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의 전례에서 왜? 신부님은 성혈에 성체를 넣으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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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영혼을 추구하는 가톨릭신자입니다.
질문:왜? 신부님은 성혈에 성체를 쪼개어 넣으실까?? 궁굼해요 ㅎㅎ
답변: 성체 쪼개기는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 성체조각을 성혈에 넣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 한다고 합니다.
신부님께서 하시는 미사 성제를 일반이 따라하면 독성죄의 큰 대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교회법으로 그것에 대해 엄격하게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만큼 천주교회는 성사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함부로 따라 하지 마시길 권고합니다.
예수님은 조롱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 제1379조
- 제1378조에 언급된 경우 외에, 성사의 집전을 가장하는 자는 정당한 형벌로 처벌되어야 한다.
제1381조
- ① 교회 직무를 도용하는 자는 누구든지 정당한 형벌로 처벌되어야 한다. ②임무의 박탈이나 종지 이후에 그것의 불법적 보유는 도용과 동등시된다.
출처 : 본인 교회법에서 발췌
의견 1
re: 성찬의 전례에서 왜? 신부님은 성혈에 성체를 넣으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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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 죄를 논하기 보다 기요사이는 매년 성 만찬때
온가족이 모여 가족 만찬 즉 파스카의
신비를 기억 하라고 권장 하고 있기도 합니다
혹시 님의 궁금증은 아래 글을 참고 하시면 좀 풀리실것 같기도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성 바오로 (딸) 서원, 교보문고)에서 발췌
성체성사(聖體聖事)
할머니 성체성사를 말씀드리려다보니 “성사”가 설명되어야하고 또 성사로서의 “교회”가 이야기되어야 하며 교회의 역사와 소위 종교개혁까지 설명하다가 매우 중요한 성체성사는 지금에야 설명됩니다.
성체성사란 우리주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가 모든 공생활을 마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그러니까 당신의 몸을 인류를 위한 단 한번의 희생 제물로 성부께 바치시기 전날 밤 앞으로 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즉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은총을 주시기 위하여 보이는 그분의 몸(聖體)을 우리에게 주시는 표징(表徵)으로 주님께서 직접세우신 성사이며 우리 교회의 핵심성사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실 때는 하나의 동굴 즉 베들레헴 마굿간이 그분을 모셔들였지만 그분이 부활 승천하신 후 오늘날에는 각 교회의 제단의 돌이 그분을 모셔들입니다. 그분이 탄생하실 때는 조그마한 아기의 모습으로 그분의 신성(神性)을 감추셨으나 이제 부활하신 그분께서는 보내주신 성령의 힘으로 사제로부터 축성되어 거룩하게 변화된 그분의 몸 즉 성체(聖體)안에서 그분의 신성을 감추시면서 그 안에 실제로 계십(現存)니다.
그분은 옛날 아브라함에게 직접 나타나시지 않고 환상으로 나타나시고(창세 15,1) 모세에게는 가시덤불의 타지 않는 불 속에 나타나셨듯이(출애 3,3-5) 그분이 부활승천 하신 후에는 전능하신 힘으로 밀떡 속에 감추시어 우리들에게 직접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그 힘은 성령이십니다. 성경의 네 복음서(四福音書)를 읽어보면 서로 보궐(補闕)기록하였기 때문에 이 복음서에는 자세히 기록된 것이 저 복음서에는 아주 간단히 기록되었거나 아주 빠져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체성사에 관한 기록만큼은 네 복음사가가 모두 한결같이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성 바오로 사도는 더 풍부하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체성사(聖體聖事)가 우리의 절대 신앙 곧 믿음을 요구하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훗날 인간적인 척도로 하느님의 말씀을 감히 비판하고 반대하는 자들의 출현을 예견하였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우리주님께서 이 성체성사를 직접 세우신 말씀과 성서적 근거는 바로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마태 26,28; 마르 14,22-23; 루가 22,17-19; 요한 13,26-27; Ⅰ고린 11,25-26)라는 말씀과 루가복음서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19; Ⅰ고린 11,25-26)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실제로 계심(現存)을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증명해 보겠습니다.
- 첫째: 성체에 관한 주님의 약속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신 그 이튿날(요한 6,22) 이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에게 당신의 몸에 관하여 예언하셨습니다.
이는 장차 그 성사에는 오천명 만이 아니라 수천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해야 할 것이며 또 그 예(禮)는 언제 어디서든지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되어야 함을 가르치시기 위함에서였습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 6,48).......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내 살이다”(요한 6,51)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요한 6,55)라고 하신 말씀은 비유이거나 또는 어떤 상징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문자 그대로 그 빵이 곧 예수님의 몸이시라는 것입니다.
성서 자유해석을 하는 사람을 위해 미리 말씀 드려야겠군요. 통상 예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비유로 말씀하시고는 반드시 다른 말씀으로 더 쉽게 풀이하시어 그들(제자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당신의 성체에 관한 말씀만큼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라는 유다인들에게는 오히려 강렬하신 어조로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요한 6,53)라고 반복해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라며 여러 제자들이 떠나자 당신 친히 택하신 사도들에게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떠나가겠느냐?”(요한 6,66-67)고 오히려 반문하셨습니다.
비유라면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으시지요.
- 둘째: 예수님께서 직접 성체성사를 세우심에 관하여
할머니,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직접 세우심에 관하여 마태오, 마르꼬, 루가 등 공관 복음에 거의 일치된 문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유다교의 과월절 첫날 양을 잡는 날 저녁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저녁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이 친히 세우셨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는 뒤에 말씀드릴 미사성제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을 올리겠습니다.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마태 26,26-28; 마르 14,12-26)라고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6, 48-56에는 더욱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루가복음 22,19절에는 위의 모든 말씀과 함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성체성사에 관하여 개혁자 루터는 그대로 믿었으나(공존설)“츠빙글리(Zwingli : 파문된 신부)”같은 사람은 스위스 취리히에 그의 교회를 세우면서 “이는 내 몸을「뜻한다」”라고 해석하여 상징(비유)설을 주장하였고, “칼빈(Calvin)”은 “주 예수께서 몸으로 임하시는 것이 아니고 영(靈)으로 임하신다”라고 엉뚱한 말을 하였으며 “칼슈타트”같은 사람은 아예 성체성사에 예수님께서 실재(實在)하심을 부정하였습니다. 이 같은 사람들은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24,35)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면 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다행이 요사이 일부 개신교 교파 중에는 주일 성수때 주님의 성찬예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데 관하여는 부정적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오직 믿음 믿음, 성경 성경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네 복음서에 또 고린토 전서에도 뚜렷이 하신 말씀을 부인하고 있으니 도대체 그들은 어떤 성경과 어떤 복음을 믿는지 또 그 믿음은 과연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는 분명 주님의 계시진리를 어렵다고 배척하는 결과입니다. 또 전능하신 하느님의 계시를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 재보려는 오만입니다. 실지 행동으로는 믿지 않으면서도 입으로만 이를 믿는다고 한다면 이는 거짓입니다. 과연 가난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강보에 쌓여 울던 아기가 하느님이심을 우리는 모두 믿고 있지 않습니까? 이성을 초월하는 존재를 부정하는 소위 합리주의자들이 성체성사를 배척함은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가지만 성서의 진리를 믿고 오직 성경만(Sola Scriptura)을 외쳐온 그리스도의 성도가 그리스도께서 직접하신 말씀을 부인하거나 이 진리를 배척하도록 달리 해석하고 있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처음에 마르틴루터도 이것을 믿었습니다.
- 셋째: 성체를 받아 모심에 관하여(영성체에 관한 것)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명령하여 이 예절을 세상 끝날 까지 계속 실행하라 하셨습니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16)
주님의 이 명령을 사도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켰는지 살펴보면 성체교리에 대한 사도전래의 진정한 신앙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사도들이 다만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여 오늘날 개신교에서처럼 신자들에게 나누어주기만 했는지 아니면 그들이 문자 그대로 믿는 바대로 그 빵과 포도주를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로 축성하였는가를 보면 더욱 확실해 질 것입니다. 성체성사에 관한 마태오복음이 쓰여진지 약 18년 뒤에 성 바오로 사도의 다음과 같은 편지가 고린토 신자들에게 전달되어 낭독되고 이 말씀이 신약성서에 수록되었습니다.
“우리(사제)가 감사를 드리면서 그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은 하나이고 우리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Ⅰ고린 10,16-17). 라고 하셨고 또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 그러니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Ⅰ고린 11,26-2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할머니도 그러셨겠지만 저도 이 성경구절을 수없이 읽었는데도 제가 개신교에 있을 때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만일 이 ‘빵’과 ‘포도주’가 다만 보통 ‘빵’과 ‘포도주’라면 그것을 좀 먹는다해서 어찌 ‘독성죄’나 ‘중죄’가 되겠습니까? 가톨릭 교회에서는 주님의 성체를 영하기 전 대죄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고해성사”를 받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각 사람은 자신을 살피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합니다”(Ⅰ고린 11,28) 라는 성서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옛 교부들도 성체성사에 관하여는 사도 성 바오로와 일치하는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 1세기, 베드로사도의 제자 성 이냐시오는 “그노시스트”라는 이단파를 가리켜 “그들은 성체성사가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임을 신앙하고 고백하지 않음으로 성체성사를 폐기하였다” 라고 하였습니다.
- 2세기, 순교자 유스티노는 당시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에게 호교서를 올려 “우리는 이것을 보통 빵과 포도주로 받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살이됨을 알고 받아 모십니다. 우리는 성체가 예수의 참 몸이요 참 피로 알고 받아 모십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 3세기의 오리제네스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빠스카 예를 행하러 가면(미사) 그분은 당신 몸인 축성한 빵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이요 또 당신 피를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 4세기의 성 치릴로는 예비자들을 가르칠 때 성체 교리에 관하여 “‘예수께서 친히’‘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라고 하신 이상 누가 감히 의심할 수 있으며 아니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가나안 혼인 잔칫집에서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은 믿고, 포도주를 당신 피가 되게 하신 것은 어찌 믿지 못하겠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5세기의 성 아우구스티노(성 어거스틴, 성녀 모니카의 아들)는 새로 영세한 교우들에게 “여러분에게 성체교리에 대하여 강론하기로 약속하였으나 그 성체는 여러분이 지금 보기도 하고 또 간밤에 받아 모시기까지 한 것으로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합니다. 여러분이 본 제대 위의 빵은 한번 하느님의 말씀으로 축성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고 저 잔의 포도주는 한번 하느님의 말씀으로 축성하여 그리스도의 피가 된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솔직히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하는 이 지구상의 그리스도교회 치고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현존하심을 믿고 고백하지 않는 교회는 16세기에 예수님의 이름을 빌려 시작된 일부 개신교 밖에는 없음을 분명 아셔야 합니다.
약 1000여년전 이미 갈라져 나간 그리스 정교회와 오늘날의 영국 감독교회(성공회) 그리고 곱트교회와 시리안 교회, 칼데안 교회와 아르메니안 교회등 가톨릭 교회와는 아무런 연락이 없는 동방교파들도 모두 성체교리를 전통적으로 확신하여 오는 것을 보아도 이 오묘한 교리가 사도 전래의 진정한 신앙임이 분명한데도 일부 교회에서는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제가 이 정도인데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 한 주님께서야 오죽이나 답답하시겠습니다?
할머니, 주님께서도 이렇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있지 않는 다른 양들도 있다”(요한 10,16) 또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요한 10,3)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성서에 몇 차례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라고 분명히 하신 음성을 그들은 아직은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믿음”이 있어야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다만 주님께서 장차 “그 양들도 데려올 때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요한 10,16) 라는 말씀이 머지않아 이루어지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남들은 하느님도 많고 주님도 많아서 소위 신이라는 것들이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다고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느님 한분이 계실 뿐”(Ⅰ고린 8,5) 이기 때문에 그들 형제들과는 속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Ⅰ고린 10,17)
할머니, 오늘날 세상은 예수님께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그것은 세상이 교만해서 보잘 것 없는 빵의 형상으로 나타나시는 우주의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교만해서 영적인 눈이 멀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무시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특히 소위 개혁적인 신학을 한다는 사람들과 주님을 입으로만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가장 무시당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체 안에서 예수님의 현존은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체를 바라볼 때 하늘과 땅의 모든 사랑을 결합시킨 우리 각자에 대한 예수님의 인격적인 사랑을 오직 믿음으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 그리고 성체 안에서 당신 자신을 선물로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미사성제
할머니! 위에서 말씀드린 성체성사는 잔치와 제사와 그리스도의 현존이라는 세 가지 내용을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잔칫상은 기쁨과 만남의 장소입니다. 잔치에 초대되면 누구나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된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올리며 동시에 축복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미사에는 크게 나누어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있으며 이 두 부분은 서로 긴밀히 결합되어 단 하나의 하느님 경배 행위를 이룹니다. 왜냐하면 미사에서 주님의 몸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의 식탁이 차려지며 이 식탁에서부터 가르침과 음식이 신자들에게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열심히 아니 너무도 열심하게 예배 특히 설교 시간에 참석하셨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역시 매주일과 매 수요일(3일 예배), 매 금요일 예배에 빠지지 않았었지요. 그러나 그것은 가톨릭 교회의 미사성제 중 말씀의 전례에 해당되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미사 예절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거기에는 제관과 제물 즉 예수님의 몸과 피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성 바오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또 식후 잔을 드시고 .....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Ⅰ고린 11,23-24)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과 그분의 복음은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한결 같습니다.(히브 13,8) 따라서 미사는 그리스도의 말씀(루가 22,19; Ⅰ고린 11,24-25) 에 따라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는 것이며 사제의 축복으로 빵과 포도주가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사는 교회가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의 극치이며 완전한 찬미와 감사와 속죄 은혜를 구하는 제사로서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중심이며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사제가 없는 곳에서는 공소라고 하는 곳에서 공소 회장 또는 수도자 또는 평신도에 의해 개신교에서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말씀의 전례(공소 예절)만 행하여집니다.
왜냐하면 성찬례를 거행하는 사제는 항상 성부 곁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기 때문에(히브 7,25; 9,24) 사제가 없이는 성찬례가 행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사 예식은 주님의 명에 따라 거행되어지는 예절이기에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비록 언어와 피부색은 달라도 전 세계 10억 5천만 가톨릭 신자들은 꼭 같은 예절과 꼭 같은 절차에 의해 바쳐지고 있습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하나의 교회는 2000년 동안 한결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그 어떤 누구에게서도 직접 “이 예(미사)는 이제 부터는 행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 빵과 포도주는 내 몸도 아니고 내 피도 아니며 오로지 나의 몸과 피의 상징일 뿐이다. 그러니 그저 1년에 한번 기념만 해라” 라고 쓰여졌다는 성경을 보지 못했으며 또 성령께서 누구에게든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개신교에 다닐 때 목회자들이 히브리서 9장 24-28절을 인용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인간의 죄 때문에 다시 희생 제물이 되시는 일이 없이.....” 라는 말을 곡해하여 미사는 필요 없고...... 미사 때마다 예수님은 매번 죽어야 하나?..... 운운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구약의 사제직의 예배와 예절로 추구하여서는 영생을 얻지 못한 바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는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라고 하시면서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루가 22,19) 고 하셨고 또한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사제권을 주시어 세상 끝 날까지 이 제사를 봉헌하도록 하셨습니다.
원래「인류가 있는 곳에는 제단이 있었고 제사는 하느님 공경을 위한 최대의 종교의식으로서 하느님의 권능을 승복한다는 뜻을 표현하는 공식 경신(敬神)행위 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갈바리아 산에서 육체적으로 죽으신 데 비해 최후 만찬 때는 빵과 포도주 속에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서 신비적인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이 최후 만찬과 십자가상의 죽음으로서의 봉헌이 우리 신앙 안에 들어와 미사 성제를 세우신 것입니다. 즉, 당신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의 제사를 지속하도록 하셨으며 당신 권능으로 미사 성제가 당신 제사의 재현이 된다는 확약을 주셨습니다. 즉,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피와 물이 나와 성체와 성혈을 이룸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음의 신비가 미사 성제 안에 재현되고 이것은 미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셨습니다. 이미 최후 만찬 때 당신은 미리 제자들에게 십자가상의 제사의 제물을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미사도 희생이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제헌하신 것도 희생이므로 미사는 곧 희생 제이면서 기념제이고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로 하여금 당신 수난에 일치하여 공동으로 참여케 하는 것입니다.
이 미사 성제의 목적은 십자가상의 제사와 동일한 바 흠숭, 감사, 보속, 청원의 구원 제사입니다.
출처 : 김 안토니오 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성 바오로 (딸) 서원,교보문고)
“가톨릭의 명품성(名品性)이 성장 가져와”/<월간중앙>2월호, 한국 가톨릭 인구 증가요소 분석 | ||||||||||||
성체 성혈의 성사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나눠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건네시자 그들은 잔을 돌려 가며 마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르 14, 22-24).
1. 예루살렘 시온 산의 다락방 예루살렘에 가 보면 멀리서 높은 탑 세 개를 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시온 산 위에 세워져 있는 교회탑이다. 바로 이 탑 아래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셨다는 다락방이 있다. 바로 이 다락방은 가톨릭 교회의 칠성사 중 다섯 가지 성사, 즉 성체 성사, 신품 성사, 견진 성사, 고해 성사, 병자 성사와 관련이 있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현재 프란치스코 수사들이 관리하면서 성지 순례객들을 맞아 최후의 만찬 성체 성혈의 미사를 봉헌한다. 나는 1995년 7월에 이곳을 순례단과 함께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다. 그 때 안 베다 신부님의 강론이 아직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성체 성혈 대축일은 그리스도께서 성체 성사를 세우신 것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흠숭하고 공경하는 날이다. 마태오 복음에는 예수께서 성체 성사를 제정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성체 성사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주신 것이며, 또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기념하는 제사이다.
우리가 믿는 성체와 성혈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온전히 살아계신 것이다. 성체 성사는 칠성사 중에서 가장 존엄하고 모든 성사 중의 성사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성사에서는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시지만 성체 성사에서는 그 은총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친히 계시기 때문이다. 또 성체 성사의 설정 과정을 볼 때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앞둔 최후의 만찬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성사인지를 알 수 있다.
2. 성체 성사의 설립 예수께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그 동안 정들었던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내주시며 이 성체 성사를 세우셨다. 예수님은 이 중대한 예식을 세우시기 위해 미리부터 준비하셨다. 요한 복음 6장을 보면 예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6, 51)라고 하신 일이 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께서 드실 과월절 음식을 저희가 어디 가서 차렸으면 좋겠습니까?"(14, 12) 하고 묻자, 예수님은 그것을 차릴 방까지 일러 주시며 그 방에다 음식을 차리라고 하셨다. 이제 음식을 먹는 도중에 예수님은 빵을 들고 축복하시면서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14, 22) 하셨고 또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드시고는 "이것은 내 피이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14, 24)라고 하시며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게 하셨다.
바로 이러한 예식을 통해서 오늘날의 성체 성사가 성립된 것인데 이 성체 성사는 우리 가톨릭 교회의 가장 중요한 미사 성제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기념하는 최상의 보배이다. 성체 성사의 의미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자.
3. 성체 성사는 최상의 제사이다 예수께서는 이 성체 성사를 통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에 "나는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라고 하신 약속대로 우리와 함께 계시고자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또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 13)라고 말씀하셨다. 옛날 우리 나라의 심청이도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인당수의 제물이 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은 온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인류를 어둠과 죽음에서 구하시기 위해 당신 생명을 희생하신 것이다. 인당수의 제물로 곡식이나 짐승으로는 부족하여 사람 중에서도 처녀를 요구했듯이, 인간의 속죄와 구원을 위해서도 귀중한 인간의 봉헌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이 되신 것이다.
우리는 매 미사 때 성찬 예식을 통해 이러한 사랑의 신비를 체험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최상의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는 말과 글로 다할 수 없는 진리가 많다. 예수님은 인류에 대한 당신 사랑을 많은 말대신에 암시적이며 상징적인 만찬 예식을 통해 드러내신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문설주에 바른 양의 피로 구원받았지만, 신약에서 모든 인류는 파스카의 어린양으로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구원받았다. 즉 예수님은 빵을 들고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하시고 또 포도주를 들고 "이것은 내 피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바로 예수께서 파스카 축제의 어린양으로서 희생될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새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렇게 성체 성사는 예수님의 피로써 하느님께 봉헌하는 제사이다. 그러므로 성체 성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기념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모든 죄악과 죽음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고 감사드리는 예배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체와 성혈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우리는 이처럼 고귀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성체를 올바른 마음으로 모시도록 해야 한다.
사도 바오로가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1고린 11, 27)라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대죄를 짓고도 남의 체면 때문에 성체를 모신다든지, 준비도 안하고 장난스럽게 성체를 모셔서는 안 된다. 성체는 바로 예수님의 몸이다. 성당에 들어오면 먼저 성체를 향하여 공경을 표하고, 또 시간을 내어서 성체 조배를 해야 한다. 우리 신자들은 이 성체 안에서 영혼의 양식을 얻고 영적인 힘을 얻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