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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공파종회소식

[스크랩] 문경공(文敬公) 허공(許珙) 딸 왕 순비 허씨 묘지명(王順妃許氏墓誌銘)

작성자허철회(학술회장, 운영자)|작성시간13.05.01|조회수43 목록 댓글 0

*왕 순비 허씨 묘지명(王順妃許氏墓誌銘)

 

이제현(李齊賢)

 

황원(皇元) 후(後) 지원(至元) 원년(1335, 충숙왕 복위 4) 을해 월일에 고려국 왕 순비(順妃)가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65세였다. 성은 허씨이며 공암군(孔巖郡)이 본향이다. 증조(曾祖)의 휘(諱)는 경(京)이며, 원 나라 벼슬로 검교상서 우복야 행례빈 소경 지제고(檢校尙書右僕射行禮賓少卿知制誥)이다. 조부의 휘는 수(遂)인데, 원 나라 벼슬로 은청 광록대부 추밀원부사 예부상서 한림직학사 승지(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禮部尙書翰林直學士承旨)이다. 아버지의 휘는 공(珙)인데, 원 나라 벼슬로 광정대부 첨의중찬 수문전 태학사 감수국사 판전리사사 세자사(匡靖大夫僉議中贊修文殿太學士監修國史判典理司事世子師)이며, 시호는 문경공(文敬公)이고, 충렬왕묘(忠烈王廟)에 배향되었다. 선조들은 모두 시초(視草)의 재주가 높아 이문원(摛文院)에서 솜씨를 날렸고, 정사의 중책을 맡아 관복이 대대로 빛났다. 문경공은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인색하지 않고 교만하지도 않아서, 온화한 덕의 바탕으로 쉬지 않고 충성을 다하였는데, 자기 몸만 위해서가 아니었으니,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경사가 있는 것이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비(妃)는 영특한 정기를 지닌 여성이요, 수려한 자질을 가진 선녀로서, 달 아래 옥퉁소가 진루(秦樓) 위에서 우는 봉새를 감동시키고, 물결에 비치는 비단 버선이 낙포(洛浦)에 노는 용을 걸어오게 하듯 하였다. 지대(至大 충선왕 원년) 기유년에 왕 순비(順妃)에 책봉되었는데, 말이 없어도 도리화(桃李花) 아래 길이 나듯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믿음이 있어 종묘의 제사를 받들 만했던 것이다. 녹의(綠衣)의 풍자는 당시에 일지 않았고, 동관(彤管)의 글은 세상에서 족히 신임을 받으리라.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맏아들은 순정군(順正君) 숙(璹)이니, 본조에서 봉작하여 부원대군(府院大君)이라 칭하였고, 천자가 은혜를 베풀어 한림학사에 임명하였다. 둘째 아들은 쌍봉장 노자각(雙峯長老慈覺)이니, 몸의 비단 옷을 벗고 연하(煙霞)에 뜻을 두었으니, 선사(禪師)로 불리면서 이름이 더욱 크게 났다. 셋째 아들은 회인군(懷仁君) 정(楨)이니 적제(狄鞮 서방 오랑캐)의 말을 익혀 석위(席衛)의 행차에 참석하였다. 준례대로 봉군을 이어받았으니, 어찌 삼한 공족(三韓公族)에만 그칠 것인가. 이름이 역사에 드날릴 것이며 양절(兩浙 절동ㆍ절서) 주관이 된 지 이미 오래이다. 맏딸은 영복옹주(永福翁主)이니, 양양군(襄陽君) 김대언(金臺彥)에게 출가하였고, 둘째 딸은 연희옹주(延禧翁主)이니 중서좌승(中書左丞) 길길반(吉吉反)에게 출가하였는데, 의(懿)의 아내가 경중(敬仲)의 어짊을 알아보고, 묘씨(苗氏)가 위랑(韋郞)의 효성을 알아보듯 하였으니, 지금으로 옛날을 비교하여도 역시 부끄러울 것이 없다. 셋째 딸은 곧 백안홀독황후(伯顔忽篤皇后)이니, 태진(太眞)처럼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타 이미 금슬의 정이 흡족하였고 금옥(金屋)에 아교(阿嬌)로 앉으니 황후의 사랑이 더욱 높았었다. 비는 이로 말미암아 화관(華冠)을 내리는 천자의 윤음을 받게 되어 황후의 수레를 타고 궁궐로 가 친히 조회하고, 내창고(內帑庫)의 진귀한 보물을 여러번 받았으며, 어명을 받들고 영화롭게 고국으로 돌아왔다. 절에다 불당을 개설하고 불경을 펴내어 복을 빌어 천자에게 보답하였으니, 지극하다 이를 만하다. 넷째 딸은 경녕옹주(慶寧翁主)이니, 경양군(慶陽君) 노탈(盧頉)에게 출가하였는데, 막내 딸로 사랑을 독차지하였으니 어찌 화려한 의식이 없었겠으며, 어진 사람을 짝으로 얻었으니 여러 가지 덕행이 없었겠는가. 비가 세상을 떠난 지금, 회인군은 수륙 만리(水陸萬里)에 떠나 있으니, 부음(訃音)도 받지 못했을 것이요, 황후는 구중 궁궐에 있으니, 의리상 곡위(哭位)에 임할 수 없는 일이며, 순정ㆍ쌍봉ㆍ영복ㆍ연의는 모두 먼저 저 세상으로 가서 어버이의 뜻을 길이 저버렸기 때문에, 비의 초상에는 염(歛)에서부터 장사까지 오직 경녕옹주와 경양군만이 마음을 다할 수 있었는데, 임종할 때에는 성이 무너지듯 애통해하였고, 관(棺)을 덮을 때에는 강물이 쏟아지듯 눈물을 흘렸다. 다음해 병자 2월 임인일에 덕수현(德水縣) 증산(甑山) 둔덕에 장사지내니, 이는 예법에 따른 것이다. 또 졸필(拙筆)을 청하여 묘지의 명을 새기게 하니, 어찌 촉왕(蜀王)이 쓸데없이 가인경(佳人鏡)을 만든 것과 비교할 일이겠는가. 다만 한객(漢客)이 일찍이 지은 유부비(幼婦碑)에 부끄러울 뿐이다. 명에 이르기를,

 

혁혁한 허씨 가문은 / 於革許宗

나라 초기부터 흥성했는데 / 興自國初

대대로 그 아름다움 성취하여 / 世濟其美

사책에 끊임없이 기록되었네 / 史不絶書

문경공이 겸손하고 겸손하여 / 文敬謙謙

능히 검소하며 덕을 조심하니 / 敦儉愼德

하늘에서 음공 주는 것이 / 天胙陰功

심으면 수확이 있듯 하였도다 / 猶播有穡

상서로운 용꿈을 꾸어 / 儲祥夢虺

영특한 딸 낳으니 / 有女之英

연꽃이 화려함을 양보하고 / 芙蕖讓麗

난초도 향기가 무색하네 / 蘭茝羞馨

이미 은하수에 목욕하였고 / 旣沐鈱潢

자손도 번성하여 / 載繁玉葉

가문에 은총이 넘치고 / 寵溢門閭

족보에 영광이 더하도다 / 光增譜牒

어찌 한 종족 뿐이랴 / 不寧一宗

온 나라 사람들이 사모하네 / 邦人仰之

어찌 한 나라 뿐이랴 / 不寧一邦

천자께서 상 주었네 / 天予賞之

향년 60이 넘자 / 年踰耳順

종시의 영화에도 슬픔이 생겨 / 終始哀榮

청오(靑烏)가 자리를 잡고 / 青烏卜兆

방상이 앞을 인도하도다 / 方相啓行

울창한 저 무덤은 / 鬱彼佳城

임평(臨平)의 언덕인데 / 臨平之阜

임금님의 비이시고 / 邦君之妃

황후의 어머니시로다 / 皇后之母

 

王順妃許氏墓誌銘[李齊賢]

 

維皇元後至元元年歲在乙亥月日。高麗國王順妃薨。春秋六十五。姓許氏。孔巖郡人也。曾祖諱京。皇檢校尙書,右僕射,行禮賓少卿,知制誥。祖韓遂。皇銀靑光綠大夫,樞密院副使,禮部尙書,翰林直學士,承旨。考諱珙。皇匡靖大夫,僉議中贊,修文殿大學士,監脩國史,判典理司事,世子師。贈謚文敬公。配饗忠烈廟。莫不才高視草。擅手筆於摛華。任重調梅。煥腰章於累葉。而文敬克勤克儉。不吝不驕。溫溫惟德之基,蹇蹇匪躬之故。積善有慶。不亦宜乎。妃英精繁㜈。麗質方娥。橫月玉簫。感秦樓之鳴鳳。映波羅襪。步洛浦之游龍。至大己酉。冊爲王順妃。無言成桃李之蹊。有信奉蘋蘩之祀。綠衣之諷。不興於時。彤管之書。足信于世。有男三人女四人。男長曰順正君璹。本朝錫爵。稱府院大君。天子䟽恩。拜翰林學士。次曰雙峯長老慈覺。脫身紈綺。抗志烟霞。被法匠之推尊。號禪師而加大。次曰懷仁君楨。習狄鞮之語。參席衛之行。例襲分茅。何止說三韓公族。名揚部竹。久已爲兩浙州官。女長曰永福翁主。適襄陽君金臺彦。次曰延禧翁主。適中書左丞吉吉反。懿妻知敬仲之賢。苗氏見韋郞之孝。以今况古。亦無愧矣。次則伯顔忽篤皇后也。導大眞以霓裳。琴瑟之和已洽。貯阿嬌於金屋。翟褕之寵俄崇。妃由是。芝綸得賜於華冠。簟茀親朝於蘂闥。累內帑之珍錫。奉璽命以榮歸。開紺宇之檀筵。寫琅函之貝典。祝釐報上。可謂至矣。次曰慶寧翁主。適慶陽君盧頙。愛鍾於季。那無九十之儀。配得其賢。罔有二三之德。今則懷仁去水陸萬里。想猶阻於訃音。皇后處雲霄九重。義莫臨於哭位。順正,雙峯,永福,延禧。並先晞於薤露。嗟永負於棘風。故於妃之喪。自斂及葬。唯慶寧翁主與慶陽君。獨得以盡心焉。屬纊而哀動城崩。蓋棺而泪傾河注。以明年丙子二月壬寅。窆于德水縣甑山之原。禮也。且徵拙筆。用勒幽銘。豈比蜀王枉殉佳人之鏡。唯慚溪客曾題幼婦之碑。銘曰。

於赫許宗。興自國初。世濟其美。史不絶書。文敬謙謙。敦儉愼德。天胙陰功。猶播有穡。儲祥夢虺。有女之英。芙蕖讓麗。闌茝羞馨。旣沐銀潢。載繁玉葉。寵溢門閭。光增譜牒。不寧一宗。邦人仰之。不寧一邦。天子賞之。年踰耳順。終始哀榮。靑鳥卜兆。方相啓行。欝彼佳城。臨平之阜。邦君之妃。皇后之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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