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연합신도회"(감리회)설립과 특성
盧 宗 海(CM리서치)
*죤 웨슬리(1703;6;17.-1791.3.2.)의 "야외설교 전도"
존․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성령의 내증으로 구원의 확신을 체험한 이후 1739년 4월 1일 브리스톨(Bristol)에서 첫 야외설교(노방전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도 활동에 임하였다. 이를 통하여 웨슬레의 전도로 회심자는 각 곳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신도회」(Society)가 각 곳에 형성되었으며 1743년에는 「연합신도회」(The United Societies)가 형성되었다. 이 연합신도회의 총칙은 현재 기독교 대한 감리회의 총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본인은 존․웨슬레의 전도활동으로 형성된 감리회의 모태인 초기 「연합 신도회의 설립과정」을 밝히고, 그 조직과 생활을 분석함으로써 감리회 개척 선교의 특성과 방법, 교회치리 및 그 성격 밝혀 “진정한 감리교회”의 본래 모습을 찾아보려 한다. 이와 같은 작업은 오늘 한국 감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교회로서의 개척 선교와 목회의 방법도 제시하여 준다.
I. 연합신도회 설립 동기와 성격
1743년 5월 1일로 선포된 연합신도회(The United Societies)의 규칙을 보면 『1739년 말 8~·10명이 런던으로 나를 찾아와 기도와 진노에서 면하는 방법에 대한 권고를 위해 몇 시간을 같이 지내자』고 요청하러 왔고, 웨슬레는 이렇게 해서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일 것츨 정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모임(Society)을 『더 많은 사람이 모이게 하였고 그 수가 날마다 증가하였다』하고1) 『이것이 런던에서 첫 번째로 연합회(The United Societies) 발생이었고 그 후 다른 곳에서도 생겼다』고하여 연합신도회 설립 동기를 설명하였다.
또한 연합신도회의 성격에 대해서도 『신실한 믿음의 힘을 찾고 들으려 하는 사람들의 모임, 함께 기도하기 위해 모였고, 권고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서로 돌보아 주기 위하여 모였다. 그들은 서로 그들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도우려 하였다』고 하였다.2) 웨슬레에 있어서 1739년은 중요한 해이다. 왜냐하면 회심 이후 본격적으로 야외 설교(노방전도)를 통한 전도활동에 주력하기 시작한 해로써 1739년 3월 29일 화이트필드의 요청을 받고 브리스톨에가 야외 설교를 시작하여3) 4월 2일에는 약 3,000여명에게 설교하였고4) 킹스우드의 한남산(Mt. Hannam) 정상에서 약 1,500여명되는 사람들에게 설교하면서5) 브리스톨을 중심으로 순회하며 전도 설교를 하였다. 그리하여 5월 9일에는 브리스톨市의 호스페어(Hors Fair_에 대지를 구입하고, 5월 12일에 머릿돌을 놓는 찬양예배를 드려 최초 감리회관을 세웠고, 브리스톨 주변에 형성된 모임들을 한 곳에 모아 성서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6)
이 당시 웨슬레의 공식 활동계획을 보면 『매일 아침 나는 기도회를 갖고 뉴우게이트에 가서 설교하였고, 월요일에는 오후에 브리스톨 근처에 가서 옥외 설교를 하였다. 화요일에는 바스(Barth)와 투마일 힐(Two Mile Hill)을 번갈아 찾아가서 설교를 하였고 수요일에는 뱁티스트 밀즈(Baptist Mills)에서 그리고 목요일에는 2주에 한번씩 펠즈포드에 가서 설교를 하였으며 금요일에는 2주에 한번씩 킹스우드의 다른 곳을 찾아가 설교를 하였으며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아침에는 시내 중심가 근처에 있는 보울링․그린(Bowling Green)에 가서 설교를 하였다. 일요일에는 11시에 한남산 근처에서, 2시에는 클리튼(Clitton)에서, 5시에는 로우즈, 그린에서 설교를 하였다. 이렇게 해서 날이 갈수록 나의 힘이 더해갔다』하여 그의 쉬지 앟는 열정적 선교열을 볼 수 있다.7) 웨슬레는 1759년 6월 11일에 런던으로 와달라는 편지를 받고 런던에서 선교하였으며 그 후 영국 전역을 다니면서 개척순회 전도 설교를 하였다.8)
이 당시 웨슬레는 「참된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네가지를 강조하여 설교하였다. 즉 첫째,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형상을 그 마음에 인치는 것이지 정통주의나 인간의 선행, 자선 사업으로 설립되지 않는다는 것, 둘째는 이 종교로 가는 방법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며, 셋째 이 믿음으로만 공로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헤를 받고 속죄함 받아 의롭다 함 얻는 것이며, 넷째 믿음으로 칭의를 받으면 우리가 가려는 천국을 현세에서도 맛보고 거룩하고 기쁘게 되고 죄와 두려움을 물리치는 생활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9)
웨슬레는 단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믿음을 체험적으로 알고 생활로 증거하기 위하여 결심을 시키고 신도회를 조직토록 하였다. 어떤 때는 결심자를 자기집으로 초대하여 와서 가르치는 일을 하였고 그들의 신앙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웨슬레는 1738년 10월 15일 일기에 『나는 사도행전 28:22의 말씀을 가지고 영국 교회가 지니고 있던 순수한 옛날 종교를 설명하면서 그것이 지금에는 감리교라는 새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10)
이렇게 해서 시작된 신도회가 각처에서 설립되었고 웨슬레는 이러한 신도회를 순회하면서 지도하며 설교하였다. 킹스우드에는 학교를 세우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도회는 여러 비난과 낙관에 부딪혔다. 「너무 지나치게 의롭지 마라」「네 몸을 해치지 마라」「지나치게 신앙을 가져 미치지 마라」는 등 오해와 함게 비난이 일어나 각 신도회는 웨슬레를 자주 초청하여 말씀과 충고와 기도를 요청하였다.
웨슬레는 모든 신도들을 한 곳에 모으고 불성실한 사람을 권고할 뿐 아니라 참다운 신도로서 육성시켜야 할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1743년 5월 1일에 연합회를 형성하였고,11) 1744년에는 제1회 연회를 개최하여 지도해 나갔다. 웨슬레는 이러한 연합신도회가 결코 어떠한 계획을 미리 가지고 형성된 것이 아니며 의도적으로 설립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면서 어떤 새 교회나 교파를 세우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12)
웨슬레의 신도회와 연합신도회의 설립에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회심자를 훈련시키기 위한 모임임을 알아야 한다. 다른 이유가 없다.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하며 힘쓰도록 영혼을 돌보고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란 점이다. 또한 나아가서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진실한 믿음이 있음을 나타내서 사랑을 실천토록 하며 선교를 돕고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13) 이러한 면에서 웨슬레는 회심자 모두가 스스로 구령자가 되도록 훈련하였고 이를 위해서 어떠한 교파 교회이건 문제시 하지 않아 초교파적인 성격을 지녔다. 스케빙톤 우드(Skevington Wood)는 이 점에서 감리교는 「정밀한 훈련의 종교」(A religion of exact discipline)라 하였고,14) 윌리엄 캐논(William R. Cannon)은 「감리교는 출발부터 회심의 체험을 강조하며 이 체험의 결과는 윤리적 성취(moral accomplish)를 항상 강조한다」고 하였다.15) 웨슬레의 「연합신도회」 설립 동기와 성격에서 강한 선교적인 면과 생활 속에 신앙을 증거해야 할 윤리적인 면을 볼 수 있다. 또한 교파적 교회가 아닌 「교회 안의 교회」(ecclesiola in ecclesia)로 초교파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16) 우리는 최초 “신도회”(Society)를 통하여 “진정한 감리교”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점은 다음에 살펴 볼 신도회의 총칙에 잘 나타나 있다.
*웨슬리의 야외설교 전도
II. 연합신도회의 총칙과 본질
웨슬레는 성경(聖經)을 신앙과 실천 생활의 「유일한 규칙」(The only rule)과 「충분한 규칙」(The sufficient rule)으로 삼고 1743년 5월 10일 연합신도회의 총칙(The General Rules)을 제정하여 각 신도회의 회원은 이를 실행하도록 훈련하였다. 웨슬레는 『만일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또한 습관적으로 범한다면 경고하여 알려 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생활의 잘못을 타이를 것이다. 그러나 그가 회개치 아니하면 그는 우리들 가운데 더 이상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17)
그러면 신도회(Society)의 입회 조건은 무엇인가? 웨슬레는 「신도회」(Society)의 입회코 자 하는 사람의 유일한 조건은, 「진노에서 피하여 죄에서 구원받기 원하는 자」(To flee from the wrath to came, to be saved from their sins)라 하였으며, 「이것이 마음에 확실하면 그 결실로 보여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회원은 계속해서 간구해야 하며 그들의 구원의 갈망을 계속 증거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18) 바로 이것이 감리회 신도인 것이다.
웨슬레는 감리회인에 대해서 「그들은 마음과 생활의 성결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내적 및 외적 일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 하였고,19) 「감리교인의 성격」이란 글에서는 감리교인의 특징을 「자기에게 주어진 성령에 의하여 마음 속에 널리 확산된 하나님의 사랑을 지닌」사람이고,「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 주신 자기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늘 기쁘며 쉬지 않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서 실천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회가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선을 행하며 그 결실을 보이는 자」라 하였다.20)
웨슬레는 감리회원이 지켜야 할 총칙을 크게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셋으로 구분하였다.21)
1.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 것이며(by doing no harm), 어떤 종류의 악도 피해야 한다(by avoiding evil in every kind). 이것은 가장 일반적으로 실천되어야 할 것이라 하였다. 웨슬레는 이러한 예를 자세히 들고 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쓰는 것, 일상적인 사업이나 사고 파는 일로 주일을 범하는 것, 극히 필요한 경우 외에 술 취하고 알콜 음료를 사거나 파는 것, 종을 두거나 팔고 사지말며, 싸움과 시비와 떠들음, 형제간에 소송하는 것, 세금 물지 않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 불법적으로 고리대금 주고 받는 것, 불법이자, 사랑스럽지 못하거나 무익한 대화, 특히 목회자(Ministers)들이나 행정관들(Magistrates)에 대해 악담하는 것』등으로 사치 방종, 유흥, 주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 오락과 「갚을 가능성이 없는 돈을 꾸거나 외상으로 사는 것」등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증거들을 말하였다. 웨슬레는 「이러한 모든 것을 지키는 결실로 그들의 구원에 대한 갈망을 증거해야 한다」고 하였다.
2. 선을 행하여 능력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며, 기회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방면으로 실천해야 한다. 즉 육체를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며, 헐벗은 이에게 입혀 주고, 병자나 옥에 갇힌 자를 돌봐주고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영적으로는 우리가 상종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고 권면하여, 악마들의 열정적 교리(enthusiastic doctrine of devils)를 짓밟아야 한다』.
웨슬레는 악마들의 열정적 교리란 『우리 마음이 하고자 아니할 적에는 착한 일을 아니할 것이라는 교리이다』고 설명한다.22) 웨슬레는 이러한 선을 행하는 방법에서 「믿음의 가정들」(The household of faith)에 먼저 행해야 할 것을 말하였다. 그래서 고용시킬 때도 다른 사람보다 우선적으로 고용시켜 주고 도와 줄 것을 말하였다.23) 웨슬레는 선을 행하는데 있어서 『참음으로 그들 앞에 있는 곳에서 경주할 것이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며, 그리스도에 이르도록 인내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24)
3. 하나님께서 세운 모든 예법(All the ordinances of God)을 삼가 지키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공중예배(The publicworship of God), 말씀 읽는 것과 말씀사역(The Ministry of the word), 성만찬 (The supper of the Lord), 가정과 개인기도(Family and private prayer), 성서연구와 금식(fasting)과 절식(abstineve)이라 하였다.
웨슬레는 『이러한 것들이 우리 연합신도회의 총칙이다.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 이 모든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가운데 하나라도 습관적으로 어기면 그 영혼을 돌아보는 책임이 있는 이(목사)에게 알게 할 것이다』고 하였고 훈계와 권고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을 때에는 감리회 신도회에 참여치 못하게 하였다. 이후에야 「우리는 우리의 영혼상 직무를 다한 것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웨슬레는 3개월에 한 번씩 진실한 신앙을 유지하는 징표인 「표」를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연합신도회의 규칙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 받고 구원 받은 자로서의 확신과 생활 속에서의 증거를 보여야 함이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제랄드 케네디(Gerald Kennedy)는 이 점에 대해서 「복음은 그 자체가 생의 모든 면을 다루므로 전인(全人)을 치료하는 것」이라 하였다.25) 윌리엄․케논(William R. Cannon)은 『감리교회는 출발부터 회심의 체험을 강조한다. 도덕적 진지성(Moral earnestness)은 항상 회심의 체험(The experience of Conversion) 결과이다. 감리회는 윤리적 성취(Moral accomplishment)를 항상 강조했다.』고 하여 복음주의적 윤리임을 말하였다.26)
또한 복음을 통한 사회개혁(Social Reform)적인 강한면도 볼 수 있다. 이 규칙은 오늘날 세계 감리회가 그 총칙으로 삼고 있으며 한국 감리교회도 총칙으로 삼고 있다. 웨슬레는 성경적 원칙으로 총칙을 제정하여 신도회를 형성시켰고 목회하며 치리하였고, “진정한 감리교회”를 촉구하였다.
*웨슬리의 "신도회"
III. 연합신도회의 조직과 임무
웨슬레의 신도회(Society)에는 회원이 된 사람 중에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다시 죄된 생활로 돌아가 아무 변화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위선자도 가만히 들어와 있을 수도 있으며, 전에 범하던 죄로 빠지는 자도 있어서 그냥두면 나쁜 결과가 생긴다. “죄는 전염성”이 있어 비난과 오해가 발생케 되고, 신도회에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에 이를 구별하여 제거하는데 관심을 두게 되었다.27)
그러나 웨슬레는 혼자서 많은 회원들의 영적 신앙생활 상태를 알 수도 없고 적당한 때 그들을 격려하거나 충고할 수도 없었다. 불품행자와 위선자를 구별하여 나쁜 죄의 요소를 제거시키고, 진실한 신앙의 증거를 보이고 결실하도록 하기 위하여 평신도 조력자들이 필요하였다.
웨슬레는 이 일을 해결키 위해 신도회를 더 작은 속회(class meeting)와 신도반(Bands)으로 구분하여 신앙생활을 지도하였다. 또한 더욱 충실히 믿음으로 살기 원하는 자들로 선발 신도반(Select Society)을 편성하였으며, 회원이 되었다가 범죄하고 타락하여 불품행을 깨닫고 다시 회개하여 입회코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참회자반(penitents)을 두어 신앙생활을 지도 육성 보호하였다.28)
웨슬레는 치밀하고도 조직적인 편성으로 평신도 지도자들을 세워 이를 수행하였다. 3개월에 한번씩 각 개인을 면담하여 도덕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랐는지, 인도자와 이웃의 말로써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지, 오해나 갈등이 있는지도 알아보아 평화와 형제애를 방해하는 것을 제거하기 위해 기도, 권면하였다. 특이한 것은 표(Ticket)를 준비해 두었다가 그들의 이름을 적어 주기도 하였다. 「이 표를 갖은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이란 증명표」로 삼게 하여 이 표가 있어야만 회원으로 인정받아 속회와 신도반회도 참여케 하였다. 이 표는 3개월에 한 번씩 바꾸어 불품행 자에게는 주지 않아 회원에서 제거시키기도 하였다.29)
1. 속회(Class Meeting) 조직과 속장의 임무
속회는 본래 브리스톨 감리회관 건축 때 부채를 갚기 위해 시작된 조직이었다. 속장(class leader)은 11명의 회원 집을 방문하여 매주 1페니씩 헌금을 받아 유사(steward)에게 전달하였고, 가난하여 내지 못하면 속장이 부담하여 내기도 하여 시작된 조직이었다.30) 웨슬레는 이러한 조직에서 암시 받아 회원들의 신앙생활과 영적 상태를 파악하는 제자훈련 소그릅으로 삼았다. 웨슬레는 속회의 기원에 대해,『나는 진지하면서도 예민한 몇 사람을 지정하여 함께 회의하면서 내가 목회자로서 돌보아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 뿐 아니라 그것 때문에 오랫동안 내가 고심하고 있다』고 설명한 후 장시간 회의하고 합의된 사항을 브리스톨에서와 같이 속회로 나누어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돌보게 하는 길 밖에는 더 좋은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하면서 『이것이 런던에서는 감리교 속회의 기원이다』고 하였다. 이어서 『이 제도가 말할 수 없이 유용하다고 하는 것은 그 뒤로 시간이 갈수록 더욱 명백해졌다.』고 했다.31)
이 방법은 런던에서 실시하여 많은 불품행자를 발견하였고 여전히 악한 행실을 하는 자는 회에서 끊어버렸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였고 다른 곳에서도 실시하였다.32)
속장의 주요 임무는 심방과 보고이다. 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심방하여 신앙형편을 조사하고 권면, 책망, 위로, 격려, 구제하는 임무이고, ② 보고하는 임무가 있었다. 즉 목사에게는 누가 앓고 행실이 나쁜가를 전하고, 유사에게는 속회에서 걷은 돈을 전하는 일이다. 속회는 한 곳에 모이지를 않고 속장이 방문하였으나 실시하는 가운데 이 일이 불편한 점이 많으므로 한 곳에 모이기로 결정하였다.
웨슬레는 속회가 한 곳에 모이기 시작한 이유를 ① 속장의 시간허비, ②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는 일(집주인, 친척 등)이 있기 때문이며, ③ 속장이 만나도 자유롭게 권면하거나 책망 위로 격려할 기회가 없고, ④ 찬반의견을 한데 모을 수 없으며, ⑤ 친척과 이웃사이에 오해가 발생하므로 이를 풀기 위해 한 곳에 모이기 시작했다고 했다.33)
속회제도의 유익에 대해 웨슬레는 「기독교 교제를 체험케」하여 ① 수고를 서로 감당하며, ② 서로 함께 염려하고, ③ 더욱 더 서로 사랑케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속회에 대한 반대와 불평도 있었다. 즉 ① 시작할 때 없었던 일을 왜 만드는가, ② 성경엔 속이란 없지 않은가, ③ 사람이 만든 제도이므로 반대한다. ④ 좋기는 하나 인도자들이 그 일하기에는 재능도 없고 은혜 받지 못했다는 불평이었다.
웨슬레는 이에 대해서 시작할 때 필요의 유익을 몰랐기 때문이며, 필요에 응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깊은 생각에서 실시되었고 더 좋아지기 원하는 마음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은 변하는 것」이라 하였다. 또한 성경은 일반원칙만 제시하지 특수한 경우에 대해서는 인류의 상식으로 행하도록 하였을 뿐이어서 오히려 속회를 두는 것을 인정하는 성구는 많다고 하였다. 또한 인도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도록 선택, 축복하신 분이라 말하였고, 만일 재능으로나 은혜로나 무능한 것이 명백하면 남에게 말하지 말고 내게 말하면 더 좋은 분과 바꾸든지 파면하게 될 것임을 말하였다. 웨슬레는 인도자를 위해서 화요일 밤마다 특별히 모여 기도하고 권면함으로 더 좋은 지도자가 될 줄 믿는다고 하였다.34)
2. 신도반(Bands) 조직과 임무
속회가 감리회의 신앙훈련적인 모임(disciplinary cell)이라면, 신도반(Band)은 신앙고백적인 모임(confessional Group)이다. 속회가 감리회의 핵심조직으로써 윤리적(moral), 영적(spiritual) 생활을 지키도록 훈련하고, 가르치며, 구제하는 것이라면, 신도반은 기독자의 완전을 추구하는 모임으로 죄의 용서와 구원의 확신과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모이는 속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35)
웨슬레는 신도반 편성의 동기를 ① 편협한 정신, ② 당파심, ③ 자기 동류에만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다른 곳에는 없다는 맹신을 할 수 있는 대로 막으려고 해결방법을 찾은 것이 신도반의 조직 동기였다고 밝히고, 다른 나라, 다른 교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중에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읽어 주며, 서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마귀의 유혹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장벽을 헐기 위해 숨김없이 말할 기회가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36)
웨슬레는 야고보 5:16『서로 고하여 병낫기 위해 기도하라』한 말씀을 근거로 하여 신도반을 기혼 남자, 독신 남자, 기혼 여자, 독신 여자 등 성(性)을 구별하여 4-5명으로 편성하였다. 남자반은 수요일 저녁, 여자반은 일요일 저녁에 각각 모였다. 3달에 한 번은 저녁시간 15분은 남자반만, 그 다음 30분에는 여자반만 모였고, 세 번째 45분에는 남․여반을 다함께 모여 애찬회(Love feast)를 실시하였다.37)
이것은 초대교회의 떡을 떼며 기도하였다는데서 실행된 애찬식(Agape)을 재생시킨 것으로,『우리는 평범한 빵과 물을 먹었다.』고 하였다. 이 애찬식은 호밀빵과 차를 서로 먹여주며 『당신의 가슴속에 주 예수를 오래 모십시요.』라며 서로 기도하여 주고 자유롭게 신앙에 대해서 담론하는 것으로 1739년 4월 15일 브리스톨에서 첫 애찬회가 시행되었다. 1739년 4월 29일에는 남자반을 실행하였으며, 1740년 7월 13일에는 여자반을 킹스우드에서 행해진 후에는 철야기도회(watch night service)에서도 시행되었다.38)
신도반의 규칙은 ① 적어도 주간에 한 번 모임, ② 지정한 시간에 출석, ③ 찬송과 기도로 시작, ④ 각각 자기의 참된 영적 형편을 말하되 순서 있게 지난 모임 이후 자신의 언행심사에 있어서 범한 죄와 시험을 숨김없이 분명히 말하며, ⑤ 인도자가 먼저 고백하고 순서대로 신앙형편, 죄와 시험에 대하여 일일이 고하는 것이라 하였다.39)
웨슬레는 이러한 신도반(Band)을 통하여 “서로 죄를 고하므로 고침을 입게 되었고 어떻게 할지 몰랐던 시험을 이길 수 있게 되었다“고40) 하면서 신도회에 회원 훈련의 유익함과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웨슬레의 신도회(Society)에는 여러 신도반(Bands)으로 나뉘어 찬송과 기도와 고백을 통해 서로 기도하며 나누는 교제를 이루도록 하여 기독자의 완전을 촉구토록 하였다.
*신도반 표
참고로 1738년 5월 1일에 제정된 페터레인의 종교모임의 규칙(Orders of a Reigious Society Meeting in Fetter Lane)을 보면 다음과 같다. 33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이 규칙은 『야고보(st.James)에 의해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과 피터뵐러(Peter Boewler)에 의해 주어진 권면에 순종하여 수락한다』고 전제하였다.
그 내용은 일주일에 한 번 서로 모여 그들의 죄를 고백하며 서로가 치료 받기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며, 이 목적으로 여러개의 반(Bands), 즉 작은 모임(little societies)으로 나누어 모인다는 것이다. 인원 구성은 5명 이하로 편성하되 10명을 넘지 못한다 하였고, 각 회원은 부득이한 이유가 없는 한 지정한 시간에 엄수하여 모이며, 찬송과 기도로 시작하여 지난 모임 이후 받은 시험과 유혹에 대하여 자신의 심정의 진실한 상태를 자유롭고 평이하며 진지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오후 10시까지 기도회가 끝나지 않는다면 30분 연장하되 10시 30분까지는 끝내야 한다고 했다. 각 회원은 일어서서 고백해야 하며 그가 앉기 전에는 어떠한 말을 해서도 안 되며 이 모임에서 되어진 고백이나 담화는 일체 밖에 나가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모임에 결석할 경우에는 지도자에게 미리 알려야 하며 계속 결석할 경우에는 모든 회원 앞에 설명해야 하고 여행이 있을 때는 지도자에게 알려야 한다하여 출석을 강조하였다.
이 모임에서 묻는 질문은 “당신이 갈망하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는가?” “사랑을 동기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자신을 개방하고 있는가?”등으로 개개인의 생활 속에서 말씀을 따라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묻고 기도하는 것이다. 일요일 밤에는 7시부터 10시까지 애찬회로 모이며, 회원은 밤이나 낮이나 그의 형제를 위해 계속 중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John S. Simon : John Wesley and the Religions and Societies, London, The Epworth Press, pp. 196-198참조). 시몬박사(John S. Simon, D. D)는 웨슬레가 이러한 페터레인의 종교도임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신앙고백 모임인 신도반(Bands)을 편성하여 활발히 활동하도록 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웨슬레가 이러한 신도회 모임에 열중할 때 반대와 불평도 있었다. 즉 ① 성경에 없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 ② 천주교적이라는 점에서였다. 이에 대해 웨슬레는 시작할 때 필요의 편익을 몰랐기 때문이며 필요에 응하여 실시하는 것이라 하였고 성경은 일반원칙만 제시하지 특수한 경우에 대해서는 인류의 상식으로 평가하도록 하였으므로 신도반(Band)을 두는 것이 속회(Class Meeting)를 두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천주교적이라는데 대해서는 천주교 고백은 사제신부 한 사람에게 개인이 고백하는 것이지만 신도반에서는 여러 사람이 같이 참석하여 서로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에 천주교적 고백과는 비슷하지도 않다고 하였다.41)
신도반은 속회와 함께 웨슬레의 신도회에 있어서 두 기둥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 감리교회는 속회는 열심히 모이지만 신도회는 그 모습도 사라지고 말았다. 속회는 새 신자를 받아 훈련하고 신도회의 여러 선교적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인 반면에, 신도반은 회원 자신의 신앙을 심화시키고 체험시키며 감리교인으로써 진실한 신앙을 추구하고 가졌으며 그에 합당한 신앙의 결실을 맺게 하는 신앙고백적이며 기도로 친교하는 모임이었다.
3. 선발신도회(Select Societies)의 조직과 임무
웨슬레는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선발신도회로 모였는데 이는 『신도반 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산다고 믿은 사람들로 독실한 믿음 아래 순종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편성되었다.42) 이 모임의 동기는 『그들에게 완성으로 매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들이 받은 모든 재능과 은혜를 발휘하여 서로 더욱 사랑하게 되고 서로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게 될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숨김없이 고백할 수 있고 모든 형제들에게 사랑과 성결과 선행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그런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고 하였다.43)
이 모임의 규칙에 대해 웨슬레는 『그들은 모두 마음 속에 가장 값진 규칙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잡다한 규칙은 필요 없었습니다.』고 말하면서 세가지 규칙을 말하였다. ① 이 회에서 말한 것은 다시 말하지 말 것, ② 각 회원은 그 목사에게 자기기 판단키 어려운 일을 제출하여 그의 제시를 받을 것, ③ 각 회원은 매주 한 차례씩 자기가 아낄 수 있는 돈을 가져 올 것이었다.44) 이 모임의 특징은 누구나 자유로히 말 할 수 있으며 회원은 모두 평등한 것이다. 웨슬레는 이러한 모임을 통하여 전통적인 성서적 입장에 굳게 서서 좌우로 탈선치 않도록 하였다.
신도반(Bands)과 선발신도회(Select Society)는 웨슬레 자신의 체험에 의해서 만들어진 질문에 근거하여 신앙고백적인 모임이 되어 신도회의 중요한 기둥이 되었다. 이러한 회에서 물은 질문은 「당신은 죄 용서함을 받았는가?」「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가?」「당신은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영의 증거를 가졌는가?즉, 하나님의 자녀인가?」「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마음에 채워졌나? 당신은 내적 외적 죄를 씻었나?」「당신은 당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말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이에 대하여 진실하고도 신중한 고백과 대화를 하였고 서로 기도하였다.45)
4. 참회자반(Penitents)의 조직과 임무
웨슬레는 신도회 안에서 처음에는 순수하고 열정적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구원을 갈망하며 믿음의 증거를 나타내다가 서서히 죄에 빠져들고 나태케 되어 마음으로 범죄하고 나아가 눈에 나타나는 죄악을 범하기도 하여 멀어져 나간 신도들이 있는 것을 알았다. 이를 위해 교인들에게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하였으나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알맞은 훈계나 권면이 필요함을 깨닫고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참회자반(Penitents)을 만들어 다시 신앙생활을 하도록 독려하였다.46) 웨슬레는 이 참회자반을 『믿다가 무슨 일로나 낙심했던 사람들이 따로 모이는데 그것을 참회자반이라 한다』고 정의하였다.47)
웨슬레는 이 모임을 주관하면서 그들이 회개하고 주의 용서 받았음을 깨닫고 새 힘을 얻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진심에서 뉘우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협과 약속의 말씀을 들려주고 그들 편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우리 영혼의 목자가 되시며 사제가 되시는 주님께 돌아올 것을 부탁하셨다』고 하였다.48)
오늘날 기구화되고 개교회화, 세속화, 대형화 되어가는 한국 교회에 웨슬레의 속회와 신도반, 선발신도회와 참회자반의 조직과 편성은「교회 안의 작은 교회」로써, 교회 목회와 성장, 성숙, 세계선교(世界宣敎)에도 중요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진정한 감리교”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IV. 연합 신도회의 섬기는 자들
웨슬레는 이상과 같이 신도회를 작은 모임들로 편성하고 이를 지도하며 육성키 위해서 진실한 믿음의 증거를 갖은 신도를 택하여 평신도 사역자, 섬기는 자들을 세워 활동케 하였다. 이러한 연합 신도회에 설치된 섬기는 자들은 평신도사역자(Lay-Assistants), 유사(Stewards), 속장(class leader), 병자 심방인(A visitor of the sick), 교사(Teacher)등이 있었다. 그 중 속장에 대하여는 속회를 논한 앞에서 다루었으므로 나머지 4부류의 평신도 섬기는 자들에 대하여 살펴본다.
1. 평신도 사역자(Lay-Assistant)
이들은 현재 전도사나 권사, 장로와 같은 직분으로 평신도 전도인(Lay-Preacher)이다. 이들의 임무는 목사가 없는 동안 ① 아침, 저녁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일, ② 주일에 한 번씩 연합집회와 속회 그리고 특별집회 인도하는 일, ③ 석달에 한 번 속을 심방하는 것, ④ 모든 의견 차이에 관하여 청취하고 해결하는 일, ⑤ 불품행 자를 원입인 반열로 내리치고 원입인은 속회와 신도반 회원으로 받아들이며, ⑥ 유사, 속장, 교사들이 직무에 충실하도록 살피고, ⑦ 속과 신도반 지도자를 매주 만나 보고를 접수하며, 유사의 보고도 접수 받아 신앙상태를 돌보는 일이다.49)
1744년 제 1회 연회 때 평신도 사역자 혹은 평신도 전도자의 수칙을 12가지로 제정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이를 요약하면 ① 근면, ② 항상 근엄한 태도, ③ 여인을 가까이 마라, ④ 아무의 험담도 믿지 마라, ⑤ 험담치 말라, ⑥ 잘못된 일을 보면 즉시 말하여 주라, ⑦ 신사인체 하지 마라, ⑧ 죄짓는 일 외에 아무것도 부끄러워 마라, ⑨ 금품을 받지 마라, ⑩ 빚지지 마라, ⑪ 시간 엄수, ⑫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말고 복음의 자녀로 행하라는 것이다.
웨슬레는 『무엇보다도 그대가 우리와 함께 주님의 포도원의 일을 하는 이상 어느때 어떤 장소에서나 그의 영광에 합당하다고 우리가 판단하는 대로 우리의 지시를 따를 각오를 가지라』고 하였다.50) 또한 평신도 사역자들은 기도와 독서에도 힘서야 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를 제정하여 주기도 하였다.51) 평신도 사역자들은 순회 전도인으로도 활동하였고, 이들 중에 후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여 목회자가 되기도 하였다.
1739년에 John Cennick와 Joseph Jumphreys가 평신도 사역자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감리회 조직에 실제적인 일각을 담당한 지도자들이었다. Martin Schmidt는 평신도 사역자들의 규칙은 초기 기독교 뿐만 아니라 수도승적 청교도주의(Monastic puritanism)적인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하였다.
2. 유사(Stewards)
유사는52) 4-7명으로 조직되었고 이들은 재정 출납을 담당하였다. 이들의 직무는 ① 신도회의 일반 사무처리, ② 각 속장들의 헌금수금, ③ 소요금액 지출, ④ 빈자 구제금 지출, ⑤ 건물관리, ⑥ 재정 수지상황, 장부 기재 보관, ⑦ 신도회 규칙 엄수되는지 목회자에게 보고 등이다. 또한 유사의 수칙은 다음과 같다. ① 절약하라, ② 빚지지 마라, ③ 외상을 오래 끌지 마라, ④ 남을 도와줄 때 찌프린 안색이나 불평하지 마라, 도울 수가 없을지라도 도움 받으려는 사람을 불쾌케 마라, ⑤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려 마라, ⑥ 보조자의 하수인임을 기억하고 항상 결백한 태도로 말하라.53)
본래 유사들의 주요 관심 임무는 극빈자와 병자들을 실제로 돌보고 구제하는 일이었다. 유사들은 매주 목요일 아침 6시에 모여 밀린 사무를 처리하고 필요한 환자와 빈자에게 구제금을 지급하였으며 헌금의 잔액은 모두 구제하는 일에 지급되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저는 이처럼 세상 물질로도 깊은 신앙심과 빈틈 없는 은혜 속에 쓰여짐을 보고 기뻤으며 이것으로 제 근심이 사라졌습니다.』고 하였다. 웨슬레는 부족한 재정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우리에게 풍요라곤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때로 큰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예기치 못한 도움을 받아 실망하지 않고 다시 일을 계속할 수 잇게 되곤 합니다.』고 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그 뜻을 향하여 필요한 일에는 돈을 쓰도록 하였다.54)
3. 병자 심방인(A visitor of the sick)
웨슬레는 인간생활에서 병이 큰 것임을 잘 알아 병자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속장들과 유사들이 심방하고 구제하였으나 이들 환자들이 요구하는 만큼 심방할 수 없으므로 병자 심방인을 따로 두었다. 웨슬레는 신도회원 중 자원하는 사람들을 택하여 2명씩 짝지어서 다니도록 하였고 일주일에 적어도 3번은 심방토록 하였다. 병자 심방인들이 지켜야 할 수칙은 ① 솔직하고 겸손해야 한다. ② 온유하고 오래참고 진실해야 한다. ③ 청결할 것, ④ 환자를 너무 가까이 말 것을 지키도록 하였다.55)
이러한 심방을 통해서 웨슬레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더욱 놀라운 축복을 내리시는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많은 생명이 구원을 받았고 많은 환자가 나음을 얻었으며 고통과 빈곤으로 시달리던 많은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마음이 무겁던 자들이 기쁨을 얻게 되었고 슬피 울던 자들이 위로받게 되었으며 이 방문자들도 그들이 섬기는 주님으로부터 그들의 노력에 대한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고 하였다.56)
4. 교사(Teacher)
웨슬레는 어린이 교육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교육받지 못하고 죄악에 접하는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킹스우드 광부 지역에 1739년 6월 기공식을 하고 학교를 세웠다. 이에 대하여 웨슬레는 일기에서 『여기서(킹스우드회관) 큰방 한개는 교실로 시작되었고 작은방 네 개는 그 양편으로 짓는데 교사들과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가난한 어린이들이 기숙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집이 완공되어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이미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두 사람이 있고, 현재로서의 집의 형체는 거의 다 끝나 갑니다. 그래서 봄이나 이른 여름이면 완공할 것으로 희망하고 있습니다.』고 하여 그의 교육선교의 열정을 볼 수 있다.57)
웨슬레는 유사 2명을 임명하여 학교를 관리케 하였고 60명의 어린이를 모아 부모가 학비를 감당치 못하면 기부금으로 충당하였고 극빈자 아이는 의복까지 지급하여 주었다. 학교의 규칙은 ① 6세 이하 입학금지, ② 아침 설교 엄히 출석, ③ 6-12시, 13-17시 수업, ④ 노는 날 없음, ⑤수업시간 중엔 선생님께 질문하는 것 이외엔 말해선 안됨, ⑥ 이유없이 일주일에 이틀 결석하면 퇴학이 된다는 것이다.58) 웨슬레는 이 학교를 통해 『학생들 가운데서도 성격이나 행동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쉽게 읽고 쓰고 셈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동시에 올바른 종교 원리에 대해 배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고 하여 학교를 통한 교육선교와 봉사의 유익한 결과를 말하였다.59)
V. 맺는말 : 연합신도회의 특성과 영향
이상에서 연합신도회의 설립과정과 본질과 조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지면 관계상 생략하였지만 연합신도회에서 활동한 선교 방법을 더 연구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순회 전도제도가 있으며 매월 보름달이 떠서 말타고 여향하기 편한 때에 모이던 「철야 기도회」(Watch-night service)와 신도반에서 실시하였던 「애찬회」(Love-feast)와 사회적 관심과 개혁활동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웨슬레는 모라비안교도와 헤어지게 된 것이 그들의 「정적주의」(Quietism)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웨슬레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회적이며 그 거룩성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웨슬레는 개인주의적이며 정적주의에 머무는 신비주의에 반대하였다.60)
이러한 과제를 남겨 두면서 감리회의 성격을 결정 준 웨슬레의 연합신도회의 특성과 영향을 제시함으로써 “진정한 감리교회”의 모습으로 결론을 삼으려 한다.
1. 연합 신도회의 근거는 믿음의 결실, 복음선교(福音宣敎)에 있다. 웨슬레는 새로운 교파나 교회를 수립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그의 관심은 구원의 확신과 그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연합 신도회의 모든 조직과 활동 뿐 아니라 규칙은 선교적인 차원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임원이라도 신앙의 결실을 보이지 않을 때에는 회원에서 탈락되었으며 모든 회원이 선교에 참여하는 일원이 되어야 했다. 모든 개종 회심자들은 복음 전도자가 되도록 훈련받고 세계 선교활동을 일으켰다.61)
2. 연합신도회는 신앙의 확신과 증거에 결실을 얻기 위해 제자훈련 모임이다. 믿음 안에 계속 성장하고 서로 격려하며 권고하고 사랑으로 증거하는 모임이다. 이 점은 오늘날 교회에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교인은 계속 제자훈련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웨슬레는 복음을 전하는 설교로만 그치지 않고 결심시킨 후 믿음을 증거하며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해 회심자를 돌보고 보호 육성하는데 심혈을 바치었다.62) 이러한 관심에서 속회와 신도반, 선발신도회, 참회자반 등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소그룹(Cell) 운동은 오늘 현대 교회에도 중요시하며 부각되는 목회, 선교, 신학의 관점이다. 이미 웨슬레는 이를 조직편성 뿐아니라 치밀한 관리로 실천한 것이다.
3. 연합신도회는 사회개혁적인 윤리적 성격이 강하다. 연합신도회 규칙에서 회원이 추구하고 지켜야 할 일들은 성서를 근거하여 실천해야 할 규칙으로써 그 성격이 실생활과 직결된 복음, 윤리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노예폐지 운동 등 사회폐습을 일소시키고 사회정의를 구현시키는 사회개혁적 성격이 부각되어 있다. 발터․뮤엘더(Walter G. Muelder)는 『감리회는 개혁 프로그램을 수행함에 있어서 특별한 제한이 없고 전사회(全社會)에 변화의 자극을 주도록 요청한다. 그러므로 사회조직에 도덕적 활성체(Moral Vitamins)이다』고 하면서 사회개혁에 과감하였음을 지적하였다. 즉 ① 알코올음료 거래 반대, ② 노예제도 폐지, ③ 차별 없는 복음, 신분계층을 없앴음, ④ 부의 청지기, ⑤ 가난한 사람의 곤경을 합리화시킴을 공격함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63) 이러한 사회적 관심은 웨슬레의 일기 곳곳에 나타나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구빈(Poor House)원을 설치하였을 뿐 아니라 병들고 가난한 자를 치료키 위해 자신이 의학공부도 하여 진료하고 약을 지어주는 일을 한 열정에서도 나타나 있다.64)
4. 연합신도회는 민중의 교회였다.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모임이다. 웨슬레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세우고 그들과 함께 신도회를 치리하였다. 또한 평신도 설교자와 전도자를 세워 순회전도로 보냈을 뿐만 아니라 유사를 세워 학교와 구빈원(Poor House)을 운영하여 구제, 복지사업을 하도록 하였다. 또한 신도회의 주된 두 조직인 속회와 신도반에 각각 지도자를 세워 평신도 사제직을 수행케 하였다. 뮤엘더(Walter G. Muelder)는 「상층계층의 국교도(Anglican)에 축출된 무시받고 무관심받는 가난한자의 감리교회」라 하였고 「웨슬레 운동은 민중의 운동(People's Movement)이었다」고 하면서 「가난한 교회로서 감리교회 특징은 평신도 설교자, 사역자들을 활용함」이라고 하였다.65)
5. 연합신도회는 초교파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복음선교를 위해 타교파와 협력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내 교파, 내 방법에만 임한다는 편견과 당파심을 웨슬레는 가장 두려워하였다. 사실 신도반(Bands)을 편성한 것은 이러한 동기에서이다. 우드(Wood)는 「초기 감리교 신도회들은 성격상 비교파적이라기 보다는 초교파적이었다」고 하면서 「감리교인들은 모든 교파 가운데 생명을 확장하려는 것이다」고 웨슬레의 선언을 제시하고 있다.66) 연합신도회의 회원은 대부분 영국교회 교인이었으며, 신도회 모임은 교회 예배에 지장이 없도록 주간에 모인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이 오늘날 감리회가 교회연합(Eccumenical) 운동에 앞장서게 하도록 한 것이며, 「내 교회주의」「내 교파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감리회가 가장 배격한 것이었다. 연합신도회(United Society)는 감리회(Methodist Society)로써 복음(福音)으로 하나되고 연합하는 제자훈련, 복음운동(Evangelical Movement이었다.67)
웨슬레의 연합신도회는 오늘날 “진정한 감리회”의 성격과 본질을 규정해주는 것으로써 글로발(Global) 산업화시대, 비인간화되고 개별화되어 대화의 단절이 이룬 교회에 복음으로 연합하고 제자훈련을 이루어, 세계 구원의 복음선교와 신학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끝;rch)
*웨슬리의 기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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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J. Wesley: "The Nature, Design, and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Ⅲ, Michigan: Baker Book House, 1979 p. 269.
2) Ibid.
3) J. Wesley: 日記 1939. 3. 29, 당시 웨슬레는 런던의 모라비안 교도의 작은 모임단체인 Fetter-Lane을 지도하고 있었다. 본래 웨슬레는 야외 선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화이트필드의 준비로 시작하게 되었다.
4) Ibid, 日記 1739. 4. 2, “오후 4시에 어쩔 수 없이 기분은 더욱 언짢았으나 노상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다. 이 때 나는 그 도시에 인접한 작은 언덕위에 서서 약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설교하였다”고 했다. 당시 설교 본문은 이사야 61:1~2, 누가복음 4:18~19이었다.
5) Ibid, 日記 1739. 4. 8, 킹스우드의 건너편 Rose Green에서는 약 5,000명에 설교하기도 하였다.
6) Ibid, 日記 1739. 5. 9.
7)I bid, 日記 1939. 5. 13.
8) Ibid, 日記 1739. 6. 11. 이 때 웨슬레는 성경이 오직 나의 법칙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어디 든지 부르시는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나의 확신입니다” 고 하였고 “ 온 세계는 나의 교구다”고 하였다.
9) J. Wesley: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in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Ⅲ, Michigan: Baker Book House, 1979, p.248.
10) 日記, 1738. 10. 13.
11) J. Wesley: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op. cit., pp. 241~250.
제 1회 연회록.
12) Ibid.
13) A. Skevington Wood: The Burning Heart; John Wesley Evangelist Minnesota: Bethany Fellowship, 1978, p.187. 여기서 Wood는 감리회의 개종자의 훈련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14) William R. Cannon : "Accomplishments to Wesley's Death" In Methodism(Ed, William, K. Anderson), The Methodist Publishing House, p. 31.
15) Clifford W. Towlson : Moravian and Methodist, London: The Epworth press 1957, p.177. cf. Collin, W. Williams : John Wesleys Theology Today, Nashville : Abingdon press p. 1960, pp.141ff.
17. John Wesley : "The Nature, Design and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op. cit.., p. 271.
18. Ibid.., p. 270. cf, 미감리회 교의와 됴례, 京城;朝鮮耶蘇敎書會 1921. p5.
19. J. Wesley : "Advice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s,"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Ⅷ, op. cit., p. 351.
20. J. Wesley : The Character of a Methodist, op. cit., pp.339-347.
21. J. Wesley : The Nature Design and General Rules of the United Societies, op. cit., pp. 270 이하를 참조할 것. cf, 미감리회 교의와 도례, op.cit,.p16-17. 연합감리교회 장정, Nashville, UMC, 1997. p66.
22. Ibid., p. 231. cf, Ibid.,p17. UMC장정에는 “우리 마음이 그 일에 대하여 자유하지 못하면 선을 행할 수 없다”고 하였고, 이는 “열광적인 교리”라하였다. p66.
23. Ibid.
24. Ibid.
25. General Kennedy : The marks of Methodist Evangelistic Materials, 1960, p. 39.
26. William R. Cannon : op. cit., p. 31. cf, Stuart Andrews: Methodism and Society, London;Longman,1970. p60-64.
27) J. Wesley :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op. cit., p. 252. 초기 감리교 신도회와 오늘의 크리스챤 공동체에 대해서 다음을 참조하라. cf, Mortimer Arias;"Methodist Societies in the Eighteenth Century and Christian Base Communities in the Twentieth Century" in Theodore Runyon(ed), Wesleyan Theology, Nashville; UMC, Kingswood Books, 1985. pp227-239.
28) Ibid., p.252 cf: 제1회 연회록. cf, David Lowes Watson; The Early Methodist Class Meeting, Nashville, Discipleship Resources, 1985. pp93ff.
29) Ibid., pp. 256~257.
30) Ibid., p. 252, 1742. 2. 15. 일기에 보면 건축빚을 갚기 위해 의논한 결과 “①가능한 모든 회원은 매주 1페니씩 헌금한다. ②온 감리회가 속으로 나누고(한속에 12명씩) ③각 속에서 한 사람이 나머지 회원들의 돈을 받아 매주 회계에게로 가져오라”고 합의했다 하였다.
31)J. Wesley, 日記 1742. 3. 25.
32) J. Wesley,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op. cit., p.253.
33) Ibid., p. 253.
34) Ibid., pp. 254~255.
35) Martin Schmidt : John Wesley, Vol. Ⅱ. parti Ⅰ In Norman D. Goldhawk, NY : Abingdon press 1972, p.122.
A.S. Wood는 속회가 감리회의 핵심이며 감리회의 훈련장(The disciplinary cell of Methodism)이라 하였고 신도반(Band)을 고백적(Confessional)이라 구분하였다. cf. A.S. wood, op. cit., pp. 191~192, 또한 William R. Cannon도 “신도반(Band)은 기독자의 완전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원칙적으로 고백적인 모임이라”하였다. cf. William Cannon, op. cit., p. 34. David Lowes Watson는 속회와 신도반을 “웨슬레의 제자훈련의 신학“(Wesley's Theology of Discipleship"이라 했다. op.cit., pp39f.
36) J. Wesley :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op. cit., p. 257.
37) Ibid., p. 259. 최근 N. 앗츠는 18c 영국 상황에서 Methodism 발생 중 신도회의 역할을 분석하고 있다. cf, Nigel Yates ; Eighteenth-Century Britain 1714-1815, London;Pearson Education Limtted. pp88f.
38) Clifford W. Towlson, op. cit., pp. 209~215. cf, David Hemrton; Methodism, Empire of the Spirit, Yale Univ,2005. pp25-26.
39) John Wesley : "Rules of the Band-Societies." The Wolks of john Wesley, Vol. Ⅷ op. cit.
40) J. Wesley :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op. cit., p. 259. cf, Jonhn Munsey Turner; John Weley, the Evangelical Revival and the Rise of Methodism in England, London, Epworth Press 2002. pp46ff.
41) Ibid., p. 259. 웨슬레는 천주교 고백도 영국교회에서는 용인하고 본다고 했다.
42) 제 1회 연회록.
43) J. Wesley,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op. cit., p. 260.
44) Ibid.., p. 261.
45) J. Wesley : "Rules of the Band-Societies." cf. Martin Schmidt : op. cit., p. 102.
46) J. Wesley :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op. cit., p. 260.
47) 제 1회 연회록.
48) J. Wesley,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p. 260.
49. Ibid., p. 262. cf. 제 1회 연회록.
50. 제 1회 연회록, p. 263.
51. 제 1회 연회록, p. 263, 전도인이 외울 서적은 제 1회 연회록 p.264를 참조하라.
유사(Stewards)는 신도회의 속장과 함께 기둥과 같은 봉사자이다. “유사”란 명칭은 여러 가지로 번역되어 있다. “집사” 혹은 “권사”등으로 혼돈되어 있다. 본인은 한국 초대 총리사였던 양주삼 목사가 한국 최초 교리장정을 발행하였을 때(1918) 사용된 용어로 취하였다. 그러나 현재 한국 감리교회는 “유사부”를 “재무부”로 개칭하므로써 유사란 명칭이 없어졌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권사”나 “집사”의 임무로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유사”라 하였다. 이는 오늘날 한국 감리교회가 임원 중에서 재무부원을 선출하기 때문이다.
52. 제 1회 연회록, pp. 263~264.
53. J. Wesley :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p. 262.
54. Ibid., p. 267.
55. Ibid., p. 263.
56. 日記, 1739. 11. 27.
57. J. Wesley,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p. 266.
58. Ibid., pp. 266~267.
59. S. Brazier Green : John Wesley and William Law, London : The Epworth press, 1945, p. 180, 193.
60. S. Wood, op. cit., p. 164. Norman W. Taggart는 웨슬레의 Methodism 부흥운동이 세계선교활동의 동력이라고 논하고 있다. cf Norman W. Taggart; The Irish in World Methodism 1760-1900, London, Epworth Press, 1986. pp1ff.
61. J. Wesley :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p. 152.
62. Walter G. Muelder, "Methodism's Contribution to Social Reform, In Methodism, Ed William K. Anderson, op. cit., pp. 193ff. cf. Martin Schmidt op. cit., p. 40. 와렌 스미스는 웨슬레의 노예폐지운동을 다루고 있다. Warren Thomas Smith: John Wesley & Slavery, Nashville, Abingdon Press 1986.
63. J. Wesley : "A plain Account of the people Called Methodist." op. cit., pp. 263~265. cf, David Hempton: Methodism and Politics in British society, London, Hutchinson. 1984.
64. Walter G. Muelder : op. cit., p. 193.
65. S. Wood; op. cit., p. 193. 더굴러스 스위니는 영국, 미국 복음부흥운동의 확장에서 평신도 전도인, 사역자들의 순회전도 지대한 영향을 밝히고 있다. cf, Dougls A. Sweeney: The American Evangelical Story, A History of the Movement, MI, Baker Academic, 2005.pp36ff
67). Methodist Society, Methodism의 복음주의부흥운동의 발생과 확장에 대해서는 최근 영국 출판한 "복음주의 역사“(A History of Evangelicalism) 시리즈를 참고하라. cf, Mark A. Noll: The Rise of Evangelicalism, Vol1, IVP 2004. John Wolffe: The Expansion of Evangelism, Vol2, IVP 2006. David W. Bebbington: The Dominance of Evangelicalism, Vol3, IVP 2005.
*John Wesley의 임종(179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