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개신교 (손)

[성경인물]기름부은 받은자, 바사의 고레스 왕(재위 BC 559~529),

작성자혼인잔치|작성시간09.04.08|조회수1,280 목록 댓글 0
 

이름의 뜻은 ‘태양’임.

조로아스터교 아후라 마즈다


·메대와 바사를 연합하여 통합 국가를 세운 바사의 초대왕임(B.C. 559-530).

·점령국의 종교를 말살하지 아니하고 장려했으며, 유대인들을 본토로 귀환시켜 성전을 건축하도록 도왔음(스 1:1-4).

·하나님은 고레스 왕을 쓰셔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고레스 왕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이사야 44장 24, 28절).

고레스 왕이 태어나기 약 113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고레스 왕이 성전의 기초를 다시 놓을 것과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라는 명령을 하여 여호와를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어요. 우리는 이 예언이 바벨론의 70년 포로 기간이 끝나 갈 때 성취된 것을 다니엘서를 통해 알 수 있어요.

유명한 헬라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고레스에 대해서 적어 놓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합니다.

아스티아게스라는 메데의 왕이 하루는 꿈을 꾸었어요. 큰 강이 아시아로 흘러가는 꿈이었어요. 왕의 꿈을 해석해 주는 지혜로운 사람이 “이 꿈은 당신의 딸 만데인의 아들이 세계를 정복할 꿈입니다.”라고 얘기했어요. 이웃하고 있는 페르시아국은 메데 나라에 언제나 호의적이어서 아스티아게스 왕은 그의 딸 만데인을 페르시아 왕자 캄비세스와 결혼시켰어요.

얼마 후 만데인은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고레스라고 지었어요. 이것을 본 아스티아게스 왕은 생각했어요. ‘이 아이를 죽여야겠다. 그러면 절대로 날 정복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믿을 만한 종 할파거스를 불러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가서 죽이고 다시 와서 나에게 죽은 것을 확인시키”라고 명령했어요. 고레스 왕자가 할아버지에게 죽게 되었어요.


할파거스는 가난한 양치기에게 이 일을 시켰어요. 고레스 왕자를 안고 양치기 아저씨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가 울고 있었어요. 며칠 전 태어난 자신들의 아들이 방금 죽었다면서…. 양치기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안고 있던 아이를 내밀며 “자, 아이들의 옷을 바꿔 입히세요. 우리가 살아 있는 왕자를 키우고 죽은 우리 아들을 못되고 늙은 왕에게 데려다 줍시다.”

이렇게 하여 고레스 왕자는 양치기 아들로 자랐어요. 이 일은 고레스가 열 두 살이 될 때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어요. 하루는 고레스가 동네 아이들과 군인 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장군 역할을 맡은 고레스가 장군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귀족 아들에게 벌을 주었어요. 귀족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였고 귀족은 왕에게 보고하였어요. 왕은 양치기 아들을 혼냈지만 고레스의 늠름함과 의젓함에 감동을 받았어요.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여긴 왕은 양치기 아저씨에게 진실을 물었어요. 고문에 견디지 못한 아저씨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왕은 고레스를 원래 부모에게 돌려보내면서 페르시아와 화목하게 지낼 것을 기대하였어요. 고레스가 자라는 동안은 평화가 유지되었어요. 그러나 고레스가 자라서 페르시아 군대 장군이 되고 성경의 예언대로 메데와 페르시아를 통일하게 되지요.

놀라운 능력이 있는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의 미래를 알고 계시고 각자를 향한 최선의 계획이 있으시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여러분의 계획을 그분께 맡겨 보세요.

 

 고레스 왕의 임무 (이사야 45:1-13)


  1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2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4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
찌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8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찌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 돋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
하였느니라

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 화 있을찐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10 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났느냐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하느냐
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

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13 내가 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질문자 선택

답변

kangian

답변채택률 83.7%

2003.11.03 12:40

 

먼저 표면적으로 구약 당시의 고레스왕을 살펴보면, 바사(페르시아)제국의 건설자로서(재위 BC 559~529),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이라고도 불리우며(캄비세스 1세의 아들), 헤로도토스의 문헌에 보면 생후 즉시에 산중에 버려져 이리의 젖으로 자랐다고 한다. BC 559년 안샨왕이 되었으며, BC 550년에는 아스티아게스를 쳐서 메대(메디아)를 멸망시켰고, BC 546년에는 리디아의 도읍 사르디스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연대 즉 BC 538년 갈데아(신바빌로니아)를 멸하여 바벨론에 잡혀 있던 유대인들이 이 때 해방받게 되었다.


1. 생애와 전설

BC 590~580년 메대(메디아)가 아니면 페르시스(지금의 이란 파르스)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고레스라는 이름이 개인의 이름인지 군주가 되었을 때 부여된 왕호(王號)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 의미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아케메네스 제국이 창설된 뒤에 이란과 관련된 자료에 그 이름이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 이름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고레스(키루스) 대왕이 그 이름을 사용한 페르시아 통치자로는 최소한 2번째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아카드어(그리스도교 이전 시대 메소포타미아 언어)로 된 한 설형문자 문헌에는 "그는 항상 왕권을 행사해온 가문 출신으로 안샨 왕 테이스페스 대왕의 후손이며 안샨 왕 고레스(키루스) 대왕의 손자이고 안샨 왕 캄비세스 대왕의 아들이다. 어쨌든 고레스(키루스)는 오랜 통치자 가문 출신인 것이 분명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생애에 관해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저작이다. 크세노폰이 쓴 이상화된 전기는 역사논문이라기보다 이상적 통치자에 관해 그리스인들을 교양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고레스(키루스)가 페르시아의 자기 나라 백성들만이 아니라 그리스인과 다른 민족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페르시아인들은 고레스(키루스)를 자신들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후의 아카이메노스 왕조 군주 가운데 그렇게 존경 받은 인물은 없었다. 헤로도토스와 크세노폰, 그리스의 사가인 테시아스 등이 이야기하는 키로스의 어린 시절은 고레스(키루스) 전설이라고 할 만하다. 그것은 명백히 한 왕조의 창건자에 대해 거의 초인적인 자질을 지녔다고 믿는 민간신앙의 정형(定型)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란 역사에 등장하는 후기 왕조의 창건자들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믿음이 존재한다. 전설에 따르면 메대(메디아)인의 왕이며 페르시아인들의 대군주인 아스티아게스가 자기 딸을 페르시스에 있는 자기 신하인 캄비세스라는 군주와 결혼시켰다. 이들 사이에서 고레스(키루스)가 태어났다. 그 아기가 자라서 자기를 멸망시키는 꿈을 꾼 아스티아게스는 고레스(키루스)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의 수석고문관이 아기를 죽이는 대신 양치기에게 주어 기르게 했다. 10세가 된 고레스(키루스)는 뛰어난 자질 때문에 아스티아게스에게 발각되지만 아스티아게스는 자신의 꿈에 개의하지 않고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여 살려주었다. 페르시스에서 성인으로 자란 키로스는 자신의 외할아버지이며 대군주인 아스티아게스에게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아스티아게스는 군대를 이끌고 고레스(키루스)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했으나 BC 550년 그의 군대가 그를 배신하고 고레스(키루스)에게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 고레스(키루스)의 정복역사

메대(메디아)인의 제국을 계승한 뒤 고레스(키루스)는 먼저 이란 고원에 사는 이란 부족들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한 뒤 서방으로 확대해나갔다. 소아시아의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는 아스티아게스가 몰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메대(메디아)인을 희생시켜 자기 영토를 확대했다. 고레스(키루스)는 메대(메디아) 왕의 후계자로서 리디아를 치러갔다.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는 BC 547(또는 546)년에 함락되고 크로이소스는 살해되거나 분신자살했다. 어떤 자료에는 그가 고레스(키루스)의 포로가 되어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도 나온다. 리디아 왕의 신하국이던 에게 해 해안지방 그리스의 이오니아 도시들은 이제 고레스(키루스)에게 복속되었으며 대부분이 평화적으로 굴복했다. 몇 군데 반란을 일으킨 그리스 도시들은 나중에 가혹하게 진압당했다. 그 다음에 고레스(키루스)는 바빌로니아로 화살을 겨누었다. 그곳의 군주 나보니두스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을 구실로 그는 평야지대를 침략했다. 거대도시 바벨론의 민족신인 므로닥(마르두크/렘 50:2)를 섬기는 제사장들까지 나보니두스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에 정복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BC 539년 10월 고대 세계의 가장 큰 도시였던 바벨론이 바사(페르시아)인의 수중에 떨어졌다.

구약 에스라 1:1~4절에서 고레스는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을 해방시켜 고향에 돌아가게 해준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바빌로니아인과 다른 민족들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었다. 그는 므로닥 신을 존중하고 지방 관습을 지지하는 한편 지방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 지방 주민들을 무마했다.

바벨론의 점령으로 고레스(키루스)는 메소포타미아 뿐만 아니라 이전에 바빌로니아인들이 정복했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까지 수중에 넣었다. 소아시아에 있던 실리시아의 왕은 고레스(키루스)가 크로이소스를 공격할 때 고레스(키루스)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실리시아는 고레스(키루스)의 제국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했다. 이와 같이 군사력과 외교적 수단까지 동원해 고레스(키루스)는 당시 유례가 없었던 최대 제국을 건설했다. 고레스(키루스)는 몇 군데에 도읍을 두었던 것 같다. 하나는 예전에 메대(메디아)인의 수도로 오늘날의 하마단에 해당하는 엑바타나 시였고, 다른 하나는 페르시스에 지은 제국의 새 수도 파사르가다에로 고레스(키루스)가 아스티아게스에게 승전을 거두었던 터에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남아 있는 유적은 얼마 안 되지만 방문객들의 찬탄을 자아낸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겨울 수도로 삼았다.

결코 페르시아 국수주의자가 아니었던 고레스는 피정복민들에게서 기꺼이 배우는 자세를 취했다. 그는 메대인을 무마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페르시아인과 결합해 두 민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이원적인 왕국을 꾸렸다. 고레스(키루스)는 페르시아인들을 신하로 거느리고 제국을 통치했던 메대(메디아)인들에게서 왕권의 전통을 빌려와야 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들은 아마도 메대(메디아)인 한 사람을 총리대신 비슷한 고문관으로 삼는 것이 관례였던 것 같다. 다리우스 시대 이래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에서 출토된 후기의 부조를 보면 한 메대(메디아)인이 대왕과 나란히 있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또한 페르시스 토착민이던 엘람인들도 여러 면에서 페르시아인의 스승이었다. 예컨대 페르세폴리스에서 출토된 석재 부조에 페르시아인들이 엘람인의 옷을 입고 엘람인이 만든 물건을 들고 있는 모습이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정부형태와 통치방식에서도 새로운 것이 없이 다른 민족의 것을 차용하여 그것을 새로운 제국에 맞게 응용했다. 고레스(키루스)는 거대한 제국을 만들어내는 데서뿐만 아니라 아카이메노스 특유의 문화와 문명을 형성해내는 데서도 지도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고레스(키루스)의 가정생활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2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1명인 캄비세스가 그를 계승했다. 다른 한 아들 바르디야(그리스인들이 부르기는 스메르디스)는 캄비세스가 집권한 뒤 비밀리에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오빠인 캄비세스와 결혼한 아토사라는 딸과 그밖에도 두 딸이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에 자취를 남기지 않았다. 고레스(키루스)는 아스티아게스를 무찌르고 메대(메디아)인이 소유한 동부 이란의 영토도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 지역의 통치권을 확립하기 위해 그는 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다.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뒤 그는 다시 동쪽으로 진격했다. 헤로도토스는 카스피 해 동쪽에 사는 유목민족들을 상대로 그가 벌인 원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고레스(키루스)는 처음에 마사게타이족이라고 하는 유목민족의 여왕을 무찌르고 그녀의 아들을 포로로 잡았다. 그 아들이 포로로 있다가 자살하자 어머니가 복수를 맹세하고 고레스(키루스)를 무찔러 죽였다고 한다. 헤로도토스의 이야기는 지어낸 것일 수도 있지만 고레스(키루스)가 중앙 아시아를 정벌했던 것은 아마도 사실인 것 같다. 멀리 변방에 있는 소그디아나에는 키레스카타 또는 그리스어로 키로폴리스라고 하는 도시가 있었는데, 이는 고레스(키루스)의 동방 정복이 얼마나 먼곳까지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로 보인다.



3. 고레스(키루스)의 유산

아케메네스 제국이 그 창건자인 고레스(키루스)의 사후에도 끊임없이 확대되어 2세기가 넘게 존속했다는 사실은 그의 능력이 대단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레스(키루스)는 위대한 정복자이며 행정가였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인들의 마음 속에서 로마의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스라엘의 모세 같은 지위를 차지했다. 그의 무용담은 세부내용에서 고대세계의 다른 영웅이나 정복자들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갓난아기 고레스(키루스)를 양치기가 맡아 기른 이야기는 이집트에서 모세가 강가의 갈대 사이에 버려진 이야기를 연상시키며 폭군 할아버지를 타도한 이야기는 다른 신화와 전설에도 흔히 나온다. 고레스(키루스) 전설은 일찍이 페르시아인들에게서 생겨나 그리스인들에게 전해진 것이 분명하다. 페르시아인들의 고레스(키루스)에 대한 존경이나 외경의 감정은 그대로 그리스인들에게 전달되었다. 크세노폰이 그리스인 동포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고레스(키루스)를 통치자의 모범으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간단히 말해서 고레스(키루스)는 제국 창건자 이상의 존재로 역사 속에 남아 있다. 그는 고대 사람들이 통치자에게 기대한 탁월한 자질의 상징이 되었으며 용맹하면서도 관대하고 아량 있는 정복자로서의 영웅적 특질을 지녔다. 그의 인품은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져 그들 자신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영향을 미쳤고 로마인들이 전하는 전설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71년 이란은 고레스(키루스)의 제국 창건 2,5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참고문헌

The Heritage of Persia : R. N. Frye, 1963

History of the Persian Empire : A.T.E. Olmstead, 1948


그리고 한 개신교인의 시각은 이렇습니다.......


고레스는 「태양」이라는 뜻이다.고레스는 캄비세스왕의 왕자로 그의 어머니는 만다네였다.고레스는 바사 제국을 일으킨 왕으로 유능한 인물이었다.정치적 자질이 풍부하였으며 군사 전략이나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도 선견지명이 있는 특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러 나라를 통합하여 통치하는데도 어려움이 없었다.그가 바사 나라를 일으키자마자 메대를 공격하여 아스티아게스 왕의 항복을 받아 바사와 메대를 통합하였다.

또한 고레스는 바벨론을 공격하여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바벨론 도성도 점령하였고 큰 잔치를 벌여 유흥을 즐기던 벨사살 왕을 잡아 처형하였다.결국 바사 나라는 고레스로 인해 대제국이 되었다.고레스는 하늘에 계신 여호와를 모든 신보다 위대한 분으로 선포하고 그 여호와 하나님이 이 큰 나라를 자기에게 허락하신 것으로 고백할 만큼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합병하자 즉시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여 본국으로 돌아가게 허락하였다.그는 조서와 측량을 통해 유다백성은 예루살렘에 돌아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고 권고하였다.이것은 고레스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하는 방법이었다.이때에 유다 및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그리고 레위인들이 성전 기명과 금 은 패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은 고레스왕과 같은 이방인을 통해서도 그 뜻을 이루신다.이는 하나님의 주권이다.둘째,이스라엘이 패망하자 바사제국이 일시적으로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역사의 섭리자는 하나님이시다.〈이병돈·은평교회 목사〉

고레스 왕에 대해

yho5958

답변채택률 41.7%

2003.11.02 23:41

 

고레스(Cyrus)왕은 '태양'이라는뜻입니다.

 

바사제국의 초대왕(주전559-530재위) 캄비세스 1세의 아들로 549년 메대의 속박을 벗어나 546년 리디아를 물리치고 동시에 그리스의 이오니아를 정복 했습니다. 동으로 옮겨 인도까지 이르렀습니다. 549년 바벨론에 입성하여 자신을 백성들의 해방자로 자처 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남겨두었던 신상들을 원래 있던 성읍들로 되돌려 보냈으며 포로들을 귀향시키는 인정도 베풀었습니다. 그의 온건한 정치는 히브리인에게도 파급되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유다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 하라고 권면했습니다(대하36:22-23,스1:1-6). 이사야는 고레스를 '기름부은자'로 보았습니다(사44:27-28,45:1-5). 그는 아들 캄비세스에게 왕위를 물려준후 원정을 나갔다가 가을에 전사하였습니다. 바사르가대에 장사되었는데 지금도 그의 무덤이 전해짐니다. 자세한 활동은 역대하와 이사야서를 참고하세요.

 

***참고: 성경의 고대사***

 

 

 

새벽이슬(lsh2612647)

 

89. 고레스 대왕    

 

오늘은 고레스의 남은 이야기를 조금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레스는 큰 정복자이지만 관대하고 멋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재를 하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었는데 성경 이사야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나의 종'이라고 합니다.

 

물론 느부갓네살 왕도 하나님께서 '나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언서와 역사서 전체를 보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나라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사용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레스 같은 희대의 영웅들을 보면 과욕이라 할 수 있는 야망을 크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지간히 점령하고 만족하면 좋겠는데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나라들을 정복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기질이 대단했던가 봅니다.

 

고레스 왕도 예외가 아니어서 메대 나라에서 동북방으로 올라가면 아주강한 족속이 살고 있었는데 고대 사회에서는 이 족속을 맛사겟타이 족속이라고 합니다. 이 나라가 고레스에게 조공도 바치려고 오지 않고 교만한 모습을 보이므로 고레스가 맛사겟타이 족속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하는데 맛사겟타이 까지는 거리도 멀지만 맛사이겟타이 가까이에 큰 강이 있는데 전쟁을 치루는 과정에서 큰 강이 있으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군사가 강을 건넌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다리가 있더라도 다리를 폭파시키면 큰 위험에 빠지게 되지요? 고대사회에서는 보통 배를 가지고 다리를 놓습니다. 그러나 배다리를 놓는 과정에서 급습을 당하게 되면 이것도 위험하기 때문에 고심을 하고 있는데 그 당시 맛사겟타이 족속을 다스리는 사람은 토메디스라는 여왕이었습니다.


그 여왕이 고레스에게 편지 보내 왔는데 고레스가 누구 집 아이인데 여기까지 와서 시끄럽게 하느냐고 강 그까짓 거 못 건너서 쩔쩔 매냐고 강 건너기가 어려우면 우리가 건너 갈 것이니까 뒤로 빠져 있으라고 하면서 만약 강을 건너서 온다면 강을 건널 때 까지 우리군사가 80리 뒤로 빠져 있을 테니까 마음껏 건너오라고 합니다 여왕이 이렇게 나오니까 고레스가 위세에 위축이 되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장군들을 모아놓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회의를 하는데 모든 장군들이 여출일구 건너가는 위험부담 보다는 건너오게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 함께 참여한 리디아의 영웅 크로이소스 왕은 의견을 달리한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건너가서 싸워서 이기면 그 나라를 평정하는 것이 쉽겠지만 만약에 그 쪽에서 건너와서 우리를 이기게 되면 우리만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족들도 위험하다고 하면서 전쟁을 기세이므로 건너가기를 제안합니다.


고레스는 크로이소스를 국사로 모시고 있었고 크로이소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고 고레스는 건너가기를 결정하고 강을 건너 갑니다. 그런데 정말로 토메니스 여왕이 자신의 군사들이 80리 거리로 철수 시키고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게 합니다. 그렇게 하여 전쟁을 치루게 되는데 첫 번째 전투에서 고레스가 작전을 세웁니다.


맛사겟타이 족속은 야만인으로서 지금까지 음식을 요리하지 않고 날것으로 먹었을 테고 술을 절제하지 않고 퍼 마시고 난폭하기가 소문난 족속이고 말을 안장도 없이 타고 전쟁하는 야만인이므로 평범하게 전쟁을 해서는 이길 수 없으니까 전략을 세우는데 요리를 맛있게 해서 냄새를 풍기고 그 곳에 술을 양껏 준비해 놓고 싸움을 걸었다가 패하는 척 하면서 후퇴하게 되면 음식과 술이 있는 이 곳 진영까지 추격해 오다가 맛있는 음식과 술을 보면 승리감에 도취되어 마음껏 퍼 마시고 술에 취할 것이다!
그 때 급습을 하여 전쟁을 끝낸다는 작전을 세웁니다.


그런데 정말 그 작전대로 딱 들어맞아 대승을 거두고 맛사겟타이 군사들을 대부분 생포를 했습니다. 전쟁을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고 그 기세로 계속 여왕이 사는 성까지 밀고 갔으면 끝나는 것인데 토메니우스 여왕이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편지 내용은 고레스가 정말 진정한 남자인줄 알았는데 그런 비겁한 방법으로 속이는 장난하지 말고 정말 사나이라면 정정당당하게 힘으로 내일 싸워 보자고 제안합니다, 고레스가 그 편지를 읽고는 마음이 찔리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서 좋다, 포로들을 모두 풀어 주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그 포로들 중에는 여왕의 아들인 왕자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왕자를 그냥 풀어 주니까 자존심 상한다고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해 버립니다.왕자가 자결했다는 소식이 온 맛사겟타이 족속 진영에 퍼지니까 야만적인 기세에 분노가 더해져서 치열한 저면전이 되었고 고레스 군대가 감당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면서 결국은 그 전쟁에서 고레스가 전사하게 됩니다. 정말 아까운 사람인데 야만족 하나 정벌한다고 욕심을 부리다가 고레스는 거기서 죽게 됩니다.


세계사에서 참으로 아까운 인물인데 오래 살지 못하고 아들 2명을 남기고 고레스 대왕이 죽습니다.
나중에 토메디스 여왕은 고레스의 머리를 베어서 피를 담은 항아리에 담아서 피를 실컷 마시라고 조롱한다.

 

//루벤스 화가의 토메디스와 키루스 라는 그림이 있다.//

그 뒤를 이은 왕은 캄비세스 2세(고레스의 아들)입니다.


두 번째 아들은 쓰메르디스 왕자가 있었고 인품으로는 큰 아들 캄비세스는 간사하고 사악하여 포독한 인물로 캄비세스는 위인이 못 된다고 역사가들은 평가 합니다. 쓰메르디스는 인품이 훨씬 훌륭하지만 큰 아들 캄비세스가 왕이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이 고레스 왕이 죽은 후에 애굽 이집트 왕에게 공주를 아내로 삼고자 함으로 공주를 달라고 청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애굽 왕은 고레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캄비세스의 청혼을 무시해 버립니다. 캄비세스가 누군데 감히 공주를 달라고 하냐고 기분 나빠 하면서 공주 대신에 식모를 보내면서 너는 이것이나 데리고 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는 캄비세스가 분개하여 당장 애굽을 정벌하기 위해 갑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에서 애굽까지 군대를 이끌고 가면 거리가 2-3개월 소요되는 먼 거리입니다. 이런 소식이 오고 가는 동안에 애굽 왕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애굽의 왕자가 왕이 되자마자 페르시아의 악독한 캄비세스 2세 온다는 소식을 듣고 멤피스로 도망을 갑니다. 하지만 캄비세스가 멤피스까지 따라가서 애굽 왕을 잡고는 죽은 아버지 무덤으로 끌고 가서 그 시체(미라)를 파내서 온 성을 끌고 다니면서 화풀이를 하고는 그 미라를 불태우는 만행을 합니다.


이런 짓을 하면 결국 나라가 망하죠. 아무리 힘이 있더라도 그 힘을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건전하게 사용 해야지요.
캄비세스는 자신의 포악한 성질 때문에 자신도 망하고 나라도 휘청하게 됩니다. 캄비세스가 애굽에 있을 당시 이디오피아가 자신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고 이디오피아를 정벌하기 위해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이디오피아 정벌을 미처 이루지 못하고 고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전갈을 받습니다.


이리하여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마스크스에서 아침에 일어나 말을 타고 한 바퀴 휭 돌면서 출발이다! 하고 칼을 뽑아 들고 호령을 한 뒤 칼을 칼집에 넣는 다는 것이 잘못 찔러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고 말았습니다.
그 상처가 파상풍이 되어 캄비세스 2세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헤르도토스의 역사가에 의하면 이렇게 해서 캄비세스는 죽고 고국의 반란을 평정하기 위하여 캄비세스의 군대 장군 7명이 확인해 본 결과 가짜 쓰메르디스가 왕이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캄비세스 2세의 친동생인 진짜 '쓰메르디스'는 캄비세스와 함께 출정하여 애굽으로 가는 도중에 캄비세스에 의하여 죽었습니다.


가짜 쓰메르디스는 세계사에서 '퓨슈도쓰메르디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퓨슈도쓰메르디스'를 몰아내고 왕국을 든든하게 세우기 위해서 일어난 왕이 성경에 나오는 '다리오'라고 하는 왕이 있습니다.
성전재건을 허가했던 '다리우스'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연장해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