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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짐

2010년 52회 사법시험 3관왕합격 오승진 수기

작성자Kailas|작성시간23.07.08|조회수608 목록 댓글 0

2010년 52회 사법시험 3관왕 오승진 합격비법(1)-‘尙有十二 舜臣不死’라는 이순신 제독을 떠 올리며...

 

오승진

경찰대학 법학과 졸업

제26회 입법고시 법제직 수석합격

제54회 행정고시 법무행정 차석합격

제52회 사법시험 합격

현재 국회사무처 근무

 

 

I. 들어가며

법률저널의 부탁을 받고 몇 번이나 사양한 끝에 컴퓨터 앞에 앉기는 했지만, 저는 글을 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어쩌다보니 3관왕이라는 분에 넘치는 영광을 얻었지만 처음부터 3관왕을 목표로 공부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어느 한 가지 시험이라도 꼭 합격해서 수험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 평범한 수험생이었을 뿐입니다. 셋 중 어느 하나에 합격하신 분이라면 다른 시험도 충분히 합격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분들보다 낫기는커녕 시행착오로 가득한 수험생활을 해온 제가 이런 수기를 쓴다는 게 여러 가지로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부끄러운 수험생활의 기록일망정 지금 공부하는 분들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부족하나마 수험생활의 과정을 떠올려 보고자 합니다.

 

 

II. 공부를 시작한 계기

저는 서울 광문고 3학년이던 2000년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돌아가셨으나, 주변 많은 분들의 보살핌에 힘입어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와 경찰대 법학과에 합격했습니다. 대학 선택을 고민하다가 하루라도 빨리 공직에 진출하여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경찰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준비 없는 대학생활은 힘겨웠습니다. 제복과 기숙사로 상징되는 통제로 학업에마저 의욕을 잃었고 결국 3점대 초반의 학점과 중하위권의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경찰에 대한 애정과 훌륭한 동기들을 얻게 된 것이 대학생활이 제게 준 축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졸업 후 제주해안경비단과 광명경찰서에서 근무하며 맞닥뜨린 현실은 더욱 만만치 않았습니다. 격무 끝에 A형간염을 얻는가 하면, 주취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밤을 새우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형법, 경찰실무, 행정법의 3과목을 보는 승진시험에 응시했으나 합격 예정인원의 3배수에도 들지 못하며 떨어졌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전문 수사관이 되겠다는 꿈으로 여성청소년계 팀원 모집에도 응모했으나 역시 탈락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8년 6월의 촛불시위였습니다. 사회적 갈등의 현장에서 그 어려움을 온 몸으로 감당해내면서도 비난의 표적이 되는 동료들의 아픔을 느끼며 경찰이 생각하는 정의와 시민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민하게 되었고, ‘법대로’한다는 경찰에게 국민적 분노가 집중되는 모습을 보며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권한과 깊이 있는 법 실력이 없다면 소신 있게 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2008년 7월 1일부터 고시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III. 1차 수험생활(2008. 7. 1. ~ 2009. 2. 21.)

 

1. 기본강의

233일 남은 시점에서 51회 사법시험 1차시험을 목표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뒤늦은 출발이었으나 부족한 시간은 성실함과 집중력으로 만회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해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미 신림동에서는 민법과 형법의 기본강의가 모두 끝나고 헌법 기본강의가 한창이었으나 수험생활의 성패는 민법에 달려 있다는 판단 하에 모 대학 고시반에서 진행하던 정일배 변호사의 민법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사정으로 총칙도 끝내지 못하고 신림동으로 옮겨 이태섭 선생님 기본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의 뜨거운 의지는 여자친구와 헤어지며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낯선 신림동 분위기와 무더운 날씨 그리고 이해조차 되지 않는 민법 문장들에 막혀 미아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가슴을 날카로운 칼로 저며 내는 듯한 아픔과 무언가 화끈한 것이 치밀어 오르는 듯 답답한 마음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 하루에 세 시간을 공부하는 것도 버거웠지만, 어렵게 얻어낸 기회인데도 이대로는 틀림없이 낙방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더 우울해지곤 했습니다.

 

2. 진도별 모의고사

가까스로 기본강의를 끝내고 진도별 모의고사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헌법과 형법 기본강의를 듣지 않은 채 모강을 듣는 것이 옳은가 고민했지만 기왕 신림동에 왔으니 최대한 시스템을 따라가자는 생각으로 집중강의를 수강하며 서브노트를 만들어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또한 민법 기간에는 형법, 형법 기간에는 헌법 기본강의 테이프를 들으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려 했지만, 매일 계속되는 시험의 압박과 진도에 대한 부담으로 성적(민법 38점, 형법 55점대)도 저조했고 테이프(형법 106개 중 26개, 헌법 86개 중 68개)도 다 듣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급했으나 실력은 미치지 못하고, 점수도 나빴지만 문제에 대한 해설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한심한 수험생이었습니다.

이 무렵,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다들 잘 나가는데 혼자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자괴감에 합격할 때까지 외부 교류는 최대한 자제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집과 신림동을 버스로 오가며 수업을 듣고 독서실에 다녔는데, “전쟁터에 나온 장수가 출퇴근하는 법이 있는가. 떨어지더라도 신림동에서 죽자”라는 생각으로 10월 1일부터 신림2동 고시원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옆방 사는 친구 희수의 권유도 있었지요. 한동안은 불면증에 잠 못 이루었고 언덕길을 오를 때면 이 고비를 몇 번이나 넘어야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숨짓기도 했지만, 가까이에 친구가 있어 좋았고 원장님의 배려로 크게 불편한 것 없이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일 늦게 시작한 헌법 모강 기간에는 다 듣지 못한 기본강의 테이프를 마저 끝내는 가운데 실강으로 집중강의를 들었더니 짧은 기간 반복효과가 생겨서 조금 이해가 되는 듯 했습니다. 강의를 통해 판례 전문을 분석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리구조를 파악하게 되자 헌법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모의고사 성적도 안정이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친구 희수, 재현이와 함께 공부하기 시작하며 심리적으로도 한결 여유가 생겼고, 오전 강의를 듣게 되니 생활 습관도 아침형으로 바뀌어 공부시간 확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자리에서 수업을 듣고 싶어 5시 40분에 일어나 6시~6시 10분 사이에 자리를 맡곤 했는데, 새벽에 고시원을 나서면 아직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별빛이 반짝이고 12월의 칼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때리곤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꿈속을 헤매고 있을 때 앞서 나가는 듯한 느낌이 상쾌했고, 몇 명 와 있지 않은 강의실에 도착하면 비록 지금 내 실력은 이 강의실에서 꼴찌일지 모르지만 성실함 만큼은 열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으리라는 사소한 자부심으로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尙有十二 舜臣不死”(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고 이순신이 죽지 않았다)라는 결의로 명량해전에 임했던 이순신 제독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치열한 시간들을 보낸 끝에 헌법은 평균 72점대의 성적으로 성적우수자에게 주는 5만원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공부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무렵 전 범위 모의고사를 보았는데, 헌법 83, 형법 57, 민법 40점으로 헌법에 비해 민법과 형법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3. 마무리

진도별 모의고사가 끝나고 시험이 임박함에 따라 “모강을 거치며 잘 정리된 기본서를 반복하여 회독수를 늘려가는” 공식을 따라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제 기본서에는 정리는커녕 낙서와 구별 안 되는 밑줄만 몇 개 그어져 있던 터라, 과감하게 기본서를 포기하고 OX문제집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민법은 OX문제집 “핵심지문총정리”(이하 핵지총)를 반복하되, 기본서의 흠결은 조문+판례+기출의 3종 세트로 메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하여 12월 15일부터 권순한 박사의 객관식판례강의를 수강했는데 오전 오후 두 타임 강의를 듣고 나면 정리할 시간도 빠듯하더군요. 강의 진도는 하루 두 타임에 평균 120페이지 정도 나갔지만, 남은 한 타임에 아무리 열심히 복습을 해도 80페이지 이상을 따라잡기가 힘들었으니까요. 결국 복습을 포기하고 강의에 집중하되, 남는 시간은 김태윤 선생님의 조문강의 테이프를 듣고 법률저널에서 나온 진도별 기출문제집을 풀며 예상지문을 외워 나갔습니다.

 

1월 4일 실시된 전범위 모의고사에서는 민법 60점, 평균 70점을 목표로 노력했으나 헌법 72, 형법 59, 민법 46, 국제법 30점에 그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핵지총을 교재로 한 권순한 박사의 마무리 강의를 들으며 강의 진도에 맞추어 혼자 지문을 풀고 아는 지문, 애매한 지문, 모르는 지문을 O△X로 표시하되, 애매하거나 모르는 지문은 반드시 해설을 읽고 그 자리에서 외우는 식으로 핵지총을 1회독하였습니다. 그 결과 1월 18일 모의고사에서는 민법 70점을 받아 조금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는 표시된 지문을 중심으로 핵지총을 반복하되, 확실히 외운 지문은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4회독 만에 핵지총을 마스터할 수 있었습니다. 확인사살을 위해 한번이라도 표시된 지문만 다시 한번 돌리는 방식으로 마지막 정리를 하였습니다.

형법은 신호진 선생님의 마무리 강의를 듣고, 그 교재였던 OX문제집 “출제의 포인트”를 핵지총과 같은 요령으로 반복하였습니다. 판례는 “형법판례총정리”를 보려다가 분량 탓에 포기하고, 경찰승진시험 준비할 때 봤던 “2백형”이라는 서브노트형 교재와 “1백형”이라는 핸드북형 OX로 보완했습니다.

헌법의 경우 민법과 형법에 바쁘면 아예 안 보게 될까봐 금동흠 선생님의 객관식 판례강의와 부속법령 특강을 들었습니다. 최종정리는 정회철 변호사의 기본서로 할 생각이었으나 진도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중요하다 싶은 20개 주제를 발췌독하는 식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선택과목인 국제법은 모강을 수강한 것 이외에는 전혀 살펴보지 못하다가 설 연휴에 이종훈 선생님의 마무리 강의를 들으며 교재를 정독했습니다. 복습 진도가 밀려 외시생도 아니면서 시험 20일을 앞두고 국제법에 시간을 1주일 가까이 투자하는 등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고생한 덕분에 2월 1일 모의고사에서는 40점, 2월 8일 모의고사에서는 46점이라는 고득점을 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본 3법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최신판례의 경우 민법은 실강으로 듣고 형법은 테이프를 구해서 학습하였으며 헌법은 판례 강의를 통해 정리하고 따로 강의를 듣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5번의 전범위 모의고사를 치르며 실전 감각을 키워나갔습니다. 시간이나 결과에 대한 심리적 영향 때문에 걱정도 되었지만 시험을 치르는 노하우도 실력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점수보다는 시간 배분이나 낯선 문제에 대응하는 요령을 집중적으로 고민하였던 것 같습니다. 2월에 친 모의고사는 둘 다 헌법 70점대에, 민법 58점과 형법 56점으로 점수대는 비슷하였으나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 했고, 일요일 오전은 교회를 가지 않으면 어영부영 보내게 마련인데 모의고사라도 쳤으니 밥값은 했다는 생각으로 시간에 대한 부담도 갖지 않으려 했습니다.

 

4. Final 그리고 시험장에서

그 즈음부터 마지막 날 무엇을 보며 최종정리를 할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진도별 모의고사 막판부터 수첩을 만들어 여러 번 들여다봐도 잘 외워지지 않는 부분과 단순 암기사항, 머리글자 등을 적어 두기 시작했습니다. “10회독 한 사람보다 방금 본 사람이 더 무섭다”는 수험가의 격언처럼, 시험 직전에 봐서 문제만 풀면 된다는 생각으로 막판에 한꺼번에 볼 요량이었습니다. 특히 헌법의 헌정사, 각종 정족수와 같은 통치구조에 관한 암기사항과 국제법의 조약, 판례들을 집중적으로 적어두었습니다. 1교시 과목은 잘 보면 기선을 제압할 수 있지만 못 보면 심리적 타격이 크다는 생각으로 시험 전날과 당일 오전에는 헌법과 국제법에 더욱 신경을 써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아울러 핵지총과 출제의 포인트에서 한번이라도 표시된 지문을 전부 골라 다시 읽고 확인했으며, 헌민형 조문들을 스킵하면서 빠르게 1회독하였습니다. 막판까지 약했던 형법은 1백형, 2백형으로 판례를 스크린하면서, 자주 출제되는 총론상의 이론적 쟁점들을 학설에 따른 결론과 비판까지 정독하여 3~4점으로 배점되는 박스형 문제에 대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전년도 1차 시험 기출문제를 구해 실전처럼 시간 내에 풀어 보았습니다. 하루 전날이다 보니 시간에 부담도 되고 이미 눈에 익숙한 지문이 많아 큰 효과가 없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실전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점수가 나왔고, 형법에서 37번까지 잘 풀다가 38번에서 막혀 시간을 오버하는 실수를 했는데 이 경험이 다음날 시간 관리할 때 약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시험 전날, 일찍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들지 않더군요. 1시간가량을 뒤척거리다가 한참 불면증이던 시절에 복용하던 수면유도제 반일치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시험날은 아침식사 후 학원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시험장까지 갔습니다. 1교시에는 생소한 지문과 판례들이 다소 보여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먼저 푼 국제법에서 시간을 번 덕분에 그럭저럭 쫓기지 않고 시간 내에 마무리 지었던 것 같았습니다.

고시식당에서 준비해 준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2교시에 임했는데 몇 문제를 빼고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여기까지 합격을 노려볼 만하다는 생각으로 민법에 대한 긴장감이 더 커졌습니다. 그런데 민법은 너무나도 어렵더군요. 1문제당 최대 2분을 넘어가면 다음 문제로 넘어가려 했는데, 시험 시작 후 10분이 지난 시점에서 5번 문제까지 하나도 풀지 못했습니다. 문제별로 확실히 정답이 아닌 지문을 추려내 2-3개 정도로 압축하기는 했지만 정작 답을 찍어내지 못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찔한 느낌이 들더군요. 결국 발상을 전환하여 모의고사 때 수없이 연습했던 대로 뒤에서부터 풀기 시작했습니다. 앞부분에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배치된 탓인지 뒷부분은 상대적으로 수월했고 앞부분을 다시 풀 때쯤에는 감각이 살아난 덕인지 1번부터 15번까지 중 1번만 틀리고 나머지는 다 맞추었습니다. 난이도나 점수는 주관식 뿐 아니라 객관식도 체감한 바와는 많이 다르므로 끝까지 확인해 봐야 아는 것 같습니다.

가장 자신 없었던 민법부터 채점했는데 의외로 선전하는 것을 보며 합격을 예감할 수 있었고, 가채점 결과 합격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 있는 점수를 얻어 바로 2차 시험 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동차를 준비하려면 1차 준비 기간에 2차를 함께 공부하기 보다는 1차 점수를 여유 있게 받아서 합격자발표 때까지 걱정 없이 2차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5. 행정고시 1차 응시

2009년 사시 1차 접수 후 행시 접수 기간이 있었습니다. 사시 1차 합격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1차 시험 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합격하면 2차 준비를 하면 되지만, 떨어지면 한동안은 1차 기본강의든 2차 예비순환이든 마음을 붙이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어렵게 들어온 신림동인데 허송세월하고 싶지는 않아서 사시에 떨어질 경우, 행시 1차에 응시하여 합격하면 2차 시험까지 행시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차에서 법 과목을 많이 보는 직렬에 응시할까 고민했으나 1차도 통과하기 힘들 것 같아서 가장 많은 인원을 뽑는 일반행정에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사시 1차를 앞두고 PSAT를 동시에 준비할만한 여유는 없어서 PSAT 공부는 사시 1차가 끝나고서야 시작했습니다.

문제 유형을 익히고 시간 내에 푸는 훈련을 하기 위해, 법률저널에서 나온 “2008년 PSAT 기출문제 분석”을 사다가 풀었습니다. 전년도 행시와 입시 기출 문제를 풀었는데 평균 60점대 초반 정도가 나와서 잘하면 합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전에선 의외로 언어논리 92.5, 자료해석 72.5, 상황판단 87.5점으로 평균 84점이 넘는 고득점을 받았습니다. 통계와 대조해 보니 일행 6등이었고 행정직 전체를 통틀어서도 20등에 해당되는 좋은 성적이더군요.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OX문제를 많이 풀면서 객관식 감각이 최고조에 올라와 있었고, 4문제를 풀지 못한 채 찍었던 자료해석을 제외하고는 시간관리에 성공한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음해의 경우 시험시간도 10분씩 늘었고, 시험 전 3주 동안 매주 학원 모의고사에 응시하며 준비했는데도 점수가 크게 오르지는 않았거든요. 법 관련 직렬로 응시할 걸 그랬다는 후회도 들었지만, 어차피 사시 2차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6. 건강과 생활습관, 사소한 이야기들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던 야구선수들이 단체로 독감예방접종을 맞았다는 기사를 보고는 자기도 독감주사를 맞았다더군요. 시험 준비하는 입장에서 사소한 변수도 곤란했기에 저도 독감예방주사를 맞았고 다행히 강행군 속에서도 특별한 건강상의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1차 시험 열흘 전에 전범위 모의고사를 치고 왔더니 몸살기운이 있어 푹 쉬었던 적이 있습니다. 진도 부담이 상당했지만 상태가 악화되면 아예 시험을 못 볼 우려가 있어서 하루를 포기하더라도 건강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다음날부터는 정상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 체력과 관련된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몸이 아프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잘 먹고 잘 자야 하는데, 수험생이 되다보니 생활환경이 여의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저 같은 경우 고시식당 밥을 먹을지언정 친구들과 함께하며 입맛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가끔 돈을 들여 영양보충도 하곤 했습니다. 또 잠을 줄이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적어도 하루 6시간의 수면시간은 확보하되, 늦게 잠들면 같은 시간을 자도 더 피곤하고 기분도 좋지 않으므로 공부를 일찍 마치더라도 가급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했습니다.

신림동에서 생활한 초기에는 불면증 때문에 고생이 많아서 수면유도제를 복용한 적도 있지만 1일치를 다 먹으면 다음날 오전까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졸려 잠이 정 안들 때 반일치만 먹곤 했습니다. 1차 시험 전일에도 그랬고요. 부득이한 경우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기는 하나 별로 권할만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공부의 최대의 적은 인터넷이었습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 친구에게 들었던 조언이 “너는 인터넷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폐인 수준으로 인터넷에 중독된 저를 알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공부는 어렵고 마음은 잡히지 않아 유혹에 굴복하기 일쑤였고, 독서실 지하의 인터넷휴게실도 모자라서 PC방으로 나가는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PC 앞에 앉으면 공부할 때와는 달리 어찌나 시간이 잘 가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은지 두세 시간을 후딱 보내기 마련이었습니다. 친구와 같은 독서실에서 공부하게 되며 인터넷을 끊기로 마음먹고 자리를 휴게실과 멀리 떨어진 4층으로 옮겼습니다. 전에는 화장실을 갈 때 인터넷 휴게실을 꼭 들르게 마련이었는데, 자리를 옮기니 화장실을 가거나 쉴 때에도 4층이나 옥상을 이용하게 되므로 인터넷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고, 자리를 오래 비우거나 인터넷을 하다가 친구를 만나면 민망하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인터넷과는 멀어졌습니다. 1,2월에는 원서접수 등 꼭 필요한 때에만 인터넷을 하게 되어 공부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공부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친구의 조언에 따라 스톱워치로 매일 공부시간을 체크하여 달력에 기록하고, 목표치(학원 강의를 제외하고 하루 7시간)를 초과하면 O표를, 미달하면 X표를 치며 공부량을 확인했습니다. 대신 시간만 채우면 진도를 밀리는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한 과목만 수십 년씩 강의하신 대 강사 분들도 계획된 진도를 지키지 못해 보강을 하는데 여러모로 부족한 내가 계획을 어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휴대폰은 가지고 다녔지만 통화하면서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바깥사람들과 접촉하면 마음이 흔들릴까 싶어서 거의 전원을 꺼두었다가 식사시간에 잠깐 확인하여 필요한 연락만 취했습니다. 송년모임이나 경조사 등에 일체 참석하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으나 지금 흔들리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으로 꾹 참고 버텼던 것 같습니다. 수험생 입장에서 최고의 안부는 합격자 명단에 걸린 내 이름 석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그 밖에 사소한 것들로 컴퓨터용 사인펜은 동아에서 나온 둥근 촉 사인펜이 마킹시간을 절약해 주었고, 벨이 울림과 동시에 시험지봉인을 바로 뜯을 수 있도록 칼을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승진시험 준비할 때에 실패했던 생리현상 통제를 위해, 시험전날에는 지사제를 먹고 커피나 물, 기타 음료수도 최대한 자제했던 기억이 납니다.

 

 

IV. 동차를 목표로(2009. 2. 23. ~ 2009. 7. 3.)

 

1. 동차반 수강

행시 1차를 치고 바로 동차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생동차는 어려우니 1순환 때부터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도 들었으나, 7개월 반만에 1차 시험에 합격한 자신감과 함께 합격 인원은 해마다 줄어드는 반면 동차에 실패해도 실력은 남을 거라는 생각으로, 친구 희수와 의기투합하여 동차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친구와 함께 예비순환을 인터넷 강의로 듣고 동차반은 실강으로 수강하며 짧은 기간에 2회독을 확보했습니다. 시험에도 꼬박꼬박 응시하며 답안 쓰는 법에도 익숙해지려 노력했고요. 중간에 민사소송법 수강을 포기했다가 다시 영상반에 합류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예비인강, 동차실강’으로 상법, 민소법, 형사소송법을 2회독할 수 있었고 행정법의 경우 예비순환과 동차반을 전부 실강으로 수강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후4법은 어려웠고, 1차 합격으로 목표가 달성되었다는 생각에 마음도 해이해져 1차 때만큼 열정적으로 공부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기본 3법의 경우 후4법에 바빠 동차반 수업 시간 외에는 거의 신경을 못 썼습니다.

 

2. 시험 전 정리

2차시험 한 달 전부터 계획을 세워 시험과목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실력도 시간도 없어 4-2-1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얇은 교재들을 골라 이해 및 암기될 때까지 읽어나갈 뿐이었습니다. 상법의 경우 김혁붕 선생님의 2008년 예비순환 필기노트를 어음수표-보험-총칙과 상행위-회사법의 순으로 읽으며 회사법 리마인드 특강을 수강했습니다. 형소법은 이지민 선생님의 key-word note, 민소법은 이창한 선생님의 사례집을 통해 정리했습니다. 동차반 수업을 듣고 남는 시간에 정리를 하려다 보니 심한 과목은 2주 가까이 걸리기도 했고, 시험 보는 역순으로 정리를 하다 보니 시간에 쫓긴 행정법은 동차반 쟁점정리 교재도 다 보지 못한 채 시험장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헌법과 형법은 동차반 필기 노트를 들여다보았으나 크게 신경 쓰지는 못했고 민법은 윤동환 선생님의 암기장을 중심으로 논리 사례 구조를 익혀 나갔습니다.

개별 쟁점에서 부딪힐 경우 시간과 실력 모두 부족한 초시생이 이기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 쟁점에 대한 암기는 요약서나 암기장으로 갈음하는 대신, 전체의 체계나 논리적 흐름을 파악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특히 소송법에서는 프로세스 전반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초시는 물론 재시 때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3. 시험기간

시험 기간에는 새벽 1시 40분쯤 자고 5시 40분쯤 일어났고 부족한 수면은 저녁식사 후 잠깐의 낮잠으로 보충했습니다. 방이나 택시를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학원에서 운행하는 버스로 시험장까지 이동했습니다. 첫날 헌법시험을 앞두고 감독관이 지시하는 대로 순순히 가방을 맡기고 책상에 앉아 있는데, 많은 수험생들이 시험장 뒤편에서 끝까지 책을 들여다보는 풍경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시험지를 나누어 줄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매 쉬는 시간 화장실을 다녀왔지만 긴장을 해서인지 얼마 되지 않아 생리적인 욕구를 느꼈고, 충분히 식사를 해도 늘 허기가 졌습니다. 혹시 시험에 방해될까봐 물과 음료수, 국물이 있는 음식은 거의 먹지 못하고 김밥과 바나나, 초콜릿 등으로 끼니를 떼웠는데 다행히 소화가 안 되는 일은 없더군요.

첫날 헌법에서 “사법권의 독립”이 큰 문제로 출제되는 등 대부분 과목에서 어느 정도 준비한 쟁점이 조금씩은 출제되어 아무 것도 못 쓰고 앉아 있는 고역은 피할 수 있었지만, 실력도 답안지 쓰는 요령도 부족하다 보니 분량 조절이나 목차 잡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 과목에서 7면정도 답안을 작성할 수 있었으나, 형법은 1문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바람에 6면도 채우지 못하고 결국 과락을 맞았습니다. 평균 5점차 불합격, 컷을 넘긴 과목은 없었으나 후4법은 44~45점에서 비교적 안정된 점수가 형성되었고, 민법도 65점대를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선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형법 과락은 물론 1차 때 지식만을 믿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헌법도 40.55점에 불과하여, 1차와 2차는 별개라는 점과 기본 3법에 보다 많은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후 실력이 쌓이며, 많이 부족했으나 운이 좋아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합격을 목표로 치열하게 공부하며 쌓인 실력과 넉 달 만에 대부분 과목에서 과락을 면했다는 자신감, 4일간 실전시험을 치르며 0.0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들은 이듬해 재시를 치는 데에도 든든한 밑천이 되었습니다.

 

4. 행정고시 2차 응시

사시 2차를 마치고 행시 2차 기간이 되었습니다. 동차 준비를 하느라 행시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결과를 떠나 좋은 경험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응시했습니다. 법과목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고 경제학은 황종휴 선생님의 “다이제스트 경제학”, 정치학은 신희섭 선생님의 “수험 정치학”, 행정학은 이원희 교수님의 “쟁점분석 행정학”을 교재로 벼락치기에 나섰습니다. 첫날 행정법은 그럭저럭 답안을 채울 수 있었으나 점수는 다소 실망스러웠고, 경제학은 벼락치기만으로는 역부족이었는지 게임이론에 대한 문제만 조금 쓸 수 있었습니다. 결국 22점을 받았고 당시에도 과락이 확실했으나, 2차 시험장에 들어갈 수만 있어도 좋을 것 같던 1차 때의 간절했던 마음을 떠올리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응시했습니다. 정치학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헌법에서 자주 언급되는 다수결원리가 나와서 56.33점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고득점을 했고, 선택과목이었던 민법도 다른 과목보다는 그나마 수월하게 썼던 것 같습니다. 행정학은 전혀 예상도 못했던 신제도주의가 출제되는 바람에 횡설수설했으나 의외로 과락을 면했고 이때의 자신감이 이듬해 행정학에 대한 두려움 없이 법무행정에 응시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 떨어질 게 뻔한 시험을 1주일씩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공부 시작할 때에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여름에도 시험보자”는 목표를 두 개나 달성하여 쟁쟁한 경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험을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꼭 합격할 수 있도록 실력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출처: https://lawyer.lawschool.co.kr/nlawschool/board/infomation/view.asp?pageNo=2&num=30108&field=1&mnNum=5&subMnNum=4&bbsCode=6&s_mid_code=&s_flag=&mock_type=&keyfield=&key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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