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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교(全眞敎)
중국 북송(北宋)시대 말에서 금(金), 원(元)나라 때에 걸쳐서 일어났던 신도
교파(新道敎派)의 하나. 개조(開祖)는 왕철, 도호(道號)는 중양(重陽)이다.
왕철은 섬서성(陝西省) 함양현(咸陽縣) 출신으로서 말년에 산동지방(山東
地方)에서 포교에 힘썼고, 그곳에서 마종의(馬從義)라는 토호를 제자로 삼
았다. 마종의는 왕철이 죽은 뒤 전진교를 이어 받은 마단양(馬丹陽)이다.
그 뒤 구처기(丘處機;長春眞人), 담처단(譚處端), 왕옥양(王玉陽), 학광녕,
손불이(孫不二), 유장생(劉長生) 등 이른바 칠진(七眞)의 7대 제자를 받아
들였다. 특히 구처기가 몽골왕조의 신임을 얻은 뒤부터 화북(華北)에 교세
를 확장하여, 신도교의 필두로서 강남(江南)의 정일교(正一敎) 천사도(天師
道)에 필적하는 교단이 되었다. 전진교의 교의종풍(敎義宗風)은 개조 왕철
의 <중양입교십오론(重陽立敎十五論)>에 나타나 있는데, 구도교(舊道敎)
의 미신적인 주술(呪術)과 부적(符籍) 등을 배격하고, 내관(內觀)과 수양에
의해서 오도(悟道)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점이 불교의 선종(禪宗)에
가깝다. 원나라 때 한때는 불교와의 불도논쟁(佛道論爭)에서 패했지만 재
기하였고, 명(明)나라 이후에는 정일교와 교세를 양분했다. 특히 화북에서
번영하였으며 북경(北京)의 백운관(白雲觀)은 <전진제일총림(全眞第一叢
林)>인 대본산이다.
왕철(1113∼118O)

중국 금(金)나라 도사(道士). 자는 윤경(允卿), 호는 중양자(重陽子). 함양
(咸陽) 대위촌(大魏村;陝西省) 출생. 도교의 일파인 전진교(全眞敎)의 개조
(開祖)이다. 회심(回心) 후 철(喆)로 개명하였고 개교(開敎) 후에는 이름을
철로 고쳤다. 송(宋)나라와 금나라가 교전하는 어려운 시대에 문무 양과에
응시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종남산(終南山) 밑의 유장촌(劉蔣村) 별장(別
莊;뒤의 祖庭)에서 자포자기생활을 했다. 48세 때 감하진(甘河鎭)에서 어느
은인(隱人)으로부터 구전(口傳)으로 선단(仙丹)의 비결을 받았다는 이른바
<감하우선(甘河遇仙)>의 체험으로 종교생활을 시작했으며 노자(老子)와
선종(禪宗) 사상에 접하고 삼교(三敎)를 포섭하는 실천적 금욕주의의 새로
운 도교를 1163년 무렵 세웠다. 신도를 모으기 위하여 산동반도(山東半島)
에서 포교에 힘써 마단양(馬丹陽) 등 <칠진(七眞)>이라는 제자를 양성했으
며 <삼교금련회(三敎金蓮會)>를 곳곳에 세웠다. 고향에서 전도하려고 찾아
가던 중 개봉(開封:河南省)에서 병으로 죽었다. 주요 저서에 <중양입교십오
론(重陽立敎十五論)> <금관옥쇄결(金關玉鎖訣)> <전진집(全眞集)> <교화
집(敎化集)> 등이 있다.
장춘진인(長春眞人)(1148∼1227)
중국 도사(道士). 도호(道號)는 장춘자(長春子). 이름은 구처기(邱處機).
산동서하(山東棲霞) 출신. 금(金)나라 말기에서 원(元)나라 초기에 걸쳐 전
진교(全眞敎) 개조(開祖)인 왕중양(王重陽)의 7진(七眞), 즉 고제자(高弟子)
7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1219년 서정(西征)중이던 원나라 태조 칭기즈 칸
의 부름에 따라 제자 18명을 거느리고 사막을 건너 태조와 만나 도교(道敎)
의 최고책임자라는 칙명을 받고 연경(燕京, 北京)에 돌아왔다. 천장관(天長
觀)에 거주했으며 뒤에 천장관을 장춘궁(長春宮)이라 개칭했는데 이곳이
명대(明代) 이후 전진교총림(全眞敎叢林, 총본산) 백운관(白雲觀)의 전신
(前身)이다. 이 당시의 여행기 <장춘진인서유기(長春眞人西遊記)>가 있고,
이 밖에 문집 <반계집(磻溪集)> 등이 있다. 지금도 백운관에는 장춘조사(長
春祖師)를 봉사(奉祀)하는 구조전(丘祖殿)이 있고 장춘진인 외에 장진인(張
眞人) 이하 8명의 백운관 장교(掌敎;住持) 조사들을 좌우에 배치해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