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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일반 (손)

[통합종교]마니교 [摩尼敎, Manichaeism]

작성자혼인잔치|작성시간06.06.13|조회수237 목록 댓글 0

마니교 [摩尼敎, Manichaeism] 
 
 
 
 
 
요약
3세기에 페르시아왕국의 마니가 창시한 이란 고유의 종교.
 
 
 
 
 
 
 
본문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拜火敎]에서 파생되고,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여러 요소를 가미한 종교로서, 교조(敎祖) 마니의 이름을 따서 마니교라고 불렀다. 마니에 관한 사실(史實)은 불확실한 점이 많으나, 일찍이 조로아스터교에 귀의하여 신의 계시를 받고, 30세 때 예언자로서의 자각을 한 후,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깨달은 바를 전파, 조로아스터교로부터 분파하였다. 그 후 조로아스터교의 박해를 받고 화형을 당하였다. 그가 남긴 유서, 즉 《생명의 책》 《샤브라칸》 《신비의 책》 《마니서한(書翰)》(교훈집) 《거인(巨人)의 책》 등이 마니교의 성전(聖典)이 되었는데, 14세기 마니교 소멸 후에 없어져 그 내용을 알 수 없었으나, 20세기에 와서 유럽 학자가 그 사본을 발견함으로써 학계에 널리 알려졌다.

 

 

마니교에는 간명한 교의(敎義)와 예배 양식, 엄격한 도덕계율이 있었다. 그 교의는 광명·선과 암흑·악의 이원론(二元論)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현실세계는 명·암이 혼돈되어 있으나 멀지 않아 광명의 세계가 예정되어 있고, 그 예언자이며 지상의 구제자로서 마니가 파견되었다고 말한다. 마니교도에게는 각자 속에 내재하는 광명의 소인(素因)을 기르기 위한 엄한 계율이 요구되었다. 육식과 음주를 엄금하고, 악행을 삼가며, 정욕을 멀리하여야만 했다. 마니교는 당시 교세가 급격히 발전하여 중앙아시아 일대와 로마제국에까지 확장되고, 다시 인도·중국에까지 전파되었으나 13∼14세기에 쇠퇴, 소멸하였다. 그러나 마니교는 동서 양세계를 문화적·종교적으로 결부시키는 가교적 역할을 한 공로가 크다.
 
 

마니교에 대하여 | Catholic 2006/04/20 11:48 
 
 
http://blog.naver.com/youngsangcho/20023396282
 
 
3세기 무렵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敎)를 바탕으로 하여 파생된 종교. 교조 마니의 이름을 따서 마니교라고 불렀다. 간단하고 분명한 교리와 예배 방식, 준엄한 의무와 도덕계율은 조로아스터교에 의거한 이원론(二元論)에 근거를 두었다. 즉 선악의 근원을 명암에 대비하여, 최고 선(善)으로서의 광명은 애(愛)·신(信)·성(誠)·경(敬)·지(智)·순(順)·식(識)·각(覺)·비(秘)·찰(察)의 10덕에 의하여 구현되며, 암흑은 그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설명된다. 다시 말해서 현실세계는 어둠과 밝음이 혼돈되어 있으나 머지않아 광명의 세계가 열릴 것이고, 그 예언자인 동시에 지상의 구제자로 파견된 자가 마니 자신이라고 하였다.

 

이 교리를 지니기 위해서 신도는 자신 속에 가지고 있는 광명을 기르기 위해 엄한 계율을 지켜야 하는데, 즉 입을 막아 육식과 음주를 금하고, 손을 막아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며, 가슴을 막아 정욕과 물욕, 악한 마음을 억제시켜야 했다. 특히 채식·재계(齋戒)·기도(1일 4회)는 일상의 종교적 사무로서 그 교도의 특색을 이루고 있다. 이 특성은 당시의 인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크게 성하였으며 서쪽으로는 로마제국(4세기 초), 동쪽으로는 인도·중국에까지 미쳤다. 이들의 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끼고 4세기 말 포교 금지령을 내린 이래 로마가톨릭교회의 탄압도 있었으나 13세기 무렵에 이르기까지 그 커져가는 세력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마니는 조로아스터·붓다·예수 계시의 진리를 부분적으로 통합시켜 보편적인 세계 종교를 만들려고 했고 단순한 혼합주의를 넘어서 다양한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는 진리를 추구했다. 마니교는 동·서양을 문화적·종교적으로 결부시키는 교량역할을 했으며 성전으로서 마니의 7개 유서가 전해온다. 


마니교( 摩尼敎: Manichaeism ) | 신화/드레곤/종족 2005/11/30 21:19 
 
 
http://blog.naver.com/dbflql1004/20025432
 
 
마니교

 

마니교(摩尼敎)의 출처나 기원, 그리고 교리는 약간의 모호성을 지니고 있으나  마니교가 3세기 중엽에 자기 자신을 예언자라고 자처하며 새로운 교리를 선포하여  마침내는 추방당한 페르시아 사람인 마니(Manes, A.D. 215-275)와 관련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에게 알려진 바 그의 견해들은 어떤 terebinthus에서 끄집어낸 사상으로 페르시아 이원론과 영지주의, 마르시온주의(Marcionism)와 기독교의 서로 다른 요소들을 혼합시킨 것이다.

 

거기에는 선과 악이란 두 가지의 기본적이며 서로 반대되는  원칙이 있는데, 세상과 인간 속에 내재하는 선행의 요소는 전자로부터 나오고 악의 요소는 후자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구원이란 악의 지배로부터 선의 요소들이 방해되는 것으로 만물은 절대저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구원과 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도 이 목적에 공헌한 사람 중의 하나로서 지금은 마니에 의해 계승되었다. 또한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 가현적(假現的, docetic) 요소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으며, 부활을 부정하고(그러나 전생(轉生)은 비마니교도의 운명이다) 엄격한 금욕  훈련을 강요하는 것은 놀랄 일도 못되며 세속의 권위와 물리적인 권세 역시 비난받았다.

 

마니(Manes)의 추종자들은 평신도와 선택자란 주된 두 집단으로 조직되었었는데, 선택자 계층에는 그리스도와 열 두 사도를 모방하여 한 명의 지도자와 열 두 명의  수령들로 구성되었다. 기독교의 진리에는 위배되는 교리와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마니교는 넓은 지역으로 전파되고 추종자들도 얻었으며, 어거스틴조차 젊은 시절에 한 때  매료되었을 정도였다. 마니교가 끼친 영향은 중세와 종교 개혁 시기의 종파들과 현대의 여러 이교들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참고.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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