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종교 일반 (손)

[통합종교]마니교

작성자혼인잔치|작성시간06.06.11|조회수348 목록 댓글 0
마니교 마리아의 토마스 오노다 신부


마니교는 스스로를 '빛의 종교' '정의의 종교'라고 칭하였다. 마니교의 교회에는 '청중'이라 불리는 '구도자'와 '성인'이라 불리는 '상층부'가 있었다. 야마다 쇼 교수는 <아우구스티노의 근본문제>라는 저서에서 아우구스티노가 받아들였던 마니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니교'는 본질적으로 이원론이다. 그것은 영과 물질이라는 두 개의 실체를 내세운다. 전자는 선과 빛과 신이며, 후자는 악과 어둠과 악령이다. 현실 세계는 그 선악이 대립되어 쟁투하는 곳이다. 영과 육으로 이루어져 있는 인간은 영으로 있는 한에서는 신이지만 육으로 있는 한에서는 물질이다. 영적인 인간은 육체의 포로가 되어 있으니, 마치 잘게 쪼개져서 작은 조각이 된 신(神)이 물질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는 영적인 인간을 그 감옥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빛의 세계로부터 이 세상에 파견된 빛의 아들이다. 이와 같이 마니교는 교묘하게 그리스도를 자기네 가르침 안에 받아들였지만, 구약의 신은 완전히 부정한다. 구약의 종교는 유데아 인이 고안해 낸 미신이며 '유데아 인의 신'과 '그리스도'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따라서 마니교는 구약과 신약의 신이 같다고 가르치는 그리스도교를 거스른다. 그러면서도 영과 육의 대립을 설파한 바오로 종도를 높이 평가하여, 그를 마니교의 사도 중 한사람으로 내세운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티노의 시대에 마니교는 이교가 아니고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일개 지파였으며, 그보다도 마니교도들에게는 마니교만이 참된 그리스도교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본질적으로 이언론적(二言論的)인 마니교에게 있어서 구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은 선이고 물질이 악이라면, 모든 불행이 물질에 기인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인간의 구제는 물질로부터 이탈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인간에게 육체가 있는 한 육체 나름의 욕구를 갖고 있다. 그것은 물질에 뿌리를 박고 있음으로 해서 악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생활을 하려는 자는 일체의 육신의 욕구에서 떠나야 한다. 그에 따라서 결혼과 육식이 금지된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이 결혼도 육식도 하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마니교는 두 계급으로 갈라진다. 하나는 그 가르침을 글자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로, 육식과 처를 두지 않고 정결한 생활을 한다. 그들은 '선택된 사람들(electi)'로 '성자(Sancti)'라고도 한다. 다른 한 편인 일반 신자들은 자신이 그처럼 청정한 생활을 할 수는 없지만, 성자들의 생활에 필요한 재물을 공양하고 그 가르침을 들음으로써 구함을 받는 것에 동참한다. 그들을 청문자(聽聞者, auditores)라고 한다. 결국 마니교에서는 성자 계급과 청문자 계급이 마치 출가(出家) 계급과 재가(在家) 계급처럼 명확히 구별된다."

"결국 마니교는 성자에게는 엄격한 생활을 요구하는 한 편으로, 일반 신자에게는 관대하였다. 그에 따라서 일반 신자는 자기 힘만으로는 구원되기가 어려운 열등한 그릇인 까닭에 열등한 그릇에 걸맞게 감성적인 구제의 수단이 그들에게 베풀어졌다. 마니교에는 진언밀교(주: 진언종-불교 종파의 하나)에 비견되는 화려한 의식과 채색으로 꾸며진 공상으로 점철된 구제에 관한 신화가 있었다."

야마다 교수는 다시 그의 저서 <아우구스티노 강화(講話)>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것은 나의 추측으로서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높은 야산의 진언종을 생각하게 한다. 나도 그곳에 한 번 가보았지만, 벽화라든지 그 밖의 여러 가지가 마니교의 것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색채가 강렬함과 동시에 높은 야산의 묘를 보고 느낀 것은 오사카의 유곽이다. 거기에는 모종의 신자가 매우 많다고 한다. 나는 생각했다, '홍법대사를 비롯하여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이 이 산에서 거룩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한편 대사(大師)는 그런 생활을 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서 구렁텅이에 빠진 채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창녀 혹은 온갖 최하계급의 사람들을 구해 준다. 그와 같은 종류의 신앙이 마니교 안에도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이론적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말하자면 느낌이 그랬다."

그런데 마니교의 창설자는 스키티아노스(Scyhthianos)라는 사람으로 이는 스키타이 인이라는 뜻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의 종도들이 살아 있던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는 팔레스티나에서 그리스도교적 그노시스(Gnosis, 주: 영적 지식, 즉 신비적 직관)를 설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제자였던 테레빈토스는 그의 가르침에 관한 책 4권을 썼다. 그 제목은 각각 '현의', '교리요강', '복음', '보배'들이다. 존경하는 스승이 죽은 후 테레빈토스는 바빌로니아로 건너갔다. 거기서 그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 산 위에서 천사의 양육을 받은 '깨달은 자, 즉 부처'라는 이름을 대었다. 그렇게 이루어지되 그노시스에 관련된 교회의 명칭에 자기 이름을 붙인 자는 마니(A.D.216-277)라고 하는 남자였다. 그의 이름을 라틴어로는 마니케우스라고 한다. 그는 페르시아 시대의 사산 왕조 초기에 살았는데, 종교의 창립자 혹은 사상가라고 하기보다는 당시에 중동과 중앙 아시아에 퍼져 있던 그노시스 파 교회를 능숙하게 조직한 남자였다. 최근에 발견된 희랍어 '케른 파피루스(Cairn papyrus, 주: 케른이란 기념비 혹은 묘비를 말하여 돌무더기를 쌓아올린 것)'에 의하면, 마니는 청년 시대에 자기 아버지와 함께 유데아 기독교(주: 유데아 기독교란 유데아교도 아니고 그리스도교도 아닌 절충 교파임) 중에서도 그노시스주의(역자 주: 1-4세기에 널리 퍼진 영지(靈智)를 숭상하던 이단적인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였던 엘카사이 파에 속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마니의 가르침은 다마 말키온과 바실리트가 설교하고 있던 그노시스주의로 그리 독특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특히 세상의 2대 원리를 강조하였다. 결국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어서 그 싸움이 영원하다는 것, 또 윤회전생(輪廻轉生)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업을 '마니'라고 불렀다. '마니'라는 것은 산스크리트 어(범어)로 '보석'이라는 뜻이다. 마니교의 찬송가에 <토마스의 행전>이라는 신비적 직관에 대한 책에서 취한 '진주의 노래'가 있지만 그 속에서 마니는 '왕의 아들'로 나와 있다. 그 '진주의 노래'를 보건대, 창조주가 아담의 몸 속에 귀한 진주를 묻어버렸고, 그 진주가 몸에서 몸으로 전해지다가 마리아의 태내에서 탄생한 예수에게 전해졌노라고 노래되고 있다. 마니 자신도 성령의 역사로 미망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로 묘사되고 있다. 묘하게도 현대에 이르러 프리메이슨도 자기들을 일컬어 '미망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라고 하고 있다. 마니도 저 진주에서 태어난 '보석'이요, 자신의 스승 테레빈토스와 같이 바빌론에 살았다고 한다. 마니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육신의 교회가 높은 곳에 올려진 후에 너희가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나의 사도직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 이래로 진리의 영이신 위로의 주께서 파견되어, 이 최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너희들에게로 왔다. 이는 예수가 말한 그대로다..." 마니는 다시 페르시아(226-651) 사산조의 초대 왕 알데씨르(재위 226-240)가 통치하던 시대에 "위로의 주는 자신이 머물 곳으로 왔다. 그와 대화했다. 그에게 감추어진 현의를 계시하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는 성령과 한 몸이라고 주장했다. 그노시스가 그리스도교라는 줄기를 이용해서 거기에 기생하는 이물질인 것처럼, 마니교도 그리스도교의 용어와 가르침에 기생하는 암세포였다. 마니는 스스로에 대해 이르기를 예수의 충실한 사도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쓰는 편지에는 머리말로 '예수그리스도의 사도 마니'라고 썼다. 마니는 예수를 찬미한답시고 송가를 썼다. 마니의 제자들은 마니를 찬미하는 찬가를 썼다. 마니교의 '게파라이아-교리요강'이라는 책의 서두에는 "깨달은 자(부처)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알데씨르 왕이 통치하던 시대의 마지막에 나는 설교하러 떠났다. 나는 인도인의 나라로 가는 탈것에 몸을 실었다. 나는 생명의 희망에 대해서 설교하였다. 거기서 나는 선발된 자들을 뽑았다. 알데씨르 왕이 죽고 그의 아들 샤프르가 왕좌를 이어받고 나서는 그 해에 나를 가까이 불렀다. 나는 탈것을 타고 인도인의 나라에서 페르시아인의 나라로 갔다가 페르시아에서 바빌론으로 갔다."

마니는 이 '게파라이아-교리요강'의 첫 부분에서 선구자인 세 사람의 이름을 든다. 그 세 사람은 예수와 사라데스와 부처다. 마니는 그 세 사람이 형제이며, 같은 지혜를 통역하는 자라고 말한다. 마니는 예수와 사라데스와 부처를 구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드시 제일 먼저 예수의 이름을 들고, 나머지 두 사람은 마치 예수의 제자인 듯 취급한다. 마니는 자신의 가르침이 그들의 가르침과 같다고 주장한다. 마니는 종교의 창립자는 아니고 그노시스의 교회를 퍼지게 하는 자라고 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