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대해서 질문 있는데요. 라틴어,콥트어,히브리어 등등......dlqqhr 2006.06.06 15:15 |
답변 5 조회 5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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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시리아어
아람어
콥트어
이 언어들 지금도 다 쓰는 언어인가요?
아, 그리고요.
성경 원본같은거 제대로 연구하려면 저기 위에 있는 언어들 다 배워야 하나요?
제가 아는게 저 정도인데.....혹시 제가 모르고 있는 언어는 또 없나요?
마지막으로! 저기 있는 언어들의 문자좀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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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경에 대해서 질문 있는데요. 라틴어,콥트어,히브리어 등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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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인사 흠.....
^^a 참 애매한 질문이군요.
라틴어와 헬라어는 각기 이탈리아어와 지금의 그리스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렇다고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언어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조선시대 부터 한글을 쓰고 있지만 세종대왕때의 한글과 지금의 한글은 같은 한글이지만 동시에 엄연히 다른 한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따로 세종시대의 한글을 "고어(古語)"라고 부르지요?
위에서 언급된 라틴어와 헬라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쓰여진 라틴어와 헬라어는 과거의 언어이므로 지금의 이탈리아어와 그리스어와는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아람어는 지금의 아랍어로 바뀌었다고 보면 됩니다.
성경 원본을 배울때 히브리어나 헬라어 정도만 배워도 충분합니다. 아람어나 곱트어 정도까지 들어가는 것은 전문적인 학자들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주 깊게 연구하려면 배워도 상관은 없지만 배우느라 들어간 노력에 비해 얻어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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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답변들 4
라틴어,콥트어,히브리어 등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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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는 그리스어입니다. 지금도 그리스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살아있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헬라어는 신약성경을 기록한 언어이기 때문에 신학자들은 그리스인들과 약간은 다른 발음을 쓰지만 거의 같은 발음으로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구약성경을 기록한 언어입니다.
즉 이스라엘 언어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사라져가고 있었으나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언어를 사용하고 명맥을 이어오다가
이스라엘이 독립한 이후 이스라엘의 공식언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와 비슷한 언어로 시리아어와 아람어가 있는데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문법이 거의 같고 성경에서 몇군데 아람어 단어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AD1세기 이후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였고 전 유럽에서 야용하던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럽의 각 언어가 분화되면서 사라지고 로마카톨릭에서 성경을 라틴어로만 사용하고 있어서 모든 천주교 신부들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하지만 최근 로마카톨릭에서도 각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최초의 번역문이 구약성경이었고 히브리어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 역사상 최초의 번역서입니다.
구약의 원서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뿐입니다. 다른 언어는 번역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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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서 번역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노력 요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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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기록과 번역
성경은 히브리어와 아람어와 그리스어로 된 성서를 다른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성경의 초기 역본들은 손으로 기록되었으므로 필사본의 형태로 되어 있었다.
인쇄술이 도입되고 나서 여러 역본들 즉 번역본들이 더 나왔고 대량으로 발행되었다.
성경은 전역 혹은 부분역이 2300여 개 언어로 발행되었다.
지상 인구의 무려 90퍼센트가 적어도 성서의 일부는 접할 수 있다.
성경 번역본들에 대해 고려해 보면 하느님이 수많은 인류를 위하여 성경 말씀을 보존해 오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게 된다.
히브리어 성경의 고대 역본들 (몇몇 아람어 부분을 제외하고) 히브리어로 기록된 히브리어 성경 전권 혹은 부분의 고대 사본들은 오늘날 아마 6000개는 있다.
히브리어 성경의 고대 번역본들의 많은 사본들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일부 역본들은 일찍이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것을 또 번역한 것이다.
고대 라틴어 역본의 히브리어 성경 부분은 히브리어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판인 「칠십인역」을 번역한 것이다. 반면에 히브리어 성경의 일부 고대 역본들(그리스어 「칠십인역」, 아람어 타르굼, 시리아어 「페시타」, 라틴어 「불가타」)은 히브리어를 직접 번역한 것이지, 그리스어나 다른 언어로 된 역본을 거쳐서 중역된 것이 아니다.
사마리아 「오경」 기원전 740년, 아시리아는 사마리아와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의 주민을 대부분 강제 이주시킨 뒤, 아시리아 제국의 여러 지역에 있던 이교도를 그곳에 정착시켰다. (왕둘 17:22-33) 세월이 흐르면서 사마리아에 남아 있던 자들의 후손과 아시리아가 끌어다 놓은 자들의 후손은 사마리아 사람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히브리어 성경의 앞부분 다섯 권을 받아들였고, 기원전 4세기경에 사마리아 「오경」을 만들었는데, 이는 원래의 히브리어 모세 오경의 번역본이 아니라 그 본문을 사마리아 글자로 음역하고 사마리아 숙어를 섞어 놓은 것이다. 사마리아 「오경」의 현존하는 사본 중에 기원 13세기 이전 것은 별로 없다. 사마리아어 본문과 히브리어 본문 사이에 차이가 있는 약 6000곳 중 절대 다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흥미 있는 차이점 한 가지가 탈출기 12:40에 나오는데, 이 구절에서 사마리아 「오경」은 「칠십인역」과 일치한다.
타르굼 “타르굼”은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의역 또는 알기 쉽게 말을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일부 책들의 초기 타르굼 단편들이 사해 두루마리 가운데서 발견되었지만, 유대인 타르굼은 전체적으로 기원 5세기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타르굼으로 꼽히는 “온켈로스 타르굼” 오경은 다소 직역에 가깝다. 또 다른 것인 이른바 요나단 타르굼 예언서는 그보다는 덜 직역한 것이다. 에스라, 느헤미야, 다니엘을 제외한 히브리어 성경의 책들 대부분의 타르굼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그리스어 「칠십인역」 그리스어 「칠십인역은 이집트와 여타 지역에 사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한 역본이다. 이 역본은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푸스(기원전 285-246년) 시대에 이집트에서 번역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전승에 따르면 그때 그것의 모세 오경을 72명의 유대인 학자가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고 한다. 그 후 어떻게 해서인가 70이란 숫자가 사용되더니 그 모세 오경 역본은 “70”을 의미하는 셉튜어진트(「칠십인역」)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히브리어 성경의 나머지 책들도 (다양한 번역자들이 상당히 직역하기도 하고 다소 의역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점차 번역되어 기원전 2세기 중에, 아마 기원전 150년 무렵에 히브리어 성경 전체가 마침내 다 번역되었다. 그 후 그 번역물 전체가 「칠십인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필자들은 종종 그 역본을 인용하였다.
후기 그리스어 역본들 2세기에 폰투스의 유대교 개종자인 아퀼라는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그대로 직역한 새 번역판을 만들었다. 이 번역본은 단편들과 초기 저술가들이 이 번역본에서 인용한 내용 외에는 남은 것이 없다. 같은 세기의 또 다른 그리스어 번역판은 테오도티온이 만든 것이었다. 그가 히브리어 본문 자체를 고려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역본은 「칠십인역」이나 다른 히브리어 성경 그리스어 역본의 개정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테오도티온 역본의 온전한 사본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히브리어 성경의 또 하나의 그리스어 역본으로는 심마쿠스 역본도 있으나, 현재 온전한 사본이 남아 있지 않다. 이 역본은 아마도 기원 200년경에 번역되었을 것인데, 직역하기보다는 올바른 의미를 전달하는 데 역점을 둔 번역본이다.
기원 245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저명한 학자 오리게네스는 「헥사플라」(“6겹”이라는 의미)라는 히브리어 성경의 여러 언어 역본인 대작을 완성하였다. 이것의 단편은 남아 있지만 온전한 사본은 남아 있지 않다.
오리게네스는 본문을 여섯 난으로 나누어
(1) 히브리어 자음 본문,
(2) 히브리어 본문의 그리스어 음역본,
(3) 아퀼라의 그리스어 역본,
(4) 심마쿠스의 그리스어 역본,
(5) 오리게네스가 히브리어 본문에 좀 더 정확하게 일치시켜 개정한 「칠십인역」,
(6) 테오도티온의 그리스어 역본을 병행하여 배열해 놓았다.
시편에서 오리게네스는 역자 미상의 역본들 즉 그 자신이 퀸타, 섹스타, 셉티마라고 한 역본들을 사용하였다. 퀸타와 섹스타는 다른 책들에도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시리아어(아람어의 한 방언)로 번역한 성경은 2세기 이후로 나왔다. 특히 주목할 만한 시리아어 역본은 타티아노스의 「디아테사론」인데, 이것은 기원 2세기의 공관 대조 복음서이다. 이것은 본래 로마에서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가 후에 시리아에서 타티아노스 자신이 시리아어로 번역하였을 법한데, 확실하지는 않다. 오늘날 남아 있는 「디아테사론」으로는 아랍어 번역본이 있으며, 그에 더하여 그리스어로 된 3세기의 자그마한 벨럼 단편과 「디아테사론」에 관한 4세기 주석서의 아르메니아어 번역본이 있는데, 이 번역본에는 「디아테사론」 본문에서 따온 긴 인용문이 있다.
고대 시리아어 복음서 역본(「디아테사론」 이외의 번역본)의 사본은 온전치 못한 것들만 남아 있는데, 쿠레토니아 사본과 시나이 시리아어 복음서 사본이 있다. 이 사본들은 아마도 5세기에 필사된 것이겠지만, 그보다 오래된 시리아어 본문 내용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원래의 역본은 기원 200년경에 그리스어에서 번역된 것일 수 있다.,
기원 2세기 말까지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이 이미 라틴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또한 3세기 중반쯤에는 이집트어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고대 라틴어 역본들 이 역본들은 아마도 기원 2세기 후반 이후로 나왔을 것이다. 라틴어로 된 성경전서는 늦어도 기원 250년에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사용된 것 같다. 히브리어 성경은 그리스어 「칠십인역」(오리게네스가 개정하기 이전의 것)에서 고대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성경은 번역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어 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다양한 번역판이 나왔거나, 아니면 적어도 여러 번역자들이 고대 라틴어 역본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을 것이다. 학자들은 대개 고대 라틴어 본문의 기본 유형을 두 가지로 즉 아프리카 본문과 유럽 본문으로 분류한다. 고대 라틴어 신약의 사본(혹은 단편)은 50여 개가 남아 있다.
라틴어 「불가타」 라틴어 「불가타」(「불가타 라티나」)는 당대의 으뜸가는 성서 학자인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제롬으로 알려져 있기도 함)의 성경전서 역본이다. 그는 먼저 그리스어 본문과 비교하여 그리스도인 성경의 고대 라틴어 역본을 개정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처음에는 복음서를 개정하여 기원 383년에 발행하였다. 기원 384년에서 390년경 사이에는 그리스어 「칠십인역」과 비교하여 고대 라틴어 시편의 개정본을 두 종류 만들었다. 첫째 것은 로마 시편이라 하고, 둘째 것은 갈리아 시편이라 하였다. 각각 로마와 갈리아에서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히에로니무스는 또한 시편을 히브리어에서 직접 번역하였는데, 이 번역본은 히브리어 시편이라 불린다. 정확히 언제 그가 고대 라틴어 그리스도인 성경의 개정본을 완성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는 히브리어 성경 부분도 개정하기 시작하였으나 그런 개정본을 결코 완성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리스어 역본들을 참조하기는 했어도) 히브리어에서 직접 번역하기를 더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다. 히에로니무스는 기원 390년경부터 405년까지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시초에는 히에로니무스의 역본에 대해 전반적으로 반감이 있었으나, 그 역본은 점차 널리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서유럽에서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지자 그 역본은 「불가타」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역본을 가리키는 말이다(라틴어 불가투스는 “일반적인, 대중적인 것”이라는 의미임). 히에로니무스의 번역 원문은 여러 차례 개정되었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1592년판을 표준판으로 삼았다. 현존하는 「불가타」 사본은 수천 개에 이른다.
다른 고대 번역본들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짐에 따라 다른 역본들도 필요하게 되었다. 늦어도 기원 3세기까지는 이집트의 콥트어를 사용하는 원주민들을 위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첫 번역본이 만들어졌다. 이집트에서는 여러 가지 콥트어 방언이 사용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콥트어 역본들이 나왔다. (남쪽) 상(上)이집트의 테바이크어 즉 사히디어 역본과 (북쪽) 하(下)이집트의 보하이르어 역본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힌다.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모두를 담고 있는 이 역본들은 아마도 기원 3, 4세기에 만들어졌을 것이다.
고트어 역본은 기원 4세기에 고트족을 위해 나온 것인데, 당시 고트족은 모에시아(세르비아와 불가리아)에 정착해 있었다. 이 역본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가 빠져 있는데, 이 번역본을 낸 울필라스 주교의 생각으로는 전쟁을 다루고 우상 숭배를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그 책들을 고트족이 이용하도록 포함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삭제되었다고 한다.
성서의 아르메니아어 역본의 연대는 기원 5세기로 소급하는데, 아마도 그리스어와 시리아어 양쪽의 원문을 번역한 역본일 것이다. 코카서스의 그루지야인을 위해 나온 그루지야어 역본은 기원 6세기 말에 완성되었으며, 그리스어 영향을 받은 표시가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아르메니아어와 시리아어를 토대로 하고 있다. 아비시니아인이 사용한 에티오피아어 역본은 아마 기원 4세기나 5세기경에 나왔을 것이다. 성경의 아랍어 역본도 오래된 것이 몇 가지 있다. 성서의 일부를 아랍어로 번역하는 일은 일찍이 기원 7세기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 724년에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역본에 관한 것이다. 슬라브어 역본은 기원 9세기에 만들어졌으며, 두 형제 키릴루스와 메토디우스가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 wt잡지 성서 번역본 조사 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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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경에 대해서 질문 있는데요. 라틴어,콥트어,히브리어 등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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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는 지금도 이탈리아에서 쓰이고 있죠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성경은 바로 불가타 번역본이랍니다
불가타 번역본은 카톨릭교회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세사람 중 한사람
성 제롬에 의해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과
70인역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예요
헬라어는 지금도 그리스에서 쓰이록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 사이에서 쓰이고 있죠
유대인들은 지식이 충만한 사람들이라서
히브리어와 영어 이 두가지 언어는 마스터하고 산답니다
아람어는 당시도 방언으로 여겨지던 언어였답니다
지금은 지구상에서 중동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만 쓰이고 있다고 하던데요...
(최근 네이버뉴스에서 봤습니다)
쓰이고 있는 언어도 있고 쓰이지 않고 있는 언어도 있지만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려고 보탬에 되려면 언어보다도 문자이겠죠...
물론 언어와 문자를 잘 조합해서 조명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선배는 현재 장신대 재학중인데
유학을 준비하고 있더라구요 이스라엘로 가서 히브리대학을 알아보고
또 히브리 언어도 배우고 문자도 배우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다 배울 필요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안다면 훌륭한 도움이 되겠죠
시리아어는 지금 사용되지 않구요 콥트어도 그렇구요
성경을 보시는데는 대략 두가지만 아시면 됩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죠
여기 하나더 보태자면 라틴어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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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경에 대해서 질문 있는데요. 라틴어,콥트어,히브리어 등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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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는 그리스어로 현재도 쓰이고 있구요
신약을 공부하시려면 필수적인 것입니다. 물론 구약 70인경도 헬라어기때문에
필요하죠~
구약을 공부하시려면 히브리어를 잘 하셔야되구요, 아람어도 나옵니다.
아람어 부분은 포로기 이후 부분이니깐 별로 많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공부하시는 분은 할롯사전을 많이 쓰는데 할롯사전에 아람어도
있기때문에 아람어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시리아어는 고대 근동 문서 연구하실 거 아니면 그렇게 필요하진 않구요~
콥트어는 헬라어랑 비슷한데 외경이 많으니깐 공부하면 좋죠^^
그리고 라틴어는 세계교회사 공부할 때 필요해요~
교부시대에 쓰이던 언어입니다~~
신약 성경이 원래 헬라어로 쓰였나요?hess508 2005.03.06 09:00 |
답변 3 조회 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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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신약 성경이 원래 헬라어로 쓰였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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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인사 매우 유익 했습니다.
[펌]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성 바오로 서원, 교보 문고)
희랍어 성서의 중요성과 신약성서의 형성
◉ 희랍(헬라)어 성서(70인역)의 중요성과 신약성서의 형성
70인역 희랍어 성서는 첫 수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서의 권위를 행사하였습니다. “나는 알파(Α)와 오메가(Ω)”(희랍어의 알파벳)라고,(묵시록 1,8) 하신 우리 주님과 사도들도 이 성서를 사용하셨고 그리고 신약성서의 저자들도 대부분 이 희랍어 번역본을 인용(약300회 이상)하고 있습니다.
초기교회는 이 희랍어 번역본(70인역) 성서를 경전으로 인정하였고(382년) 이것을 공식적인 전례 성서로 받아들여 사용하여 왔습니다.
또한 후기 구약성서들 몇 가지와 신약성서 전부는 (마태오복음만 예외일 가능성이 있음) 원래 희랍어로 쓰여졌으며 로마의 그리스도교 전례도 3세기까지 희랍어로 집전 되었습니다. 또 우리 초대교회는 한결같이 히브리어 성경을 제1경전이라 하여 꼭 같이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1517년까지 사용해 오던 이 성경을 임의로 바꾸어 지금의 유다교와 같이 히브리어 경전만을 구약 성경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할머니께서도 안 가르쳐 주셨기에 저는 아직 모르고 있으며 또“하나님”께서 언제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그랬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제2경전은 역사 학자적인 관점에서 세부적으로 따져 드는 사람들에게는 그 이유가 전혀 없지는 않았었겠지요. 그러나 이 한 묶음의 책들(제2경전)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2경전의 기록 시기와 동기는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기원전 323년) 팔레스티나는 셀류코스 왕조에 의해 정치, 문화, 종교적 박해를 받게 되는데 유단인들에게 안식일과 할례를 금지시키고 율법이 금하는 고기를 먹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신원을 잃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충실히 간직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불어 넣어 주기 위해서 기원전 300-350년경 하느님의 인도하심 즉 영감에 의해 쓰여진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한 묶음의 책들(제2경전)은 우리 교회 안에서 보존되어 내려온 중요한 교리들의 근거를 발견합니다. 구체적으로 부활, 천사와 악마, 연옥 등 구약 히브리 경전 39권에 분명히 들어 나지 않는 계시의 발전상을 보게 됩니다.
또한 신약성서에 많이 등장하지만 구약성서 히브리 경전에 없는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의 역사적 기원도 이 박해 시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 신학적으로는 메시아의 새로운 희망이 싹틉니다. 특히 바리사이파의 부활과 내세에 대한 믿음(지혜서, 마카베오 하권)은 가톨릭교회가 연옥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 성서적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도 이 성서를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용서에 대한 가르침(마태 6,14-15) 은 집회서 28장 2절의 말씀에서, 기도에 대한 가르침(마태 6,7) 은 집회서 7장 14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나에게 와서 쉬어라”(마태 11,28-30) 는 말씀은 집회서 51장 23-27절에서,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루가 14,13-14) 는 말씀은 토비트 2장 2절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가 12,18-19) 말씀은 집회서 11장 18-19절에서 그 내용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칠 형제 모두 한 여자에게 장가를 들었다가 자식이 없이 죽은 후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마르 12 20-23) 라고 한 질문은 토비트서 3장 8절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로마서(1,20)와 지혜서(13,5), 신약 특히 바오로 서간과 야고보서, 히브리서 등에서 제2경전과 같은 내용을 수록하거나 또는 인용한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그리스도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로부터 비롯된 전통에 따라 하느님 말씀으로 인정되어 온 제2경전을 무엄하게도 빼어 버리고는 큰소리는 혼자 치고 있습니다.
또 제2경전은 이스라엘이 알렉산더 대왕을 시작으로 한 희랍제국의 지배 아래서 유다 백성의 본모습, 특히 팔레스티나 밖에서 살고 있는 유다인들의 본모습을 지켜 내기 위하여 지혜 문학의 형식으로 하느님께 충실하고 정의로운 유다인의 표본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신앙의 전통과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재평가하도록 하여 그들의 충실성과 신뢰심을 자극하고 강화하려고 애쓰는 길잡이로써 극심한 압제 하에서의 유다 공동체의 상황 분석, 하느님의 섭리, 하느님의 뜻에 대한 충실성 분별 있는 행동과 저항 및 투쟁, 부모에 대한 사랑 기도와 단식, 온전한 결혼 생활, 죽은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과 순교에 대한 성찰의 기초를 보여주고 신앙의 영웅들을 찬양하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누가 감히 손을 대어 훼손하거나 떼어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팔레스티나에 살고 있는 유태인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매우 이상한 것은 AD90년경이라면 이때의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는데 동참했거나 혹은 죽이라고 고함치던 사람들, 아니면 바로 그들의 2세들로서 성 스테파노(스데반)를 돌로 치면서도 예수님을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일 터인데 그들이 주장하는 히브리어 경전만을 구약으로 삼는 소위 종교 개혁가들의 의도를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예수는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예수님을 배척한 사람들이 주장한 것만을 믿는다?” 어쩐지 좀 어색합니다.
소위 종교개혁 이후 50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저는 성경이 66권으로 변경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몰라도 믿기만 해라”? 그것은 무리입니다. 다만 저는 할머니와 여러 목사님들이 성경이 66권이라니까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성경은 73권이며 하느님은 유대인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만인의 하느님이십니다. “유대인이나 그리이스인(희랍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Ⅰ고린토 1,24).
할머니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저는 약120여 년 밖에 안 되는 짧은 우리나라의 개신교 역사 속에서도 그분들이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 노력하고 있음은 너무나 존경스러운 일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이 기쁜 소식의 복음을 생활화함에 있어 오직 자기 구미에만 맞도록 유한한 인간의 머리로 자유 해석함에 있어서는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같은 행위가 자칫하면 또 다른 교회 분열, 교파 분열을 자초하는 악의 씨가 뿌려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정경의 시대적 변화
BC450년… 모세5경
BC150년… 70인역(구약46권)
AD 90년… ① 팔레스티나 지방 유대인 정경 : 히브리어 성경39권
② 희랍 문화권 지방 유대인 정경 : 희랍어 번역본 46권(70인역)
신약(AD)에 들어와서
382년… 70인역(46권)+신약성경(27권) = 73권으로 약 1700년간,
1517년… 가톨릭교회 : 제 1경전(히브리어39권)+제2경전(희랍어7권)
+신약성경 27권 = 73권
개신교회 : 제1경전만 인정(히브리어39권)+신약성경 27권 = 66권
(교파마다 약간씩 다르나 제2경전을 외경 또는 위경이라 함)
1954년 이후… 세계 기독교 통일신령회 : 원리강록(예수를 실패한 그리스 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몇 년 전 남미계의 어떤 신학자는 「제2경전을 하나의 “소설 또는 사랑 이야기” 정도로 평하면서 엄격히 따져서 마카베오 상권만을 역사서로 여길 수 있다」고 한말이 기억납니다.
할머니께 죄송스러운 말씀이기는 하나 이제 이 손자도 나이가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그 신학자라는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기야 신학자답지 못한 신학자의 이름을 저로서는 일일이 기억할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는 성서 해석 방법을 제시하면서 이 같은 말을 하였으나 성서의 의미를 알아듣게 해주시는 열쇠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는”(마태 11,25) 분이시며 그분께서는 12살 나시던 사생활 시절이나(루가 2,46) 공생활 중에서도 소위 “소설이나 사랑 이야기” 를 읽으시며 이를 인용하시어 말씀하시거나 그렇게 하심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구원은 신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 을 통해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로마 3,28) 으로서 그런 신학자는 우리들에게 혼란을 주지말고 차라리 그의 머리로 추리소설이나 쓰는 편이 더욱 나을듯도 합니다.
왜냐하면 훌륭하시고 많은 신학자들이 우리 교회에 큰 공헌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잘났다하는 적지 않은 신학자들이 그들만의 지식으로 교회분열을 조장해왔기 때문입니다.
기왕 에 언급 되었으니 하나 더 참고 하세요
희랍(헬라)어 성서와 제1, 제2경전
◉ 희랍(헬라)어 성서와 제1, 제2경전
할머니! 이스라엘 역사는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구원의 역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의 역사 중 B.C1000년경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죽자 이스라엘은 두 왕국으로 분리됩니다. 북쪽은 이스라엘이고 남쪽은 유다인데 유다는 정통 다윗 왕가를 계승한 나라이지만 이스라엘은 다윗 왕가를 이탈한 나라가 됩니다(Ⅱ열왕기 17장).
그 이후 이들은 야훼를 배반한 죄로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패망하고 유다는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해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Ⅱ열왕기 25장). 이것이 곧 바빌론 유배입니다. 이때 성전은 폐허가 되었고 예배 의식도 중단되었습니다. 예언자들은 그 까닭이 계약에 불충실한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자기네 죄를 깨닫고 물려받은 유산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과 주석가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성서에 등장하는 율법학자 즉 랍비들(개신교: 서기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유배 기간 동안 자기들의 죄를 통회하는 랍비들에 의해 그들의 성서는 계속 기록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후 B.C333년 희랍의 알랙산더 대왕은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소위 세계를 통일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지중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공용어로서 희랍어를 사용하게 되지요. 이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때부터 랍비(서기관)들에 의한 성서 기록은 히브리어뿐 아니라 희랍어로도 쓰이기 시작합니다. 더욱이 나라를 잃고 떠돌이 하던 유다인과 알랙산드리아 지방에 이민해 온 많은 유다인들과 특히 그 후손들은 히브리말을 잊어 버리고 그리스 문화에 동화되어 버리게 됩니다. 더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들이 자기 민족을 구원하신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뿌리마저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졌으므로 원래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서를 희랍어로 번역할 필요가 절실히 요구되어 B.C250년경 희랍어에 정통한 유다인 학자 70명이 알랙산드리아에 모여 성서를 희랍어로 번역하게 되어 완성한 후 이를 70인역이라 부르게 됩니다. 여기에는 순수 히브리어 성서에서 희랍어로 번역된 39권과 희랍어로 쓰여진 7권을 합쳐 총 46권의 성서가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340여년간 사용해 오던 이 성서는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AD(주후)70년에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팔레스티나에서 쫓겨난 후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여긴 율법 학자들은 AD90년경 유대인들이 율법을 간직하고 유대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히브리 언어를 강조한 40권의 히브리어 성서 중 원본을 찾지 못한 1권을 제외한 39권만을 최종적으로 확정하고 희랍어로만 쓰여진 7권의 성서는 정경에서 제외 시켰습니다.
이때부터 구약성서의 정경이 두 종류가 나타나게 됩니다.
* 팔레스티나 유대인 정경 : 제1정경(히브리 정경)
* 헬라(희랍)문화권 유대인 정경 : 제1경전 및 제2경전이라 불리는 정경 목록 - 바룩서, 토비트서, 유딧서, 마카베오 상․하, 집회서, 지혜서 (7권)
* 이중 마카베오 상권은 원래 히브리어로 쓰여졌으나 원본이 분실되고 희 랍어 번역본만 남아 있다고 하여 이것마저 제1경전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집센 유다인의 한 모습을 또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사도들과 사도시대 교부들 중 누구도 제 2경전이 성령의 영감을 받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원래 제2경전이라는 용어는 중세기에 시에나의 식스토(1528-1569)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고 초기 교부 시대에는 제1경전, 제2경전 구분 없이 그저 “교회의 책들(Libri ecclesiastici)”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소위 종교 개혁자들은 16세기 이르러 제 2경전을 성경에서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또 1534년 독일어로 번역한 구약성서 끝에 제2경전을 "외경(Apokrypha)" 으로 간주하여 부록으로 붙여 놓았습니다.
원래 외경이란 용어는 “감추어진” 이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희랍어, Apokryphos)에서 나온 말로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감추어진”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이것마저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정경(즉 교회의 책들)이외에 유다인들과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읽혀지고 있던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을 “외경”이라고 하며 신앙생활에 유익이 된다고 믿고 있으나 개신교에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를 “위경(僞經)” 즉 “거짓된 책(Pseudepigrapha)” 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이 성서에 관하여 현재까지 가톨릭과 개신교간에는 그 용어상 차이가 있어 여기에 표시합니다.
가톨릭...................... 개신교
제1경전........................ 정경
제2경전......................... 외경
외경 ............................위경
※최근 꿈란동굴에서는 히브리어로 쓴 제2경전이 일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 김 안토니오 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성 바오로 서원, 교보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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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답변들 2
re: 신약 성경이 원래 헬라어로 쓰였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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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오시기 전 기원전 3~2세기 정도쯤에 유대인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헬라의 지배 하에 잇었기에 헬라화가 되어서 점차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 당시 세대들을 위하여서 72명의 학자로 추정되는 유대인 학자들로 그 성경들을 헬라어로 변역해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로서 그 헬라어 성경은 성경을 이해 못했던 세대들에게 예수님이 오시기 전 모든 사람들에게 그 오심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히브리어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이 성경을 70인역 즉 셉투아 진트라고 합니다.
그 셉투아진트는 기독교의 정경이 되었고 예수님의 설교에서도 인용되기까지 할 정도로 권위있는 성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칠십인역 성경에는 칠십인역 성경에만 포함된 다른 히브리어 사본이 발견되지 않은 즉 지금의 정경 외에 '외경' 이라 하는 성경의 권위가 의심되는 많은 책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는 것이었죠.
그것은 또 기원후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학자들에 의해서 성경은 지금의 39권의 구약의 형태로 정해지고 외경은 탈락된 것입니다.
그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 구약 성경을 '제롬' 이라는 사람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하게 되는데 그것이 기원후 400년 경 완성되었습니다. 그 성경이 가톨릭의 정경인 라틴 벌겟 혹은 불가타라고 하는 LXX성경으로 70인역을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경은 이미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성경의 권위를 부정당했고 정경에서 제외되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외경을 인정하는 카톨릭을 못마땅히 여기고 대항하였으므로 외경이 포함되지 않은 본래 히브리어 성경 즉 유대 학자들이 원래는 자음으로만 기록된 히브리어 성경에 모음을 첨가하여서 만든 8세기에서 11세기 경의 맛소라사본(MT)를 중심으로 번역을 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의 개신교 성경은 맛소라 사본 중 가장 완벽하게 번역되 있는 레닌그라드 사본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헬라어와 히브리어 성경을 인정하는데 서로 견해가 다른 것은 외경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간단하게나마 답글남기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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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신약 성경이 원래 헬라어로 쓰였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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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하는 일이 다 그렇죠 니가 옳다 내가옳다 하며 성서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여러분파가 생기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