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
1. 로렛또(Loreto)
레마르케(Le Marche)자치주의 주도 안코나(Ancona) 에서 약 28Km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로, 해발 127m의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로렛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성모의 집 Sancta Casa' 과 관련된 기념물과 이탈리아 공예품 및 성물 제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매년 많은 순례객과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2. 기원
로렛또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리아 성지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기를 통하여, 크리스챤 신심이 말씀의 강생 신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온 것은 바로 로렛또의 성모 덕분"이라고 하셨다. 실제로, 옛부터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말씀이 사람이 되셨던 "거룩한 집"이 7세기 전에 로렛또 언덕 위에 당도하였다. 그리고 1291년에는 달마시아의 테르사또에도 잠시 머물렀다(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은총의 모후 성당을 지어 마리아께 봉헌하였는데, 13세기의 주요 성지였다). 또 1294년에는 레까나띠에도 잠시 머물렀는데, 이 곳은 로레따라고 부르는 귀족 영지의 숲속이라고 한다. 성지에 모셔져 있는 현재의 성화상은 바스릴리프 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서, 뱃길을 통하여 옮겨진 듯한 흔적이 뚜렷하다.
로렛또의 거룩한 집이 출현한 이래 수차례의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나자렛 성전에서 분실된 성가정의 집과 일치하느냐 않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런데 이 집의 돌에서 발견된 특색이 나자렛에서 발견된 것과 거의 같다는 판정이 나왔다. 이 사실은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실시된 가장 최근의 발굴작업에서 확인되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이런저런 요소들을 종합해 볼 때, 성소가 이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소의 이전은 "천사들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 1920년 3월 24일, 교황 베네딕도 15세는 "모든 여행자의 주요 수호 성인"으로서 성모님께 또 다른 영예를 드렸다.
3. 역사
12세기부터 형성된 이 도시는 월계수(lauri) 나무가 특히 많아, 도시 이름도 이 월계수의 숲을 뜻하는 라우레툼(lauretum)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로레토는 13세기에 '성모의 집' 이 생겨나면서 순례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다.
1294년으로 기원이 추정되는 '성모의 집'에 대한 전승은 다음과 같다. 예수의 제자들은 성모 마리아의 집을 작은 경당으로 만들기를 원하였는데, 1291년 이슬람교도들이 나자렛을 점령하였을 때, 가브리엘 대천사에 의해 예수의 탄생이 알려졌던 성모의 집이 기적적으로 천사들의 손에 들어올려져서 1291년 5월 9일(또는 10일)에 달마시아의 테르사토(Tersatto)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이 집을 돌볼 사람도 없고 순례객들의 헌신적인 봉헌도 없었기 때문에, 1294년 12월 9일(또는 10일) 천사들에 의해 레카나티(Recanati) 숲 속 즉 로레토의 언덕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로레토의 '성모의 집'은 성모 마리아의 대답(Fiat, 그대로 이루어지소서)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안에서 성모 잉태 사건 때의 그 방을 연상시키며, 하느님은 인간으로부터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함께 고통받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1500년 이후의 역대 교황들은 신자들의 로레토 순례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였으며, 1962년에는 요한 23세, 1979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의 순례를 권장하였다.
14세기부터 유럽의 전 지역에서 이곳으로 순례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그 숫자는 날로 증가하였다. 탐험가 콜럼버스를 비롯해 토스카나와 시칠리아에서 온 사업가들과 각국의 왕과 귀족들도 이곳을 순례하였는데, 이때 이들은 아주 진귀한 선물들을 가져왔으며 많은 순례객들은 헌금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였다. 이러한 재원은 훗날 장엄한 성당 건립의 기반이 되었다.
4. 성당 건축
전승에 의하면, 후에 교황 바오로 2세가 된 바르보 추기경이 이 성스러운 장소를 방문하자 당시 유행하던 악성 페스트가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그가 교황이 되리라는 예언을 이 때 성모 마리아 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이후 교황이 된 바오로 2세가 성당 건립을 명하여 1471년에 베네토 (Veneto)의 마리노(Marco Celldrino da Marino) 의 지휘 아래 본격적으로 착공되었으며, 1476년 마이아노 (Giuliano da Maiano)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1498-1500년 상갈로에 의해 성당 중앙의 둥근 지붕이 만들어졌고, 1513-1551년에는 브라만테(Bramante)에 의해 성당 내부와 광장 등이 건축되었다. 또 산소비노(Andrea Sansovino)는 1518년 11월부터 1522년 6월 사이에 성모 영보 사건을 묘사한 성화와 목동들의 경배에 관한 성화를 그렸으며, 1533년에 라파엘로( Raffaello Monterupe)는 성화 '동정녀 탄생'을 완성하였다.
5. 오늘날의 로레토
로레토와 그 인근 지역의 주민들은 매년 특별 행사로 12월 9일-10일 밤에 "도착을 위한 불 fouchi della venuta" 이라고 부르는 아주 큰 횃불을 밝히는데, 이 예식은 131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횃불은 천사에 의해 나자렛의 '성가'가 이동될 때 천사들에게 길을 알려 주는 상징인데 마치 비행장의 활주로에 불을 밝혀 착륙할 위치를 알려 주는 것과 같다. 로레토의 성모를 '비행사들의 수호 성모'로 선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도 성모 축일이나 동정녀 마리아 성탄 축일인 9월 8일에는 특별 전례가 로레토에서 거행되고 있으며, 보통 4월에서 10월까지는 대성전안에서 "흰 기차"라고 불리는 탈것에 실린 환자들을 위한 특별 전례가 있다.
요한 23세 교황은 1962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기 전날, 이곳에 와 성모 마리아께 공의회의 성공을 기원하였으며, 199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도착을 위한 불" 700주년을 맞이하여 이탈리아의 모든 주교들과 함께 이곳에서 기도회를 갖기도 하였다. 이때의 기도지향은 큰 위기를 맞고 있는 유럽 국가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의 회복이었다. 로레토는 무엇보다도 하느님 말씀이 인간 구원을 위해, 동정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육화된 삼위 일체의 신비를 거행하는 축성된 장소, 나자렛의 성가정을 재생시키는 장소이다.
6. 신자들에게 미치는 영향
처음부터, 로렛또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기도소였다. "거룩한 집"에 대한 신심은 16세기부터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널리 퍼졌고, 순례자들은 성지로 무리지어 몰려들었다. 순례자들은 로렛또의 성모님께 믿음과 자녀적인 사랑을 얻고자하여 오늘의 성모 호칭 기도와 비슷한 호칭으로 기도하곤 했는데, 이것이 1400년경부터 "로렛또의 호칭 기도"라 명명되어, 지금의 성모 호칭 기도의 근간이 되었다.
세기를 통하여 이 곳을 순례한 성인 성녀들의 수효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고, 또 무수한 예술가들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로렛또의 성모 신심에 크게 기여해왔다. 수도회 또한 많은 단체들이 이곳에 자리잡았는데, 갈멜회, 카프친회 그리고 프란치스코회가 대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1962년 10월 4일, 요한 23세 교황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전날 밤에 이 곳의 성지를 찾아오셔서 공의회의 성공을 위하여 성모님께 기도하셨다. 1979년 9월 8일,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로렛또를 순례하여, 미국 방문(10월 2일)을 앞둔 시각에 성모님으로부터 "빛과 도움"을 간구하였다. 또 1883년 5월 27일에는 "거룩한 집 수도회"가 창설되었다. 이 회는 나자렛의 성 가정을 모델로 삼고 크리스챤 가정의 성화를 목적으로 하며, "거룩한 집의 메시지"라는 월간지를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