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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손)

[이스라엘역사]북이스라엘 멸망과 남유다 멸망과 관련된 역사 지식

작성자혼인잔치|작성시간09.06.11|조회수9,431 목록 댓글 0

 

<남 유다, 기원전 605년부터 535년까지>

 

예루살렘은 605년 바벨론의 초대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1차 함락을 당했고 연이어 2차 3차의 공격을 받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예루살렘 폐허는 587년, 바벨론을 무너뜨린 나라는 페르시아, 왕은 고레스 입니다.

 

 

다니엘9장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1.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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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25장

  1.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3.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4. 여러 나라와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 역군을 삼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

 

1. 유대멸망 당시에는 신바빌로니아(바빌론), 이집트(에굽), 메디아(메데), 리디아 총 4개국이 있었다.

2. 신바빌로니아가 메디아(메데)와 페르시아(파사)에게 멸망 후에 유대인들은 본국으로 귀환한다.

 

 


olivier21 님의 답변 | 2006-06-08 09:25

| 추천 0 바벨론의 통치 연대가 기원전 605년에서 538년입니다.

 

예루살렘은 605년 바벨론의 초대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1차 함락을 당했고 연이어 2차 3차의 공격을 받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다니엘은 1차 포로이며... 에스겔은 2차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은 1차 함락때 바로 없어지지 않고... 바벨론은 자신들이 임명한 왕을 통해 유다를 다스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유다가 애굽에 구원을 청하는 등 눈에 가시같은 행동을 계속하자 마침내 완전히 예루살렘을 폐허처럼 만들고 거의 모든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갑니다. 이 때가 기원전 586년입니다. 이 때가 예루살렘 멸망시기입니다. 그러나 포로기간은 1차 포로시기부터 계산을 해야 맞습니다.  

 

기원전 605년부터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왕 고레스가 귀환명령을 내린 기원전 535년까지가 성경이 예언한 70년간의 포로기입니다.

 

이후에도 예루살렘 중건령은 다시 3차에 걸쳐 내려집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70년에 대한 예언은 포로시기에 대한 예언이므로 기원전 605년부터 기원전 535년까지입니다.
 
내용출처 : 검색

 

프로마크5A 님의 답변 | 2006-06-08 09:34

 

먼저 북방이스라엘입니다. 기원전 722/721년에 앗시리아(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엘라의 아들 호세아였습니다. 이때 북방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의 왕은 살만에셀(5세)입니다. 이 내용은 구약 열왕기하 17장에 나와 있습니다.

 

남방유다입니다. 기원전 598년에 바벨론(신바빌로니아)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 멸망 당시 유다의 왕은 시드기야였으며, 바벨론의 왕은 느브갓네살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구약 열왕기하 25장에 나옵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호세아인데 북이스라엘의 호세아 3년에 남 유다는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다
북이스라엘은 끝내 복음을 거절함으로 호세아 9년에 앗수르에 의해 철저히 짓밟혀 멸망을 당한다.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6년에 되어졌다.(왕하18:10)

 

 

 

 

 

남유다는 지도상에서 어디고 북이스라엘은 어딘가요?

     그리고 이 두나라는 원래 따로인가요? 아니면 분열된 나라인가요?

◐원래는 통일 된 한 국가 였습니다(다윗의 통치와 솔로몬 치세)

 

 

지도출처 : http://www.s-mok.com/imr/map/

2. 남유다 북이스라엘 이렇게 나오는데  이해가 안되서

◐위의 지도와 같이 북 이스라엘은 10지파의 땅을 여로보암이라는 왕이 차지하고.

남 유다는 르호보암이라는 왕이 유다와 벤야민의 두 지파를 한 나라로 이루어 졌습니다.

3. 분열되었다면 왜 그렇게 되었나요? 누구때문에

◐이스리엘의 분열

○솔로몬에 의한 강경정책 특히 건축사업을 위한 강제노동은 백성들의 원망이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불만은 더욱 커져갔다. 이런 불만은 솔로몬의 탁월한 조직적인 행정력으로 그 씨앗을 터트리지 않은채 유지되었다. 그러나 솔로몬 사후 이 불만은 즉시터졌고 제3대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은 북쪽 10지파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이스라엘은 분열되어 북쪽은 10지파를 대표하여 여로보암이 초대왕이 되었고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르호보암이 이끌고 가게 되었다.

4. 여튼 남유다 북이스라엘 그 안에 소규모 지역, 도시가 있을텐데 그 명칭도 좀 알려주세요.

1) 남 유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남유다의 르호보암 사이에 경계를 갖고 있던 베냐민지파의 영토는 남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그 경계선 상에 있었기 때문에 르호보암은 베냐민 지역의 상실은 곧 예루살렘을 매우 위태롭게 만드는 것임을  알고 전력을 다하여 베냐민지파의 북쪽지역을 확보하였다.

2) 북 이스라엘 : 한편 여로보암은 세겜성을 건축하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

3) 기타 도시 : 기타 도시는 지도에서 참고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5. 그리고 그 두 나라가 왜 갈라졌는지?

◐두 나라가 갈라지게 된 경위는 3번 답에서 간략히 설명을 하였고요.

그 과정을 성경 말씀으로 알아 보겠습니다.

 

1) 원인 : 솔로몬 왕이 이방 신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진노로 나라를 둘로 나누겠다고 하신 말씀의 결과입니다

왕상 11:9-11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솔로몬에게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 : 그러나 솔로몬 때에는 그 나라르 나누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 대에 가서 나누어지게 됩니다.

왕상 11:12-13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2) 과정 :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정치행보를 묻는 여로보암과 그 일행의 질문에서 의견 불 일치로 분열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왕상 12:13-14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14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3) 결과 : 이에 반발을 일으킨 여로보암의 모든 백성이 돌아가 여로보암으로 왕을 삼게 되었습니다.

왕상 12:19-20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 보내어 저를 공회로 청하여다가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좇는 자가 없으니라

  자세한 내용을 얻으려면 열왕기 11장과 12장 전체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6. 그 두 나라가 왜 갈라졌는지. 그리고 세기도 알려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세기란 나라의 강성함을 말함인지 아니면 년도를 말함인지???

 

1) 두 나라의 힘 : 막상막하라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이 먼저 멸망하였습니다.

 

2) 두 나라의 연대

○ 이스라엘의 시작 : 사울왕-B.C.1020-1,000년

○ 이스라엘 통일왕국 : 다윗왕-B.C.1000-961년

○ 이스라엘 통일왕국 : 솔로몬-B.C.961-922년

 

○ 남 유다 : 르호보암-B.C.922-901년

○ 북 이스라엘 : 여호보암-B.C.922-915년

 

3) 두 나라의 멸망

○ 남 유다 : 르호보암-B.C.922-587년

○ 북 이스라엘 : 여호보암-B.C.922-721년

 

◐위의 연대는 이애실 지음의 "어 성경이 읽어지네" 에서 참고 하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에서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던 솔로몬이 죽은 후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다. 르호보암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재야 지도자 여로보암을 비롯하여 온 회중이 왕 앞에 나왔다. 이 여로보암은 정치적 박해 때문에 애굽으로 망명가 있다가 솔로몬이 죽고 나자 백성들의 기별로 돌아온 자였다. 그들의 청원은 선왕이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것이었다(왕상 12:1~4, 참조 5:13; 11:28).


  르호보암은 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한 다음 먼저 솔로몬 재위 시에 모셨던 노인들에게 자문을 청했다. 선왕 솔로몬을 모셨던 원로들은 백성들의 요청을 들어주라고 했다. 백성들이 선왕시절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건축에 시달렸기 때문에 지쳐 있고 원성이 가득 차 있음을 진언하고 노역을 가볍게 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 주는 유화정책을 건의했던 것이다.


  다음은 같이 자란 소년들에게 의견을 구했더니 강경책을 건의하여 백성들을 더욱 강하게 다루어 권력을 무제한적으로 행사하라고 했다(왕상 12:5~11). 의욕이 넘쳤던 소장 그룹은 백성들의 원성을 가라앉히려면 힘으로 눌러야 한다고 진언하고 멍에를 더 무겁게 하며, 선왕이 부과한 노역이 채찍이라면 이보다 더 가혹한 전갈 채찍을 동원하라는 강경책을 건의했다.


  르호보암은 소장파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르호보암은 삼일 만에 다시 찾아온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들에게 노인 그룹의 자문을 버리고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의 청원을 일축하는 동시에 더욱 완강한 자세를 취했다(왕상 12:12~15).


  이에 온 이스라엘은 “우리가 다윗의 가문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면서 돌아가 버렸다. 즉 민심이 떠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왕이 노역을 감독하는 아도니람을 보내었을 때 흥분한 백성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이고 열두 지파 중 열 지파가 뭉쳐서 여로보암을 왕으로 옹립하여 따로 나라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북왕국 이스라엘이다(왕상 12:16~20). 그리하여 남왕국 유다는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로서 나라가 유지되고, 북왕국은 열 지파로서 이루어졌다. 

 

 어쨌든 한 나라 한 민족이 둘로 나누어진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그 결과 북왕국 이스라엘은 나라가 세워지고 19왕에 207년간 존속하다가 주전 722년 앗시리아 제국에게 멸망을 당했다. 남왕국 유다는 나라가 분열된 후 20왕에 344년간 유지하다가 주전 586년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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