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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리의 21세기를위한 제언] 5부: 회복탄력성

작성자앨리사| 작성시간20.05.06| 조회수81|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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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BONG 작성시간20.05.06 인문고전을 기본으로 하고 세상을 보는 나만의 관점을 가지기 위한 공부는 필요하고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깨치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으로 사는데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과 일상을 살아내기 위한 명상과 수행은 현대인에게 더더욱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고... 그래야만 인간이기에 순간순간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갖출 수 있는 것 같다.
  • 작성자 Athena 작성시간20.05.09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오랜 생각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라는 생각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그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장이 현실이고, 현실에서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의미라는 것. 동떨어진 혹은 아무런 노력없이 하늘이 특별하게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잠에서 깨어난 하루의 소중함을 이해하게 된다.
  • 작성자 마시 작성시간20.05.11 아이러니 하다. 기술의 그 첨단의 끝에서의 해답으로 말하는 것이 <명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철저히 조종당할 알고리즘과 가상세계에서 속에서, 명상에까지 가 다다를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것인가?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회복 탄력성> 이라고 명명되어 있는 이유가, 가상세계가 주는 달콤한 대신,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고서도 매번 의미를 찾아 일어설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갖추어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닐까? 문득 <죽음의 수용소> 빅터 플랭크이 말하는 , 자신의 고통의 의미를 아는 자는 그 고통을 지나 자신의 삶을 참된 의미로 채울 수 있다 라는 것이 연상되어 진다.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진실되게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가?
  • 작성자 황금씨앗 작성시간20.05.11 무지에서 깨어나는 것, 나를 알아가는 것은 불교에서도 익숙하게 들었던 내용이며, 고대로부터 철학자들이 설파했던 것이다. 지금도 무지에 빠지거나, 나의 에고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 기계적인 생각과 습관의 노예가 되는 일상에 빠지고는 하는데, 한 숨호흡으로 이런 나를 알아치리고 자신을 든든하게 하는 것은 인문고전과 사유, 명상 등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 작성자 새벽의여신 작성시간20.05.21 수없이 흔들리고 좌절하다보면 그런 자신이 또 싫어 회피하게 되는 악순환 속에 살아왔다.
    끊임없이 외부에 신경쓰다 지쳐 홀로 칩거하면서 한 것은 순간의 쾌락과 멍때리기의 반복이었다. 칩거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스스로 찾은 나의 삶의 의미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에 의해서였고 그러니 다시 도망가는 것도 너무 쉬웠다.
    그때에 비하면 목표가 있고 나만의 중심, 철학을 찾는 일의 필요와 무게를 인지하고 있다보니 조금은 빨리 다잡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히 홀로서는 힘이 많이 딸리는 것을 느낀다. 홀로서기를 한다 해도 위기와 좌절의 순간은 올 것 이기에 수행과 공부를 꾸준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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