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 현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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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8.11.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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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페이퍼가 폐지되는 관계로 페이퍼에 실렸던 글을 여기로 옮깁니다.
[상대성 이론과 상대론적 가치와 진리]
20세기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알버튼 아인슈타인. 1905년에 특수 상대성이론,
1915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여 물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그의
이론은 물리학 뿐아니라 문학, 예술,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쳤다.
1.모든 속도는 상대적이다.
영호라는 한 젊은이가 시속 100km로 가고 있는 기차 어느 한자리에 앉아 여행을 하고 있다. 기차 밖의 풍경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뒤로 후퇴하고 있지만, 기차 안의 영호군은 자리에 편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다. 영호군은 바깥 나무에 대해서는 100km 라는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지만, 기차안에 안의 주변 공기와 의자 등과 함께 똑같은 속도로 100km로 달리고 있으므로, 기차 안에 있는 영호군은 100km라고 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느끼지 못한다. 이것을 물리학에서는 상대 속도라고 부른다. 즉 속도라고 하는 것은 항상 비교 대상에 대한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영호군의 속도는 바깥 나무에 대해서 상대 속도는 시속 100km 이지만 기차에 대해서 속도는 0km 가 된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를 타는 영호에게 있어서 바깥 건물에 대해서는 100km로 움직
이고 있지만, 기차와 함께 가고 있으므로 기차에 대한 상대 속도는 0km이되어 기차안에
서는 바깥의 풍경을 보기 전에는 자신의 속도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1905년 아인슈 타인인은 세계가 놀랄만한 이론을 발표했는데 그것이 바로 특수 상대성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상대성 이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주에서 절대 속도란 없으며, 언제나 상대 속도로만 존재한다"라고. 이야기를 들은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기차안에서는 기차에 대해서 속도가 0km 이지만 여전히 바깥 나무에 대해서는 시속 100km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영호군의 절대 속도는 100km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않는가?"
하지만 정말 나무의 속도가 0km 일까? 조금만 우리의 시선을 넓혀 보자. 지구는 자전 하고 있으며, 위도 38도 (우리나라 38선)경우 그 표면속도는 시속 840km로 움직이고 있어서, 나무 역시 시속 840km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지구는 태양을 1년을 주기로 공전을 하고 있으므로, 이것 역시 고려 되어야 한다. 이뿐일까? 태양이 속해 있는 우리은하는 나선 은하로서 스스로 공전하고 있음이 증명되었으므로, 우리은하가 공전하는 속도 역시 포함해야 한다. 이뿐일까?? 허블이 1929년 적색편이 관측을 통해 우주 전체가 팽창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므로, 우주의 팽창 속도 역시 더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끝일까?? 아니다. 그후에 또 어떤 운동이 있을지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즉 속도를 측정할때는 관측 기준이 되는 속도에 대한 상대 속도만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이것이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성 이론이며, 이 이론이 온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
안드로메다라 불리는 M31은하이다. 태양계가 존재하는 우리은하와 가장 비슷한
형태라고 추측되는 은하로서, 가운데 거대한 블랙홀이 존재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
이 이론이 우주 뿐만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인간에게 가치, 행복, 기쁨 역시 상대 적인것 같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절대적 가치를 인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것은 언제나 비교해야 하는 대상이 있어야만 그 가치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나한테 얼마나 가치 있는 대상일까?? 사실 언제나 함께 있으면 그 가치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기 쉽다. 처음에 기쁨을 주었던 주변의 작은 도움, 친절, 사랑... 이제 이런것은 시간이 지나고 반복되고, 적응이 되면, 어느샌가 그 가치를 잊어 버린다. 비록 내가 지금 시속 100km 로 달리고 있는 기차 안에 있다 하더라도, 처음 출발이외에는 더이상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의미가 없다. 뭔가 좀더 강한 것을 원한다. 하지만 버스를 타건 기차를 타건 비행기를 타건 똑같다. 느끼는 것 처음 가속되는 그 순간 뿐이지 등속도 운동을 하기 시작 하면 우리는 우리의 속도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그러나 그 가치가 나에게서 멀어지고, 그 가치가 없어질때, 비로서 그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기차 안에 있는 영호군은 기차가 빨리 달리는지 늦게 달리는지, 가긴 하는 건지 기차 안에서는 절대 알 수 없다.(기차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 모르나, 기차가 전혀 흔들리지 않게 설계 한다면, 역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모를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기는 굉장히 어렵지만, KTX가 일반 기차보다 흔들림임이 적은 것을 보면, 많은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 졌다고 생각한다. 이 주제는 본 글의 핵심을 벗어 난다고 생각하므로 생략한다.)
하지만 그 시선을 기차 밖으로 옮기면 그제서야 알 수 있게 된다. 창 너머로 빠르게 뒤로 후퇴하는 나무와, 집과 사람, 풍경들을 보면서, 아 지금 내가 움직이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것이다. 좀더 확실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창문을 열어 보면 된다. 나를 외부로 부터 보호하고 있던 창문을 열어 보면, 엄청나게 빠르고 추운 바람이 나의 얼굴을 강타하게 된다. 기차의 창문은 다시 닫으면 되지만, 이미 잃어 버린 가치의 소중함을 느꼈을때, 그 가치를 되찾기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은 비단 개인의 감정이나, 경험에만 적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과거, 전체적이고 절대적인였던 가치 기준이 지금에 와서는 개인적이며, 상대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세시대에 절대적 진리로 인식되었던 기독교는 다양한 종교와 함께 종교 다원주의라는 이름하에 상대적이 되었으며,(사실 과거로부터 상대적이였다는 것이 더 맞겠다) 음악에서 절대적이 였던 조(Key)는 현대에 와서는 무조(無調, Atonality)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신이 내린 절대적이라 믿었던 인간의 성(性) 역시 이제는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마음대로 남자, 여자로 바꾸어 가며,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절대 가치 기준의 붕괴는 퓨전이라는 새로운 사조로 등장하여 현 시대를 이끌어 가는 큰 트랜드중 하나가 되어 있다. 사람들이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 경험, 추억, 기쁨, 행복뿐 아니라, 여지껏 우리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라 인식했던, 학문, 진리, 도덕, 관습, 문화, 음악, 예술등 모든 분야에서 이제는 상대적이다.
상대적 세계속에서 절대적인 것, 광속도 불변의 법칙
하지만 상대성 이론에서 변하지 않는 속도가 있다. 그것은 바로 빛의 속도C(C= 300,000km/s) 이다. 이것을 '광속도 불변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빛은 언제나 일정하다. 빛의 1/2의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영호군이 이 우주선을 타고 빛의 속도의 대하여 같은 방향으로 1/2 로 움직이고 있을때, 상대속도 이론에 따르면, 영호군이 빛를 바라 볼때, 빛은 영호군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1/2의 속도로 진행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여전히 빛의 속도 C 그대로 움직이고 있는것으로 관측된다는 것이다. 더 신기한건 그와 같은 시각, 외부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고,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윤호군에게 영호군이 타고 있는 우주선은 빛의 속도의 1/2로 움직이고, 빛은 여전히 C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움직이고 있지 않던 윤호군에게도, 빛의 1/2배로 움직이는 영호군에게도, 어떤 관찰자가 보던지, 빛의 속도는 C로 불변하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는 c/2의 속도로 움직이는 영호가 보던 전혀 움직이지 않는
윤호가 보던 똑같이 c의 속도로 진행되는 것으로 관측된다.
다시 말하면 빛에 관해서는 위에서 말한 상대 속도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광속도 불변의 법칙 때문에 절대 불가능하리라 생각되었던 시간이 늘어나고, 물질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질량이 증가하고, 길이가 짧은 지는 등 기적같은 (어처구니 없는?)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참 아이러니 하다. 상대적 우주에서 존재하는 절대적 법칙이라..
이 사실은 나를 좌절하지 않게 한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지만 그 상대적 세계 속에서 어느 누가 보더라도 똑같은 절대적 진리,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혼동(Caos) 속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이 진리인지 제대로 알지도 모른체 끝 모를 혼동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가치라, 진리라 여기는 것들을 옳은지 그른지 제대로 된 방향인지 모른체 믿고 가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상대적 가치 속에 있는 이 세계에 절대적 가치가 존재 할까?? 존재 한다면, 그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 절대적 가치만, 그 절대적 진리만 우리가 정말 제대로 인식하고 발견한다면, 아인슈 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이야기 하는 광속도 불변의 법칙처럼 어떤 불가사의한, 놀랍고도 신기한, 기적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새로운 신천지가 그 절대적 진리 너머에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말 그렇다면 한 인생 다바쳐 그것을 찾는다 한들 아까울게 뭐가 있겠는가??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 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13장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태복음 24장 35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