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태씨(南原太氏)는 조선 단종조에 진사에 재직중 화를 입고 1454년 함경도 길주로 유배된
태맹례(太孟禮:협계군 집성의 9세손)를 시조로 받들고 협계태씨에서 분적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맹례(孟禮)의 아들 지(知)가 무과에 급제하여 병마절제사를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손자 원희(元熙)는
훈련원 판관을 역임하여 훈도(訓導)를 지낸 인국(仁國:만호 원령의 아들)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원태씨(南原太氏)는 남한에 총 371가구,
1,51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함남 북청군 양화면 일원
함북 명천군 아간면 독포동, 거문동
함남 단천군, 풍산군 일원
함북 명천군 아간면 양정동. 서면 용동
함북 명천군 아간면 신계동, 배령동
태맹례(太孟禮:협계군 집성의 9세손)를 시조로 받들고 협계태씨에서 분적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맹례(孟禮)의 아들 지(知)가 무과에 급제하여 병마절제사를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손자 원희(元熙)는
훈련원 판관을 역임하여 훈도(訓導)를 지낸 인국(仁國:만호 원령의 아들)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원태씨(南原太氏)는 남한에 총 371가구,
1,51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함남 북청군 양화면 일원
함북 명천군 아간면 독포동, 거문동
함남 단천군, 풍산군 일원
함북 명천군 아간면 양정동. 서면 용동
함북 명천군 아간면 신계동, 배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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