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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알고싶다

[스크랩] 알고믿자(1)-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란

작성자천산|작성시간13.09.23|조회수3,355 목록 댓글 0

오늘서부터 수차례걸쳐서는 성경구절 풀이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신구약에 내용들 중에는 난해구절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살펴보지 않으면 육적으로는 잘 이해가 안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육적으로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하기에 어려운 구절들이 있기도 합니다. 한편, 성경내용에는 각종 비유구절이나 당시의 시대적 생활상을 반영하는 속담 내지 어구들을 사용하

여 믿음생활과 영의 세계를 표현하는 내용들도 있곤 합니다.

 

 

이에, 이단 사이비들 중에는 자기들 멋대로 비유로 풀이하여 성경에서 말하고자는 본뜻을 심히도 왜곡하여 잘못된 지식과 개념을 주입시켜 자신들의 해석에 남용해가는 일들도 보곤 합니다.

 

 

아무쪼록, 지금껏 질문을 받아왔던 내용과 더불어 간과해버리거나 자칫 잘못 오해될 수 있는 구절들을 토대로,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본뜻이 무엇인가를 한층 더 이해하고 믿음생활에 적용해가는 데 도움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첫번째 시간으로는, 손애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신약을 여러번 읽으면서도 이 말의 본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막연히나마 어떤 어감의 느낌가운데 이해를 한 바로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지않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마냥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듯, 롯의 아내마냥 세속을 못잊어 뒤를 돌아보는 자세를 하지 말라라는 의미도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기서 한번 풀어봅시다. 본문의 구절은 누가복음 9장 62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밭을 갈면서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무슨 의도가 있는것일까요?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밭과 농부들의 경작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내용입니다. 당시의 농부들은 쟁기질을 할때 깊게 파지 않았습니다. 토양이 비옥했던 것도 있지만, 반면 밭에는 돌멩이들이 많았습니다. 하여, 밭을 갈때 농부가 정신줄을 놓고 쟁기질을 하게 되면 돌멩이로 인하여 밭을 일자로 가는 것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더욱이 큰 돌멩이들에 쟁기가 걸리면, 튼튼하지 않은 쟁기들은 날에 흠집이 생기거나 부러지기도 했구여.

 

 

이에, 농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 손으로는 쟁기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막대기를 들고서 쟁기를 끄는 짐승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농부가 뒤를 돌아보는 것은 쉽지도 않았을 뿐더러 자칫 일의 낭패를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문의 말씀처럼 농부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요, 농부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일직선으로 밭을 갈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자가 이리저리 갈지자로 세상에서 방황하며 다니다가는, 우는 사자마냥 삼킬자를 찾는 마귀에게 대번에 걸려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똑바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쟁기를 잡은 농부가 뒤를 돌아보는 행위는 정신을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밭을 가는 행위는 농작물을 심을 땅의 기초를 다지는 것으로서, 매우 중요한 기초작업입니다. 그럼에도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뒤를 돌아보는 행위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감에 있어서도 깨어있지 못하고, 이생의 자랑과 육신 그리고 안목의 정욕에 고개를 돌리는 행위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서 진심 느끼고 싶다고 하지만서도, 정작 세상의 것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세상것들에 기웃거리고 주님과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지요.

 

 

요한일서 2장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하셨는데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해도 이래저래 기웃거리며 다니는 사람의 마음에는 이미 세상을 사랑하고픈 마음이 다분한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난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토로하는 것은 지극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셋째로는, 쟁기를 든 농부가 뒤를 돌아보는 행위는 염려 근심이 많은 것입니다. 밭이 일직선으로 갈아졌나 염려되어 확인차 돌아보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에 집중하지 않으니 잡념과 근심이 틈타고, 한편 잡념과 근심이 틈타니 또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이래나 저래나 밭은 갈긴 갈되 엉터리로 갈게 되는 것이지요.

 

 

본문의 말씀에도 보시면, 주님을 따르되 나로 하여금 먼저는 부친을 장사하고 따르

겠다, 어떤 이는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라도 하고나서 따르겠다 하는 이들이 있었지요. 이것은 육의 선한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마저 합당치 않다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자칫 부당하거나 잔인하게 들여질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친을 장사지내는 일이나 가족과의 작별인사나 생계조차도 제쳐놓고 무조건 주님의 일만 열심히 하라는 말일까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하셨고, 디모데전서 5장 8절에는 믿는 자가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것은 불신자보다 더 나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9장 62절에서 하신 말씀의 본뜻은 육신에 매여 세상일에 염려 근심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열매를 결실치 못할 것임을 염두하고 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렇기에, 가시떨기 밭같은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주는 물질의 유혹과 삶의 염려 근심으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하신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이, 아버지 걱정, 자녀 걱정, 물질 걱정, 노후 걱정등으로 살아가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이 아니라 염려 걱정입니다.

 

 

우리가 염려 걱정하며 자꾸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염려 걱정하는 마음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염려 걱정한다는 것은 믿지 않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쌓아둔 물질이 있어 그 물질을 믿는 사람은 염려 걱정이 상대적으로 덜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물질을 바라보고 믿고 있는 한, 염려 걱정은 죽을때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물질이 주는 능력보다 더 큰 힘을 갖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간추려보면, 손에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이유는 첫째, 갈지자로 밭을 가는 것마냥 세상에서 방황하는 것. 둘째, 정신을 주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마음이 채워져 있는 것, 셋째, 염려 근심이 많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주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은 지금서부터라도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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