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가톨릭에서의 마리아 숭배는 외면상 여신숭배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리고 교리상으로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성체(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숭배하는 측면이 돋보입니다. 이는 서방기독교의 구원론의 특색인 기독론에 따른 당연한 결과입니다.
동방 정교회는 구원론을 성령론(신화론= 神化론)에 기반하여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마리아를 숭배하지만 서방가톨릭이 예수님의 공적계시와 마리아의 사적계시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마리아의 역할은 단순하고 순진한 여신숭배 사상을 넘어서서 삼위일체 성령의 기능을 수행하는 모상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점 다시한번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인님이 마리아 숭배를 자위적으로 배제할려고 하는 시도에서 자꾸만 문제가 꼬이게 되는 것입니다.
<동방정교회의 마리아론>
동방정교회에서는 마리아가 성령의 기능을 수행하는 모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 글은 동방정교회 신학자의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교회는 마리아를 [그룹 천사보다 고귀하며 스랍 천사 보다 영광스러운 분] [모든 피조물 보다 뛰어나신 분으로 숭배한다.] 교회는 한분이신 중보자를 대치함이 없이 모든 인류를 위해 자기 아들에게 중보의 기도를 올리는 하나님의 어머니를 마리아 안에서 본다. 우리는 그녀에게 중보의 기도를 드려달라고 쉬지 않고 기도한다.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사랑과 숭배는 정교회 전체를 따뜻하게 해주고 활력을 주는 심장이요 정교회 신앙의 핵심이다 .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나 마리아 숭배를 포함하지 않는 신앙은 정교회와 관계없는 다른 신앙이요. 다른 기독교이다. 동정녀 숭배의 결여라는 면에서 개신교는 정교회나 가톨릭교회와는 다른 태도를 지니며 그렇기 때문에 성육신에 대한 개신교의 이해는 그 풍부함과 힘을 상실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완전한 연합은 인간 본성의 신화( 神化) 및 영화 (榮化)와 직접 연관되며. 따라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어머니]와 연관된다. 이 개념이 없으면 성육신은 단순히 표면적이고 신성 포기적인 것, 하나님 앞에서 인류의 칭의를 확보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로서 인간의 본성을 취한 자발적인 자기 비하만 될 뿐이다.
여기서의 성육신은 [죄 때문에 절실하게 필요하게 된 구속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동정녀 마리아는 성육신을 위해서 불가피하지만 외면적인 도구 일단 그 필요가 충족된 후에는 버려지고 잊혀지는 도구에 불과하다.(가톨릭의 구원론은 대속에 중심을 두고 있으나 동방 정교회는 대속이 아니라 신화/신성화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사려 깊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마리아가 요셉에 의해 다른 자녀들을 낳았다거나 심지어 동정녀 탄생 자체까지 부인하는 극단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정교회는 결코 어머니와 아들을 분리하지 않는다. [성육하신 성자에 의해서 동정녀는 신화 되었다.](주님의 성육신은 곧 교회가 하나님과 신인합일한 것을 의미하므로, 교회가 주님과 한영이 된 것, 한 몸이 된 것, 즉 신부가 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경모하면서 그의 모친을 경모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친에게서 인성을 받았으며 , 마리아 자신이 인성을 완전하게 대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마리아 안에서, 타락 이후의 인류가 접근할 수 있는 신성화(sanctity)가 획득된다.] 이것은 절대 원죄론과 다른 성격의 타락과 인류의 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시대 교회의 목적은 성령을 받기에 합당한 즉 수태고지에 합당한 거룩한 인성의 고양, 보존 그리고 준비였다, 그런데 거룩한 인성은 동정녀 안에서 획득되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 성육신의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조건이었다. 그리스도는 인간 본성에 위배되는 어떤 기계적인 과정에 의해서는 성육 되실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 본성 때문에 가장 순수한 인간이 스스로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 성령이 그녀에게 임했다. 수태고지는 동정녀의 오순절이었다. 성령은 그녀를 완전히 신화시키고 그녀와 함께 거하셨다.
## 마리아님의 수태고지는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이기에 그전은 자범죄를 짓는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수 있습니다. 신인합일자는 그의 위격이 상실되고, 주님의 신령위격(Divine person)으로 대체가 되어 그의 모든 언행과 활동과 삶이 그 위격에 귀속이 되기 때문 입니다. 주님과 한 몸이요, 한 영 입니다.(고전6:17, 창2:24, 마태19:6, 12)
그러니깐 수태고지 전은 교회/성도에 대응하면 성령세례 받아서 성화의 길을 가는 그 상태가 됩니다. 성도는 성령세례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자범죄(본죄)를 짓습니다. 마리아님도 수태고지 이전까지는 그와 같은 상태에 있었다고 할수 있습니다.(마리아 개인이 실제로 그랬는지는 불문으로 하고) 주님의 신부가 되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성장했을때 가브리엘의 방문과 아버지의 크신 능력과 성령의 강림하심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됩니다.(누가1:35)
신인합일 곧 신화(Deification/신성화/sanctity)가 이룩된 것 입니다. 마리아님 태내의 예수님은 교회에 대응하면 성도안의 양자(Adoption/휘오데시아)가 됩니다. “나”라는 개인안에 성령세례로 말미암아 개혁(이성)과 중생(의지)이 일어나고, 어느 정도 시간(상태)이 흘러 때가 찼을때 겉사람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잉태가 되고, 출생하게 되어 새로운 자아를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 입니다.
사람의 자아(人我)가 죽고(옛사람), 하나님의 자아(神我)가 잉태되고(새사람), 탄생하게 된 것이 가브리엘의 수태고지와 마리아님의 믿음과 주님의 동정녀 잉태와 출생이라는 성육신(incanation)의 전과정이라는 것 입니다. 사람의 자아는 사람의 아들로 말할수 있고, 하나님의 자아는 하나님의 아들로 말할수 있습니다.
마리아님 안에 예수님은 성도안의 하나님의 아들에 상응 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님 안에서 그분으로부터 인성(human nature)을 입었습니다. 성도(교회)안의 하나님의 아들도 성도안의 것으로부터 그 인성을 취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창2:7)의 아담창조 기사와 같습니다. 땅(교회)의 흙(아파르)으로부터 만들어진 아담이 그렇습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 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의 기원과 본질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새로운 자아는 주님으로부터 기원하여 그분의 본질과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재창조이고, 주님의 경우는 아니므로 독생자(모노게네스/the one and only)와 양자(휘오데시아/Adoption)로서 성별 됩니다.
[동일 본질(homoousios)] 탄생하신 예수님의 본질은 성부와 같다.(성자와 인자)
[상이본질(Anomoean)] 주님에게 있어서 모계적 인간은 성부와 전적으로 본질이 다르다
[유사본질(homoiousios)] 중생한 성도의 본질은 피조적으로 다르나 주님으로부터 말씀에 의해서 재창조되어 유사하게 나타납니다.(양자로서 곧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로서)
[동일 본질(homoousios)] : 알렉산더와 아타나시우스(정통 기독교)가 사용한 단어로서 성부와 성자의 본질은 신성으로 같다라는 말 입니다. [아노우시우(anomoios), 아노모이안(Anomoean)] : "비유사"라는 뜻의 헬라어에서 온 말로서 성부와 성자의 본질은 전적으로 다르다라는 뜻, 아리우스와 아리우스파가 사용한 단어 입니다. [유사본질(homoiousios)] :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중간, 성부와 성자의 본질은 유사하다라는 말 입니다.
(마태19:11,12)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자연적인 고자가 아닌 영적혼인 곧 신인합일자에 대한 관점에서 해석하면, 어머니 교회안에서 중생할 때 고자가 되기로 선택된자가 있다 이 말을 말 합니다. 이는 주님이 선택하고 작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만든 고자란 인위적인 것을 말 합니다.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란 신인합일 하기를 스스로 선택한 자를 말 합니다. ########
정교회는 1854년에 결정된 가톨릭의 교리 , 즉 동정녀 마리아 가 태어날 때부터 원죄가 없이 태어났다는 의미를 지닌 성모 무흠 수태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교리는 동정녀를 인류에게서 분리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녀는 자기 아들에게 인성을 전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정교회는 [지극히 순결한 동정녀 안에 어떤 개별적인 죄도 용납하지 않는다.(수태고지후에)]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모친의 권위에 합당치 못하기 때문이다. 동정녀 마리아와 그 아들 사이의 연관은 아들의 탄생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인성과 신성이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한 지속된다. 주님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 동정녀 마리아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겸손하게 뒤에 머물러 있었으며, 골고다의 십자가 가까이에서 주와 함께 하기 위해서만 표면에 등장하여 아들의 고난에 동참했다. 그녀는 주님의 부활에 참여한 첫 인물이기도 하다.
[동정녀 마리아는 보이지는 않으나 진정한 사도 교회의 중심이었다.] 그녀 안에 원시 기독교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에 마리아에게 아들로 주신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의 비밀이 감추어져 잇다.
교회는 마리아가 자연사 했으나 썩지 않고 아들에 의해 일으킴을 받아 영화된 몸으로 천국에서 그리스도의 우편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몽소승천) 그녀 안에서 세상 창조 안에 잇는 하나님의 지혜의 사상, 그리고 피조된 세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가 실현되었다. 그녀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정당화되므로 , 마리아 숭배는 거룩한 지혜숭배와 혼합된다. 동정녀 마리아 안에는 거룩한 지혜와 피조세계의 지혜 , 성령과 인간적 본질이 연합되어 있다. 그녀의 몸은 완전히 영적인 몸이며 변화된 몸이다. 그녀는 창조의 칭의요, 목적이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는 세상의 영광이요. 그녀 안에서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된다.
동정녀 마리아는 천국에서 영화로운 상태에서 살면서도 [인류의 어머니]로 남아 있으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중보한다. 이런 까닭에 교회는 그녀에게 간구하고 도움을 청한다. 그녀는 세상을 자기 베일로 덮어주며, 세상 죄로 인해 울며 기도한다. 마지막 심판 때에 그녀는 아들 앞에서 중보하면서 용서를 구할 것이다. 그녀는 모든 자연 세계를 거룩하게 한다. 그녀 안에서 그리고 그녀에 의해서 세상은 변화된다. 한 마디로 마리아 숭배는 기독교의 인간론과 우주론, 그리고 기도와 헌신의 삶에 영향을 준다. 즉 케노시스적인 하나님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대니얼 클린데닌, 『 동방정교회 신학 』, (은성.1995)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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