 나는 내 주님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내가 승리했다. 때때로 우리는 기도하고, 때때로 찬송하고 감사했다. . . . 그 소요와 비난과 모욕의 와중에서 나는 달콤한 평안을 누렸다.
3월 18일, 화요일. 내가 [설교를] 끝내는 동안, 학교 교사인 내 친구가 목청을 높였다. 우리는 찬송에 호소했고 그것이 그의 연설을 매우 방해했다. [설교 후] 우리는 한시간 동안 승리의 찬송을 불렀다. 몇몇 퀘이커 교도들이 동참하여,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음의 가락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 것임을 발견했다.
3월 25일, 화요일. [이브스햄] 나는 죄인<이었으나> 이제는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과 차를 마셨다. 나는 맥스필드 형제와 강가로 산책을 나가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평안한 시간을 보냈다. . . . 선교회 모임에서 마태복음 5장 강론을 끝냈다. 마지막 찬송을 부를 때까지 모두들 조용했다. 그후 나는 원수가 으르릉대는 소리를 듣고, 또 다른 찬송가를 불렀다.
3월 30일, 일요일. [웨스트포트] 강단에서 책을 펴서 “주님의 영이 내게 임하였으니, 주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려고 나에게 기름을 부으셨도다”는 구절을 보았다. 나는 우리 주님의 예언자직과 주께서 그것을 행하도록 하신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우리는 찬송하고 감사하며 강단을 떠나 주일을 지키는 사람들 가운데로 돌아왔다. M 부인이 우리가 찬송한 한 마디 한 마디에 감동을 받았다.
4월 4일, 성 금요일. 파운더리에서 수많은 죄인들에게 외쳤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 . 나는 맥스필드와 함께 오후에 몰터를 방문했다. . . . [우리는] 성직서품을 받기 위해서 애쓰는 것에 반대하는 일반적인 이야기만을 했다. 우리는 만났을 때처럼 기도나 찬송 없이 헤어졌다. 이러한 빈약한 연습을 할 때는 이제 지났다.
4월 6일, 부활절. [바우어스씨 댁에서 악단과 함께 저녁에] . . . 지루한 쇼로 한 시간을 보내지 않고, 나는 찬송하고 주님께 기도했다. 나는 한 시간 동안 자유롭게 말했으며,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 . . [나는 그들에게] 완전을 향해 가라고 [말했다]
4월 8일, 화요일. [파운더리에서] 제인 잭슨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 선교를 통해 그들의 영혼을 위해 행하신 일을 간증했다. . . . 그분의[그리스도의] 권능이 이때 우리를 압도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기쁨으로 뛰놀고, 우리는 그분을 찬양했다.
4월 11일, 금요일. [왜핑] 메이가 신생의 고통을 느꼈다. 보라 “신랑이 오신다!”는 외침을. 나는 언제 설교와 기도와 찬송을 끝냈는지 알지 못했다.
4월 13일, 일요일. 성 바울 성당에서 성체성사를 받았다. [그후] 내 영혼은 애찬식에서 매우 슬퍼졌고, 그렇게 많은 논쟁이 . . .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증언했고, 피터 뵐러 이후로 모라비아 교도들이 우리에게 아무 것도 더해 준 것이 없음을 말했다. 찬송과 기도로 내 영혼은 회복되었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함께 그 이름을 높였다.
4월 16일, 수요일. 파운더리에서 선교회 모임을 갖고, 여러 방법을 사용하여 진실한 평안을 얻도록 권했다. 큰 자유와 사랑으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권면했는데, 마침내 심슨씨가 성만찬에 반대하여,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받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 . . 심슨씨가 할 말을 다하고 나서, 내가 등단하여 은혜의 수단에 대한 찬송으로 선교회 모임을 끝냈다.
4월 22일, 화요일. [이슬링튼] 크라우취의 선교회 모임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했다. 나는 그들 가운데 “은혜의 수단”이라는 제목의 찬송가를 남겨 두었는데, 나는 그것을 평안을 얻는 해독제로서 인쇄한 것이었다 [「일기」 편집자는 그 시가 후에 “주여 내 오랫동안 당신을 섬기는 듯 했나이다”(Long have I seem'd to serve you Lord), “주여 당신의 자애로우심 여전하시니”라는 두 개의 찬송가로 인쇄되었다고 지적한다].
나는 페털레인에 있는 형의 선교회 모임에 참석했다. 처음 한 시간은 평소처럼 지루한 쇼로 지났고, 다음에는 거론할 만한 가치도 없는 사소한 이야기로 보냈다. 존브레인은 주요 인물이 아니었다면 기둥과 같이 보였는데, 한 형제를 내쫓고 일행에 동참하지 못하도록 비난했다. 우리는 별로 기도도 찬송도 하지 않고, 아무 사랑도 없이, 만났을 때처럼 헤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형이 말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그들의 목적을 성취했다.
5월 15일, 승천일[화요일]. [선교회 모임에서] 세라 교회가 나에게, 심슨씨가 래그패어에서 강론하던 날 밤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는 아주 무미건조하게 느껴진 그의 설교 때문이 아니라, 내가 부른 찬송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일을 들은 후 앤 로버츠도 같은 세속적 노래를 듣고 같은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6월 2일, 월요일. [런던, 설교 후] 회심이 효과적으로 시작된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했다. . . . [그 중에는] 하나님께서 찬송 가운데 그녀의 마음을 보게 해 주신 메어리 펙도 있었다.
7월 13일, 일요일. [브리스톨] 나는 로우즈 그린에서 인간의 타락(창세기 3장)에 대해 설교했다. 우리는 쓰레기장을 넘어서, 찬송하고 기뻐하며 걸었다. 애찬식이 있었다. 예수의 영 안에서 200명이 모였다.
7월 27일, 일요일. 킹스우드에서 두 배의 힘으로 이사야서 40장의 “내 백성을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주께서 말씀하신다”의 복음을 전했다. . . . 설교 전에 나는 우리 형제 체닉과 보편적 구원에 대한 믿음에 관해 완전한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선언했다. 그가 자신의 찬송가로 내 말을 확인해 주었다. 내 영혼이 그의 영혼과 이때처럼 하나로 맺어진 것을 느낀 일이 없었다.
8월 6일, 수요일. [브리스톨] 매우 침울해져서 나는 신자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찬송가를 불렀다.
병고가 진흙집을 뒤흔들고
계속되는 고통에 약해지면
내 몸이 재빨리 무너지고
열병의 다정스런 힘 기다리네
형제들에게 힘없이 몇 마디를 하고 나서, 나는 즉시 벌벌 떨기 시작했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10월 8일, 수요일. 믿음의 지고한 승리 가운데 죽어 가는 마가렛 토마스를 보고 많은 힘을 얻었다. 나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근심과 죄와 비탄과 고통으로
그렇게 늦게까지 짓눌린 영혼인가?
그대의 모든 두려움 어디로 갔는가?
그대 위해 예수께서 승리 거두시니
죽음도 죄도 사탄도
정복할 수 없는 믿음의 방패에 굴복하도다
10월 23일, 목요일. [브리스톨] 세상을 떠난 우리의 자매 퍼넬의 집에서 몇몇 사람을 만나, 엄숙하게 찬송으로 그녀를 위해 기뻐했다.
10월 28일, 화요일. 우리는 그[슈어드씨]를 위한 장례찬송을 부르고, 가라지도 뿌려지지 않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도 우리를 더 이상 갈라놓지 못 할 곳에서, 그를 곧 다시 만날 소망 속에서 위로를 얻었다.
11월 8일, 토요일. [카디프] 죄사함 없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몇몇 사람들과 찬송하고 긴밀하게 대화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11월 17일, 화요일. [런던] 성 브라이드 성당에서 설교했다. . . . 우리가 전도관에서 떠나려 할 때, 하나님이 하우엘 해리스를 우리에게 보내셨다.
서로 보자마자 모든 오해가 사라졌다. . . . 우리는 승리의 찬송을 불렀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또 한번 쳐들어 와서 나를 공격하려는 시도를 했다. . . . 그들은 갔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를 계속했다. 왕의 외침이 우리 가운데 있었다. 우리는 훼방꾼들인 벨리알의 아들들이 집을 에워쌌을 때도 무관심하게 찬송을 계속했다. . . . 우리는 새벽 1시까지 매우 평안하게 기도하고 찬송했다.
11월 19일, 수요일. [나는] 가나안 여인에 대한 순수한 복음을 전했다. . . . 훼방꾼들이 나에게 행한 일들을 기뻐한 것에 대해 가장 심한 반대자들 중 몇몇이, 특히 한 젊은 여인이 흐느껴 울었다. 그들은 찬송하고 기도하고 심히 떨었다.
1741년 (일기는 4월 20일부터 시작된다)
4월 20일, 월요일. [다우닝] 우리는 두 시간 동안 교대로 기도하고 찬송했다. 그때 주께서 우리의 마음을 넓혀 주시고 확고하게 해 주셨다고 우리는 믿는다.
4월 21일, 화요일. 나는 서둘러 우리 자매[한나 리처드슨]의 즐거운 장례식에 갔다. . . . 모든 선교회 모임 사람들이 그녀를 무덤까지 따라갔다. 온 도시에서 사탄이 자기 자식들 속에서 심히 격노하여, 그 자식들이 우리에게 쓰레기와 돌을 던졌다. . . . 장례식 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찬송을 불렀다 [제 1연을 여기 싣는다].
오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여
성인들과 천사들과 함께 하자
하나님의 은총에 영광과 찬양과
축복과 감사를 드리자
4월 25일, 토요일. [킹스우드] 우리의 감사메모가 점점 더 늘어났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썼다. “지난 밤 당신의 입에서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나는 그것을 내 영혼에 적용할 수 있었고, 그것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 증언할 수 있습니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5월 8일, 금요일. [킹스우드] 우리의 자매 후퍼의 장례식을 엄숙히 치르고 그녀에 대해 찬송으로 기뻐했다. 특히 그 찬송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 모두 목숨 떠나
주님의 손에 돌아가리니
오 자매여, 나도 당신처럼 죽고
당신의 마지막 내 마지막 되리!
본문은 “주여 이제 당신의 종 평안히 떠나게 하소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무덤까지 따라갔다. 거기서 우리는 또 한 곡의 승리의 찬송가를 불렀다.
5월 17일, 성령 강림일. 우리가 찬송하는 동안 (성령의 - 역주) 불이 붙었다.
당신께 증언하오니
당신의 빛 모든 이에게 주사
온 세상 그로 인해
주님 보고 믿나이다
5월 18일, 월요일. 가난한 한 군인이 나에게 하나님이 자기 눈을 열어 보편적 사랑을 보게 하셨다고 고백했다. 나는 이 구절을 반복했다.
일어나소서, 오 주여, 일어나소서
당신의 영광스런 일 계속하시고
모든 죄인 위해 죽으신
당신의 피의 속죄 이루소서
5월 24일, 일요일. [브리스톨] 밀즈에서 형의 소식을 듣고 형의 선교회 모임에 참석했다. 우리 선교회 모임에 구름[방해자들]이 있었다. 그의[사탄의] 종들 중 하나가 방에 돌을 던졌으나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더 머물라는 도전으로 받아들여, 한시간 더 찬송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6월 28일, 일요일. 기억할 일이 많은 날이다. . . . 어젯밤 하우엘 해리스가 나에게 선교회 모임에 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라고 명했다.
승리 속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며
하늘의 천군들과 경쟁하오니
당신의 무한한 은총
당신의 무한한 사랑 외치나이다
우리가 이 찬송을 하고 있을 때, 내 명령으로 W. 후퍼가 그를 데려 왔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 모두 부를 수 있는 찬송을 불렀다. . . . 나는 하우엘에게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 . . 30분 동안 <저항할 수 없는 은총>에 의한 그의 회심에 대한 설명을, 타락의 불가능성, 하나님의 불변하심 등에 대한 체험을 섞어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말을 계속 들을 것인지 회중에게 물었다]. 그들(방해자들 -역주)은 심한 말로 나를 다시 제지했다. 이에 대해 나는 찬송했다.
기뻐하라
너의 위로자를 찬양하라
그들은 수많은 물과 같은 목소리로 또는 힘있는 천둥 같은 소리로 말했다. . . . 하우엘 해리스가 논쟁에 빠져들 뻔했지만 . . . 비난하는 말이 나올 걸 예상하고 내가 제지했다. 그리고 찬송했다.
순수한 축복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지상의 모든 자들 그의 사랑 갈망하니
주님은 죄인 하나도 잃지 않으시도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찬양하라
7월 14일, 화요일. [카디프] 오후에 죄수들에게 갔다. “오 에브라임이여, 내가 너를 어찌 포기하겠느냐?” 20명 이상이 중죄인이었다. 그 말씀이 그들을 감화시켰다. [st. 4: 1 "내 의아해하는 영혼 어디서 시작할까?“], 사람 중에 버림받은 자들을 내 너에게 부르노라 등의 찬송가를 부를 때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7월 17일, 금요일. [카디프 성] 이 거주지에서 찬양하고 감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식사 전과 식사 때와 식사 후에 우리는 즐거운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했다. 거실과 부엌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찬양하면서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이곳이 믿음 깊은 아브라함의 집인 듯이 생각되었다. 우리는 킹스우드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을 불러 성령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도록 했고, 그들과 함께 새벽까지 찬송을 계속 했다.
8월 2일, 일요일. [킹스우드] 우리의 자매 레이첼 피카에 대한 장례예배에서 설교했다. 그녀는 주 안에서 당당하게 죽었다. 그녀는 주 안에서 계속 기뻐하며, “내가 신음하지만,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해요.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을 기쁘게 하시고 충만케 하시니까요”라고 소리쳤다. 그녀의 입은 웃음으로 가득 찼고, 그녀의 혀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쉬지 않고 찬송을 불렀다.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계시니, 주와 함께 하는 한 순간이 무한세월의 가치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8월 6일, 목요일. 가련한 웰쉬여인(Welshwoman) 곁에 기도하러 가서 . . . 앉아서 그녀가 새로운 찬송을 부르는 것을 들었는데, 내 완악한 마음조차 녹아 내렸다.
8월 25일, 화요일. [카디프] 우리는 세 시간 동안 찬송하고 기뻐하고 감사했다. 그 후 포트캐리로 말을 타고 가서, 기도문을 읽고, 벳세다의 연못에 대한 이야기를 두 시간 가량 했다. 온 회중이 눈물 천지였다.
8월 27일, 목요일. 랜베인에서 벌어진 술잔치에 갔다. . . . 예순 살 된 늙은 춤꾼이 망치에 맞아 쓰러졌다. 그녀는 그런 순수한 즐거움 속에 무슨 해가 있으리라고는 결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8월 28일, 금요일. 포트캐리 교회에서 다시 설교했다. . . . 6시에 안뜰에서 이사야서 53장을 강론했다. . . . 선교회 모임에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저녁을 보냈다. . . . 그들과 10시까지 찬송하고 기도했고, 한밤중까지 가족들과 보냈다.
9월 13일, 일요일. 카디프에서 설교하고, 그후 웬보에서 설교했다. 세 번째는 포트캐리에서, 끝으로는 폰몬에서 했다. 나머지 밤 시간 동안은 시편과 찬송가와 영가로 서로를 권면하며 보냈다.
9월 14일, 월요일. 2시까지 찬송하고, 그후 말을 타고 데니스-포위스의 잔치에 갔다.
9월 16일, 수요일. 폰몬에서 철야하며, 열 처녀에 대한 강론을 했다. 우리는 아침 10시까지 찬송하고 기뻐했다. 오 세상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일기」에는 1741년 9월 22일부터 1743년 1월 2일까지 기록이 없다.
5월 21일, 토요일. [웬즈베리] 형의 지도 아래 죄사함을 받은 몇몇 사람들과 대화하며 오전을 보냈다. 방해자 한 사람이 전도관을 지으라며 찬송으로 헌납한 땅을 보았다. 여러 형제들과 함께 찬송하며 왈살에 갔다.
5월 25일, 수요일. [쉐필드] 6시에 베네트 형제 옆집인 선교회 모임 집에 갔다. 저 아래서 지옥이 우리를 반대하여 움직였다. 내가 데이비드 테일러와 강단에 서자마자, 홍수[방해자들 - 역주]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 경찰(앤사인 가든)이 우리를 반대하며 모욕했다. 나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찬송했다. 돌이 세차게 날아와 강단과 사람들을 때렸다.
5월 30일, 월요일. 리플리 근처에서 내 말이 넘어져 내 위에 쓰러졌다. 친구들은 내 목이 부러졌다고 생각했지만, 내 다리가 멍들기만 했고, 손목을 삐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다음날까지 찬송가를 쓰지 못하고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다음날 주께서 뉴캐슬에 안전하게 데려다 주셨다.
6월 4일, 토요일. [펠튼] 오늘 술집에서 온 한 주정뱅이가 나를 기쁘게 하려고 기꺼이 발작을 일으켜서, 자기자신을 마음껏 때렸다. 나는 그를 방해하는 것이 안됐다고 생각해서, 자주 그랬던 것처럼 그를 위해 찬송하지 않고, 그가 평정을 회복하기까지 내버려두었다. . . . 어젯밤 나는 선교회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누구든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려고 소리를 지른다면, 아무도 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심판하지 말고 조용히 방 한 구석으로 데려가라고 광고했다.
7월 24일, 일요일. [웨드녹, 콘월] 선교회 모임 사람들이 왔다. 우리 마음은 기뻐 뛰었고, 우리는 주님을 찬양했다.
7월 30일, 토요일. [성 저스트] 우리 형제 쉐퍼드와 함께 랜즈앤드로 산책하여, 바위 꼭대기에서 찬송했다[첫 연을 여기 싣는다].
오소서, 임마누엘이여, 오소서
당신의 거처에 임하소서
이제 당신의 자비의 날개 펴사
행복한 땅 가득 채우소서
10월 25일, 화요일. [월세일] 고소자들이 [나에] 대해 한 가지 죄만을 말했다. . . . 주께서 사람들을 새벽 5시에 일어나게 하사 시편을 찬송케 하셨다. . . . 그렇게 소박한 선교회 모임을 전에는 본 일이 없다. 우리는 정열적으로 찬송하고, 크게 용기를 내어 . . . 우리는 누워 자고, 다시 일어났다. 주께서 우리를 지켜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이 새기 전에 모여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 찬송을 불렀다.
1744년
2월 3일, 금요일. 달라스톤에서 온 가난한 사람들은 매우 고통받는 사람들이었다. . . . 그들이 그들 중 누구라도 찬송하거나 성서를 읽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사람을 모욕하면서 때리고 결딴낸다.
2월 18일, 토요일. [노팅햄에 있는 J. 힐리로부터] 나는 놀라운 섭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가난한 주정뱅이가 . . . 감동 받아 . . . 설교를 들으러 왔다. 그 때문에 그는 집이 무너질 때 깔려 죽지 않았다. . . . 집이 무너지기 직전에 그의 아내가 찬송가를 부르려고 그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 피했던 것이다.
3월 14일, 일요일. [리즈에서] 낡은 다락방에서 . . . 찬송을 부른 후, 나는 자리를 옮기고, 그들을 위쪽으로 들어오게 했다. . . . 나는 다시 옮겼다. . . . 그 순간 마루가 내려앉았다. . . . 나는 소리쳤다. “두려워 마시오.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생명은 모두 안전합니다!” 그리고 나서 -
모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3월 15일, 목요일. [웨이크필드에서, 위선자(조지 왕 - 역주)를 위해 기도하느냐는 고소에 대해 버튼 판사 앞에서 대답하기 위해] 내가 대답했다. “그 반대가 맞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조지 왕 폐하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선교회 모임에서 부르는 찬송이며, 내가 대학 앞에서 한 설교입니다. . . . ” 여기서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책들을 주고 대담하게 말했다. “나는 진실한 영국교회 교인이며, 이 나라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충실한 신하입니다.”
7시 30분에 우리는 브리스톨로 출발했고, 즐거운 여행을 했다. 우리의 형제들이 길에서 우리를 마중하여, 우리는 함께 언덕에서 모여 열정적으로 용기를 내어 찬송했다. . . . 그들은 존 넬슨의 집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는데, 우리의 찬송이 그들을 압도하여 도망가게 했다.
7월 19일, 목요일. [성 이브즈, 존 낸스의 집에서] 정원에서 혼자 한 시간을 보냈는데, 우리가 매우 연약함을 느끼고 괴로웠다. 밖에는 싸움이 있고, 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내 사랑스런 형제들과 아이들을 보자 두려움이 모두 사라졌다. 나는 찬송하며 그들에 대해 감사했지만, 그들의 기쁨과 사랑이 더 컸다. 우리는 모두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 소망으로 기뻐했다.
7월 31일, 화요일. [성 저스트] 오후에 어느 때보다 많은 회중에게 설교했다. . . . 나는 선교회 모임에 걸어가서 언덕 위에 서서는, 찬송하고 기도하고 넘치는 기쁨으로 기뻐했다.
8월 14일, 화요일. [카디프] 우리는 우리의 죽은 친구를 위해 승리의 찬송을 불렀다. 그후 그 집으로 가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그에 대해 찬송하며 다시 기뻐했다. 그 영혼이 떠날 때, 성령께서 그 진흙(그 육체 - 역주)에 행복의 표시를 남겨 주셨다. 내 눈으로 땅에서 그를 볼 수 없는 것이 어쩌면 행복한 일일 것이다.
8월 23일, 목요일. [옥스포드의] 크라이스트 교회 기도회에 몇 명의 형제들과 함께 갔는데, 그들은 사람들이 예배시간 내내 극장에서처럼 흰옷을 입고 이야기하고 웃고 손가락질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형 존과 대화한 후] . . . 우리는 성령께서 전에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오신 일이 있음을 알았다. 나는 우리 숙소와 앞마당을 가득 채운 수많은 형제들과, 상류층 인사들과, 여러 계층에서 온 귀족들에게 설교했다. 우리의 기쁨에 함께 하지 않은 낯선 사람이 그 광경에 충격을 받은 듯이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시편과 찬송가 등으로 권면했다. 오 온 세상이 우리와 같은 기쁨을 누리기를!
11월 30일, 금요일. [뉴캐슬] 저녁에 파도[방해자들]가 소리를 높여, 우리는 30분 동안 찬송할 수 없었다. 난동꾼들 중 가장 과격한 두 사람이 우리 선교회 모임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12월 17일, 월요일. [엡워드, 「일기」 편집자는 이 찬송가가 가장 어려운 때 쓰여졌다고 지적한다. 첫 연을 여기 싣는다]
오 갈릴리의 왕이시여
내 이 수치 속에 찬양할 수 있나이까?
내 이 모욕을
당신 위한 수난으로 여길 수 있나이까?
1745년
1월 27일, 일요일. [런던] 우리의 가련하고 불안정한 형제 쿠퍼를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 . . 주 안에서 떠난 한 자매를 묻었다. 나는 파운더리에서 사람들에게 외쳤다. “오라,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나는 우리 모임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은 엄숙하고 애통해하는 모임이 되었다. 나는 죽음에 대해서만 말하고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죽음이 깨뜨릴 수 없는 사랑 속에서 눈물과 영혼을 함께 섞었다.
5월 31일, 금요일. [이슬링튼] 우리는 철야를 했다. 사랑스런 하우엘 해리스를 강단으로 데려가 함께 찬송하고 기뻐 외치기를 새벽까지 했다.
6월 23일, 일요일. 두 시까지 콘햄 교회에 도착해야 했다. . . . 내가 주님의 나타나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전에 들은 적이 없는 큰 천둥소리로 경고를 받았다. . . . 대부분의 회중이 주의 날이 온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한 생각이 번개처럼 마음에 떠올랐다. “심판 날이라면 어찌 할 것인가?” 나는 즉시 죽음보다 강한 믿음에 가득 차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으로 기뻐했다. 내가 찬송을 부르는 동안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 위에 임하셨다.
그의 전차를 감싼 번개처럼
구주께서 그렇게 오시리니
너희 번개여, 그의 길을 예비하라
너희 영광스런 폭풍이여
그의 길을 준비하라!
8월 10일, 토요일. [내가 쓰러진 후 솁튼-말레트에서] P씨가 자기 집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친절한 메시지와 자기 안락의자를 보냈다. 나는 그에게 감사했지만 아프다는 이유로 그의 제안을 겸손히 거절했다. 아파서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 가난한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만나기 어려웠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두 시간 동안 기도하고 찬송하고 기뻐했다. . . . 내가 지쳤을 때, 그들은 나를 자기들 침대에 눕혔는데, 그것은 그들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파서 잘 수 없었다.
8월 13일, 화요일. [필립선장의 배에서] 우리는 찬송하고 성서를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8월 15일 목요일 아침 6시에 카디프에 상륙했다.
10월 26일, 토요일. [런던] R부인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여배우이며, 감리교로 개종한 사람으로, 남편은 커벤트 가든 극장의 소유주였다] R[리치]씨는 매우 겸손하게 행동했다. 나는 나의 방문이 그에게 가져 올 폭풍을 예견하고 있다.
1746년
2월 6일, 목요일. 우리는 그녀[웹 자매]의 시신 앞에서 찬송가[람페의 곡?] “아 사랑스런 죽음의 모습이여”(Ah, lovely appearance of death)를 불렀다. 그리고 기쁨과 질투의 눈물을 몇 방울 흘렸다[더블린에서 존 웨슬리가 이 찬송을 부른데 대한 앞에 나온 기록을 보라].
3월 28일, 성 금요일. 내 누이 라이트의 집에서 리치부인과 그녀의 어린 두 딸과 함께 차를 마셨다. 딸 중 하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내가 본 중 최고의 피조물이었다.
3월 29일, 토요일. 리치부인 집에서 오후를 보냈다. 거기서 우리는 람페씨와 우리 자매들 몇몇의 도움으로 귀를 통한 치유자[치유의 영]를 알게 되었다. 이것이 음악의 진정한 용도이다.
5월 2일, 금요일. 말을 타고 브리스톨로 돌아가서, 스코틀랜드에서 우리가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밤에 첫 마디로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기뻐했으며, 그 간청에 대한 놀라운 응답을 감사함으로 보았다.
그들의 모든 힘을 뒤집어 엎으시고
그들의 창을 뺏고 칼을 부러뜨리사
무모한 반역자들이 알게 하소서
이 전투가 주의 것임을!
7월 25일, 금요일. [트루얼라드] 내 방에 찬송가 책[어떤 모음집?]을 두고 와서 그것을 가지러 올라갔다. . . . [내 체포영장에 대한 소식을 듣고] . .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말씀을 읽고, 법정에서 다시 설교할 용기를 얻었다. 양날 선 칼(성경 말씀 - 역주)이 큰 힘을 발휘했다. 나는 찬송가로 말을 맺었다.
열쇠를 가지신 분께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예수여 당신의 크신 은총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니
세상과 사탄의 힘 꺽으사
복음의 문 활짝 여소서
8월 11일, 월요일. [그웬냅] 다음의 감사 찬송으로 [선교회 모임에 성령이 임하심에 대해] 내 마음의 감사를 표현했다.
주님의 종 중 가장 작은 자 통해
주님 은혜의 향기
모든 곳에 전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네
주님 승리 주셨으니
주님 행하신 일 기려
주님께 찬양을 드리네
모든 영광 오직 예수께!
8월 24일, 일요일. [성 기니스] 새뮤얼 [트램배스]가 승리에 충만하여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빛이 있는 곳으로
날아갈 날개 달고
기수(騎手)들 왔으니
이스라엘의 전차 나를 집으로 데려가네!
10월 13일, 월요일. [뉴캐슬 가까운 스터들리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거기서 몇몇 가난한 주정뱅이들이 우리의 찬송을 방해하고, 우리가 노래하지 못하게 하려고 얼마동안 노력했지만, 우리는 찬송을 끝까지 불렀다.
1747년
1월 18일, 일요일. [리즈] 내 강론 도중에 다함께 기쁨이 넘쳐 찬송했다.
2월 25일, 수요일. [브리스톨, 큰 소요가 극복된 후] 우리를 구원하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구원찬송」(Redemption Hymns, 1747)에 있는] 찬송을 돌렸다 예배하고 감사하고 축도했다.
4월 27일, 월요일. 나는 모든 악의 모양, 특히 자만과 분노에서 벗어나려고, 내 십자가를 지고 리치부인의 마차를 타고 첼시로 갔다. 한때 나의 친구였던 사람을 만나기 전에, 람페씨 집에서 한 두 시간을 보냈다. 나를 처음 맞은 사람은 신실한 M 부인과 그녀의 <옛 동료들>이었다. 그 다음에는 E 부인이었고, 끝으로 <그 사람>이었다. 그가 원하기에 찬송하고, 기도하고, 저녁을 먹고, 권면하고,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떠났다.
8월 5일, 수요일. 브리스톨에서 모임 사람들을 만났다.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놀랍게 우리에게 임했다.
8월 6일, 목요일. 나는 웰즈 양과 버독 양과 우리의 전도자 여덟 명과 함께 찬송하면서 그것을 다시 발견했다.
10월 11일, 일요일. [더블린] 메어리 본-레인에서, 나는 정말 마지못해 설교하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성령이 홍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모든 사람들이 슬퍼서든 기뻐서든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한 시간 이상 찬송하고 울기를 계속했다. 내가 영국을 떠난 후 전에 없이 상쾌한 시간이었다.
1748년
2월 8일, 월요일. 트릴스-통로로 가기 위해 말을 탔다. 우리는 우리의 곡조 중 하나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는 한 소년을 지나쳤다. 그는 천주교 소년이었지만, 꾸준히 설교를 들으러 오는 아이였고, 그가 외우고 있던 찬송가 몇 곡을 우리와 함께 불렀다.
2월 10일, 수요일. 8시에 말을 타고 아틀론으로 갔다. 몇 사람이 우리를 급히 지나쳤는데, 말에 탄 한 사람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우리는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고 찬송하며 말을 달려, 그 마을의 반 마일 이내로 들어섰다. . . . [우리는 돌을 맞고서야] 멈춰 서서, 승리의 찬송을 부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2월 14일, 일요일. 필립스 타운에서 탕자에 대한 설교를 했다. 약 40명의 기병들이 우리와 함께 앞뒤에서 찬송하고 대화했다. 이들은 모두 속죄함을 받기 위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옮기웠다.
4월 29일, 금요일. [런던] 리치 부인이 [자기 마차로] 나를 [요한 C.] 페푸쉬 박사에게 데려갔다. 그의 음악은 우리를 기쁘게 했으며, 그의 대화는 더욱 그러했다.
6월 28일, 화요일. [브리스톨] 속회를 점검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버독 양과 샐리와 함께 찬송하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
7월 29일, 금요일. [방해가 있는 동안 설교를 한 후] 나는 새로운 힘을 얻어 우리의 방까지 달려가서, 한밤중까지 설교하고 찬송하고 기뻐했다.
8월 21일, 일요일. [크라이스트 교회, 코크] 나는 그들[수천의 군중]에게 그들의 여러 예배처소로 가라고 권고하고, 나 자신은 크라이스트 교회로 갔다. 그것은 코크에서 가장 큰 교회였는데, 여전히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교제는 거의 10시까지 계속되었다.
5시에 나는 다시 들판[늪]으로 갔으나, 그런 광경은 본 일이 드물었다. 수 천명의 사람들이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개신교도와 구교도, 상류층과 하류층이 있었고, . . . 나는 그들에게 목청껏 한시간 동안이나 소리쳤지만[설교하고 찬송했다?] 목이 쉬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9월 5일, 월요일. [벤던으로] 가는 길에 아일랜드에 있는 로마 카톨릭 교도들을 위해 다음의 찬송가를 만들었다[첫 연을 여기 싣는다].
위대하고 선하신 영혼의 목자시여
어찌할 바 모르는 당신의 양떼 보소서
이 무리에 속하지 않은
저 밖에 흩어진 다른 양떼들
무지와 죄 속에
사탄과 그의 무리에 매여 있으니
그들을 복음으로 일깨우사
버림받은 자들 불러 들이소서
9월 7일, 수요일. [벤던] 마을회관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과 기도하고 찬송하며 한시간을 보냈다.
9월 25일, 일요일. [아틀론] 저녁설교에서 커다란 축복이 임했다. 상처받은 영혼들의 외침을 묘사할 수는 없다. 그 장소가 “자비, 자비를!”을 간구하는 큰 소리로 가득 울렸다. 나는 말을 끝맺고는 다시 시작하고, 또 다시 시작하고, 다음에 찬송하고 기도하고 또 찬송하며, 어떻게 끝낼지를 알지 못했다.
10월 7일, 금요일. [더블린?] 늙은 네덜란드 퀘이커 교도인 런넬씨 집에서 선교회 모임을 가졌다. 그는 하나님의 일에 깊은 체험이 있는 듯 했다. 2시에 람페씨와 그의 부인이 방문하여, 나를 보고는 너무 기뻐했다. 나는 아직도 그들이 돼지들을 먹이는 일, 즉 속된 세상을 즐겁게 하는 일보다 더 나은 일을 구상하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버릴 수가 없다.
10월 10일, 월요일. [웨일즈로 가는 길에] 내가 지난 밤 [폭풍이 치는 동안] 배에 머물러 있지 않았던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보다 더 폭풍이 심했던 때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감사 찬송을 썼다[첫 연을 여기 싣는다].
포효하는 바다를 말씀으로 다스리시고
그 분노를 단호한 명령으로 다스리시는
주님께 감사드리오니
주님의 섭리
바람을 묶기도 하시고 풀기도 하시며
손짓 하나로 보이지 않는 사슬에
다시 묶기도 하시도다
12월 2일, 금요일. 9시에 나는 그들이 가트에서 찬송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 모두가, 특히 부인[샐리 어머니 그윈 부인]이 특별히 다정하게 나를 맞이했다.
12월 30일, 금요일. [런던] 형과 함께 블랙웰씨를 만났다. 형은 책을 판 대금에서 나에게 해마다 100파운드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12월 31일, 토요일. 우리의 형제 휫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기뻤다. 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은 찬송으로 썼다[첫 연을 여기 싣는다].
오 내 눈이 오늘 본 영혼이 떠나는 광경이여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기쁜 광경이어라!
1749년
4월 8일, 토요일. [가트에서 행해진 샐리와 찰스의 결혼식에서] 그윈씨는 (하나님의 인도 아래) 그녀를 나에게 주셨다. 형이 우리의 손을 맺어 주었다. 가장 엄숙한 사랑의 계절이다! 성만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어느 때보다도 많이 느꼈다.
형이 다음과 같은 찬송가를 불렀다[첫 연을 여기 싣는다].
우리 떨리는 마음으로 경배하오니
오소서, 영원하신 주여
결혼식 잔치에 초대되셨으니
오소서, 하늘에서 오신 손님이시여!
6월 2일, 금요일. [히어포드] 3시 반에 사랑하는 샐리가 그윈 부인과 그녀의 자매 펩과 함께 할콘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허비부부가 오기까지 찬송하고 기뻐하고 감사했다. 저녁식사 후 그들의 집에서 차를 마시고, 성당을 보러 갔다.
9월 3일, 일요일. [킹스우드] 아내와 함께 4시에 일어났다. 말씀 아래서, 그리고 선택된 결합 속에서 우리는 힘있는 기도와 눈물로 예수께 울부짖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가족으로 이 찬송을 불렀다[첫 연을 여기 싣는다].
신실한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의 연약한 아들이자 당신의 아들인
제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영광스런 권능 속에 나타나사
저의 의로운 계획을 축복하소서
보소서 저는 당신의 뜻 섬기고
당신의 복된 모든 뜻 입증하려 왔으니
족장(아브라함 - 역주)의 열정으로 불타고
원래의 순수한 사랑으로 불타나이다
9월 15일, 금요일. 목이 점점 나빠져서, 저녁에 설교할 수 없었다.
10월 25일, 수요일. 오늘 베스에 있는 나의 청중 중에 나의 옛 학교 친구인 대법원장 리의 아들, 덴버스 오스본 경과 헨리 팩스 경이 있었다. 그들은 겸손하게 행동했으며, 특히 찬송을 같이 불렀다.
1750년
2월 14일, 화요일. [크래쉬포드] 80된 한 노파가 나를 자기 집에 맞아 주었다. 우리는 기도와 찬송으로 시간을 보냈다.
5월 30일, 수요일. [런던?] 우리는 성 앤 성당으로 긴 여행을 했다. 우리가 휴식처에 도달한 것은 9시가 지나서였다. 리치부인이 거기서 우리의 옛 친구들과 함께 우리를 기쁘게 맞아 주었다.
6월 20일, 목요일. 3시에 말을 타고 가서, 웨스터햄에서 그들[누구인지 모름]을 <깨웠다>. 나는 그들과 함께 정원에서 성서를 읽고 찬송하고 대화하며 하루를 보냈다.
1751년
2월 3일, 일요일. 성만찬을 집전했으나 생명력이 없었다. 그 안에서 위로도 받지 못했고, 그 사이에 찬송도 하지 않았으며, 그후 기도도 하지 않았다.
4월 9일, 화요일. [런던] M. 콜빌과 데그 양과 함께 주로 성서를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한 주를 보냈다.
4월 13일, 토요일. 샐리와 얀슨씨 댁에서 저녁을 보내고, 왕자의 장례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프레데릭 루이스, 조지 2세와 웨일즈 왕자의 아들, 1707-51]. 그 집은 낯선 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거의 한밤중까지 적절한 찬송가를 많이 불렀다.
5월 6일, 월요일. 로이드씨가 우리를 방문했다. 우리는 성서를 읽고 찬송하면서, 유쾌할 뿐 아니라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그와 나는 C씨의 유언의 증인이 되었다.
5월 10일, 금요일. [브리스톨에 있는 찰스 가 가의 찰스의 집에 대한 「일기」의 최초의 언급] 나는 샐리와 함께 안전하게 찰스 가에 왔다. 거기서 우리의 친구들인 비거, 데이비스 등이 우리를 환영했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했다.
5월 28일, 화요일. 나의 아주 친한 옛 친구 M. 크레독이 모트 부인과 함께 나를 만나러 왔다. 우리는 예전처럼 찬송하고 대화하고 기도했다(특히 그들의 부인을 위해).
6월 3일, 월요일. 아내가 부인의 초대를 받고 나와 함께 그녀를 보러 갔다. 우리는 한 두 시간을 아주 유익한 대화와 찬송과 기도를 하며 보냈다.
6월 4일, 화요일. [설교를 하는 동안] 그[홀씨]가 강단을 향해 왔다. 해밀튼씨가 그를 제지했다. 나는 찬송가를 불렀다. 그는 우리 모두보다 더 큰소리로 노래했다. 나는 날카롭게 그의 배교(背敎)에 대해 말하고,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7월 6일, 토요일. 밸리알의 아들들이 몇 명은 얼굴을 검게 칠하고 몇 명은 셔츠를 입지 않고 모두 다 누더기를 걸치고 우리에게 쳐들어 화서, 우리는 거의 선교회 모임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저주하고 욕하고 노래하고 무례한 말을 하고 우리에게 흙과 쓰레기를 던지면서, “교회를 위해 일어서기” 시작했다.
7월 8일, 월요일. [팁튼 그린] 오후에 부목사가 나를 찾아왔는데, 성격이 좋은 젊은이로, 대학을 갓 나온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그의 스승인 밴덤(Bentham)씨가 그에게 일찍이 종교에 대한 편견을 심어 주었다. 그는 자기 숙소로 나를 초대하여, 우리와 함께 진지한 대화를 하고 찬송을 했다. 아주 좋은 인상을 받을 것처럼 보였다.
[1752년 일기는 없다. 1753년에는 음악과 찬송가에 대한 내용이 없다]
1754년 일기는 7월 8일부터 시작한다.
7월 31일, 수요일. [노이치, 약 200명에게 설교하는 동안] 말을 탄 한 신사가 나를 향해 이를 갈았다. 그러나 내 목소리가 압도하여, 그들은 자기네 본거지인 술집으로 퇴각했다.
거기서 그들은 어렵게 몇 명의 도살업자들을 얻어 논쟁에 등장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설교를 끝낼 때까지 접근할 엄두를 못 내었다. 그 후 마지막 찬송을 부를 때 그들은 대단히 분노하여 강단으로 다가왔다. 맨 앞에 있는 자가 종종 지팡이를 들어올려 사정거리 안에 있는 나를 때리려 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머물렀으며, 그 후 조용히 숙소로 걸어갔다. . . . 나는 평안히 잠을 잤다.
8월 4일, 일요일. 5시에, 새로운 신도라기보다 오히려 신청자들이라고 해야 할 몇 명과 함께 모임을 했다. . . . 우리는 찬송하고 기도하며 좋은 교제를 가졌다. . . . 저녁식사 후 다시 모임을 했다. . . . 누더기를 걸친 몇 명의 주정뱅이들이 멀리 서 있었지만 내가 모임을 끝낼 때까지 소란을 피우지 못했다. 그후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 나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권면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다시 권면했다. . . . 우리 집은 그후 사람들로 북적댔다. 나는 한시간 동안 이야기하고, 찬송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1754년 8월 14일부터 1756년 9월까지는 「일기」에 기록이 없다]
10월 1일, 금요일. 우리는 승리로 가득 찬 철야를 했다. . . . 원수가 우리의 일을 좋아하지 않아서, 자기의 종들을 부추겼다. . . .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가 이겼다. 우리는 매우 고요하게, 큰 위로에 차서 “소요 속의 찬송”[「고통과 박해 때를 위한 찬송가」(Hymns for Times of Trouble and Persecution, 1744)에 있는]을 불렀다.
10월 2일, 토요일. 하루 종일 찬송하고 기도하고 대화하면서 보냈다. 나는 성가대[성가대 저녁 송] 예배에 참석했다.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친절했으며, 내가 원하는 성곡과 함께 나에게 하박국 3장의 “왕을 위한 잔치”를 이야기 해 달라고 했다. 그 제목은 앤 여왕이 붙인 것이다.
10월 11일, 월요일. [리즈, 조지 휫필드가 철야예배에서 설교했다] 그들은 나에게 먼저 설교하도록 강권했다. . . . 나의 형제 조지가 주의 말씀으로 나를 지원했다. “내가 모두에게 말하노니, 깨어 있으라.” 기도와 찬송이 모두 엄숙한 권능이 있었다.
10월 22일, 금요일. [맨체스터] 저녁에 에베소서 6장의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설교했다. 설교를 마친 후, 유명한 볼 씨가 소리를 질렀는데, 그 목소리는 굉장했다.
10월 29일, 금요일. [리즈] 원수가 이 선교회 모임에 특별한 원한을 갖고 있었다. 선교회 모임에 대한 그의 최초의 메신저는 <조용한 자매>였는데, 그녀는 비전과 계시가 풍부한 여자였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와서, 그들에게 기도하거나 찬송하거나 <교회에 가거나> 하지 말라고 명했다.
찰스 웨슬리, 서정신학의 시인
우리는 감리교 부흥운동의 독특한 공헌인, 웨슬리 신학의 서정적 표현으로서 찰스 웨슬리 찬송가에 대한 고찰로 돌아간다. 이에 대해 토마스 A. 랭포드는 이렇게 묘사했다.
찬송으로서의 신학(Theology-as-hymn)은 찬송가 형태로 표현되고, 제한되고, 생명을 얻은 신학이다. 찰스 웨슬리의 신학은 “노래 부를 수 있는 신학”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그것을 가지고 찬양할 수 있는 신학이요, 그것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신학이요, 그것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는 신학이요,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최초의 소망을 일깨우고, 인도하고, 바라도록 사용할 수 있는 신학이다 (Kimbrough 1992, 97).
랭포드의 묘사는 테레사 버거(Teresa Berger)의 최근의 연구 「찬송가속의 신학?」(Theology in Hymns?)에서 확대되었는데, 그녀는 웨슬리의 찬송가 특히 1780년 판 「모음집」에 수록된 찬송가들과 감리교의 찬양이 찬송가의 내용과 신학적 고찰을 독특하게 결합시킨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Berger 1994, 220).
찰스의 서정적 작품의 방대함과 다양성은, 존 웨슬리가 그의 결정적인 1780년 판 「모음집」에 싣기 위해 선곡하고 편집한, 엄청나게 많은 그의 찬송가들에서 볼 수 있다. 또 감리교 신학과 감리교 선교회 모임들의 다양한 활동과 관심을 반영하는 그 내용들에서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제 1부
도입부의 찬송가를 포함하여
제 1절 하나님께 돌아가라는 권면과 간구
제 2절 묘사, 1. 종교의 즐거움
2.. 하나님의 선하심
3. 죽음
4. 심판
5. 천국
6. 지옥
제 3절 축복을 위한 기도
제 2부
제 1절 형식적 종교에 대한 묘사
제 2절 내면적 종교에 대한 묘사
제 3부
제 1절 회개를 위한 기도
제 2절 죄를 확신하고 애통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제 3절 신생으로 옮겨짐
제 4절 퇴보에 대한 확신
제 5절 회복
제 4부
제 1절 기뻐하는 믿는자들을 위하여
제 2절 투쟁하는 믿는자들을 위하여
제 3절 기도하는 믿는자들을 위하여
제 4절 깨어 있는 믿는자들을 위하여
제 5절 활동하는 믿는자들을 위하여
제 6절 고통하는 믿는자들을 위하여
제 7절 완전한 구원을 위해 갈구하는 믿는자들을 위하여
제 8절 신생으로 옮겨진 믿는자들을 위하여
제 9절 구원받은 믿는자들을 위하여
제 10절 세상을 위해 중재하는 믿는자들을 위하여
제 5부
제 1절 모이는 신도회를 위하여
제 2절 감사하는 신도회를 위하여
제 3절 기도하는 신도회를 위하여
제 4절 나누는 신도회를 위하여
찰스 웨슬리의 회심찬송
감리교의 마음의 음악, 즉 서정신학은 1738년 5월 21일 찰스 웨슬리의 회심에서 시작된다. 2년 전인 1736년 3월 9일부터 7월 26일까지 조오지아 식민지에서 행한 성과 없는 단기간의 선교로 그는 낙담하고 돌아왔다. 그는 거기서 유명한 영국 감옥 개혁가 제임스 오글도르프(James Oglethorpe)의 비서로 일했다.
프레데릭 길은, 찰스가 런던으로 돌아 온 후 세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진실한 부름」(A Serious Call)의 저자 윌리엄 로(William Law)가 그 중 하나인데, 그의 충고는 “너 자신을 포기하고, 인내심을 가져라”였고, 또 한사람은 헤른후트의 모라비아 교도인 진젠도르프 백작(Count Zinzendorf)이었는데 찰스는 그를 매우 신뢰했다. 끝으로는 젊은 모라비아 선교사인 피터 뵐러(Peter Böhler)였는데, 찰스는 그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이 기간 동안 찰스는 장기간의 심한 불안정과 좌절과 절망을 경험했으며, 그후 깜박이는 희망을 보았다.
찰스는 앞길이 좀 더 평탄했던 형처럼 고른 길을 걷지 못했다. 그는 정상에 있거나 바닥에 있었다. 그는 존보다 더 깊이 감동했으며, 더 감수성이 강하고, 동정심이 많았다. . . . 그는 영웅이 아니라 예술가와 신비가의 기질을 지녔으며, 파스칼과 조지 허버트와 윌리엄 블레이크와 같은 류의 사람이었다 (Gill 1964, 67).
찰스의 투쟁은 1738년 5월 21일 성령 강림일에 절정에 달했다. 그는 이때의 일을 「일기」1:92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이제 자신이 하나님과 화평했음을 알았으며,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 속에서 기뻐했다. 그날의 남은 시간동안 내 마음은 나 자신의 커다란, 그러나 전에는 알지 못했던, 연약함에 대한 불신으로 차 있었다. 나는 믿음으로 일어섰음을 알았다. 내가 스스로 항상 죄에 빠지려 하고 있었지만, 나를 타락하지 않도록 지켜 준 것은 끊임없는 믿음의 도움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있으며, 더욱더 그러하기를 겸손히 바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호를 확신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또한 자기의 회심 때 찬송가를 한 편 시작했다고 쓰고 있다.
10시경 형이 내 친구들에 의해 승리하게 되어, “내가 믿나이다”라고 외쳤다. 우리는 매우 기뻐하며 그 찬송가[「찬송가와 시편」 706의 “십자가의 수난곡”에 맞추어?]를 부르고 기도로 헤어졌다 (Baker 1962, 3).
"그는 이미 . . . 원숙한 시인이었기“(Baker 1962, ⅹⅱ) 때문에, 이것이 그의 최초의 시는 아니지만, 이것이 그의 최초의 복음적 찬송시였다. 그의 형의 회심 때 만든 찬송이 아마도 ”내 의아해하는 영혼어디서 시작할까“(342)였을 것인데, 그것은 ”죽음과 죄에서 구원된“ 일에 대한 시인의 응답인 세 연으로 시작된다. 그 일부는 하나의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분노와 지옥의 아들인 나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으리!
또 일부는 물음이다.
내 마음 속에 십자가 숨겨 놓고
겸손한 십자가 피하고
주님의 의(義) 받기 거절하리요?
그 질문은 웨슬리 부흥운동의 첫째 목표가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소식을 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이 말을 그대로 했던 것이다. 찬송가의 나머지 부분은 “너를 위해 영광의 왕께서 죽으셨도다”와 “믿으라 너의 모든 죄가 사해졌도다”라는 것을 믿도록 모든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둘째 연의 다섯째 행은 웨슬리 부흥운동의 기초, 즉 앎과 느낌, 머리와 마음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다.
천국에 대한 이러한 전조로 축복 받아
나의 죄가 용서되었음을
알고 느껴야 하리!
죄가 사해졌음을 <아는 것>, 즉 확신하는 것과, <느끼는 것>은 천국의 전조인데,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는 그것을 한 세기 후에 노래하게 된다.
네 번째 연의 초대에 있는 대담한 비유를 주목하라
버림받은 자들이여, 내 그대들을 부르노니
창녀들과 세리들과 도둑들이여
주께서 그대들을 안으시려 팔을 펴시니
죄인만이 그의 은혜 받도다
의인은 그를 필요로 하지 않나니
주님은 잃어버린 자 찾아 구하러 오셨네
이 초대는 또한, 그의 회심 일주년을 기념하여 지은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사랑을”(Glory to God and Praise and Love, 58)에도 반영되어 있다.
“내 의아해하는 영혼어디서 시작할까”는 1836년에 미국 감리교 찬송가집에 들어 있었으나, 1849년에 빠졌다가 1966년에 다시 실렸다. 「연합감리교 찬송가」는 4연과 6연을 빠뜨리고 있다.
저런 - 옛 용이 노하여
그의 모든 무리로 전쟁을 일으키네
땅 위의 자칭 의로운 자식들이 참가했네
내 감히 그들과 그들의 신에게 말하노니
예수는 죄인의 친구요
예수는 죄인들에게 그러하시다 하노라
그대들 정욕에 빠진 <막달라>들이여
그대들 옛 살인자들에게 빠진 루피안들이여 오라
회개하여 생명을 얻고, 절망했으니 믿으라!
너희 위해 예수께서 죽음에 팔렸으니
지옥이 저항하고 땅이 불평할 지라도
주님은 그대들과 나 같은 죄인 위해 죽으셨도다
이 찬송가는 88.88.88운율으로 된 웨슬리의 초기의 영적, 자전적 찬송가 세 개중의 하나이다. 이 세 개에는 또한 “내가 그것을 얻을 수 있을까”(363)와 “오라, 그대 아지 못하는 방랑자여”(386, 387)가 들어 있는데 “복음에 선포된 대로 하나님의 기적과 사랑에 대한 영혼의 응답 속에 나타나 있는 환희를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Kimbrough 1993).
찰스 웨슬리 찬송가에 나타난, 은총에 대한 웨슬리의 교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에 대한 웨슬리의 가르침의 기초는 3중의 은총의 교리에 있다. 그것은 선재하시는 은총, 의롭게 하는 은총, 성화하고 완전케 하는 은총이다.
선재하시는 은총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은 생명, 가치, 옳고 그름, 복종, 공기, 물, 빛, 음식, 성생활, 지성 등이다. 우리가 감사할 줄 모르고 완전히 복종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회개하라는 초대가 주어진다.
루퍼트 E. 데이비스는 이렇게 썼다.
타락한 인간은 여전히 그 마음에 쓰여진 하나님의 율법과, 그것을 알아 볼 수 있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무엇이 옳은 지 알지만 그것을 행할 수 없다. 그러한 지식의 첫 번째 효력은 그에게 그의 죄가 야기시키는 끔찍한 운명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정죄하실 때조차도 사랑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절박하게 필요함을 보여 주고, 그를 주께로 인도하신다. [웨슬리는 그의 전도자들에게] 먼저 율법을 가르치고, 다음에 복음을 전하라고 [가르쳤다]. 율법은 그들의 두려운 징벌에 대해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고 그들에게 피할 길을 보여 주며, 복음은 그들이 그 길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양심은 . . . 웨슬리는 그것을 ‘선재하시는 은총’이라고 부른다. . . .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타락한 인간 속에서도 역사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이성 또한 그러한데, 이성은 타락한 인간에게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또 하나의 선물, 아마도 모든 선물 중에 가장 값진 선물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자유이다. 이 자유는 타락한 인간의 당연한 권리는 아니다. 반대로 인간은 죄에 빠졌을 때, 자유에 대한 그의 권리를 그의 다른 모든 권리와 함께 상실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분의 자비로 우리에게 한없는 자유를 주셨으며, 그의 은총으로 우리가 우리 의무를 행할 수 있도록 하셨으니,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일을 할 수 있게 하셨다 (Davies 1976, 85).
선재하시는 은총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며 타락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하시고 용서하시는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깨닫도록(확신하도록) 해 준다. 간단하게 말하면, 결국 우리는 무엇이 죄를 짓게 했으며, 누가 가장 큰 죄인 또는 가장 작은 죄인인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웨슬리의 구원관은 죄의 원인이 유전자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탐욕스럽고 자기 중심적인 우리의 유전적 성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죄 짓기를 선택하고, 우리의 마음이 냉랭한데서 갈급한 상화으로 변할 때까지 죄 짓기를 계속할 것이라는 데 있다.
의롭게 하시는 은총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을 만한 자격이 없고, 의롭지 못하고 무가치한 자들에게 주시는 생명의 선물이다. 에베소서 2:8-9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라고 한 바와 같다.
존 웨슬리의 설교 “우리의 의이신 주님”에서 묘사하고 있듯이
우리가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은 반드시 이러한 일들과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의 크신 자비와 은총이, 그리스도 편에서는 하나님의 정의의 충족이, 우리편에서는 그리스도의 공적에 대한 믿음이 말입니다 (Wesley 1991, 386).
성화하시고 완전케 하시는 은총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이 새롭게 하시는 선물이다. 이에 의해 우리 마음은 변화되고, 우리는 우리 이웃을 완전히 무제약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 은총의 3중의 교리 - 선재하시는 은총, 의롭게 하시는 은총, 성화하시고 완전케 하시는 은총 - 은 더 세분하면, 선재하시는 은총은 초대와 회개로, 의롭게 하시는 은총은 용서와 확신으로, 성화하시고 완전케 하시는 은총은 개인의 성화와 사회의 성화로 나뉘어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웨슬리의 신학적 서정적 체계화를 설명하고 있는, 1989년 판 「연합감리교 찬송가」의 찰스 웨슬리 찬송가 선(選)
선재하시는 은총 - 초대
“죄인들이여 복음의 잔치에 오라”(339)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다. 셋째 연에 있는 누가복음 14:16-24의 큰 잔치의 비유에 대한 구절을 주목하라. “초대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절름발이, 소경, 불구자. 그들은 너에게 보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재하시는 은총 - 회개
“자비의 깊이”(355)
이 찬송은 디모데 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였다 하셨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에 근거하고 있다. 이 주제는 첫째 연 7행 “죄인 중의 괴수”에 반복되어 있다. 셋째 연은 우리가 매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있음을 말하는데, 히브리서 6:6b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를 반영하는 것이다.
다섯째 연은 웨슬리의 복음적 경건성을 가장 웅변적으로 말해 주는 시구 중 하나다. 특히 다섯째 연 3행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나는 이를 <알고, 느낀다>”를 보라.
의롭게 하시는 은총 - 회개
“내가 그것을 얻을 수 있을까“(363)
이것은 웨슬리가 그의 회심때 또는 그 즈음에 지은 자전적인 찬송가 두 개 중의 하나이다. 또 하나는 “내 의아해하는 영혼어디서 시작할까”(342)이다. 두 찬송가 중의 어떤 것이 찰스의 1738년 5월 23일자 「일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9시에 나는 나의 회심에 대한 찬송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만할까 두려워 그만두고 말았다. . . .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고 그 찬송가를 다 썼다”
이 시는 찰스 웨슬리가 믿음에 대한 주요한 내용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운율인 88.88.88운율로 되어 있다. 프랭크 베이커는 웨슬리가 좋아하는 운율에 대해 이렇게 썼다.
웨슬리가 가장 많이 쓰는 것은 그가 좋아하는 6중8운 - 8.8.8.8.8.8.과 ABABCC운이었다. 그는 이 운율로 1,100편 이상의 시[그의 전 작품의 십분의 일], 거의 23,000행을 썼는데, 그 대부분은 생동감 있고 유연하면서도 원숙한 압축미가 있다. 이는 이 운율이 그에게 가장 적합한 도구임을 입증해 준다 (Baker 1962, 45).
이 찬송가는 「찬송가와 성시」(1739)에서 “거저 주시는 은총”이라는 제목 아래 여섯 연으로 출판되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감리교 찬송가집에 들어 있는데, 네 연이나 다섯 연으로 되어 있다. 1989년 찬송가집에는 다섯 연으로 되어 있다. 첫째 연 6행은 “주님”이 “하나님”으로 바뀌어 있다. 원래의 다섯째 연은 존 웨슬리가 1780년 판 「모음집」에서 뺏기 때문에 생략되어 왔다.
내 아직도 내면의 작은 소리 들으니
내 모든 죄 사해졌다 속삭이는 소리네
원수 된 하늘의 분노 끄시는
속죄의 피 여전히 가까이 있네
그의 상처가 주시는 생명 내 느끼네
내 맘속에 계신 구주 내 느끼네
찬송가 서두에 다섯 가지 물음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놀라운 고백과, “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탁월하고 대담한 솜씨”를 통해 유감없이 나타나는 절박감을 보여 준다 (Watson and Trickett 1988, 152). 올리버 A. 베컬랙은 케노시스(Kenosis : '비움‘, ’낮춤‘이란 뜻의 희랍어 - 역주) 교리(자기를 비움, 빌립보서 2:5-11과 찬송가 166-167을 보라) 전체가 셋째 연 3행 한 줄에 압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Wesley 1983, 323). 성서의 상징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에 대한 자신의 설명과 함께 새로운 형태로 해석하고 통합하는 웨슬리의 능력은 다음에서 잘 나타난다.
첫째 연 1-2행, 마태 26:28,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첫째 연 3-6행, 로마서 5:6-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을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둘째 연 3-6행, 베드로전서 1:12,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예언자들과 천사들조차도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무슨 일을 하시는 지 알려고 했던 것이다.
셋째 연 1-4행, 빌립보서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다.”
셋째 연 4행, 로마서 5:12-14, “이러므로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만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셋째 연 5-6행, 시편 85: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넷째 연 사도행전 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의 손에서 벗어지더라.” 12:9, 10b,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 쌔,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 . .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 지라.“
다섯째 연 1행, 로마서 8:1,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다섯째 연 2행, 고린도전서 3:21-22, “그런 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니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23절까지임 - 역주).
다섯째 연 3행, 고린도전서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다섯째 연 4행, 빌립보서 3:8c-9,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다섯째 연 5행,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 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야고보서 4: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요한 1서 4:17의 오식임 - 역주).
다섯째 연 6행, 디모데후서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계시록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20세기 미국 감리교에 관한 한, “내가 얻을 수 있을까”가 200년 이상 감리교 찬송가집에 들어 있었지만, 1825년에 작곡된 토마스 켐벨(Thomas Cambell)의 <사기나> (Sagina)가 1960년대에 소개되기까지는 별로 불리어지지 않았다. 그후 그 곡이 가사에 적절치 못하고, 음악의 가치가 별로 없다는 몇몇 사람들의 불평이 있었다. 후자에 대하여 에릭 라우틀리는 “곡조나 화음에 영감이 별로 없고, 세계적 명성을 얻기에는 너무 빈약하며, 지나치게 격렬한 가사와 결합되어 있어서, 거의 모욕에 가깝다”(Routley 1981, 84)고 썼다.
의롭게 하시는 은총 - 확신
“우리 죄인들이 어찌 알리요”(How Can We Sinners Know, 372)는 위대한 감리교 선언으로, 성령의 내적인 증거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확신체험을 묘사하고 있다. 존 웨슬리는 이것을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셨다”, “내 모든 죄가 사해졌다”라는 영혼에게 찍힌 내적인 낙인(烙印)이라고 정의했다. 이 체험은 어느 정도는 믿는 자가 성령의 표시를 드러낸다는 믿는 자 자신의 자각에 의해 확증된다 (Watson and Trickett 1988, 414)
"믿음의 표시“(”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노라“, 갈라디아서 6:17b)라는 제목은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안, 오래 참음, 양선, 믿음, 온유, 절제에 해당한다 (갈라디아서 5:22-23).
둘째 연, 평화
셋째 연, 사랑
넷째 연, 양선
다섯째 연, 온유
여섯째 연, 믿음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 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요한 1서 4:13) (4:13-16a까지임 - 역주).
성화하시고 완전케 하시는 은총 - 신생 / 새로운 피조물
“모든 사랑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사랑”(384)
이 찬송가는 고린도후서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에 근거해 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새로운 피조물의 머리이며, 믿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와 연합한다 (Metzger and Murphy 1991, 254). - 네 번째 연, “당신의 새로운 창조를 완성하소서.” 두 번째 연은 존 웨슬리가 뺏으므로, 영국 감리교도들이 다시 싣지 않았다. 1935년 판 감리교 찬송가에는, 둘째 연 4행에 있는 “두 번째 축복의 선물”(“우리로 두 번째 안식을 찾게 하소서”가 “약속된 안식”으로 바뀌어 있다)은, 그리스도 안의 신생의 축복문제에서부터 부활문제에 이르기까지, 성화운동 내에서 일어났던 영적 우선 순위의 문제에 대한 당시의 논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웨슬리 시대이래 둘째 연 5행이 논쟁의 초점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프랭크 베이커는 둘째 연 5행 “죄를 짓는 우리의 능력을 소멸하소서”의 논쟁적 구절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존 웨슬리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찬송가집에서 두 번째 구절을 삭제하게 한 것은 특히 이 구절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극단적 견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찰스 웨슬리 자신이 후기 시 몇 편에서 매우 혹평했던 문제이다. 매들리의 존 플래쳐 목사는 그것을 ‘죄에 대한 사랑을 소멸하소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는 적절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유로운 복종의 능력을 없애시지 않고, 우리에게서 죄를 짓는 <능력>을 없애실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Baker 1962, 95).
"들으라! 천사들의 노래를“(Hark! the heraldd angels sing) (240)의 셋째 연에서, 웨슬리는 어린아이의 탄생, 메시아의 탄생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신생에 대한 교리를 그의 어느 찬송가에서나처럼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다. 셋째 연 7, 8행, ”우리를 땅에서 일으키시려 태어나시고, 우리에게 두 번째 탄생을 주시려 태어나셨네“ (원문은 ”땅의 자식들을 일으키시려 태어나시고“임).
성화하시고 완전케 하시는 은총 - 개인의 성화
이것은 웨슬리의 성화신학에서 다루기 어려운 문제인데, 완전한 성화, 성화의 단계, 완전한 사랑 또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여러 가지 부제가 따라 붙는다. 웨슬리 형제에게는, 구원은 전적으로 개인적이지도 않고 사회적이지도 않으며, 항상 그 둘 다인데, 이는 초기 감리교가 비인간적인 노예매매와 죄수들의 학대에 반대하고, 광부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건립하고, 빈민들을 위한 의료활동을 한 것 등에서 입증된다. 미국 감리교에서는 성화를 우선적으로 가르치고 실천해 왔는데, 이는 개인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사회적인 것 <둘 중의 하나>였다. 그 중 후자에 대한 강조를 반영하는 것이 사회복음에 의한 찬송가였다. 지오프리 웨인 라이트(Geoffrey wainwright)는 복음에 대한 총체적 응답에 대한 웨슬리의 강조를 높이 평가하면서, “웨슬리에게는, 적극적으로 표현된 완전이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Wainwright 1980, 461). 1989년 판 「연합감리교 찬송가」에서는, “개인적 성화”에 대한 찬송가(396-424)와 “사회적 성화”에 대한 찬송가(225-450)가 “성화하시고 완전케 하시는 은총”이라는 일반적 범주에 들어 있다.
“오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오니”(O for a heart to praise my God, 417)
이 찬송가는 시편 51:10에 기초하고 있으며, 「찬송가와 성시」(1742)에서 “시편 51:10, 내 마음을 정결케 하소서. 오 주님”이라는 성서구절 아래에서 여덟 연으로 처음 선을 보였다. 대부분의 찬송가에 들어 있는 다섯 연은 아래와 같다. 전문은 서문에 있다.
1. 오 내 마음이 하나님을 찬양하오니
내 마음 죄에서 벗어났음이라.
내 마음 날 위해 값없이 흘리신 당신의 피
언제나 느끼나이다
2. 위대한 구주의 보좌에
내 마음 복종하여 온유해지니
거기선 주님만이 말씀하시고
거기선 예수만이 다스리시네
3. 겸손하고 낮아진 회개한 마음
믿어 진실하고 깨끗해지니
생명도 죽음도 그 마음을
안에 계신 주에게서 떼 놀 수 없네
4. 모든 생각 새로와진 마음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 차
완전하고 옳고 맑고 착하니
주님 모습 찍은 듯 하네
5. 은혜로운 주여, 당신 모습 나눠주시고
속히 하늘에서 오사
당신의 새 이름 내 맘에 쓰시고
사랑이라는 새롭고 좋은 이름 써 주소서
이 찬송가에서 찰스 웨슬리는 시편의
오 주님 내 안에 정결한 마음을 지으시고
내 안에 새롭고 옳은 영을 두소서 (시편 51:10).
를 신약성서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변형시키고 있다.
마음이 죄에서 벗어나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다스리시며, 그의 이름을 그 위에 쓰셨으므로 이제 그 마음은 깨끗하다. . . . 내면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면서 . . . (에베소서 3:14-19)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거하시니, 너희는 사랑 안에 굳게 뿌리 내린 바 되었느니라,” 17절](찰스 웨슬리가 가장 자주 사용한 구절중의 하나이다)은 이 찬송가의 중요한 자료이다 (Watson and Trickett 1988,317).
새로운 마음이라는 선물은 각 연에서 개념이 정의되고 세밀해진다.
첫째 연, 죄에서 자유로와지고 느낌이 있는 마음
둘째 연, 복종하고 봉사하는 마음
셋째 연, 온유하고,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
넷째 연, 새로워져서, 사랑이 가득 차고, 완전하고, 순수하고, 선한 마음, 그리스도의 닮은꼴
다섯째 연,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새로운 이름을 써 주십사는 기도. 그 이름은 사랑이다.
성화하시고 완전케 하시는 은총 - 사회의 성화
복음의 사회적 명령에 대해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웨슬리의 글은 별로 출판되지 않았으며, 우리 찬송가 집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복음에 대한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응답을 다룬 찰스 웨슬리의 찬송가가 그의 유일한 관심이며 우선적인 과제라는 인식이 생겼다.
S T 킴브로우 Jr.는 사회적 관심에 대한 웨슬리 글의 모음집인 「가난한 자들을 위한 찬송」(A Song for the Poor)의 서문에서 이러한 발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찬송가에 있는 그의 글을 뽑아 보면, 종종 매우 내면적이고 영적인 순례와 복음적 - 성사적(聖事的) - 신학에 바탕하고 있는 아주 교리적인 진술을 볼 수 있다. 찬송가집 속에 남아 있는 웨슬리의 찬송가들도 “가난한 자들”에 대한 “영적으로 해석된”(spiritualized) 개념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 . .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찰스 웨슬리의 메시지는 아무래도 교회가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 . . . [그들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복음적 해석과 사회적 해석을 결합시킨 그의 글 . . . 머리와 마음과 손을 통합하는 방식의 믿음을 [뺏기 때문이다] (Kimbrough 1993, 14, 16).
이러한 관심이 회중찬송에 도입된 것은 19세기와 20세기초의 사회복음 찬송에서 비로소 시작되었지만, 불행하게도 부흥운동에 대한 자유주의의 비판 속에서, 그것들은 일인칭 찬송가의 복음에 대한 기존의 반사회적, 개인적, 인격적 응답의 대안으로서 제시되었다.
당시의 찬송가집에 들어 있는 사회적 성화에 대한 웨슬리의 몇몇 글 중 하나가 “예수여 내가 아는 하나님의 선물이여”(Jesus, the gift divine I know)의 네 번째 연인데, 이는 「성서에서 뽑은 구절들에 근거한 짧은 찬송가」(1762)에 있으며, 「찬송가와 성시」318에 있다. 그것은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영문에는 ‘종교’라고 되어 있음 - 역주)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라”에 근거하고 있다.
고통받는 자들의 울음과
과부와 고아의 신음을 듣고
내 재빨리 자비의 날개로 날아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구하려
내 생명과 내 모든 것 그들에게 줄 때
당신의 사랑 내 삶을 통해 나타나나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찬송」에서 두 번째 예는 사도행전 4:34-35에서 초대교회 신자들이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나누었다고 하는 말에 근거한, “사도로 하여금 네 의무를 가르치게 하라”(Your duty let the apostle show)이다. 그 둘째 연은 다음과 같다.
너의 풍부한 곳간으로
너는 몇몇을 구할 수 있겠지만
가난한 사람 구하기 위해
내 모든 걸 줄 수 없으니
그리스도를 위해 먼저 네 집과 밭을 드리든지
예수처럼 낮은 자리에서 살라
전쟁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는 사회적 복음에 대한 또 다른 찬송은 “우리의 땅을 보고 애통해 하나이다”(Our earth we now lament to see, 449)이다. 그것은 원래 「모든 인류를 위한 중재의 찬송」(Hymns of Intercession for All Mankind, 1758)에서 “평화를 위하여”( For peac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존 웨슬리는 그의 1780년 판 「모음집」에서 그것을 “세상을 위해 중재하는 믿는 자들"이라는 절 속에 두었다. 그 시는 전쟁의 두려움에 대한 가장 감동적인 표현 중의 하나이며, 친구이신 하나님께 대한 영혼 깊은 곳의 탄원으로, 우리 마음 속의 살인이 친절한 행동으로 변화되고, 지상의 국가들이 하나님의 의의 통치를 실현하는데 참여하여, ”완전한 사랑의 낙원!“을 이루기를 요구하고 있다.
1. 우리 이제 땅을 보고 애통해 함은
사악함이 넘쳐흐르고
폭력과 그릇됨과 잔인함으로
온통 피로 가득 차
지옥 같은 전쟁의 분노 속에
친구들이 서로 싸움이라
2. 아바돈 측이 말한대로
그들은 그들 몸 토막내어 죽여 버렸네
도벳이 움직여 입 활짝 열고
엄청난 먹이를 먹으려 하네
수 천명이 무덤 아래 가라앉아
불길의 파도 속에 빠져 버리네
(아바돈은 아볼루온의 히브리 이름으로 지옥을 뜻하고, 도벳은 어린아이를 희생제물로 바치던 예루살렘 근처의 땅으로 역시 지옥을 뜻한다 - 역주)
3. 오 만유의 친구이신 주님께서
자기 피조물의 파괴를 보시기를!
우리의 부자연스런 대립 끝나게 하시고
당신 안에서 화해케 하소서!
우리의 내면에 상냥함을 새기시고
우리 맘에서 살인자를 몰아내소서!
4. 이제 누가 서로 향해 일어나
지상의 모든 나라로 평화와 행복과
당신의 의로운 지배의 축복 따르게 하고
완전한 사랑의 낙원 이루는
하나됨의 기쁨 따르게 할까!
두 번째 연은 계시록 9:11의 깊은 스올에서 사탄의 이미지를 끌어내고 있다.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파괴]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파괴자]이더라.
빅터 R. 골드와 윌리엄 L. 홀라데이는, 그 이미지들이 또한 예레미아 7:30-34에 나오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의 폭력적인 죽음과 파괴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타락 중 가장 끔직한 것은 번제단(도벳, 왕하 23:10) 위에서 어린아이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19:5 ; 32:35). 하나님이 엄격하게 금지한 (레 18:21) 그 일은 실제로 살인으로 여겨졌다 ㄴ(Metzger and Murphy 1991, 974).
성서의 비유와 내용에 대한 시인의 방대한 레퍼토리는, 예레미아가 장사지내는 땅, 즉 “살육의 골짜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성스러운 곳 도벳에 대한 언급에서 잘 나타나 있다.
찰스 웨슬리, 주석가이자 음악 비평가
교회음악에 대한 찰스의 견해는 기본적으로, 영국교회와 교회학교의 예배와, 제의음악에 대한 충실함과 그것에 대한 지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것들은 종종 그의 형의 실용적인 이상을 보완해 주었다. 「찬송가와 성시」(1749)에 있는 한 시의 다섯째 연에서, 그는 신실한 자들을 혼란시키는 음악의 힘에 대한 자기 형의 경고에 동의하고 있다.
우리가 성스러운 열정을 가지고
소리의 힘에 대해 주의하고
경계하게 하소서
방자한 감각으로
우리의 열정
사그러뜨리지 않고
음악의 매력이 우리 마음을
당신에게서 떼어 내지 않게 하소서
전통 교회음악에 기울어짐으로써, 찰스는 그의 시에 대해 적절한 곡을 붙이는데 아주 유연한 태도를 갖게 되었다. 예를 들면 찰스 웨슬리의 글인 "음악의 올바른 사용법"(the Use of Musik)에는 대중곡(대중가락)이 핵심적이다. 프랭크 베이커에 의하면(1962, 117), 그 가사는 "우리는 여기 뽕나무 덤불을 돌아다니네"(Here we go round the mulberry bush)와 유사한 "낸시 도슨"(Nancy Dawson)이라는 곡에 따라 작곡된 것 같고, 1746년 플리머스에서 행한 찰스의 야외 설교 예배를 방해했던 반쯤 술 취한 선원들에 대한 대응으로 불려졌다. 그것은 처음에는 「찬송가와 성시」(1749)에 들어 있었으며, 토마스 버츠의 「거룩한 조화」(1756)에서 <엡워드> 곡과 함께 실렸다. 후속 판은 제레미아 잉걸스(Jeremiah Ingalls)의 「그리스도인의 화음」(Christian Harmony)에서 “순수한 음악”(Innocent Sounds)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1769년과 1805년에 등장했다.
1749년 판은 베이커 1962, 118에 들어 있다.
1. 왜 선이 죄의 원인 되어
악이 되어야 하는가?
아아! 음악이 너무 오랫동안
악마에게 복종했도다
신자들이 술 취하고 음란하고 방종하여
영혼에 타락이 넘치니
영원한 파멸로 가는 길
꽃으로 장식하고 넓어졌네
2. 누가 하나님 편에서 일어나
<순수한 음악> 회복하여
기도를 타고 날아가 상을 받으며
육욕에 빠진 자 데려와
온갖 때와 방탕 벗겨 내고
덕성 안에서 음악을 지켜
거룩한 즐거움 회복시킬까
3. 예수의 사랑 우리에게 영감 주시지 않는지
시험해보자
이는 하늘에 있는 자들의 주제가 되고
이는 땅 위에 있는 우리를 불사르리니
너의 마음 노래하고자 하면
더 큰 주제 있겠는가?
화음이 온갖 가락 전해 주나
예수의 이름은 더욱 달콤하여라
4. 예수는 음악의 영혼이요
가장 숭고한 정열 그의 것이니
예수의 이름은 기쁨과 평화
행복과 구원이로다
예수의 이름 죽은 자를 일으키며
우리 죄 용서되었음 보여주며
우리를 은총의 생명으로 온통 채우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도다
그의 아들들의 교육과 경력의 신장으로 인해 찰스의 음악적 방향 중 또 하나의 측면이 형성되었으며, 왕실, 귀족, 후원자, 음악기구와 접촉이 늘어났으며, 특히 1771년 그가 런던으로 이주한 후 그러했다. 이러한 변화는 리치 부인이 찰스를 람페에게 소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74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음이 분명하다. 람페는 이어 웨슬리 형제를 G. F. 핸델에게 소개했을 것이다. 찰스에 의하면 (Wesley 1849, 2:142) 그가 찰스 2세에게 핸델의 음악을 소개했다. 리치 부인은 또한 “그에게 핸델의 노래를 줌으로써” 찰스 2세의 음악교육을 격려했다 (Wesley 1849, 2:142).
웨슬리가 브리스톨에서 런던으로 이사했을 즈음, 극장 작곡가요 지휘자요 교회의 주도적인 오르간 연주자요 성가와 무반주 합창곡과 노래의 작곡자인 조나단 베티쉴(Jonathan Battishill, 1738-1801)은 「찬송가와 성시」(1749)에 있는 찰스의 찬송시 열 두개에 곡을 붙였다.
<열 두개의 찬송시>.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교회의 옛 학생이었던 찰스 웨슬리 목사의 작품. 조나단 베티쉴씨 곡. 런던. C 톰슨과 S 톰슨이 성 바울 교회 뜰에서 저자를 위해 인쇄함. 그 교회 뜰에서 동 저자에 의해 그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알메나(Almena)의 오페라에 올려질 것임. 가격 3실링.
베티쉴의 곡들은 매우 장식음이 많은 곡조이며, 아마도 능숙한 가수를 위한 것인 듯 하고, 장식음이 딸린 베이스가 들어 있다. 그 모음집은 프랭크 베이커의 종합목록에는 138번ⅵ으로 되어 있으며, 1779년의 것으로 되어 있다. 현존하는 사본에는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뉴저지의 매디슨에 있는 드루 대학의 감리교 문서보관 도서관에 있고, 또 하나는 북 캐롤라이나주 랄레이에 있는 듀크 대학의 신학교 도서관에 있다. S T 킴브로우는 전자의 영인본을 필자에게 제공해 주었다. 독창을 위한 찰스의 찬송시에 붙인 존 F. 람페의 곡에 대한 논의는 앞에 나온 “존 웨슬리와 대중음악”을 보라.
1779년에서 1786까지 런던 체스터 필드가에 있는 그의 집에서, 그는 그의 아들들의 경력을 높여 주기 위해 연례모금 연주회를 개최했다. 주일의 공연에는 성곡만을 선보였다.
커다란 방이 몇 부분으로 나뉘어지고 적절하게 자리가 마련되었다. 전체 연주회를 위한 표 값은 3기니였고, 정규 기부자들은 30명에서 50명을 헤아렸다. . . . 1786년에 연주회를 위한 비용은 1파운드 11실링 6펜스였는데, 거기에는 사과 4/6, 오렌지 3 - 포도주 4/2, 홍차3/, 설탕 3/, 크림 1/, 레몬 1/, - 이 포함되었다. 이 경우에 후원을 많이 받아도 남는 것은 적었는데, 어린 찰스 형제들이 오르간을 연주하고 그의 형제는 바이얼린첼로를 연주했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런던 시장과 감독이 있었으며, 어느 때는 존 삼촌 자신이 다소 마지못해 참석했는데, 그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평범한 음악과 평범한 친구들이 더 좋아서, 약간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상황 속에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 다(Gill 1964, 190).
연주회의 가사는 영국시인 윌리암 카우퍼(William Cowper)와 감리교 지도자들인 존 플랫쳐 및 토마스 코크(Thomas Coke)를 포함한 복음주의자들에게서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찰스는 존에게 보낸 편지에서 연주회를 “섭리의 의지와 질서”라고 변호했다. 자기 조카들에게 큰 애정을 갖고 있던 존은 그 편지를 「아르메니아 매거진」(The Armenian Magazine)에 실었는데 “그 연주회는 섭리의 질서와 거의 상관이 없었으며, 그의 생각은 달라서 그 연주회가 영적인 위험을 조장했다고 생각했다는 냉랭한 평을 함께 실었다” (Gill 1964, 191). 이에 대해 찰스는 존에게 보낸 편지에 “내 아들들이 연주회를 갖게 한 이유”를 나열했다.
1. 그들을 나쁜 길에서 지키기 위해서이다. (내 말은) 나쁜 음악과 나쁜 음악가들의 길을 말하는 것인데, 그들은 내 아들들과 허물없이 교류함으로써 그들의 취향과 도덕을 타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 내 아들들이 자신들의 음악적 재능을 성취할 수 있는 안전하고 위엄 있는 기회를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나는 수백 파운드의 비용을 들였다.
3. 내 아들들이 개인적인 판단과 독립에 대한 완전한 권리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다. 만약 그들이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같은 물에서 수영하고 그들을 따른다면, 그러한 권리는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4. 그들의 연주와 작곡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그들이 모든 연주회의 주요한 음악을 습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더 W. 웨인라이트가 돈 E. 세일러스와 함께 출판한 「웨슬리와 랭쇼우의 서간」(Wesley/Langshaw Correspondence)에는 찰스의 음악적 재능과 관심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들어 있는데, 여기에는 존 랭쇼우에게 1799년에 보낸 한 편지에 들어 있는 런던 음악가들에 대한 그의 평가와 음악가인 랭쇼우의 아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조언이 담겨 있다.
잭에게 주일교회에 대해 계속 참석하라는 조언의 말(우리는 이것을 지지할 것입니다)을 전해 주십시오. 거의 모든 음악가들이 이것을 무시하고 있답니다 (Wainwright 1993, 32-33).
찰스는 런던으로 이사한 후, 당시의 음악가들과 더 꾸준히 접촉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두 아들의 공연 활동과 지명도를 더 많게 해 주었다. 예를 들면, 그의 어린 아들 새뮤얼은 마틴 매던(Martin Madan)의 피보호자가 되었고, 아들 찰스는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들에 대한 반응이 그 당시에 지은 찰스의 시에 나타나 있다. 그것들은 그의 미묘한 용어와, 음악양식 및 공연에 관한 문제를 독특하게 파악하는 그의 능력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후자의 경우에 몇몇 시들은 음악의 후원자들과, 런던의 공연장 및 극장의 연주가들이 대륙에서 악기를 들여오는 것에 대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 찰스의 보수적인 음악취향은 런던의 성 마틴-인-더-필즈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조셉 켈웨이(Joseph Kelway)가 공감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2년 동안 아무 보수도 받지 않고 아들 찰스를 가르쳤고, 시인은 분명히 그를 매우 존경했다.
대륙의 근대 음악을 확장하는 것에 대한 최초의 시는, MS 애국심(MS Patriotism : 찰스의 사본 이름 - 역주) Misc., 6-7쪽에 있다. 프랭크 베이커가 「찰스 웨슬리의 대표시」(Representative Verse of Charles Wesley) 312에 실었는데 지금은 절판되었다. 그 책에 들어 있던 이 시와 다른 몇 개의 시들은 「찰스 웨슬리의 미간행 시」(The Unpublished Poetry of Charles Wesley)에서 볼 수 있다.
현대음악
쟈르디니와 바하와
크든 작든 그들의 추종자들은
옛 음악의 목을 따고
모든 악보를 망쳐 버렸네
그들은 피상적인 노력으로
온갖 머리를 없애 버렸네
이제 우리는 생명 없는 해골 위에서
썩어 가나니 그 해골은
기껏해야 공허한 소리
음악의 귀신이 내는
끼끽대는 소리라네
피아노 포르테에 대한 그의 풍자적인 비판은 베이커의 책(1962, 362-63)에 들어 있는데, MS 애국심(MS Patriotism) Misc., 13-15쪽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18세기 중엽 영국 음악과 그 공연 양식과 인물들과 취향 속에 있는 힘을 철저히 이해했음을 보여 준다.
피아노포르테 (1783년 작)
애호가들은 갈채소리 높이고
피아노 포르테를 찬양하지
(그들 말을 간단히 인용하면)
팅팅거리는 하프시코드보다 멋있고 감미로와
부드러움과 강렬함이 대조를 이루고
기쁨을 온전케 하며
매혹당한 눈과 귀를 자극하고
놀라움에 감각과 이성을 빼앗긴다지
이렇듯 우린 그 사람들 지시 따르고
그들은 취향과 권위 과시하며
우리보고 겸손히 자기네 발걸음 따르라 하고
명백한 믿음과 맹목적인 존경으로
그들이 저주하는 것 저주하고, 찬양하는 것 찬양하라지
모든 음악은 자기네 것이라지
그래, 즐거운 나라 변덕스런 법률은
멋있는 온 세상 두렵게 하여
이탈리아 가락에 귀 기울여도 안되고
숭고하기 짝이 없는 신성한 화음도 안되고
저 훌륭한 분들 하라는 대로
그들의 달콤한 소네트만 된다지-시끄럽게 지저귀는 소리만!
허나 저 멋들어진 현의 거장들은
(하프시코드로 <노래하라> 가르치는 거장들은)
음악의 힘에 대해 딴판으로 얘기하고
피아노포르테가 하찮다 하며
유행에 매이지 않고
저 좋은 악기의 훌륭함
그 모든 기법과 음악적인 멋
과장 없이 듣고 판단하라 하시지
‘나쁜 연주자 숨겨 주고, 좋은 연주자 망치라’는 말
뛰어난 소수를 알아본다면 이해할 수 있지
제 2부
유행이 뭘 못해? 너무도 쉽게
저 멍청한 피아노 포르테 즐기게 하고
하찮은 악기를 찬양하여
아폴로의 현금보다 낫다 하라네
따뜻한 후라이팬 두들기듯 시끄러운데
붕붕대는 백파이프 같이 감미롭다네
그것이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쓸어버리고
한동안 의기양양 지배한다네
훌륭한 이들 그 소리 매력적이라 하고
뒤따르는 많은 이들 물론 찬양하고
<진실한> 음악 존경하던 이들조차
얼마간 거기 잡혀 분위기 떨어뜨리네
유행이 뽐낼 때 그 모든 노예들에게
미다스 왕이 그들에게 현명한 귀 빌려 줬으면!
(미다스 왕은 희랍의 왕으로,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길 기도해 이루어졌다. 마침내 그가 사랑하는 딸을 안자, 그녀도 금으로 변해 크게 후회했으나, 이미 늦었다. 여기서는 피아노 포르테 일색으로 바꾸면 음악을 망친다는 뜻임 - 역주)
유행이 현대의 보잘 것 없는 악기
(할 수 있다면) 하나 골라
그걸 인가해주면
겸손한 온 세상 그 지배받고
그 소리 듣는 양떼들 깊은 경외심에 빠져
“유대인의 수금”소리에 취해 죽어 간다네!
MS 패이트리어티즘(MS Patriotism) Misc., 6-7쪽에 있는 귀가 멍멍할 지경의 이 풍자시(Beckerlegge and Kimbrough 1990, 3:382에 들어 있음)에는, 켈웨이가 인격화한, 소리와 감각을 결합하는 전통적 음악 양식이 현대음악과, 혼란을 조장하는 현대음악에 대한 편애와 비교되고 있다.
켈웨이의 소나타에 씀
누가 켈웨이의 소나타를 감당하리?
‘그건 화음과 가락 모두 잊고
연주자의 손 무겁게 하니
그 기교 누가 이해하리?
저 심오한 G[쟈르디니 또는 J. C. 바하]나
B[보이스]와 켈웨이 비교하면 얼간이요
노망난 늙은이(현대주의자들은 그렇다 하지)
핸델과 코렐리에게 미친 자
처음부터 재능 없는 자일 뿐
왜냐면 제미니아니(Geminiani)가 그의 스승이요
그의 재능에 따라 소리 뿐 아니라
감각까지 탐내도록 가르쳤기 때문이지‘
그러니 우리 나라 지도자들 유행하는 음악에 넋 빼앗겨
그 절대적 결정 따르고
그 오류 없는 자리에서
그 섬세한 이탈리아풍
너무 멋있고 절묘하다 찬양하네
미다스가 심판하면 누가 따르리?
휘파람 부는 팬(Pan)이 아폴로 내쫓고
오르간보다 더 감미로운 백파이프 몰아 내니
쏘우겔더가 워르간 능가하고
켈웨이는 발 밑에서
당나귀 귀를 하고 애호가 된다네!
(쏘우겔더[Sowgelder]는 카스트라토스[Castraros]를 만든 사람이고, 존 워르간[John Worgan]은 아들 찰스의 개인 교사로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자임 - 저자주)
비슷한 견해가 현명하게도 88.88.88.99.88로 되어 있는 다음 시에 나타나 있다.
또 다른 이
누구든 감각 없는 소리
훌륭하다 찬양하면
우리 시대 좋아하는 음악
찬양하는 데 내 기꺼이 동의하리니
그이들 나무와 돌 감동시키는
오르페우스 아들들의 의 노래에 춤추게 하라
(Orpheus : 희랍의 수금 켜는 소년으로 나무와 돌도 감동케 했다 함 - 역주)
(화음의 혼란으로)
대가들이 연주 솜씨 선 보여도
오랫동안 매혹당한 귀로
나쁜 음악 연주하는 자들 경청한다네
찰스는 자주 극장에 가고 오페라와 기타 음악행사에 참여했다 (웨슬리 형제와 극장 주인들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앞에 나온다). 다음의 시에서 그는 세실리아 데이비스(Cecilia Davis)의 성공적인 연주 여행을 찬양하고 있는데, 그녀는 이탈리아에서는 링글레시나(L'Inglesina)라고 알려진 18세기의 유명한 성악가요, 이탈리아 무대에 선 최초의 영국 여자였다. 웨슬리는 좀 산만한 MS, 램플라우모음집에 있는 이 시들을 아마도 그녀의 최초의 영국 여행기간에 썼을 것인데, 이때 그녀는 완전히 이탈리아화한 상태였다 (Baker 1962, 327).
데이비스양에게
멋있는 잉글레시나
부드러운 이탈리아 노래로
기질의 황량함 없애고
영국인들 사랑으로 감동케 할 수 있나요?
그래요, 나무와 돌이 가까이 다가 와
당신의 매혹적인 목소리 들으려 하고
모든 야만인들도
당신과 화음 찬양하지요!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찰스는 또한 G. F. 핸델의 독일 친구이자 뛰어난 오페라 작곡가인 존 F. 람페를 만났다. 찰스가 람페와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구원을 찾고 발견한 자들을 위한 찬송가」(Hymns for those that seek and those that have Redemption in the Blood of Jesus christ, London, 1747) 25장인 “음악가의 찬송”[The Musician's Hymn]이라는 그의 시가 존 웨슬리에 의한 저 작곡가의 회심을 축하하기 위해 쓰여질 수 있었다 (Martin 1985, 73). 그의 이야기는 「일기」1745년 11월 29일 금요일자에, “나는 람페씨와 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수년 간 이신론자(理神論者, Deist :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신만 믿는 사람 - 역주)였는데, 「합리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에 대한 간절한 호소」(1743)에 의해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Wesley 1938, 3:226).
1. 조화와 사랑의 하나님 이름 성자들을 하늘로 이끄시고 마음 상한 자들 위로하시나이다
내 희미한 곡조로 당신 부르오니
내 미천한 목소리
하늘의 찬양대와 하나되나이다
2. 만일 내 인간의 마음 사로잡는 아름다운 예술 안다면 주여 그 영광 당신 것이오니
나는 당신의 복된 뜻 따라
여기 내 모든 재주 바쳐
소리로 하나님 찬양하나이다
3. 지상의 친구들 즐겁게 하려고
변덕스런 가락 맞추려고
영원한 죽음으로 가는 길
음악의 손으로 달래 주려고
<두발> (Tubal)의 사악한 아들들과
더 이상 내 거룩한 힘 타락케 않으리이다
4. 지난 세월 이를 위해
끝내 당신의 은혜 배우고자
내 여기 왔사오니, 주여
내게 새로운 복음의 노래 가르치사
내 손과 맘과 혀
오직 당신 찬양 위해 바치게 하소서
5. 주여 당신의 음악가에게 힘 주사
내 성스런 수금으로
시편의 노래 부르게 하시고
내게 당신의 아들과 영 보이사
거룩한 곡조로 내 마음 채우소서
6. 그러면 내 주님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귀 기울이는 사람들 매혹케 하고
살아 있는 돌들도 다가오게 하리니
그 살아있는 돌들 춤추며 일어난
하늘의 도시 만들리이다
<새 예루살렘>을!
7. 오 당신의 성도들과 함께
나 황홀한 성가대의 가장 미천한 자라도 되어
위에 계신 당신 찬양키 원하오니
눈부신 악단과 함께
나 하늘의 현금 가지고
사랑 노래 부르게 하소서
8. 거긴 얼마나 황홀한 축복 있으랴
모든 천사들 연주하고
나를 듯한 기쁨 누리도다!
예수의 영광스런 목소리에
모든 이 황금 길에 엎드리면
이보다 더한 황홀함 있으랴!
9. 예수는 하늘 중에 하늘이시니
조화와 축복의 영혼이시라!
우리 주님 바라볼 때
그 영광스런 목소리 들을 때
우리 영 모두 눈 되고 귀 되어
침묵조차 주님 찬양하리라
10. 오 저 위대한 삼위일체 앞에
엎드려 감히 움직이지 않고
내 주님 간절히 경외하기를
서로서로 소리치며 넘치는 기쁨으로
보좌 앞에서 노래하며
영원을 즐기기를
람페의 죽음을 기념하여 찰스는 다음의 시를 88.88.88운율로 썼다.
람페씨의 죽음에 부쳐
1. 다 이루었다! 주의 뜻 순종했으니
수호천사들께 둘러싸여
그 영혼 하늘에 정좌했도다
내가 택한 형제, 자기 음악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으로 갔으니
하늘의 연주회로다
2. 그의 영혼 날개 타고
사자(使者)의 노랫소리 기뻐 들으며
옆구리에 현금 끼고
편안히 하늘의 곡조 들으며
죽음의 고통 속에 웃으며 노래했나니
그는 노래하고 웃고 죽었도다
3. 노래하는 무리에 둘러 싸여
그는 소리 없는 노래
소리 없는 이름 듣고
그는 성가대의 주님 <보나니>
머리숙여 인사하고 황금수금 켜며
영광스런 양(羊) 찬양하도다
4. 그는 영광스런 양<만>을 찬양하나니
이 슬픈 황야에서
신음하려 더 이상 애쓰지 않고
지상의 보수 위해 일하지 않고
거룩한 곡조 헛되이 버리지 않고
세상 기쁘게 하려 몸 굽히지 않네
5. 아름다운 영혼 땅에서 구원되었으니
영원한 시간 지나도
그의 승리 계속되고
그의 뛰어난 재능 발휘하여
마음의 모든 노래
그의 혀 위에 흐르리
6. 오 나의 슬픈 날들 지나갔도다!
오 나도 마침내
천국의 행복한 친구 따라 가기를
그와 함께 승리의 교회에 참여하여
거룩한 곡조로
사랑의 주님 찬양하기를!
7. 사랑의 주님 내 마음 예비하사
하늘의 가락 속에
한 역할 맡게 하소서
“그 밝은 날 보좌에 앉은
그들처럼 큰 소리로 노래하리라“
높으신 주님 가까이에서
8. 오 그 약속된 시간이 왔도다
오 우리 모두 본향에 돌아가
우리 주님의 기쁨 나누리라!
주여, 살아 있는 목소리의 돌들을 이끄소서
예수여, 당신을 찬양하는
당신의 유배당한 자들을 기억하소서
9. 우리의 수와 우리의 축복 완성하사
당신의 영광스런 보좌 앞에서
모든 성가대 만나게 부르시고
당신의 모든 악단 불러 들이사
노래하라 신호 보내시고
나팔소리 울려 퍼지게 하소서
(Wesley 1849, 2:408-09 ; 날짜 미상. 람페는 1751년 7월 25
에 죽었다.)
찰스는 그의 형 존보다도 런던의 극장 음악가들과 후원자들과 더 쉽게, 더 자주 접촉했으며 많은 유명한 인물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는 조지 F. 핸델도 있었다 (앞에 나온 “존 F. 람페와, 두 아들의 음악교육에 대한 「일기」에 있는 찰스 웨슬리의 설명 (Wesley 1849, 140-66)과 「웨슬리/랭쇼우 서간집」을 보라). 1749년과 1752년 사이에 핸델은 독창곡과 꾸밈음이 있는 베이스를 위한 찰스 웨슬리의 찬송시에 3개의 곡을 작곡해 주었다. 그것은 ”기뻐하라! 주님께서 왕이시니“(Rejoice! the Load is King)를 위한 <부활에 대하여>(ON THE RESURRECTION)이라는 곡(이 곡은, GOPSAL, The United Methodist Hymnal, 716에 있다)과, ”죄인들이여,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라“(Sinners, obey the gospel word)을 위한 <초대> (THE INVITATION)와 ”오 하느님의 사랑이여, 얼마나 달콤한지요“(O Love divine, how sweet thou art)를 위한 <사랑하기 원하네> (DESIRING TO LOVE)이다. 원본은 1826년에 캐임브리지의 피츠윌리엄 박물관 도서실에서 시인의 아들 새뮤얼이 발견했는데, 그는 그것들을 「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피츠윌리엄 음악, 세 편의 찬송가, 고 찰스 웨슬리 목사 작사 . . . 조지 프레데릭 핸델 작곡 . . . 1826」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1988년 노벨로가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프랭크 베이커는 「찰스 웨슬리의 대표시」의 311쪽에서 핸델에게 바친 두 개의 시를 싣고 있다. 첫 번째 것은 MS 애국심, 5쪽에 있고, 두 번째 것은 MS E. T. 클라크에 있다.
핸델의 생일인 2월 24일
성 맛디아스의 날에 대한 송가
축하해요, 눈부시게 경사스런 날
불후의 핸델을 태어나게 한 날
숭고한 기쁨과 거룩한 환희 속에
매순간 미끌어지듯 흘러가고
그의 영혼 같은 모든 영혼
타오르는 순수한 에테르의 불꽃
갈망하여 붙잡게 하소서
핸델의 수업시간에 씀
여기 소리의 모든 신비한 능력
화음의 영혼 있어
그 소리의 완벽한 화신 영접하니
모든 생명 위해 죽은 핸델이라!
다음 시는 MS 애국심, 11쪽(Baker 1962, 312)에 있는데, 존 플래쳐를 포함한 몇몇 감리교도들이 분명히 반대했는데도, 그가 자기 아들의 음악적 야심과 활동을 키워 주는 것을 변호하기 위해 쓴 것이다. 1775년 플래쳐는 웨슬리에게 이렇게 썼다. “당신은 형 뿐 아니라 적도 있소. 그들은 음악과, 좋은 친구들과, 좋은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에 대해 불평하고, 당신이 전에 지녔던 열정과 검소함이 없어졌다고 불평하고 있소. 내가 당신에게 모든 죄의 모습은 끊어 버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할 필요는 없겠조” (Gill 1964, 190).
참으로 경건한 사람들 이유를 알지 못하고
온갖 신성한 힘 지닌 음악을 비방하고
(그 남용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정죄하니
좋고 나쁜 것이 그들에겐 똑같기 때문이네
허나 그들이 알기를. 정말 실수하고 있다는 걸
은총은 넘치는데 재능이 부족할 뿐
사람들 조화로운 예술 비방하여
우리 비난받고 변명하나, 솔직히 말하면
잘못은 그들의 귀에 있지, 그들의 바른 마음에 있는 게 아니라네
자신이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비하여, 재능있는 아들들이 음악적으로 진보할 것에 대한 찰스의 기대가 이 시의 주제인데, 프랭크 베이커는 시인의 속기록에서 이것을 베껴서, 「찰스 웨슬리의 대표시」 311쪽에 실었다.
제 마음대로 악기 다루는
그 재주 누가 갖고 싶지 않으리?
내 행동을 인도하는 권능들이여 말하라
내 속에 음악의 씨 있는데
나 음악의 힘과 우아함 너무 찬양하는데
내 마음 자체가 수금인데
나는 왜 소리 고르는
저 행복한 예술 배우지 못하고
저 산 속을 뛰노는 들사슴보다 더
연주회의 한 몫을 할 수 없는가
시인은 새뮤얼의 음악교육을 시작한 데 대해 데인스 배링튼(Daines Barrington)에게 설명했는데, 배링튼은 새뮤얼이 아홉 살이었던 1775년에 그가 연주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Baker 1962, 330).
새뮤얼 웨슬리에 대해
샘에게는 3년 동안 비밀이 있었으니
그의 마음에 음악의 씨 자고 있었지
찰스의 조각칼이 세속적 방법으로
바위 속에 숨어 있는 그 조각상 끌어내기까지
멤몬(Memmon)과 같이, 그는 태양의 불 붙잡아
자발적으로 아폴로의 수금에 불어넣으니
손쉽게 화음의 정상 이르고
시기하는 자들과 바라보던 자들
다른 이들 뒤로 하고 배링튼을 붙잡도다
1770년대 초 찰스는 18세기의 유명한 영국 교회음악가이자 작곡가이며, 기념비적이고 영향력 있는 세 권으로 된 책 「성당음악」(Cathedral Music, 1760, 1768, 1773)의 편집자였던 윌리엄 보이스(Willam Boyce)에게, 자기 아들 새뮤얼을 그의 성가대에 받아 줄 것과, 세 권으로 된 그의 작품을 아들에게 선물로 줄 것을 간청했다. 분명히 찰스는 보이스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는데, 찰스는 보이스가 그의 찬송시의 몇 편에 곡을 붙여 주었다고 쓰고 있다. 니콜라스 템퍼얼리가 발견한 바로는,
1795년 경 찰스 웨슬리 2세의 4부 성악곡과 함께 출판된 ‘하나님의 종이여, 잘 하였도다’(Servant of God, Welldone)는 G장조로 된 보이스의 곡인데, “조지 휫트 필드의 죽음에 대해 찰스 웨슬리 목사가 작사하고, 폐하의 작곡자 고 보이스 박사가 작곡함“이라는 서두가 쓰여 있다 (칼튼 R. 영과 나눈 서신, 1994년 4월).
보이스는 새뮤얼을 “영국의 모차르트”라고 부르며 그의 초기 작곡을 찬양했고 (Wesley 1849, 2:154), 성당음악 전통에 대한 찰스의 취향을 길러 주었다. 그는 이 전통을 웨스트민스터 성당 부근의 웨스트민스터 학교에서 학생시절에 경험했으며, 윌리엄 크로프트는 이 학교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있었다. 찰스는 후에 말하기를, 그의 아들 찰스가 그의 삼촌(아마도 존 웨슬리)으로부터 “보이스 박사의 성당음악이라는 대단한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Wesley 1849, 2:144).
보이스에 대한 시는 올리버 A. 베컬랙과 S T 킴브로우 2세의 「찰스 웨슬리의 미간행 시」 1:279에 들어 있다.
1. 운율 아는 음악가의
겸허한 간청은
(당연한 권리에 대한 간청)
가는 곳마다
교회음악 그의 기쁨 되는 것이니
부인할 수 없도다
2. 최고의 것으로 가득 차
재능 맘껏 발휘하고
참된 화음의 아들
훌륭한 보이스 박사의 곡
자신의 것 되기까지
그는 결코 쉴 수 없도다
3. 당신의 세 권의 책
그의 기도로 얻었으니
그에게 풍부한 모범 되어
(당신의 탄원자의 이름인)
시인 샘을
쓰레기 같은 음악에서 구하리라
4. 하여 훌륭한 박사님
그의 탄원 받아들이고
당신의 성가대에 그를 넣어
왕처럼 부요케 만드시면
그의 오르간과 현금에 맞춰
당신의 탄원자 언제나 노래하리!
작곡자가 1779년 2월 7일에 죽자, 찰스는 이 서정적 회고를 썼는데, 그것은 그의 「일기」 2:410에 들어 있다.
1. 화음의 아버지여 고이 잠드소서!
얼마 안 되는 부침하는 세월이여 안녕!
탄식의 골짜기에서 옮겨
여호와의 화염의 사자들
당신을 천상에 나게 하였나니
거기는 온통 조화와 사랑이라
2. 자애롭고 선하고 의로운 마음
천상의 현금 바라 한 숨 짓더니
하늘의 성가대와 조화 이루네
지상에서 제 역할 담당했으니
핸델이 지저귀듯 현을 고르고
천사들 날개로 갈채 하였네
3. 핸델과 모든 뛰어난 음악가
메시아의 위대한 통치 알리려
거룩한 음악 짓고
기쁜 환호에 참여하노니
그이들 하늘 자리에서 뛰어 일어나
새로 난 형제 환호로 맞이하네
4. 당신 눈썹엔 빛나는 원
당신 손엔 황금 하프
새벽 별과 함께 노래하며
당신 영혼 무한한 환희 속에 살아
영원한 보좌에 계신
여호와와 정복자인 그의 아들 찬양하네
찰스는 자기 아내 샐리의 음악교육도 권장했다. 그녀는 “하프시코드로 그[찰스 2세]를 진정시키고 즐겁게 하곤 했다.” 프레데릭 길은 말하기를, 샐리가 “하프시코드를 연주했으며 강하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고 . . . [80살에] 그녀의 친구들이 놀랄 정도로 핸델의 노래 두 곡을 매우 즐겁게 노래했다. 그 곡은 ‘주께서 그의 양떼를 먹이시리라’(He shall feed his folck),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If God be with we)이었다” 라고 했다 (Gill 1964, 192). 그녀의 아들 찰스는 자기 어머니가 96세에 “지난 주 어머니의 생신에 노래를 불렀다” 라고 썼다 (Wain Wright 1993, 74).
추가한 시 두 편 중 하나는, “찰스 워르간의 죽음에 부쳐”인데 이는 유명한 오르가니스트 존 워르간의 아들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루들로우 박사에게 보내는 편지”인데 (Baker 1962, 324-25), 이는 아마도 그의 아들 새뮤얼에 때문에 쓴 시로, 찰스 웨슬리의 선천적이고 후천적인 음악적 감수성을 좀 더 보여준다. 그것은 음악과 음악가들에 대한 그의 시 중 다음의 예에서 볼 수 있다.
17 또는 18세 된 찰스 워르간의 죽음에 부쳐
1. 순진하고 사랑스럽고
덧없이 피던 꽃이여 안녕!
청춘의 색채 빛 바래고
너의 아침 같은 시간 끝났구나!
죽음이 너의 잠든 눈 위에 찍혔으나
이젠 천국에서 눈뜨렴!
2. 이렇듯 주님의 사랑이 널 앗아가시니
높은 하늘의 불꽃에 실려
네 영혼 천상의 영역으로 올라
불멸의 노랫소리에 섞여
하늘의 음악 듣고
천상의 모든 하프소리 듣누나
3. 행복한 하모니스트여 네게
주님의 사랑 한 곳을 배정하여
너의 흠 없는 순결함에 왕관 씌우시고
네 머리에 밝디 밝은 광선 얹으사
네가 수많은 처녀들에게 둘러싸여
다시없는 노래를 부르게 하시누나
4. 이 죽음의 골짜기 지나니
보라, 우리 널 그리워한다
너는 여기서 우리의 승리 드높이고
우리의 환희 더 깊게 하였으니
영광스런 삼위일체 노래하여
영원히 소리치라
브리스톨의 외과의사인 에이브러햄 러들로우(Abraham Ludlow)에게 보내는 다음의 시는, 분명히 좀 우스운 상황을 설명하느라고 지어진 것인데, 그것은 1774년 3월 31일 목요일 저녁 브리스톨 성당의 자선 공연에서 새뮤얼 웨슬리가 그의 형 찰스를 대신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그의 형이 나타나 광고한 오르간 연주를 함으로써 연주에서 빠지게 된 사건이었다. 이때 찰스는 97명의 저녁 공연자 중 한 명이었다 (Baker 1962, 325).
러들로우 박사에게 보내는 편지
1. 친애하는 박사님, 당신과
음악을 아는 온 도시에 간청하오니
음악위원회 때문에
내 심히 아프지 않았나요?
2. 왜 사람을 그렇게 거칠어지게 하십니까?
사람들은 유혹하고 나서 나를 거절하는군요
광고하고 나서 날 어린애라 하는군요
날 어린애 취급하는군요
3. 사람들은 경멸한 걸 사과하면서 말하길
(그게 내 감정을 더 자극하는데요)
내가 대중 앞에서
연주할만큼 진지하지 못하다나요
4. 나는 촛대도 들지 못하겠지만
저 감미로운 도시찬양단에게
내 묻노니 그들의 예배는
나와 핸델의 불화 소식을 모르는지요
5. 내 생각에 여덟 살 난 아이는
경쾌하고 명랑해야 해요
버검의 충실함에는
리디의 착실함이 필요해요
6. 다른 사람처럼 재빨리
나도 이유 댈 수 있어요
스토우크스처럼 시간 지켜
때 맞춰 올 수 있어요
7. 난 아직 브리스톨 오르가니스트와
경쟁하지 못해요
허나 나도 위대해질 거라고 알려 주세요
나는 야심은 없어요
8. 난 선동하고 싶진 않지만
적당한 때에
경멸하는 경솔한 사람들에게
내 분노의 무게 알게 할래요
9.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데
내가 분노하지 않겠어요
공연히 심한 모욕 주는 자
눈물로 후회하게 될 거에요
10. 박사님, 그들의 거친 무례에 대한
나의 분노 아무 거로도 삭이지 못해요
그들이 조심스레 스태이너 가지고
내 분노 누그리지 않는 한
(버검, 리디(리댜드), 스토우크스는 찰스 웨슬리의 친구들이자 브리스톨의 예술 후원자들임. 스태이너는 티롤에서 만든 바이올린임)
6. 후기
이 연구는 복음적 개신교의 마음의 종교와 서정적 종교를 개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존과 찰스 웨슬리라는 주요한 지도자들의 활동, 즉 마음의 음악 속에서 18세기 감리교 음악, 작곡, 음악가들을 검토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웨슬리 형제는 그들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찬송시와 곡조, 음악에 대한 주석을 통해 표현했고, 마음의 음악을 마음의 종교와 함께 서정적 신학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여러 환경 예를 들면 교구, 교회, 속회 등에서 찬양대와[나] 독창의 도음을 받아 할 수 있는 음악공연과 대조적으로, 노래로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감리교 평신도의 설교와, 평신도가 인도하는 마음의 음악은 당시 부흥운동의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총을 대중적으로 찬양하는 우선적인 방법이 되었다. 그 은총은 제시되고 체험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예기치 않고 거저 주시는 구원하는 은총(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일치하는 은총)에 대한 즐거운 찬양이, 성찬식의 개인주의와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의 단조로움과 무료함을 몰아 내었다. 여기서 감리교 찬송가집은 실제로 기도서와 교리문답서가 되었다.
나는 이 책이 앞으로의 연구와 주석을 자극하기를 기대한다. 더 연구가 있어야 할 영역 중 하나는 초기 감리교의, 느낌과 기억과 음악 창작의 관계이다. 느낌과 음악적 반응의 관계는, 웨슬리 사후 2세기가 지나서 칼 E. 씨쇼어(Carl E. Seashore)가 그의 기념비적 연구 「음악의 심리학」(Psychology of Music)에서 표현했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느낌을 가지고 하는 느낌에 대한 작업이다. 그것은 오직 그것이 느낌을 자극하고 오직 활동적인 느낌에 의해 표현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 . . 느끼는 것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하는 것, 즉 표현하는 것이다 - 유기체의 행위이다. . . . [음악가가 일하는] 매체는 느낌이지, 사실적 자료나 추상적 철학이 아니다 (Seashore 1938, 9-10).
웨슬리는 통찰력 있고 실용적이게도 느낌과 음악적 반응과 교리적 가르침을 결합했으니, 마음의 음악이 그것이다. 존 F. 람페 같은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음악은 아마츄어를 위해 아마츄어에 의해 작곡되었다. 우리는 그 운동의 운영자이자 목회자이자 지도자였던 찰스 웨슬리의 작품과 견해에서, 감리교가 그 선교와 증언을 이루고 있는 서정적 종교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았다. 웨슬리는 자신이 노래하고 노래를 지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또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음악적 재능을 주었기 때문에, 가르치고 격려하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총에 대한 자신들의 즐겁고 적극적인 반응을 노래할 수 있고 노래하도록 가르쳐져야 한다고 확신했던 것 같다. 에릭 라우틀리는 말하기를 웨슬리의 찬송은 “찬송가에서 결코 사라진 적이 없는 문제와 긴장 . . . 확신과 심판, 자유와 권위라는 대립의 문제”를 제기했다 (Routley 1981, 75).
찰스는 1771년 브리스톨에서 런던으로 이사한 후에도 파운더리와 시티로우드 교회의 감리교도들과 관계를 유지했는데[Gill 1964, 183), "운동이 취할 방향에 대한“ 조건을 제시했다 (Wainwright 1993, 6). 동시에 그는 필요한 경제적 재원을 찾아내고는, 그의 아들들을 전문적인 음악가로 기르려고 했다. 때가 되면 그 아들들은 소규모의 작곡자들, 지휘자들, 공연자들, 비평가들 집단의 일부가 될 것인데, 그들은 능숙한 음악적 상상력과, 음악적 완성에 대한 성취하기 어려운 탐구 때문에, 대개 웨슬리 식의 회중찬송의 본질인, 아마츄어 음악과 음악 창작에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좀 더 연구해 보면 아마츄어 음악과 음악창작 및 전문적 음악과 음악창작에 대한 존과 찰스의 후기 견해를 더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오울드 매릴본 교구와 감리교 교회들을 포함한 런던의 영국 교회들의 음악과 예배의식에 대한 찰스의 관계도 포함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감리교와 영국 교회의 찬양 방식과 레퍼토리의 상호작용이 내가 밝힐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회 안의 복음주의자들, 특히 조지 휫트필드, 마틴 매던과 같은 독립적이거나 재산이 있는 지도자들이 웨슬리의 찬송가를 포함한 찬송가집을 편집했다는 로빈 리버의 견해에 동의한다.
일반적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사실은, 이 다른 영국 복음주의자들 -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신학에서 칼빈주의적인 사람들 - 의 찬송가 모음집이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의 “감리교” 찬송집과 맞먹는 일련의 찬송가 출판이 되었다는 것이다 (kimbrough 1962, 168-69).
음악적 측면에서는, 우리는 존 F. 람페와 조나단 베티쉴이 작곡한 극장식의 곡조들과, 「찬송가와 성시」(Dublin, 1749)의 부록으로 붙어 있는 작자 미상의 곡들에 대해 고찰해 왔다. 웨슬리 시대에 감리교도가 지원한 다른 찬송가 모음집이 출판되고 사용되었을까? 웨슬리 시대의 감리교도들이 사회적 찬송을 부르는 것을 권장했을까? 감리교 찬송과 마을 성가대 운동 및 노래학교와는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웨슬리 사후 계속된 영국 감리교 운동은 이 연구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나는 음악 스타일과, 오르간과 성가대의 증가에서 나타난 극적인 변화를 간단히 지적했다. 감리교 총회의 의사록과, 찰스 2세와 새뮤얼의 두 개의 곡조집 내용은 이러한 발전을 더 연구하는데 필요한 자료가 될 것 같다. 찰스 2세의 모음집은 그의 삼촌의「거룩한 곡조」에 대한 사과이자 개정판이다. 새뮤얼은 「원래의 찬송가 곡들」(Orignal Hymn Tunes)에서 그의 삼촌의 1780년 판 「모음집」에 있는 찬송가들의 각 운율에 따라 한 곡씩을 작곡했다. 새뮤얼의 작품은 겸손함과 음악적 호기심과 고상한 취미로 감리교도들에게 웨슬리 곡조집에 제시된 여러 가지 스타일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최초의 작품인 것 같다. 그의 작품은 19세기 영국 작곡가들에 의한 초기 사례 중 하나로, 교구 회중들과 성가대를 위한 곡들의 적절하고 대중적이며 점잖은 음악 스타일을 오르간 반주와 결합시키려는 것이었다. 오르간 반주는 “단순히 회중예배를 돕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려는 것이었다” (Temperley 1979, 304). 회중음악을 만드는데 대한 이러한 접근방식은 전문적인 교회 음악가들의 찬송가 곡에서 절정에 이르렀는데, 새뮤얼의 아들 새뮤얼 세바스천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는 「고대와 현대의 찬송가」(Hymns Ancient and Modern, 1861)를 위한 작곡을 했다. 이 모음집은 영국 감리교가 출판한, 웨슬리의 「찬송가와 새로운 보완」(Hymns and New Supplement, 1877)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이는 존 웨슬리의 곡조집에 있는 레퍼토리를 별로 언급하지 않은 곡조집이다.
한 세대 후에 랄프 보건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는 「영국 찬송가」(The English Hymnal, 1906)의 음악에 대한 주목할 만한 서문을 썼는데, 그의 음악적 기준은 그 모음집의 예배의식적인 면을 높여 주었다. 이것은 찬송가 곡조에 있는 품위를, “진실로 음악적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문제이다”라는 도덕적인 정언명령에까지 상승시켰다 (Vaughan Willams 1906, ⅸ).
존 웨슬리와 랄프 보건 윌리엄스의 작품을 비교한 연구는 아주 흥미 있을 것인데, 이는 그들이 둘 다 곡의 레퍼토리를 크게 확장했기 때문이다. 보언 윌리엄스는 제창곡(웨슬리가 “음악의 힘에 대한 생각”에서 주장한 요점이다)들을 소개했으며, 쾌활하고 반복적인 댄스풍의 대중곡과, “일반적으로는 사용하지 말 것”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복음 찬송가를 소개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웰쉬(Welsh)곡인 AR HYD Y NOS 같은 순수주의 곡에 대한 아주 강한 반감을 표현했다. 바로크식의 트리오 풍인 <이름 없이> (SINE NOMINE) 같은 그의 제창곡은 빅토리아 시대의 음악적 감수성에 반감을 초래하여, 보언 윌리엄스의 곡들을 “재즈음악”이라고 평가절하했던 버나드 로드 매닝(Bernard Lord Manning)은 1930년대 중반에 “보건 윌리엄스의 나약한 댄스곡[<이름 없이>]에 비하면, 비숍 하우(Bishop How)의 ‘모든 성인을 위하여’는 훌륭한 찬송가다” (Manning 1942, 36)라고 말했다.
교회음악의 권위
감리교의 탁월하고 확실한 지도자로서 존 웨슬리는 자신의 권위를 주장했으며, 체계적이지는 않았지만 실용적으로 그 권위를 그의 미학적, 목회적, 신학적, 문화적 관심과 견해에서 끌어내어 확실하게 했다. 「거룩한 곡조」 서문과 그의 “음역”과 “찬양을 위한 지침”과 “음악의 힘에 대한 생각”과 “음악 비평가 존 웨슬리”를 보라. 그의 견해는 종교적인 서정시와 교회 및 극장음악 전체에 해당하는데, 후자는 핸델의 <메시아>로 특징 지어진다. 그런데 회중찬송의 기준을 정하려는 웨슬리의 시도는 자의적이고, 일관성 없고, 아마도 통일적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은 그가 여러 선교회 모임의 간증과 활동을 인도한 즉흥적이고 행정적인 스타일과는 일치한다. 예를 들면 「거룩한 조화」에 대한 우리의 논의에서, 우리는 성가대와 건반악기가 증가하는 것에 대한 웨슬리의 유연한 반응을 보았다.
회중, 오르간, 성가대
웨슬리 사후 감리교의 음악적 권위는 총회로 넘어 갔다. 그들은 성가대 음악을 더 많이 부르기 위해 설교를 줄이는 데 대한 목회자들의 반대를 포함한 수많은 문제들을 다루려고 했다. 그러나 설교자 외의 사람들은 성가대 음악이 예배자들의 주의를 끄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한 세기 동안 계속된, 회중을 처음의 음악적 동반자의 지위에서 성가대와 오르간 밑의 부차적인 지위로 끌어내리는 일의 시작이었다. 오르간은 빅토리아 시대까지는 승리자로서 명성을 떨쳤고, 이는 오직 성가대의 아카펠라나 정전시간에만 가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뿐이었다.
미국에서는 19세기에 시골 부흥운동에서 도시 부흥운동으로 전환되는 동안 감리교 음악가들과 찬송가 편집자들이 유럽-영국 스타일을 선호하여 미국의 음악 스타일과 형태를 도외시했다. 동시에 참여적인 회중음악양식에서 수동적인 성가대 양식으로 변화된 감리교 음악형식이 교회에 도입되었는데, 이는 그 사회의 재창조적이고 교육적이고 예술적인 뿌리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몇몇 교회에서 일어난 20세기 중반에서 후반까지의 이러한 발전으로 하여 다수의 전문적인 음악가들이 나오고, 음악창작에 필요한 부속품들이 발명되었으며 중요한 예산이 축적되었다. 또 회중과 회중찬송을 형성하고, 가능케 하고, 지원하는 과제를 이루기 위한 성가대 대중의 조직이 가능해졌는데, 이는 음악공연, 즐거움, 사회적 교육적 기여, 숫자 놀음 등을 위해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일이었고, 특히 숫자 놀음은 “교회성장”이라는 배고픈 허수아비와 함께 나타난 벼룩들이었다.
미연합감리교 예배에 성가대와 그들의 레퍼토리 및 찬양을 포함시킨 것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는 웨슬리 신학과 그것의 잠재적이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한 윤리적 관심만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은 일반적으로 기호를 고려하여 많이 알려졌다. 그것을 대신한 예배와 찬송의 기준은 회중을 중심으로 한 복음적 예배보다 앵글로-카톨릭 성사신학과 더 유사했다. 음악창작에 대한 이러한 편견으로 인한 또 다른 문제는, 음악가들이 잘못된 악보를 가지고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엄격한 작업윤리에 따라 성가대들을 모으고 교육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잘못 표현된다는 것이다. 거룩하고 완전한 음악이라는, 교회 음악가들이 잊기 쉬운 단기간의 목적은, 묘하게도 목회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더욱 빈번히 요구되었다. 그런데 음악적 은총이라는 자비의 좌석에서 공연할 찬양자들을 모집하고 운영하고 계속 공급할 수 있는 음악가들의 능력에 역비례해서, 그런 목회자들의 설교와 예배인도능력은 질과 효과 면에서 줄어들었다. 결정적인 결과는 연합감리교의 마음의 음악이 한때는 회중의 영역이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성가대에 의해 회중에게 불려진다는 것이다.
에릭 라우틀리는, 점증하는 성가대의 활동에 적응하는 동안, 회중찬송의 레퍼토리와 찬양을 유지하려고 시도해야하는 문제점이 있음을 밝혔다.
두 가지 문제가 새로운 자료[찬송가]의 회중적 수용과 그것들의 지혜로운 활용에 제동을 거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교회에서 성가대 전통이 매우 성공적으로 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주로 1926년 웨스트민스터 성가대학을 건립한 존 핀리 윌리엄슨(John Finley Williamson)의 사도적인 활동에 기인한 것이다. 오늘날 매우 많은 교회들이 수많은 생동감 있는 성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서, 보통의 예배에서는 대개 세 곡의 찬송가를 부를 정도의 여유밖에 없다. 물론 그날 다른 예배는 없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회중은 일년에 약 150곡의 찬송가, 때로는 겨우 100곡의 찬송가만을 부른다. 그 레퍼토리는 찬송하는 기회가 줄어든 것의 거의 제곱배만큼 줄어들고 있다. 만약 당신에게 찬송가를 부를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떤 찬송가가 익숙하지 않은 것보다도 더 짜증이 날 것이다. 찬송가에 대한 회중의 취향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도, 회중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Routley 1982, 97).
생생한 회중찬송에 대한 또 다른 방해에는 오르간과 악기, 냉랭하게 양탄자가 깔린 예배장소, 이러한 훈련에 무지한 담임 목회자를 만들어 내는 신학교육상의 음악과 찬송가의 부재, 예배에서 설교한 말씀과 찬송으로 전달한 말씀 사이의 실제적인 부조화, 교회 음악가들에게 선곡, 가르침, 지휘, 회중찬송의 반주 등을 포함하는 교육학적 과제를 가르치는데 실패한 음악학교들 등이 포함된다. 추가되는 문제는, 20세기의 주요한 찬송가 음악이 아카데믹한 예배라는 배경에서 성가대와 오르간에 대한 문헌 및 찬송가 레퍼토리와 찬양에 의해서 알려진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아카데믹하게 방향지워진 것을 조정하려는 찬송가 위원회의 노력은 신구의 복음찬송가와 영가, 합창의 광범한 분류를 낳았고, 대부분 회중의 위안수준을 높이고 예배의 흥행가치를 증가시키는 조정행위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경우에 찬송가들은, 에릭 라우틀리가 말한 대로 “교회 전사(戰士)의 대중음악” (Routley 1959, 3)이 되는 경우는 드물고, 무의미한 종교적 소음이 되고 만다. 즉 그것은 복음적이거나 성서적인 핵심내용에 대한 소양이 없는 합창과 결합된 조각난 노래들과 찬송가들이 되고, 꼭 필요한 종교적 수사(修辭)라는 썩은 향기와 최소한의 음악이란 것을 보잘 것 없고 불성실하고 제 멋대로 융합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회중찬송의 재건 : 새로운 마음의 음악
회중찬송의 재건은, 훌륭하고 가르칠 수 있는 곡들이 다양한 음악적 양식으로, 제 기능을 하고 사용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찬송가 레퍼토리와 결합되는 곳에서 일어날 것이고 일어나고 있다. 거기서는 힘찬 찬양이 성악과 곡조의 기억이라는 하나님의 선물로 표현된다. 이러한 찬송은 적극적이고, 포괄적이고, 능동적이고, 강력하고, 응답을 얻을 수 있고, 교리를 가르치고 기억하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옹호하는 설교를 고양시킬 수 있다. 음악가인 교사와 설교자인 교사는, 웨슬리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마음의 음악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이 음악은 단순하고, 노래할 수 있고, 감동적이고 기억하기 쉽고, 가르치기 쉬운 회중의 노래다. 공동체를 연결해 주는 마음의 음악은 자신들이 누구이며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기억하게 해주고, 그들이 선포된 말씀과 성사를 듣고, 보고, 그에 응답하도록 준비시키며, 그들을 활동하고 증거하도록 내보낸다.
최근의 많은 찬송가들은 그 일부가 1960년대 중반에 시작된 영어로 된 찬송가의 이른 바 “찬송가 폭발”에서 나왔지만, 그것들은 웨슬리의 마음의 음악과 같은 선상에 있다. 영국에서 온 찬송가들에는 프레드 프렛트 그린(Fred Pratt Green)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라”(Christ is the world's light) (188), 프레드 칸(Fred Kaan)의 “우리가 서로를 받아들이게 하소서”(Help us accept each other) (560)와 시드니 카터(Sydney Carter)의 “춤의 주”(Lord of the dance) (261)이 포함된다. 미국의 찬송가들은 자로슬라브 J. 바이다(Jaroslav J. Vaida)와 칼 샤크(Carl Schalk)의 “참새의 하나님, 고래의 하나님”(God of the sparrow, God of the whale) (122), 피터 커트(Peter Cutts)의 뛰어난 <신랑> (BRIDEGROOM) (544)에 부친 칼 도우(Carl Daw)의 “비둘기 노래의 웅얼거림처럼”(Like the murmur of the dove's song), 칼튼 R. 영의 브로드웨이식의 곡인 <시작> (BEGINNINGS) (383)과 <웨스트 체이스> (WESTCHASE)가 붙은 브라이언 렌(Brian Wren)의 인상적인 “오늘은 새로운 시작의 날이다”(This is a day of new beginnings)와 “많은 이름을 가져 오라”(Bring many names)가 포함된다.
인상적인, 세계적이고 애큐메이칼적인 스페인 레퍼토리에서 온 곡으로는 고 세사레오 가바라인(Cesáreo Gabaraín)의 “주여 당신 호숫가로 오셨나이다”(Tú has venido a la orilla) (344)가 있다. 다른 곡들로는 무스코지-크리크족의 “헬렐루얀”(Heleluyan) (78)과 같은 미국 원주민 찬송가들과,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찬송가가 있는데, 여기에는 보리스(Boris)와 클레어 앤더슨(Clare Anderson)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God created heaven and earth)가 있다. 이 곡은 이-토-로(I-to-Loh)의 대만 민속곡에 잘 맞춰져 있다 (151). 아프리카계 미국노래의 광범한 레퍼토리에서 나온 곡으로는 밝은 부활절 영가인 “주님이 부활하셨다”(He rose) (316)와 찰스 A. 틴들리(Charles A. Tindley)의 영감어린 도시 복음송 “하늘의 빛처럼 나는 가네”(Beams of heaven as I go) (524)가 있다.
나는 최근 나온 마음의 음악 중 7편을 실었다.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 예수”(Yesu-Gift of God to Humankind)는 부르고 응답하는 말라위 찬송가인데, 유명한 선교사 시인 톰 콜빈(Tom Colvin)이 번역하고 편곡했다. 크리스마스 찬송가 “별-아이”(Star-Child)는 재능 있는 뉴질랜드 시인 셔얼리 에레나 머레이(Shirley Erena Murray)의 것이고, 브라이언 렌의 삼위일체 찬송가 “어둠은 기쁘도다”(Joyful is the dark)는 어둠에 대한 창조적인 접근을 독특하게 시도하고 있다. 렉스 리버스(Lex Rivers)의 기도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소서”(Lead me in the Way)는 마이애미 비치의 레이크 연합 감리교회에 있는 성 요한 예배당의 회중을 위해 작곡된 것인데, 그는 여기의 목회자이다. 또 특징적으로 포괄적인 감리교 성찬식 찬송이 있는데, 이는 뉴질랜드의 음악가이자 시인인 콜린 깁슨(Colin Gibson)의 것이다. 스웨덴의 목사이자 작곡가인 페르 하를링(Per Harling)의 날카로운 “생명을 위하여”(For sake of life)와, 단순하고 표현이 풍부한 아르헨티나 민속 찬송 “거룩, 거룩, 거룩”(Santo, santo, santo)도 있다.
칼튼 R. 영은 아틀란타, 에머리 대학, 교회 음악 명예교수이다. 그는 달라스의 남감리교대학과 네쉬빌의 캐렛 대학원에서 교회음악 석사과정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연합감리교 찬송가」(1989)의 편집자이며 미국과 캐나다의 찬송가협회 전 의장이자 회원이다. 영 박사는 유명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이고, 호프 출판사의 한 부서인 <아가페>의 창시자이다. 그와 그의 아내 마조리는 네쉬빌에 살고 있으며, 그는 거기서 캐렛-베네트 센터에서 음악과 다른 예술의 고문이다.
“이 책이 그토록 핵심적인 - 또 그토록 감동적인 -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책이 독자로 하여금 초기의 순수한 감리교, 비참과 절망과 영적 무지의 18세기 세계로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사람들은 가난과 불안과 정죄를 무릅쓰고, 소외되고 절망한 사람들에게 구원과 사랑의 말씀을 전하려 그 나라를 종횡으로 여행했다. 나는 이 책을 많은 감리교도들과(다른사람들이) 읽기 바라며,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교훈을 주고 영감을 주기를 바란다.
리처드 왓슨, 「마음의 음악」 서문
“「마음의 음악」은 그 자체로 값진 책이다. 어떤 다른 저자도 음악적 관점에서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의 작품을 접하기 위한 기본 자료를 그토록 정확하게 모아 놓지 못했다. 음악비평가로서 그들의 역할은 풍부한 자료로 표현되어 있고, “서정신학” 부분은 그들의 찬송가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음악적 삶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며, 읽을 만하고, 연구가 잘 된, 전망있는 책이다. 칼튼 R. 영은 그의 자료 선택과 주석으로 감리교회에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아이버 H. 존즈, 캠브리지의 지저스 칼리지 학장
칼튼 R. 영은 그 자료들을 샅샅이 훑어보고, “음악에 대한 웨슬리형제의 자료”라는 모음집을 출판했다. 그것은 웨슬리가 음악에 대한 종교적, 문화적, 기술적, 도덕적, 미적, 영적, 오락적, 개인적, 집단적 측면에 대해 말한 것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일류 자료집이다. 이 책은 감리교가 마음의 종교 또는 서정신학에 대해 한 독특한 기여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교회사가들과 음악사가들은 18세기를 자세히 연구하는데 한없는 가치가 있는 자료집을 갖게 될 것이다.
S. T. 킴브로우 2세, 「마음의 음악」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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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역자 약력
서울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감리교회 남부연회에서 목사안수
미국 남감리교대학교(S.M.U.) 신학 석사
에모리대학교 신학박사
미국인교회 및 한인교회 목회
목원대학교 교목실장, 대학원장, 신학부장 역임
대한 기독교서회 이사
대전 생명의 전화 이사
현재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장
●著譯書
「敎會成長學」(맥가브런/헌터)
「敎役管理論」(린그렌/쇼처크)
「禮拜의 再發見」(박은규 저)
「禮拜의 再構成」(박은규 저)
●主要論文
목회자의 전문성 문제
바람직한 대학교육
본훼퍼의 교회론 연구
찰스 웨슬리의 찬송가 연구
21세기 설교 전략
효과적인 교회성장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