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 밀러와 헤이즈(J Maxwell Miller and John H Hayes)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는 고대 근동역사와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는 이에게는 필독서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인 학문적 성향은 중도적, 즉 최대주의(maximalism)와 최소주의(minimalism)의 중간적인 입장이다. 밀러와 헤이즈의 중간적인 입장은 곧 성서의 사사기이전의 역사적인 재구성이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현재의 영미권의 학계의 공통적인 의견이 이에 가까우며, 최근에는 다윗과 솔로몬시대까지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향후 고고학의 새로운 발견에 따라서 이 경향도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의 대상이다. 이스라엘의 역사 자체는 고대 근동의 역사적 전개에 끼친 영향력이 매우 미약하여 한 번도 강대국이 되어본 적이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관련된 기록이나 유물도 변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비중과는 반대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인류의 정신문명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위대하다. 헬레니즘과 함께 서구 문명의 한 축을 이루는 헤브라이즘이 여기에서 탄생하였고, 오늘날 세계적으로 큰 주류로 자리 잡고 있는 기독교도 고대 이스라엘의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대비가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연구를 더욱 흥미롭게 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에 관점을 두면 지극히 인간적으로 흐르기 쉽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간의 이성적인 연구 대상으로 대하는 것은 대단히 불경스런 일이지만, 역사학과 고고학, 그리고 인류학 등 관점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살피는 것은 성경을 보다 넓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접근방법은 특히 인간의 이성에 치우친 완고한 불신자를 대할 때 필요하다. 무조건 “예수 믿고 천당 가자”는 식의 일방적 외침보다는, 그들이 이스라엘 역사의 배경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서서히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도 지혜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각으로 이스라엘과 관련된 중동지역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특히 이스라엘 주변의 시대적 상황과 성경 이외의 기록을 찾아보면서 성경 기록의 정확성을 재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정확히 재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적으로 구약성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성서에 대해서 매우 극단적인 두 견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진리"라고 믿는 성서무오설과 비기독교 신자나 기독교에 반감이 있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그저 신화로만 보는 견해이다.
대부분 국가의 역사책 앞부분은 신화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가 그렇고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모태가 된 로마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성경 역시 창세기 등의 기록내용은 비신자가 보기에는 일반 신화와 크게 다를 바 없게 보인다. 또한 구약성서의 사료로서의 가치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것이 종교의 경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곳곳에서 드러나는 신화적인 요소들과 내용상의 불일치, 다른 고대근동 문서들과의 유사점 등이 이러한 의문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물론 구약성서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역사서'라고 할 수는 없다. 성서 저자들의 동기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 보다 근대 이후 발전해온 본문비평과 역사비평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듯 신학적 의도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시기의 문서치고 안 그런 게 없다. 이집트, 히타이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 어느 나라를 보든 역사 서술법은 구약성서의 서술법과 비슷하다. "성서를 보면 신이 등장해서 기적을 일으키고 적군을 섬멸시킨다. 이게 어떻게 역사서인가"라는 반응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집트 기록 중에 유명한 투트모스 3세의 카르나크 비문을 보면, 아문신이 파라오의 군대의 앞장을 서며 팔을 뻗어 그들을 돕는다는 표현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다른 근동 기록들도 마찬가지 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사료로 쓰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우리와는 거리적,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고대근동이라는 곳의 문화적 심성을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다. 근동에서 왕들은 신이거나 신과 백성들 사이의 중재자였다. 그런 배경 하에서 이러한 서술이 나오는 것이다. 고대근동을 이해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사료들은 이런 방식으로 쓰여 진 텍스트들뿐이다.
따라서 이집트, 히타이트, 아시리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데 이런 기록들이 사료비판과 교차검증을 거친다면, 구약성서 역시 사료로 쓰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역사의 기록은 불리한 것은 감추고 유리한 것은 크게 과장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고대의 기록은 인근 국가의 기록과 상황, 그리고 인류학, 생물학, 고고학 등 관련 학문으로 증명될 때 객관성을 갖게 된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런 측면에서 살펴봄으로써 그 기록의 정확성과 사실성을 찾아 보아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구약성서를 기본 텍스트로 삼고, 성경에 나온 자료와 고대 중동과 이집트,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해 이것을 비록 양적으로 많지는 않아도 다른 고대근동문서와 대조하고, 또 고고학적 성과와 비교하며 교차검증을 거친다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대략 그 역사의 재구성은 가능해진다.
많은 학자들이 성경의 내용은 허구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아의 홍수, 바벨탑을 가공의 전설로 치부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많은 지명과 인명을 부정했다.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고바빌로니아), 창세기에서 수차례 언급된 헷족속(히타이트),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시킨 앗수르(앗시리아)와 바사(페르시아) 및 메대(메디아 왕국) 관련 내용의 상당수를 믿을 수 없다며 성경의 기록을 부정해 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중동지역에서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진 결과, 미케네와 트로이의 전설이 사실로 드러난 것처럼 성경기록도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인류 최초로 문자를 기록한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기록이 발굴되고 해석되면서 성경의 기록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도 성서고고학의 발달로 성경의 기록들은 점점 더 분명히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