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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

작성자그레이시family|작성시간04.07.08|조회수291 목록 댓글 0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 검은 섬광, 컴퓨터 파이터, 정밀 기계 등 수많은 닉네임을 가진 그는 킥복싱 역사상 가장 완벽한 기술을 가진 선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된 현재까지도 현역 킥복서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킥복싱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려지는 후스트, K-1 역사상 가장 많은 4번의 챔피언에 오른 후스트의 과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K-1의 살아있는 전설 '어네스트 후스트'

후스트는 1965년 7월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수리남 (남아메리카 북쪽에 위치, 공용어는 네덜란드어)에서 태어났으며, 한 살 때 부모를 따라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유년 시절에는 한동안 축구 선수를 했으며, 흥미를 느꼈던 무술로의 입문은 1981년에 킥복싱을 수련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후른 시의 소쿤도 도장에서 2년 반의 오랜 트레이닝을 거친 후 83년 12월 Wim Scharrenberg와의 경기에서 2라운드 KO승을 거두며 킥복서로서의 첫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이 후 열린 여덟 번의 경기를 전부 KO로 장식하면서, 빠른 시간내에 후스트는 당당히 'A' 클래스(20승 이상)의 킥복서로 자리매김 합니다. 네덜란드 안에서 킥복서로서 계속 성장하는데 한계를 느낀 그는 더 넓은 곳에서 세계의 강호들과 겨뤄보기로 결심하고 무술 수행을 떠납니다.
그 후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일본, 캐나다, 호주, 홍콩, 미국 뉴욕과 라스베이거스 등지를 떠돌며 다양한 선수들과 경기를 치루며 추구하던 무술에 대한 자기 완성을 조금씩 이뤄나갑니다. 끊임없었던 노력은 마침내 89년 프랑스의 무술인 사바테의 세계 챔피언에 이어 90년에는 킥복싱 세계 챔피언에 오르게 되면서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93년 일본에서 개최된 K-1 그랑프리 대회에 초청을 받아 참전을 결정합니다. 후스트는 이 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당시 우승 후보로 점쳐지던 최강의 킥복서 '피터 아츠'와 킥복싱의 교과서로 불리던 '모리스 스미스'를 차례로 꺽으면서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전의 순간에 크로아티아의 '브랑코 시카틱'에게 라이트 훅을 안면에 내주며 충격적인 실신 KO 패배로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를 통해 후스트의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지만, 시카틱에게 당한 실신 KO 패배로 그는 깊은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그 후 심기일전하여 K-1 챔피언에 다시 도전, 그러나 '피터 아츠'와 '앤디 훅'에게 차례로 고배를 마시게 됩니다. 94년과 95년의 K-1 챔피언은 피터 아츠, 96년은 앤디 훅이 K-1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힘들었던 96년이 지나고, 97년 후스트에게는 반전의 계기가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4월에 열린 K-1 BRAVES 대회에서 어려운 상대였던 '마이크 베르나르도'와 만난 것입니다. 밀고 밀리는 접전이 펼쳐지며 2라운드에 다운을 당하며 짙은 패색을 드러낸 후스트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발휘하여 4라운드에 역전 KO라는 감격의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 경기 후 자신감을 얻게된 후스트는 상승세를 이어나가 그 해 K-1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스위스의 '앤디 훅'을 꺽으며 마침내 염원하던 K-1 챔피언의 자리에 등극합니다. 그리고 연이어 99년, 2000년에도 챔피언을 하며 정밀 기계, 미스터 퍼펙트란 이미지로 입지를 굳혀 나갑니다.



[사진] 레이 세포와 경기를 치루는 후스트 (상대 전적 3전 전승 2KO)

후스트는 당초 중량급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10년에 걸쳐 체중을 조금씩 조금씩 올려나가며 결국 헤비급의 체중을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보통 체중을 불리면 파워는 늘어나지만 스피드가 떨어진다는 통념이 있습니다. 하지만 후스트는 치밀한 계산하에 조금씩 올린 덕분에 스피드와 테크닉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파워가 늘어나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선수였으면 은퇴를 결심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발전하는 후스트의 테크닉과 파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한때 판정승이 많았던 탓에 후스트의 경기는 지루하고 이기기 위해서 머리를 쓴다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2년 5월 파리 대회에서 K-1 베스트 8에 선정된 스테판 레코를 KO시킨 쇼트 훅(짧게 끊어치는 훅)의 위력을 보며, 후스트는 정말 늙지 않는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가족애 등이 지금의 후스트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진] 2002년 그랑프리 결승에서 맞붙은 후스트와 제롬 르 반나

2002년 K-1 왕좌 획득, 그랑프리 4회 우승

후스트의 뛰어난 실력으로 K-1의 많은 스타 선수들은 그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지금 프라이드에서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미르코 크로캅도 후스트를 이긴 적이 없습니다. 미르코는 후스트와 K-1 링에서 3번의 경기를 가졌지만 전부 다 패배했다. 미르코의 천적은 후스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후스트의 실력은 압도적이었습니다. 그 외 제롬 르 반나, 마크 헌트, 이고르 보브찬친, 앤디 훅, 레이 세포 등이 후스트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스트에게 다시 한번 좌절을 겪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2002년 새롭게 등장한 괴물 파이터 '밥 샵'의 출현이었습니다. 개막전 첫 대결에서 기권패, 결승전에서 다시 TKO패를 당하며, 과거 K-1 링을 잠시 떠나게 만들었던 '브랑코 시카틱'과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에게 절망은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행운의 여신은 다시 한번 후스트에게 찾아왔습니다. 결승전에서 '밥 샵'에게 TKO패를 당하면서도 샵의 주먹부상으로 대신 출장, 다시 지옥에서 부활한 후스트는 '레이 세포', '제롬 르 반나'를 차례로 이기며, 대망의 월드 그랑프리 4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특히 제롬 르 반나와의 결승전에서는 반나의 우세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단 한방의 미들킥으로 반나의 팔을 부러뜨렸습니다. 미들킥을 막으려고 팔로 가드를 한 반나는 회초리같은 후스트의 킥에 왼팔 뼈가 조각 조각나는 부상을 당한 것입니다. 팔이 부러진 상태로 반나는 시합을 계속 하려 했지만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후스트는 챔피언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1차전에서 밥 샵에게 패하고 운 좋게 샵을 대신하여 준결승에 진출하여 결국 챔피언이 된 후스트를 보며, 토너먼트 경기는 실력뿐만 아니고 운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냉엄한 K-1의 최정상에서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후스트.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K-1 챔피언 유력 후보에는 오른 후스트. 전대 미문의 그랑프리 5회 우승이 되는 2004년도의 K-1 왕좌를 획득할 수 있을것인가 기대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이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라고 이야기한 후스트의 파이터로서의 열정을 마음속 깊이 새겨봅니다.

현재 후스트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보스 짐에서 훈련을 하고 있으며, 96년과 99년에 각각 태어난 자녀(Reggie, Lois) 그리고 부인(Doreen Kruft)과 함께 단란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네스트 후스트(Ernest Hoost)


사바테 세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WKA 세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WMTA 세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IKBF 세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ISKA 세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K-1 그랑프리 93년 준우승
K-2 그랑프리 93년 챔피언
K-1 그랑프리 95, 96년 3위
K-1 그랑프리 97, 99년 챔피언
K-1 그랑프리 00, 02년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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