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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완수/회고록

89_사진과 사진기(Camera)

작성자늑점이|작성시간26.06.16|조회수45 목록 댓글 3

 ‘신항해일지’를 읽은 분들 가운데, “어째 그 당시 사진들은 없느냐?”고 물어오는 분들이 더러 있다. ‘당시’가 아무리 빨라도 35년, 늦으면 50여 년이 넘었다. 선내에서 공용(公用)비품으로 카메라를 비치해 두는 회사도 가끔은 있었지만, 그게 실제로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대개는 개인의 소지품이었다. 어떤 경우 꼭 선주(船主)에게 현장을 보여줘야 할 때는 부득이 사진을 찍고는 필름을 빼서 대리점(Agent)에 사정을 얘기하고 가급적 빨리 뽑아서 fax나 원본을 속달로 우송하라고 한 적도 있다.

 아마도 그때 사진기를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내 ‘항해일지’는 보다 흥미진진하고 시끌벅쩍하고도 남았을 것이 자명한 일이다.

 

 지금이야 전 국민이 각각 제 것을 24시간 소지하고 사는 시대이다. 또 찍으면 즉시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무슨 그런 시절이 있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를 일이지만, 국산 카메라는 아예 없었다. 가장 접하기 쉽다고 한 사진기들이 캐논. 팬탁스, 올림퍼스, 소니, 니콘, 아사히펜탁스 등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요상한 이름들의, 대부분 일본 회사의 것이고 그 뒤를 잇는 파나소닉, 후지필름 같은 메이커가 전세계적으로 주름잡았었다. 당시 일본은 전 세계 카메라 시장을 주도하는 국가로 카메라 제조사들의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가 매우 높았다.

 

눈에 익은 코닥사의 광고 필름

 

 외제(外製)인지라 세관의 간섭도 까다로웠다. 이미 소유한 것도 외국으로 나갈 때는 세관에 신고를 하고 증명서를 받아 둬야 귀국할 때 무사했다. 그 증명서를 분실하면 입국할 때 세금을 물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격도 고가이었고 고급 살림살이에 드는 것이라 카메라가 있는 가정은 그래도 괜찮은 집이었다.

 한편 무게도 만만찮았다. 본체는 물론 번쩍하고 터지던 플레쉬는 붙였다 뗐다 하는 것을 별도로 구입, 가지고 다녀야 했으며 거기다 삼각대까지 합하면 큼직한 가방이 가득했고 매고 다니면 어께가 뻐근했다.

 

 육상과는 달리 항해중인 선박에서는 설사 사진기가 있어 촬영을 했어도 현상‧인화를 거쳐 한 장의 사진으로 보기까지가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같이 IC가 아닌 광학용 필름(Film)을 사용했었기에 24 혹은 36판 필름을 다 찍으면 빼고 새 것을 갈아 끼운다. 찍은 필름은 사진관에 맡기고 며칠을 기다려야 뽑아 주게 되어 있었다. 애써 찍은 필름통이 어쩌다 빛에 노출되면 말짱 황이었다.

 늘 한 곳에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떠다니는 신세이다 보니 시간상으로 맞지를 않아 맡길 수가 없었다. 더구나 우리 한국처럼 ‘바쁘다’고 하고, 적당히 웃돈 주면 뚝딱 하루 이틀만에 뽑아 주는 곳이 아닌 유럽‧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죽어도 안 된다. 부득이 대리점에 의뢰하고 출항하면서 다음 입항항으로 보내달라고 하지만, 그 행선지가 도착하기 전에 바뀌어져 버리는 경우도, 날짜가 어긋나는 경우도 있어 몇 달을 걸려 너덜너덜한 봉투를 찾는 경우는 그나마 요행이고 대부분 영영 미아(迷兒)가 돼 버리는 것이다. 어떤 때는 찍은 필름을 맡길 곳과 시간 등이 없어 거의 6개월 혹은 1년 가까이 보관하다 귀국한 다음에 부산에서 사진관에 가져 갔더니 거의가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한때는 유럽의 로마, 파리, 런던, 베니스 등 유명 관광지에서 유행한 슬라이드(환등기용) 사진들을 수월찮게 사 모으고, 일제 환등기(幻燈機)도 구해 선박에서는 선원들에게, 집에서는 가족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처음으로 사 본 폴로라이드 카메라

 

 그 후 사진을 현장에서 바로 볼 수 있었던 즉석 사진기, 폴라로이드(Polaroid)를 덴마크의 수도 고펜하겐에서 산 적도 있었다. 폴라로이드는 1947년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발명됐다는데,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보려면 필름을 현상과 인화를 위해 며칠씩 걸려야 하던 시기에 사진이 바로 나오는 폴라로이드는 혁신적이었다. 그런데 오랜 고정관념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처음으로 사진을 봤을 때는 사진 같지가 않았다. 당장이라도 곧 공중에 증발해버릴 것만 같이 연약하고 가냘팠다.

 

덴마크 왕립 미술관에 갔을 때 너무 감격해 급히 폴라로이드를 사서 찍었는데 유일하게 남은 사진이다.

 

 사진기도 원래는 라이카, 콘탁스 등의 독일 회사들이 세계적 주류로 알고 있으나, 일본산 카메라들이 1950년대 이후 점유율을 높여가기 시작했고 상당수의 독일 회사들이 도산하거나 타회사에 인수되면서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 당하고 말았다. 한때 필름과 인화지 제조사로 유명했던 미국의 코닥(Kodak)도 여러 가지 카메라를 생산하던 회사였고,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망했다.

 

「한국 사람으로는 1883년에 '황철'이란 분이 중국 상해에서 사진기술을 처음 들여왔는데, 카메라를 이용하면 후대에 기록이나 자료를 남기는 데 편리하겠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집에 사진관을 세우고, 날마다 카메라를 들고 한성(漢城)을 돌아다니며 저잣거리 풍경이나 궁궐을 찍었다. 그가 남긴 80여 점의 기록사진은 개화기 사회상을 생생히 전해주는 역사유산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궁궐 등 기록사진을 다수 찍은 까닭에 간첩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다.고 사료(史料)에 나온다.

 

 이런 보안상의 문제도 있지만, 초기 사진관들은 카메라가 갓 도입된 여느 나라같이 미신 같은 유언비어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진이 대중화 된 것은 단발령이 내려진 뒤부터였는데, 머리를 자르기 전 상투를 틀고 있는 모습을 또렷히 남기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진관도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상업용 사진관의 시초는 김규진이 1907년 8월에 서울, 지금의 소공동인 천연동에 개업한 '천연당 사진관'이었고 한다.

 1950년대 김찬삼 교수의 ‘세계일주여행기’에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 사람의 영혼을 빼앗아 간다고 거절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나와 사진기의 인연은 1958년, 사범학교 3학년 시절, 부산의 남광고아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산대학을 다니셨던 중형의 친구로 전문사진 작가인 분이 쓰다 버릴 정도의 낡은 것인데 귀엽다고 내게 준 중고 Camera였다. 꿈만 같았고 요술 보물 같이 모셨다. 그러나 정작 나는 제대로 만지지도 못했는데 동기인 고(故) 송예준, 한메 성용제는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 도사(?)였다. 특히 예준 성은 학교 행사가 있는 경우 요청이 없었는데도 후배들, 특히 여학생들의 사진을 찍고는 인화하여 팔았다. 혹시 그러고도 남는 것은 해당 후배 머슴애들을 본관 옆 비탈진 싸리나무 숲에 불러 공갈(?)까지 쳐가며 강매한 일도 있었다. 덕분에 교문 옆에 유행했던 찐빵이나 속칭 ‘국화빵(일명:껄뱅이빵)’을 가끔씩 사 먹을 수가 있었다. 그해 여름 6‧25 사변 기념식이 대구 칠성동 종합운동장에서 거행됐을 때 기수단(騎手團)으로 참가했던 당시 사진이 용케도 아직 남아 있어 추억을 되살려 준다. 그 후로 폴라로이드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카메라를 소지했었음에도 정작 얼마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최근에 폐기하고 말았다.

 

왼쪽: 여학생. 맨 앞줄의 가죽혁대를 두른 유승자와 허정인듯, 그 뒤 맨 오른쪽이 문태순. 오른쪽: 기를 든 김상욱, 황기연 군 맨 우측이 본인

 

  이 세계의 흐름은 이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구르며 흘러갔으니, 이를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문(人文)이라고 하며, 이 인문의 흐름을 앞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이 통찰(通察)인데, 그것이 가능한 자가 지금 떼부자가 된 자들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철학자의 얘기가 실감나게 공감된다.

그 귀하고 비쌌던 카메라가 똥값(?)이 됐으니, 나 같은 청맹과니는 눈앞에 두고도 보지도 깨닫지도 못했으니 등신 중에 상등신인 셈이다. 격세지감이다. 그래도 아무턴 오래는 살고는 봐야겠다는 바람이다. 헐헐헐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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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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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능자 | 작성시간 26.06.16 맞아. 맞아.
    옛적 야그에 공감 형성.
  • 작성자박홍재 | 작성시간 26.06.17 new 옛날 이야기가 흥미진진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능자 | 작성시간 26.06.17 new 흑백사진 시절엔 태어나지도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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