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16,
입문(入門)
영원에 이르기
야곱의 사다리
만물의 본질은 에너지,
에너지를 인식하기
에너지체와 에너지가 필요
이를 위한 방법
창조의 법칙 적용하기
빈공간,
의식과 에너지가 현실을 창조한다.
(창세기 28:10-22)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머무르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遍滿)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기 1장)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마태복음 7:7-1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 보이드(void)
람타, 현실 창조를 위한 입문서
p 152-156
보이드(void)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
보이드는 광대하다. 그럼에도 그 광대함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의 광대한 무이다. 무란 어떠한 원소나 생각조차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광대한 무이다. 그러나 광대한 무일지라도 그 안에 모든 가능성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우리는 보이드를 이런식으로 말할 것이다.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광대한 무이지만 잠재적으로 모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우주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워질 것이다. 모든 별들, 행성들, 가스 구름들 그리고 성운들이 우주 공간에 존재한다. 이러한 빛들이 끝없이 펼쳐진 우주 공간을 바라보다가 한 순간에 모든 빛들이 사라졌다고 상상해보라. 바로 그것이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광대한 무, 보이드란 개념에 가장 근접한 표현이다. 그러면 그 광대한 무는 얼마나 오래됐을까? 보이드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보이드에서 나온 하나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해했는가? 보이드는 항상 존재해왔다. 당신의 평범한 삶 속에서 보이드를 경험할까? 마음을 가라 앉히고 눈을 한 곳에 고정한 채, 응시하다 보면 아무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이 오고 그때 당신은 완전히 텅빈 상태가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보이드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제 보이드의 영원함속에서 보이드는 부모원칙 혹은 절대근원으로 불리며, 이 절대 근원에서 모든 생명이 탄생하였다.
그런데 아무런 개념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생명이 탄생할 수 있을까? 보이드가 어떻게 생명이 아닌 것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아침 10시 30분, 그날이 화요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보이드가 아주 놀랄만한 일을 했다. 놀랄만한 일이란 보이드가 스스로 숙고한 것이었다. 자 아이처럼 양팔을 벌려보라. 숙고하는 것을 이런식으로 보여줄 수 있다. 오른손과 왼손이 하나로 만나는 곳이 자석의 중심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만나는 곳이 자석의 중심이다. 자석의 중심은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렇게 존재한다. 보이드-양팔을 벌린 상태-보이드, 하나의 광대한 무가 스스로 숙고했고, 그것이 숙고한 순간 하나의 점(두손을 합장한 상태)이 생겼다.
...보이드는 스스로 사색하여 자신의 메아리를 창조하였다. 즉 보이드가 자신의 변형을 창조했으며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점(합장)으로 이해한다. 이 점이 항상 존재해왔던 보이드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은 보이드가 스스로 숙고했던 곳에서 메아리가 되었지만 한 점으로 모여 집중된 상태이다. 이것은 진화이다. 이것은 당신이 시작된 모습이며, 의식(선)과 에너지(에너지)로 이루어졌다. 이것이 의식과 에너지이다.
자 이것이 당신의 시초가 되었지만 당신은 아직 여정을 시작하지 않았다. 당신은 단지 보이드에 의해서 숙고되었을 뿐이다.
...이 점은 이제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 이제 이것을 신이라 부른다. 점 위에 나는 신이다라고 지금 적도록 하라. 이 점(제로 포인트)은 의식과 에너지의 시작이다. 보이드는 그 점에 생명을 준 부모 원리이며, 바로 거기에서 당신은 시작된 것이다.
마음이 몸을 치료한다
데이비드 해밀턴
p266
과학자들은 화학적 변화가 마음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생각은 화학 작용의 결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또한 화학적 변화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생각이 먼저인가, 화학 작용이 먼저인가? 생각과 화학 작용은 서로 영향을 미치지만, 둘 중 한가지가 우선되어야 한다. 아주 작은 입자가 생성되는 단계에서 나는 근본적으로 생각이 우선이며, 생각이 실체의 핵심에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한다.
신체 내부를 살펴보면 세포둘을 볼 수 있다. 세포 내부를 살펴보면 분자들을 볼 수 있다. DNA는 분자의 일종이다. DNA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살펴보면, DNA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원자 내부를 살펴보면 원자는 거의 빈 공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자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 및 아원자 입자(실제로 매우 많은 입자들이 있다)로 구성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이들 입자들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또 어떻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만약 양성자가 포도알 굻기라면, 전자는 머리카락 두께보다 더 가늘며, 양성자로부터 약 3.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이처럼 원자 내부의 양성자와 전자 사이에는 많은 공간이 있다. 우리의 신체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양자 수준에서 보면, 실제는 거의 빈 공간이다. 그러므로 우리라는 존재는 거의 텅 빈 공간인 셈이다.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아원자 입자는 고체의 구가 아니므로 전혀 입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원자 입자는 에너지의 진동이다. 양자 물리학계의 최근 연구에서 아원자 입자가 실제로 아주 미세한 진동의 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떤 끈이 일정한 속도로 진동함에 따라 계측기는 어떤 입자가 진동하는지를 탐지할 수 있다. 만약 입자가 서로 다른 속도로 진동하거나 두 가지 진동이 상호 작용을 한다면, 우리는 다른 입자를 탐지할 수 있다. 한 가지 진동이 빨간색 입자를 발생하고, 다른 속도로 진동하는 다른 진동이 파란색 입자를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해 보라.
요컨대 실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진동들로 이루어진다. 과학자들은 이런 진동들이 종종 양자장이라고 불리는 큰 에너지 장에서 발생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원자를 구성하고, 분자를 구성하고, 세포를 구성하며, 인간을 구성하는 아원자 입자들은 모두 양자장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알기에는 궁극적으로 마음은 실체의 그림을 만들어 내는 도구이기에 물질이 생성되는 단계에서 마음은 물질과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에너지의 진동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물질을 볼 수 있게 했다. 나는 우리가 마음을 그 수준에 맞출 수 있다면 우리의 생각이 보다 더 강력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구체화함으로써 질병을 몰아낼 수 있다.
나는 우리의 잠재의식적인 사고는 항상 이 단계에서 상호 작용하지만, 실체에 대한 많은 믿음과 가정이 의식적인 사고의 특성을 왜곡한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치유의 결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에만, 즉 우리가 믿음을 가지거나 어떤 일이 가능하다거나 일어날 거라고 믿을 때만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의 믿음과 가정을 뛰어넘어 우리 자신을 온전히 자신의 잠재의식과 본성의 더 깊은 단계에 맞추었다.
나는 신앙심이 매우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 신앙심이 신비론자나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이 행했던 기적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식과 깨달음, 즉 의식수준, 사고의 단계에서 통상적인 믿음과 가정이 잘 정립되어 있으므로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다.
제약 업계를 떠나고 몇 년 후 나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이미지힐링 방법을 고안하길 원했다. 즉 누구나 금방 떠올릴 수 있고 우리의 믿음과 가정을 뛰어넘어 상징적으로 마음을 실체의 핵심에 맞추는 이미지힐링을 찾고자 했다. 나는 2001년 어느날 밤 마음속에 일련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꼬박 밤을 새웠다. 나는 이 이미지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양자장 치유(Quantum Field Healing, GFH)라고 명명한 것이 되었다.
양자장 치유는 상징적으로 가벼운 병이나 심각한 질병의 원인 단계에 작용한다. 이것의 주요 원리는 가벼운 병이나 심각한 질병을 물리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병이 생기는 양자장 내의 에너지 파동으로 본다. 곧 질병을 물리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어나듯이 변화할 수 있는 에너지의 진동의 형태로 보는 것이다. 양자장 치유에서 연못에 던진 돌은 생각을 말한다.
세도나 매서드
헤일 도스킨 지음
p49
3. 감정의 중심으로 뛰어들기
이제 똑같은 물건을 잡은 뒤, 그것이 최대한 커지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그렇게 상상하다 보면 그것이 마치 텅 빈 공간처럼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심지어 분자와 원자 사이의 공간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감정의 중심으로 뛰어들면, 이와 비슷한 현상을 관찰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흘려보내기 과정을 마스터할수록 여러분은 자신의 가장 깊은 감정조차도 단지 표면적인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감정의 중심은 우리 대부분이 추측하는 것처럼 고통스럽거나 어둡지 않습니다. 텅 비어 있고,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사실 가장 극단적인 감정들조차 실제로는 비눗방울과 같습니다. 손가락으로 비눗방울을 찌르면 어떻게 되나요? 터지지요. 그게 바로 우리가 감정의 중심으로 뛰어들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내가 이 감정 속으로 뛰어들도록 허용해줄 수 있겠어?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계속하면서 아마도 자신에게 맞는 자기만의 질문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감정의 중심으로 다이빙해 들어가는 자기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다양한 이미지와 감각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일시적으로 감정이 확대되고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 질문을 계속 하세요.
내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까?
보여지고, 느껴지고, 감정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뛰어넘어 더욱더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독여 보세요.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내면에서 무언가가 풍선처럼 떠지는 지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또는 더 이상 깊이 들어갈 수 없는 지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내면의 평화가 느껴질 때 자신이 드디어 그 감정의 중심에 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음을 기억하세요. 만약 감정이 여전히 강하거나 혹은 더 증가했다면 여러분은 그 중심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대부분은 감정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회피합니다. 왜냐하면 길을 잃거나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감정의 표면을 지나 진정한 중심에 도달하도록 스스로를 허용한다면 그게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될것입니다. 마치 내 학생이었던 마지가 발견한 것처럼 말이죠.
마지가 우리 교실에 처음 왔을 때, 그녀는 매우 슬픈 상태였습니다. 10년 넘게 간직한 슬픔이었지요. 그 슬픔은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서 받은 배신감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과거에 휘말리지 않고 그 슬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런 감정을 흘려보내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저는 위에서 언급한 질문들을 그녀에게 했고, 처음에 그녀의 슬픔은 증폭되었습니다. 그녀가 울음을 터뜨리자, 저는 감각과 이야기를 넘어서 좀 더 깊이 들어가자고 격려했습니다.
이윽고 마지는 깜짝 놀랄 정도로 단 몇 분 만에 심오한 평화의 상태에 잠겼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슬픔을 피하려고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슬픔의 바다에 빠져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는 흘려보내기를 한 뒤, 슬픔은 항상 표면에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피하려 했던 것이 사실은 바로 사랑의 바다였던 것입니다. 슬픔만 가득했던 표면을 지나 내면 깊숙이 들어감으로써 평화로운 사랑의 바다를 만난 것입니다.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제인 로버츠
p 62, 63
영혼은 이 책을 읽는 자아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환경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니며, 거기에는 현재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는 과거생의 환경도 포함되어 있죠. 다시 말해 여러분의 진정한 환경은 여러분 자신의 사념과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로 그것으로부터 육체의 현실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참가하고 있는 다른 모든 현실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환경에는 시간과 공간이 전혀 없으며 그곳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환경 속에서 현재의 물질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내면의 감각은 육체적인 형태가 없는 현실을 지각하게 해줄 것입니다. 이제 잠시나마 자신의 배역을 잊고 간단한 운동 한 가지를 해봅시다.
자신이 불빛이 환한 무대 위에 있다고 상상하십시오. 현재 앉아 있는 방안이 바로 그 무대가 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불빛이 꺼지고 무대 배경이 사라졌으며 자신은 혼자 남았다고 상상하십시오. 모든 것이 캄캄합니다. 조용히 하고 내면 감각의 존재를 가능한 한 생생하게 그려 보십시오. 이제 그것이 당신의 육체적 감각 기관을 대신한다고 상상하십시오. 마음에서 모든 근신 걱정을 털어 버리십시오. 수용적인 마음가짐을 가지십시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육체의 소리가 아닌 내면의 감각 기관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귀기울여 보십시오.
어떤 이미지가 나타나면 그것을 실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내면의 감각으로 지각하는 법을 익힐수록 내면 세계가 밝혀지리라고 상상하십시오. 평생 맹인으로 지내다가 이제 서서히 눈을 뜨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아직 내면의 감각을 완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처음의 혼란스런 이미지나 소리로 내면 세계 전체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이 훈련은 잠들기 전이나 일을 하다가 짬을 내 해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식의 새로운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낯선 존재 환경을 일별하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이제 겨우 다른 현실의 편린(片鱗)들만 감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되 섣불리 전체적인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10분씩 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책의 정보 역시 트랜스 상태에 빠져 있는 루버트의 내면 감각을 통해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런 노력은 정확하게 조율된 내면 감각과 훈련의 결과입니다.
자각몽 또 다른 현실의 문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p10-12
나는 야키족(멕시코 원주민 부족) 마법사 돈 후앙 마투스로부터 배운 것에 관해 20년 넘게 일련의 책을 써왔다. 그 책들에서 나는 돈 후앙이 가르친 마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마법과는 다르다는 점을 밝혔다. 마법 하면 보통 우리는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해 타인을 조종하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주문, 의식 등을 통해 영혼을 불러내는 일을 연상한다. 하지만 돈 후앙에게 마법이란 우리의 주변세계를 형성하는 거푸집 역할을 하는 인식(perception=지각)의 본질에 관한 특별한 이론과 그 실질적인 적용법의 기초를 닦는 행위였다.(다른 세계를 지각 하고 그 세계와 교류하는 법에 관한) 돈 후앙의 요청대로 나는 그의 지식체계를 정통 인류학의 범주인 샤머니즘으로 정의 내리기를 피하고 그가 칭했던 대로 마법이라고 불러왔다. 하지만 심사숙고한 결과, 나는 그의 지식체계를 마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매우 모호한 현상인 그의 가르침을 더 모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류학에 따르면 샤머니즘은 북아시아에서 살았던 일부 원주민들의 신념체계였다. 그리고 북미의 일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도 이 신념체계를 공유한다. 이 신념체계는 선령이든 악령이든 조상들의 영혼의 힘이 작용하는 세계가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스며들어 있고, 초자연적 세계와 자연 세계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는 전문가들이 그 영혼의 힘들을 불러오거나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돈 후앙은 일상의 자연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진정한 중개자였다. 그는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초자연 세계라고 하는 대신 제 2주의의 세계(the second attention/주의력)라고 불렀다. 스승으로서 돈 후앙의 역할은 내가 이 제 2주의의 세계를 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나는 이전의 책들에서 이 세계를 접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의 연습을 비롯한 돈 후앙의 여러 가지 가르침들을 설명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방법이 꿈수행(art of dreaming)의 기술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돈 후앙은 우리가 흔히 유일하고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이 세상이 사실은 양파껍질처럼 나란히 존재하는 무수한 일련의 세계들 중 한 껍질일 뿐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세상만 인식하도록 에너지 차원에서 조건화되어 있기는 하지만(인류는 집단 최면에 걸려 있다. 잠들어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세상만큼이나 실재하고 절대적이고 독특하고 흡인력 있는 이 다른 세계들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돈 후앙에 따르면 그런 다른 세계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물론 우리가 그 세계를 갈망해야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붙들 수 있는 에너지도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다른 세계들은 우리가 인식하든 말든 늘 존재한다. 우리가 그 영역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곳으로 접근하기가 힘든 이유는 순전히 에너지적인 조건화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단지 그 조건화로 인해서 우리의 일상적인 세계만이 존재 가능한 유일한 세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돈 후앙은 그런 에너지 차원의 조건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고, 고대의 마법사들은 그 세계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에너지 조건을 바로잡아줄 일련의 수행법을 개발해냈다고 했다. 그들은 그 일련의 수행법을 꿈수행 기술이라고 불렀다. 돌이켜 보건데, 돈 후앙이 내린 꿈수행의 가장 적절한 정의는 ‘영원에 이르는 문’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비유의 의미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럼 그 비유는 잊어버리게‘ 돈 후앙은 나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럼 꿈수행이란 보통의 꿈을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해두지.‘
’보통의 꿈을 어떻게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죠?‘ 내가 물었다.
‘우리는 늘 말에 속아 넘어가’ 돈 후앙이 말했다. ‘내 스승은 꿈수행이란 이 세상에 굿 나잇(밤 사이에 다른 세계를 다녀오는-옮긴이)을 고하는 마법사들의 방법이라고 했네. 물론 당시의 내 수준에 맞는 설명이었지. 나도 지금 자네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거라네.’
자각몽 또 다른 현실의 문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p19-27
돈 후앙은 만물의 에너지적인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 고대 마법사들이 이룬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 했다. 그 통찰은 굉장히 중요해서 결국 마법의 가장 밑바탕의 전제가 되었다. 이제 마법사들은 평생에 걸친 수행과 훈련을 통해 실제로 만물의 실체를 인식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보는’ 능력 말이다.
‘만물의 에너지적인 본질을 인식하면 어떻게 되나요?’ 내가 이렇게 물어본적이 있다.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감지하게 되지’ 그가 대답했다. ‘인식(지각/perception)의 사회적인 부분을 떼내어 버리면 만물의 본질을 인식하게 된다네. 지금도 자네가 인식하고 있는 것은 모두가 에너지일 뿐이야. 다만 그 에너지를 직접 인식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틀 안에 들어오도록 인식을 가공하지. 그 틀이 바로 인식의 사회적인 부분이라는 거고, 바로 자네가 분리해내야 할 것이지.’
‘왜 그 틀을 분리해내야 하나요?’
‘왜냐하면 그 틀이 우리 인식의 범위를 좁히고 우리의 인식을 그 틀에 고정시켜서 그 틀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네. 나는 지금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식이 사회의 밑바탕으로부터 바뀌어야만 한다고 확신하네.’
‘사회 밑바탕의 인식이라구요?’
‘세상이 유형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물질주의적 확신 말이네. 우리가 세상을 물질적인 것으로 인식하게끔 만들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너무나 진지하게, 열심히 애쓰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확신을 사회의 밑바탕이라고 한다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나요?’
‘모든 것은 에너지라네.(양자 물리학) 온 우주가 에너지야. 존재하는 것은 모두 에너지임을 명백하게 확신하는 것이 사회 밑바탕의 새로운 인식이 되어야 할 걸세. 그리고 사람들이 에너지를 에너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끌려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걸세. 그러고 나면 우리는 그 둘 중에서 맘대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게 되지.’
‘사람들을 그렇게 훈련시키는 것이 가능합니까?’ 내가 물었다.
돈 후앙은 가능하다고 했고, 바로 그것이 그가 나와 다른 견습생들에게 하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돈 후앙은 첫째 우리가 어떤 틀에 끼워맞추기 위해 자신의 인식을 가공하고 있음을 깨닫게 함으로써, 둘째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길로 우리를 열심히 인도함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의 방법을 가르쳤다. 돈 후앙은 자신의 방식도 사실은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이 일상세계를 지금처럼 인식하게끔 만드는 데에 사용한 방식과 매우 비슷하다고 했다. 돈 후앙은 우리가 사회적인 틀에 끼워 맞추기 위해서 인식을 가공하는 함정에 빠져 있고, 그 함정은 우리가 그 틀을 선대로부터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힘을 상실한다고 보았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세상을 견고한 물질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에게는 생존을 위해 절박하게 요구되는 일이었던 게 틀림없네.’ 돈 후앙이 말했다. ‘수십 세기를 그렇게 인식해왔으니 지금의 우리도 세상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을 수밖에’
‘저는 세상을 그렇게 말고는 달리 인식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내가 항변했다. ‘의심할 것도 없이 세상은 물질의 세계입니다. 가서 한번 부딪혀 보기만 하면 증명이 되지요.’
‘물론 물질의 세계지. 거기에 논쟁의 여지가 없다네.’
‘그럼 지금까지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나는 이 세계가 무엇보다도 우선, 에너지의 세계라고 말하는 거라네. 그런 다음에 비로서, 그건 또한 물질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이 세계가 에너지의 세계라는 전제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에너지를 직접 감지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할 걸세. 그리고 자네가 방금 지적한 대로, 너무나 명백한 물질의 견고함에 부딪혀서 더 나아갈수 없게 된단 말일세.’
...돈 후앙이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인식방식은 육식동물의 방식이라네. 먹이와 위험을 감지하고 식별하기에는 매우 효과적인 방식이지. 하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인식방식은 아니라네. 다른 방식도 있어. 내가 지금 자네에게 가르치려는 방식 말이지. 바로 만물의 실체인 에너지 자체를 직접 인식하는 것 말이야.’
‘만물의 실체를 인식하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보고, 그 세계를 더 흥미진진하고 더 세련된 언어로 이해하고 구분하고 묘사할 수 있게 될 걸세.’ 돈 후앙의 주장이었다. 그가 넌지시 언급한 더 세련된 언어란 그가 선배들로부터 배운 것들을 뜻했다. 그것은 마법세계의 진실에 부합하는 언어이다. 그 마법세계의 진실이란 이성적 기반이 부재하며, 우리네 일상세계의 사실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만물의 실체를 보고 그 에너지를 직접 인식하는 마법사들에게는 자명한 진실이다. 그런 마법사들에게 마법의 가장 의미 깊은 행위는 당연히 만물의 실체를 보는 것이다. 돈 후앙은 만물의 실체를 처음 본 고대의 마법사들이 그 실체를 아주 잘 묘사했다고 했다. 그들은 만물의 실체는 무한공간을 향해 상상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뻗어가는 빛의 실과도 같다고 말했다. 인간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스스로를 자각하는(conscious of themselves) 빛의 필라멘트 말이다.
고대의 마법사들은 우주 만물의 실체를 보는 것에서 나아가, 에너지인 인간의 실체도 보았다. 돈 후앙에 따르면 고대의 마법사들은 인간을 빛나는 커다란 알 모양으로 묘사하면서 빛의 알(aura/오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돈 후앙은 인간을 볼 때 마법사들은 커다란 빛의 형체가 마치 곧은 뿌리가 달린 것처럼 땅의 에너지에 깊은 이랑을 남기면서 떠다니는 모습을 본다네라고 말했다. 돈 후앙은 인간의 에너지는 계속 변해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신을 포함한 그가 아는 모든 투시가(seer, 보는자-옮긴이)들은 인간을 알모양이라기 보다는 공이나 심지어는 비석과도 같은 모양으로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가끔씩 알 수 없는 이유로 알 모양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본다. 돈 후앙은 알 모양 에너지를 가진 현대인은 고대인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돈 후앙은 우리를 가르치는 동안에 고대 마법사들이 발견한 것들 중에서도 그가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어떤 것을 거듭거듭 되풀이해서 논하고 설명했다. 돈 후앙은 그것을 빛의 공인 인간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라고 했다. 그것은 강렬한 빛을 발하는 테니스 공만한 둥근 점으로서, 오른쪽 견갑골 돌출 부위에서 뒤쪽으로 약 60센티미터 떨어진 곳의 빛의 공 표면에 영구히 자리 잡고 있다.
그가 그것을 처음 설명해줬을 때 내가 그 모습을 잘 상상하지 못하자, 돈 후앙은 빛의 공(오라)은 인체보다 훨씬 크고, 그 강렬한 빛의 점은 이 에너지 공의 일부로서 등에서 팔 길이만큼 떨어진 곳의 날개뼈 높이에 위치 한다고 설명해주었다. 돈 후앙에 따르면 고대의 마법사들은 그것이 하는 역할을 보고 나서 그것에 조합점(assemblage point/수신 안테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 조합점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데요?’ 내가 물었다.
‘인식하게 만들지.’ 그가 대답했다. ‘고대의 마법사들은 인간의 인식이 바로 그 지점에서 조합되는 것을 보았지. 그리고 살아 있는 존재에게는 모두 그런 강렬한 빛의 점이 있는 것을 보았고 그때부터 인식이란 것이 바로 그 지점에서 모종의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거라네.’
‘고대의 마법사들이 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그 조합점에서 모든 인식작용이 일어난다는 결론을 내렸을까요?‘ 내가 물었다.
돈 후앙은 첫째, 고대의 마법사들은 전체 빛의 공을 통과하는 우주의 무수한 발광 에너지 필라멘트 중에서 오직 소수의 필라멘트만이 그 조합점을 직접 통과하는 것을 보았다고 대답했다. 물론 조합점은 전체 빛의 공에 비해 아주 작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다음에 그들은 조합점보다 약간 큰 광구가 항상 그 조합점을 감싸고 있으면서 그곳을 곧바로 통과하는 필라멘트들의 밝기를 크게 강화시키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고대의 마법사들은 두 가지를 더 보았다. 조합점은 그 정상적인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그 첫째고, 조합점이 정상적인 위치에 있을 경우 그 사람의 행동이 정상적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인식과 의식도 정상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두 번째로 본 것이었다. 조합점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광구가 정상적인 위치가 아닌 다른 위치에 있게 되면 그 사람은 유별난 행동을 보이고, 그것은 그의 의식이 달라져서 인식의 방식이 이상해졌음을 보여주는 듯했다.(정신병자/미친사람들) 이 모든 관찰로부터 고대의 마법사들은 조합점이 원래의 위치로부터 많이 벗어날수록 그에 따라 행동도 더욱 이상해지니, 그것은 분명히 의식과 인식이 이상해졌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돈 후앙에 따르면 조합점과 그것을 감싼 빛이 하는 듯한 일을 본 고대의 마법사들은 거기서 진일보한 설명을 하나 더 제시했다. 즉 인간에게 존재하는 조합점은 그것을 감싼 빛을 조합점을 직접 통과하는 우주의 에너지 필라멘트들에 집중시킴으로써 즉석에서 자동적으로 그 필라멘트들을 조합하여 세상에 대한 일관된 인식을 탄생시킨다는 것이 그 설명이다.
...돈 후앙은 그 무수한 의식의 에너지 필라멘트가 조합점을 통과하는 것을 본 고대 마법사들은 그 필라멘트들이 조합점을 통과하는 동안 그것을 감싼 빛에 의해 합쳐지고 축적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의식을 잃거나 죽기 직전인 사람의 빛(조합점을 감싼 광구)은 극단적으로 어둡고, 시체의 경우엔 빛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을 본 고대의 마법사들은 이 빛이 곧 의식이라고 확신했다.
‘조합점은 어떻게 되나요? 죽으면 조합점도 사라지나요?’ 내가 물었다.
돈 후앙은 조합점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광구는 생명력과 의식의 표시이기 때문에 죽은 생물에게서는 조합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고대의 마법사들은 의식과 인식이 늘 함께 어울려 다니며, 그것들은 조합점 및 그것을 감싸고 있는 광구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고대의 마법사들은 조합점의 위치변화가 에너지 배치를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도 보고 연구할 수 있었다. 돈 후앙은 조합점이 다른 위치로 움직이면 새로운, 무수한 발광 에너지 필라멘트의 다발이 그 위치에 모인다고 했다. 고대의 마법사들은 그것을 보았고, 조합점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의식의 빛이 있기 때문에 인식은 자동적으로 바로 그 새로운 지점에서 조합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조합점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로부터 인식되는 세계는 더 이상 우리의 일상적인 세계가 아니라고 했다.
돈 후앙의 설명에 따르면 고대의 마법사들은 두 종류의 조합점 위치 변화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 하나는 빛의 공(인간 에너지)의 표면이나 내부에서 위치를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런 움직임을 조합점의 변위(shift)라고 불렀다. 또 다른 하나는 빛의 공 바깥으로 움직이는 것이었고 그들은 이것을 조합점의 이동(movement)이라고 불렀다. 고대의 마법사들은 변위와 이동이 각각 서로 다른 성질의 인식을 가져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합점의 변위는 빛의 공의 표면상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낳는 세계는 아무리 기묘하고 불가사의하고 믿을 수 없더라도 여전히 인간의 영역 안에 있다. 빛의 공 전체를 통과하는 에너지 필라멘트들이 곧 인간의 영역이다. 반대로 조합점의 이동은 빛의 공 바깥으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영역 밖의 에너지 필라멘트를 개입시킨다. 그런 필라멘트를 인식하면 인간적인 요소라고는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상상과 이해를 초월한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자각몽 또 다른 현실의 문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p55-59
“예를 들면, 한순간에 우주의 끝까지 이동하는 것도 가능해. 그리고 꿈 수행은 단계적 훈련으로 이 에너지 몸(영체)을 길들여서 유연하고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드는 기술을 갈고 닦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는 꿈 수행을 통해 이 에너지 몸을 단련시켜서 인식능력을 지닌 하나의 도구로 만든다네. 에너지 몸을 통한 인식은 일상세계를 인식하는 우리 평소의 방식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독립적 인식이야. 그 자체의 영역을 갖고 있지.
그 자체의 영역이라뇨?
에너지의 영역 말이네, 에너지 몸은 에너지 차원에서 에너지를 다룬다네. 꿈 수행에서 에너지 몸은 세 가지 방식으로 에너지를 다루지. 첫째, 에너지 몸은 에너지가 흐를 때 에너지를 인식할 수 있어. 둘째, 에너지 몸은 에너지를 추진력으로 이용해 로켓처럼 예기치 않은 지역으로 날아가기도 해. 셋째, 에너지 몸은 우리가 보통 세상을 인식하듯이 인식할수도 있어.
에너지가 흐를 때 에너지를 인식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그건 본다는 뜻이야. 에너지 몸은 에너지를 빛으로, 혹은 이런저런 종류의 진동하는 흐름으로 혹은 교란으로서 본다네. 때로 에너지 몸은 에너지를 충격이나 심지어 고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직접적인 감각으로 느낀다네.
...마법사들은 그 성취된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우리가 일상세계를 인식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갖고 있는 에너지를 좀더 현명한 방법으로 재배치하는 데서 얻어낸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가 한정된 양의 기본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에너지의 전부인데,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늪과도 같은 세상을 인식하고 대하는 데에 모두 소모해 버린다. 돈 후앙은 동원 가능한 에너지가 모두 이미 다른 일에 몰두해 있기 때문에 꿈수행 같은 비일상적인 인식을 위해 우리가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해서 말한 바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물었다.(카를로스 카스타네다)
(돈 후앙)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에너지를 끌어모아야 한다네. 에너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말이야.
돈 후앙에 따르면 마법사들은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한다. 마법사들은 삶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두 잘라냄으로써 에너지를 현명하게 재배치한다. 그들은 그런 방법을 마법사의 방식이라고 부른다. 돈 후앙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마법사의 방식이란, 세상을 대하는 특정한 행동방식을 연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선조들에게서 배운 것보다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이 마법사의 선택은 삶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반응을 바꿈으로서 삶을 변화시키도록 고안된 것이다.
기본적인 반응이라니요? 내가 물었다.
삶을 대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네. 돈 후앙이 대답했다. 그 하나는 삶의 요구를 얌전히 따르거나 거기에 반항함으로써 삶에 굴복하는 것일세. 다른 하나는 삶의 특정한 상황을 우리의 요구에 맞추어 빚어내는 것이지.
...돈 후앙은 스승으로서 자신의 관심사는 내가 살아 있기와 살아가기라는 주제에 완전히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생물학적 힘의 산물로서의 살아있기(life)와 깨어서 의식적으로 살아가는(being alive) 행위 사이의 차이점을 알아가는 일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돈 후앙은 설명을 이어갔다. 삶의 상황을 빚어낸다는 마법사들의 말은 살아가기에 대한 인식을 빚어낸다는 뜻이라네. 우리는 이 인식을 빚어냄으로써 에너지 몸에 도달하고 에너지 몸을 유지할 충분한 에너지도 얻을 수 있다네. 그리고 나아가 그 에너지로 우리 삶의 전체적 방향과 결과까지도 확실히 빚어낼 수 있다네.”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제인 로버츠
p 79
“다만 의도적으로 무대에 의식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육체 세계에서 여러분의 지각 작용이 현실관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의식은 일정한 영역 안에 갇혀 있을 수 없으며 그렇게 보이는 장애물은 모두 환상에 불과합니다.”
“직관적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욕망이 충분히 강렬하면 또렷하면서도 확실하고 주관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질 체험을 자동적으로 얻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 효과적이면서도 간단한 훈련 방법 한가지를 알려 드리죠.
눈을 감고 호흡과 생명력의 근원을 느껴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첫 시도에서 곧바로 그것을 느낄 수 있겠지만, 또 어떤 사람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내면에서 근원을 발견했다면 그 힘이 육체 전체에서 손끝과 발끝으로, 온몸의 모공을 통해 사방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느껴 보십시오. 그 생명력의 광선이 위로는 구름을 뚫고 올라가며, 아래로는 숲과 대지를 뚫고 내려가 지구 중심을 관통하면서 우주 끝까지 이르는 것을 상상하십시오.
이것은 처음에는 상상력으로 시작되겠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한 훈련법입니다. 왜냐하면 의식의 방사물, 즉 영혼의 창조성은 진정 그런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훈련을 실천하면 영혼의 참된 본질, 창조성, 생명력을 적으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