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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칼럼

[열린사회와 그 적들] 전체주의 문을 연 플라톤의 국가론

작성자앨리사|작성시간20.12.03|조회수256 목록 댓글 5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1편>을 읽고 있다

칼 포퍼는 인간 개개인이 자유와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열린사회가 그 답이라 말하며

1편.에선 플라톤의 국가를, 2편에선 마르크스를 닫힌 사회의 예로 들며 비판하는 이 책으로 사회정치학에 큰 반향을 몰고온 사회철학자이다.

지금까지 내가 이해한 플라톤의 <국가론>은 사상적으론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것이 가장 이상적이기에 공산주의를 지향하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평등사회는 불가능하기에 차선책으로 소수 철인이 지배하는 철인국가가 가장 이상적이다, 라고 주장한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플라톤에대해 깊이 이해하진 못했던것을 알게되었다

우선 1장~ 5장까지 중:

1. 플라톤의 개인적 배경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가 처한 개인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일텐데 플라톤의 경우 아테네 귀족출신이지만 아테네에 민주주의가 시작되며 귀족주의를 지지하던 숙부 두 사람이 죽음을 맞는 등 개인적으로 민주주의에 의해 오히려 기득권을 잃어버린 귀족인 셈이었다. 응당 민주주의를 좋게 평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나 할까 . 이러니 그가 소수 철인에의해 지배하는 철인국가를 선호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다. 거기까진 이해되는데 왜 가장 이상적인 국가체제를 공산주의라 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남는데...

2. 플라톤이 말하는 지배체제로서의 공산주의

는 내가 생각하는 공산주의와는 멀어도 한참 멀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실된 의미의 공산주의인데 내가 되려 잘못 이해하고 있는건지도.

무슨뜻인가 하면, 플라톤이 말하는 공산주의는 소수 지배계급이 인간가축에 해당하는 다수의 피지배계층을 다스리는 체제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부패하기에 지배계급간에 가능한 경제적 이익차이가 없는 공산주의가 실현되야 지배계급이 무너지지 않고 가능한 오래도록 피지배계급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의미의 공산주의라고. 그리고 가능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격차는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좋은데, 그 격차를 벌이기 가장 좋은 방식이 바로 <차별화된 교육>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난 지금까지 공산주의를 대다수 민중의 평등화란 의미로 생각했는데, 플라톤이 말하는 공산주의는 지배계층간의 평등함을 뜻하는 공산주의이고 오히려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간에는 철저한 갭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칼 포퍼에 의하면 플라톤의 이런 사상은 이후 근대 서구사회까지 이어오며 우파의 파시즘과 좌파의 마르크스즘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유대인 이야기편에서, 유대인들 역시 스스로를 선택받은 민족으로 자리매김하고 나머지 사람들과 구분하며 유대인들간에는 적극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회주의적 공동체를 이루며 도와주지만 타민족과는 철저히 구분짓는다고 한다. 칼 포퍼의 말처럼, 어쩌면 이러한 지배/피지배 구분사상은 부족주의때부터 내려오는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행하는 권력투쟁의 일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3. 개인보다 우위에 있는 플라톤의 국가

한가지 플라톤의 국가론이 정치역사상 <전체주의 국가로의 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된것이 바로, 개개인은 불완전한 존재인데 그 불완전성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국가라는 개념이다. 즉 불완전한 개인을 보전해주고 지탱해주며 메궈주는 것이 국가이기에 국가는 개인보다 우위에 있다는 <국가주의 혹은 국가주의적 전체주의>가 바로 플라톤의 국가론부터 태동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개인들은 국가를위한 일부분 혹은 조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전체주의 국가의 탄생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착한 전체주의라 불리우는 스웨덴 역시 복지국가라는 이름아래 국가가 개인을 보살핀다는 명목아래 다양한 복지로인해 결국 가족공동체가 와해되는 지경까지 이르러 개인들이 가족보다 국가를 더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말이 새삼 무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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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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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thena | 작성시간 20.12.03 모던타임스에서 소련관련 내용을 보며, 공산주의라며 모두가 평등한게 아니라, 당이라는 계급 세력이 있고, 당을 장악하는 지배세력이 계속 바뀌면서 체제를 이어나가는 것이 이상했는데, 내가 몰랐던 플라톤이 말한 공산주의가 잘 구현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권들어 지배계층과의 갭이 커지는 걸 경험해서 지배/피지배가 인간의 본능이라면, 옳고 그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커져갈 것 같다. 특히 코로나로 차별화된 교육의 영향을 보았다. 개인을 보살핀다는 명목의 재난지원금과 미래 기본소득으로 모든 걸 책임지는 국가에서 개인은 숨쉴 수 있을까.
  • 작성자BONG | 작성시간 20.12.04 교육과 복지에 있어 마치 이상향같이 여겨졌던 북유럽의 실질적인 모습을 다시 보게 되면서 우리나라에서 국민으로 살면서 내가 경계해야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때 생기는 문제점과 국가의 역할이 개인에게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국가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지켜야되는 일도 분명 있지만 전체주의의 위험을 늘 염두에 두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 작성자마시 | 작성시간 20.12.04 플라톤의 국가론이 전체주의의 문을 열었다고 하니 놀랍다
    개인의 불완정성을 메궈주는 것이 국가라고 하지만 국가도 완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들이 국가의 요소가 아니라 개인들의 삶을 위해 채택되는 조직이 국가이기 위해 개인들이 성숙해야 한다
  • 작성자새벽의여신 | 작성시간 20.12.04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격차를 벌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차별화된 교육이라는 말이 섬뜩하다. 유대인이 로마에 항복의 조건으로 지켜낸 학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나의 나약한 정신력도 그렇고, 나라를 잃고 세계를 떠돌면서도 세계의 경제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유대인에게서 정말 배워야 할게 많다는 것을 느낀다.
  • 작성자시루봉 이도사 | 작성시간 21.01.03 플라톤의 국가론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사회안전과 보장이라는 미명아래 더 많은 국가의 관섭과 통제하에 놓이지 않을까 두렵다. 이제 지자체와 정부에서 보내는 문자들에 피로감이 심하다. 듣거나 보고 싶지 않은 정보를 할수 없이 접해야 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 아닐까. 사회의 안전이라고는 하지만 그들만의 책임을 다한다는 명분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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