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초서 공부법
공부를 출세의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
소년 황상은 다산에게 인생 최대의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저처럼 둔한데다 (鈍) 막히고 답답하여(滯) 어근버근한(戛) 아이도 공부를 해서 학문을 이룰 수 있습니까?" 이 말을 들은 다산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지런히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책을 쓰라]
필자는 조선 시대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으로 주저 없이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년)을 꼽는다. 각종 책을 통해 그가 남긴 공부 자세와 공부에 대한 정신, 그리고 실제로 공부에 전념한 기간 등을 살펴볼 때 그는 공부법에 있어서는 어떤 사람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그가 남긴 방대한 저술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학문적 성취도로 볼 때, 조선 최고의 지식인은 정약용이라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조선 선비들은 대부분 성리학에 지나치게 편향되어 공부하였기 에 학문적으로 크게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다산
은 이런 점을 과감하게 극복하고 국가나 백성의 발전을 도모 할 수 있는 실학사상을 공부했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방면의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다.
다산이 어렸을 때부터 많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은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도 실려 있다.
다산이 소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북한사라는 절에서 책을 읽으려고 당나귀에 서책을 가득 싣고 올라가던 다산은 길에서 당시 '실학 4대가(실학파를 대표하는 학자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를 지칭함)'로 불리던 이서구를 만났다. 그런데 10여일 후 소년 정약용은 일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이서구를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나귀에 서책을 가득 싣고 절에 올라가 책을 읽겠다던 소년이 책은 읽지 않고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자 이서구는 소년 정약용에게 호통을 치듯 물었다.
“글을 읽는다고 당나귀에 서책을 가득 싣고 다니더니, 글은 읽지 않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것이냐?"
소년 정약용은 이서구에게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책을 다 읽고 절에서 내려오는 길입니다."
"저 서책들은 다 무슨 책이냐?"
『자치통감강목 通鑑綱目』입니다.”
이서구는 깜짝 놀랐다. 『자치통감강목』은 중국의 역사를 다룬 방대한 책이었다. 그런 책을 어른도 아닌 소년의 몸으로 열흘 만에 다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정녕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냐? 그 책을 어떻게 열흘 만에 다 읽었다고 말하는 것이냐?"
"읽은 것이 아니라 전부 외웠습니다."
이서구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산이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치열하고 지독하게, 그리고 다양한 책들을 열심히 읽었
는지 이 일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 인생의 보람은 공부뿐이다]
필자가 평범한 직장인에서 책을 쓰는 작가로 변신하게 된 데에는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이 컸다. 필자는 공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다산의 말을 통해 공부의 참된 이유를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그가 한 말 중에서도 필자를 가장 크게 깨우쳐 준 말은 이것이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 살다간 보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100년을 넘기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인생을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 인생에서 공부를 하였는지 하지 않았는지가 중요하다는 그의 말이 필자에게는 큰 의미를 넘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저 직장을 구한 후 그곳에서 열심히 일했던 평범한 40대의 중년에게 "얼마나 열심히 살았습니까?"라고 묻는 이 세상과 달리 다산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습니까?"라고 세상과는 다른, 그러면서도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삶의 보람을 위해 공부하라고 주장하는 다산은 여기서 좀 더 나아가 공부가 세상 일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고 간결하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공부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겠는가?" 이 말을 곱씹을 때마다 필자는 감탄한다. 위대한 투자가들인 워
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 등을 떠올리면 다산의 이 말이 꼭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책을 읽은 사람들이 투자를 해도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전쟁에서 이름을 떨친 영웅들도 모두 책벌레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나폴레옹이다. 또한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문난 책벌레였다. 책벌레가 아니고 서는 남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 없고, 설사 높은 직책에 오른다 해도 그 일을 잘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지도자일수록 책을 많이 읽고 평생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산을 비롯해서 역사의 위인들은 그저 출세를 위해 공부하거나 책을 읽은 것은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출세를 하기 위해 사심 이 들어간 공부를 하면 그 어떤 정진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부하고 많은 책을 읽어도 사심이 들어가고 욕심이 생기면 그 어떤 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그렇게 되면 아무리 읽어도 외우는 지식만 늘 뿐, 깨우침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다산은 "공부를 출세의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공부도 나도 잃는다"라는 말도 하였다. 다산이 18년 동안의 유배 생활을 통해 500 여권 이상의 저술을 남기는 등 학문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공부를 출세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사람은 지혜롭지만 또한 어리석은 존재이다. 무엇인가에 욕심을 내게 되면 오히려 그것을 더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 이 지켜보았다.
'과욕은 금물'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공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무언가에 욕심을 내는 사람은 오히려 더 이루지 못한다. 공부를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고 성취한 사람들 중에는 삶의 벼랑 끝에 몰려 세상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억울한 누명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결국에는 큰 깨달음을 얻어 인류에게 위대한 책을 남긴 사례를 서양에서는 드물지 않
게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모함을 당해 유배지로 내려간 사람들 중에서 학문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출세를 위해 공부를 수단으로 삼으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참된 공부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 욕심 때문에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다산이 조정에서 출세하기 위해 공부했다면 그는 절대로 18년 동안 500여 권이라는 책을 저술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의 수단으로 삼아 하는 공부와 공부가 모든 것이 되어 하는 공부는 그 의미가 다르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인격이 달라지 지 않는 것은 공부를 출세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로 아무리 고차원적인 공부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의 공부는 제대로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부한다고 말하는 지성인들이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어르신들에게, 건물을 청소하는 직원들에게 불친절하다면 이는 참된 공부를 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들은 출세나 성공을 하기 위한 공부를 하였을 뿐이다. 다산의 참된 공부 정신을 현재 한국 사회는 배워야 할 것이다.
[실학을 집대성한 지식 경영의 대가]
다산 정약용이 실학을 집대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북학이 성행했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기를 살았기 때문이지만, 그의 고향이 남인들의 본거지인 경기도 양주라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오랜 시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공부에 대한 남다른 의식이 더해져서 다산은 지식 경영의 대가가 될 수 있었다.
다산이 주장했던 실학 집대성의 핵심은 "기예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된다"는 사상이다.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도 역시 기예를 이용할 줄 아는 데 있다고 그는 보았다.
그는 이용후생利用厚生과 부국강병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기예라고 생각하였다. 기예가 발달한 나라들이 모두 강한 나라가 되
고 있음을 다산은 강 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산의 대표작인 『목민심서는 다산의 경험과 유배지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지방 관리가 지켜야 할 준칙을 서술한 것이다. 전체 12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진 유배 당시 완성한 것이다. 이 책은 당시 백성의 삶과 살림살이를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로 손꼽힌다.
그가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저술한 주된 목적은 지방 수령의 자질을 높여 백성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려는 의도였다. 또한 그는 백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법 집행서인 『흠흠신서를 편찬하였다.
그는 500여 권 이상의 방대한 저서를 남긴 저술가였다. 그 분야도 철학, 문학, 정치, 경제, 법률, 지리, 역사, 의학, 기계, 설계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필자는 그의 뛰어난 공부법과 저술한 책의 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저술 중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접한 책은 사람들이 돌림병인 천연두로 죽는 것을 보고, 종두를 직접 실험하고 관찰하여 저술한 의술서『마과회이다. 그는 지리와
역사에 대한 책인 강고라는 책도 저술하였다.
다산이 『마과회통』을 편집한 것도 그가 지식 경영의 대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6남 3녀의 자녀 중에서 4남 2녀를 천연두로 잃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처럼 천연두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수많은 의서를 읽고, 그 중에서 천연두와 관련된 내용만 추려내 예방법과 치료법을 정리하였다.
필자가 다산을 조선 최고의 지식 경영자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산의 공부가 마치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처럼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산이 쓴 책은 정확히 모두 몇 권이었으며,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다산이 쓴 책은 정확히 경집 88 250권, 문집
30책 87권, 잡찬 64책 166권 등 총 182 503권이다.
다산은 공부가 출세의 수단이 된다면 공부를 통해 얻는 것도 없고 자기 자신 또한 잃게 된다고 경계하였다. 그는 언제부터 공부의 기초를 세운 것일까? 그가 공부를 하게 된 것은 몇 살 때부터였을 까? 그리고 그의 학문적인 스승은 누구였을까?
그에게 학문의 기초를 가르쳐 준 스승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정재원이었다. 그가 학문을 시작한 것은 네 살 때부터라고 전
해진다. 그는 그때부터 『천자문』을 배웠고 일곱 살에는 한시를 짓기 시작했다.
그가 지은 첫 번째 한시는 <은산이 큰 산을 가리웠다네>라는 제목으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은小山, 멀고 가까운 땅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네遠近地不同.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기 위해 건설한 수원 화성(출처:문화재청)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글짓기를 좋아했다. 다산은 열 살 전에 이미
『삼미자집三眉子集』이라는 시집을 낼 정도로 한시를 즐겨 지었다. 1 년이면 그가 지은 글을 적은 한지가 그의 키 높이만큼 쌓였다고 전 해지고 있다.
다산은 스물세 살에 성균관에 입학하였는데 정조는 정약용을 그 때부터 눈여겨보았다. 정조가 질문을 하고 숙제를 낼 때마다 다산이 탁월한 답안을 올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정조가 성균관 유생들 에게 『중용에 관한 80개의 질문을 하고 답변을 제출하라는 숙제를 내주자 다산은 기발한 답안지인 「중용대책」을 써서 정조에게 바치기도 하였다.
또한 다산은 정조의 명을 받아 수원 화성을 축조하기도 하였다.
다산의 지식 경영의 대가다운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수 원화성이다. 10년이 걸려도 완공이 어려울 거라 예상했던 수원 화성을 그는 2년 6개월 만에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성을 축조하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의 신기술을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수원 화성 건설 당시 설계를 담당하였고 축성기기로 거중기, 고륜, 활차 등을 직접 고안하기도 하였다.
그를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다산은 신유사옥과 뒤이은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를 떠났다. 다산은 유
배 생활을 통해 학문의 깊이가 더욱 깊어졌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공부는 『주역』이었다.
그는 유배지에서 『주역사 전易』과 『역학서언易學緖言』12권을 완성하였다. 그가 주역 공 부에 집중한 이유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유배 생활 동안 강진에 사는 백성의 생활을 주제로 작품 을 쓰기도 하였고, 자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책을 읽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가 유배 생활을 했던 강진의 다산초당 뒷산에는 차나무 가 많은데 다산은 그곳으로 거처를 옮긴 뒤부터 호를 '다산'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호가 가진 또 다른 의미의 '다산'다산초 당에서 실현하며 많은 책을 편집하고 써 나갔다. 이때 쓴 책들이 그
의 대표작인 『다산문답』『아방강고』『경세유표 世』 40권, 『목민심서』 48권, 『국조전례고國朝典禮考』등이다.
유배 생활을 한 것은 다산 개인에게는 비극이었지만 조선의 학계 로 보면 엄청난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이 유배 생활 동안 엄 청나게 학문을 도야하고 500여 권의 소중한 저작들을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삶을 바꾼 만남, 삼근계 이야기 ]
유배지로 내려가 처음 얼마간은 주막집 더부살이 신세로 지내면 서도 다산은 서당을 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서 당에 열다섯 살 난 소년이 찾아왔다. 그 소년은 지방 관리의 자식 이었다. 공부에 자신이 없었던 아이는 스스로 머리가 나쁘고 둔한 데다 매사에 어근버근하다고 자신을 평가하고 있었다. 이 소년이 훗날 다산이 가장 아끼는 제자가 된 황상이다.
소년 황상은 언젠가 스승에게 자신의 미숙함을 고백하며 인생 최대의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글 배우는 속도가 빠르지 못함을 황
상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는데, 그런 자신에게 문사를 공부하라고 스승인 다산이 권하였기 때문이다.
"저처럼 둔한데다() 막히고 답답하여 어근버근한() 아이도 공부해서 학문을 이룰 수 있습니까?"
황상의 말을 들은 다산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대 답하였다.
"부지런히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이 대화에서 그 유명한 '삼계가 나왔다. 스스로를 둔하고 막혀 답답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제자를 위해, 다산은 배우는 사람
에게는 세 가지 큰 병통이 있지만 황상에게는 그러한 병통이 없다 고 격려하며 세 번씩이나 부지런하라고 조언한 것이다.
"학문을 약간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는데 너
에게는 다행히도 그에 해당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세 가지 큰 문제는 첫째,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가르치면 한 번만 읽고도 바로 외우지만, 문제는 자신
의 머리가 좋다는 것을 알고 배운 것을 대충 넘기곤 한다. 그렇게 되면 공부를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재주만 믿고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있다.
둘째,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질문의 의도와 문제의 핵심을 금세 파악한다. 사람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
글을 빨리 짓는 것은 좋은데, 자신의 재주를 이기지 못해 자만하기 쉽고 들뜬 나머지 공부를 대충 넘겨버리는 게 문제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한 번에 깨닫고 이해가 빠른 사람은 한 번 깨친 것을 대충 넘기고 곱씹지 않기 때문에 투철하게
공부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공부를 설렁설렁하는 버릇이 있는 데다 오래 붙잡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앞서 말한 사람과는 달리 비록 머리는 둔하지만 계속 열심히 하면 지혜가 쌓이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며, 답답한 데도 꾸준히 하면 학문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다산이 황상에게 한 이 말을 읽으면서 필자는 가슴을 쳤다. 머리가 좀 나쁘고 둔한 사람들이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 게 되면, 그때부터는 학문하는 것에 거칠 것이 없게 된다는 사실을 다산이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머리가 나빠서 둔하고 막혀 답답한 것은 모두 부지런히 공부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즉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면 풀린다"는 게 다산의 가르침이다. 다산은 이때 나누었던 문답을 글로 작성하여 제자 황상에게 주었고, 황상은 이를 평생 간직해 항상 보고 또 보며 나태해질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이처럼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것이 삼근의 주된 핵심이다. 공부할 때는 첫째도 부지런하고 둘째도 부지런하고 셋째 도 부지런하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자세가 공부하는 최고의 자 세라는 것이다. 다산의 말대로라면 근성이 없는 사람은 절대 공부 를 통해 일가를 이룰 수 없다.
열정, 끈기, 근성은 모두 부지런함으로 표출된다. 대충 적당히 하는 사람은 이러한 단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열다섯 살의 소년 황 상이 「삼근문답」을 다산에게 받고, 육십 년이 지난 일흔다섯 살 때 쓴 「임기라는 글에 보면 다산이 직접 써준 「삼근문답」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원문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당시 열 다섯 살밖에 안 된 제자 황상이 둔할 둔, 막힐 체, 어근버근할
알이라는 세 가지 문제를 고민하면서 스승인 다산에게 말했을 때, 다산은 재치있게 이를 세 가지 글자로 대구를 맞추어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재빠를 민, 날카로울 예, 빠를 첩이라는 세 글자였다. 똑똑하고 명석하며 재빠른 천재보다 우둔하
고 답답한 둔재의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 깨워준 위대한 스승의 모범 사례라고 할 만하다.
【과골삼천, 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나다 ]
다산의 공부법이 아무리 좋다 해도 지독한 노력이 없었다면 그 는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노력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삼천이다. 다산의 제자인 황상 역 시 그 선생에 그 제자였다. 황상도 스승에게 배운대로 일흔 살이 넘
어서까지 책 읽기와 초서를 멈추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그 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선생님, 무엇하러 그 연세에 이르기까지 고되게 책을 읽고 베껴 쓰십니까?"
이러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황상은 자신의 스승인 다산이 책 읽 기와 초서를 하면서 과골(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난 것, 즉 과골 삼천을 언급하였다.
"내 스승님은 귀양지에 18년을 계시면서 날마다 저술에만 힘써 과골이 세 차례 구멍이 났다. 스승님께서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가 르쳐 주신 말씀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한데, 내가 관 뚜껑을 덮기 전에 어찌 그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18년 동안의 유배 생활은 한 사람을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하고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여 지치게 할 만한 시간이다. 그런데도 다산 은 그 오랜 유배 기간 동안 그저 잊힌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 필자 가 다산을 끝없이 존경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공부하는 사람의 귀감이 되고도 남을 정도로 학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으며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았다. 그러면서도
자기 하나만을 생각하지 않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인 의 자세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실천하였다.
다산은 과거시험을 보거나 출세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 공부해야 하며, 사람이라면 공부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 실천했다. 위대한 학자 다산을 만든 것은 바로 '과골삼천'이라는 불굴의 노 력과 공부에 대한 끊임없는 정진이었다. 머리가 나빠서 공부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 세상에, 당신은 골이 세차 례나 구멍이 뚫릴 정도로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 필자도 역시 이러 한 질문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다산 정약용의 초서 공부법 ]
초서법, 중요한 부분을 옮겨 쓰다
다산이 어린이 교재와 교육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은 그의 저작들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자녀
들 혹은 어린이들에게 항상 주장한 것은 공부할 때 그 내용을 단순히 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공부에 접근하라고 강조했다.
필자 역시 3년 동안 세상과 단절하고 평생 읽을 책들을 그 기간에 다 읽은 경험이 있다. 그 덕분에 어디 가서 작가라는 명함을 겨
우 내밀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지독하게 공부하였다고 해도 불과 3년 만에 평범했던 중년이 책을 쓸 수 있는 작가로 변신하게 된 동 력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훌륭한 공부법에 있었다고 필자는 스스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필자는 머리가 매우 좋은 편도 아니고, 심지어 기억력은 30대 초 반부터 급격하게 떨어졌다. 휴대폰 연구를 하면서 전자파를 지나치 게 많이 접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휴대폰을 하나만 사용해도 전자 파가 유해하다는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하루 종일 수십 개의 휴 대폰에 둘러싸인 채 직접 분해하고 조립하여 연구하는 일을 10년 넘게 했으니 필자의 뇌세포는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공부하는데 기억력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 창시절에 시험 성적이 좋았던 사람들은 이해력과 함께 무엇보다도 기억력이 좋아서 암기를 잘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단순히 암 기를 잘 한다고 해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창조하는 능력이 좋다고 는 할 수 없다.
필자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지만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짧은 시 간에 말이다. 그 이유는 필자가 남들보다 열 배 정도 더 노력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한 후 산 속에 들어가 도를 닦는 사람처럼 3년을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몇십 배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필자가 우연히 사용하게 된 공부법이 바로 다 산 정약용이 사용했던 공부법과 비슷하였다는 점이다. 즉 훌륭한 공부법을 익혀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이를 수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가 다산의 공부법이 '초서법'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몇 달 전이다. 즉 필자가 누군가의 공부법을 알게 되어 이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우연히 공부하다 보니 저절로 나에게 맞는 공부법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이 나중에 알고 보니 다산의 공부법과 매우 비슷하였다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엄청난 양의 책을 읽고 공 부하여 500여 권이 넘는 저서를 남긴 데에는 남다른 공부법인 '초서'의 힘이 컸다. 물론 유배지에서도 과세 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로 노력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부 방법이 효과적이지 못 했다면 성과는 미비하였을 것이다. 다산은 초서를 자신의 공부법으 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강조하였다.
'서'는 책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와는 다르다. 필사는 그냥 책 전체를 베끼어 쓰는 것이지만, 초서는 책의 내용 가운데 중요한 부분만을 가려낸 뒤 뽑 아서 쓰는 것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공부법 역시 필사가 아닌 초서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필사와 초서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엄 밀하게 말하면 필사는 과거에 책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어 책 한 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힘들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쓰던 공부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초서는 지금처럼 책이 넘치도록 많은 이 시대에 더욱더 필요한, 즉 시대의 흐름에 맞는 통합적인 공 부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은 둘째 아들인 학유에게 부치는 편지에서 책을 읽는 것을 강조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초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반드시 자기의 뜻을 담아 쓸 책의 규모와 편목을 세운 뒤, 다른 이의 책에서 그 핵심을 간추
려내야 맥락이 묘미가 있다. 만약 그 규모와 목차에 맞지 않더라도 꼭 뽑아 써야 할 곳이 있을 때는 별도로 책을 만들어 좋은 것이 있 을 때마다 기록해 놓아야만 글에 힘을 얻을 것이다. 강에 물고기를 낚을 그물을 쳐 놓으면 기러기란 놈도 걸릴 수 있는데 어찌 사소하 다 생각하고 버리겠느냐!"
아내 홍씨부인이 낡은 치맛감 여러 폭을 유배지에 보내자 다산은 거기에 두 아들에게
또한 다른 편지에서는 "책을 읽을 때 중요한 내용을 뽑아 초서하 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책에서 핵심을 잘 뽑아내면 일관되 게 꿰는 묘미가 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즉 다산이 했던 공부법의 핵심은 '부지런히 책에서 중요한 문장을 뽑아 쉴 새 없이 기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산은 100권의 책이라도 초서법을 통해서 열흘 동안 공부한다 면 충분히 그 내용을 다 익힐 수 있다고 말하였다. 다산이 다방면 에 걸쳐서 500여 권의 책을 18년 동안 저술한 것을 보면 그가 허 투루 하는 말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에 쓸모가 없다면 헛공부이다
다산은 "공부를 단순히 출세의 수단으로 여긴다면 공부와 나 둘 다 잃을 수 있다"라고 경계하였다. 하지만 실제에 쓸모가 없는 탁상 공론에 치우친 공부 또한 헛공부라고 경계하였다. 학문 자체가 전 부 실용적일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학문만을 위한 학문을 해서는 곤란하다고 그는 말하였다. 아집에 사로잡혀 공부하면 자꾸 편협해지고 독해지며 못된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렇게 공부한다면 헛공부라는 뜻이다. 공부하는 보람을 세상과 담을 쌓는 데서 찾는 것 또한 공부에 대한 모독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다산은 공부를 하였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툭 터져야 하고 그 덕분에 식견을 깨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산 정약용이
생각하는 참된 공부법은 고문 구절을 따서 글이나 짓고 풀이나 물고기 이름에 주석이나 다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나라 를 다스려 백성을 편안케 하고 나라의 살림을 넉넉하게 하며 백성 이 문무에 능하도록 교육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는 일 등을 모두 참 된 선비가 해야 할 공부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공부하는 이유는 자신이 바르게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또한 세상에 쓸모 있는 것을 만들고, 자기 자신도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 부했다. 선비라면 공부를 통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케 해 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겁고 깊은 공부를 하라
다산은 공부는 무겁고 깊게 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남에게 자 랑하기 위해서 경망스럽게 공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소낙비 지 나가듯 짧게 공부하기보다는 차곡차곡 쌓아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만드는 축적된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를 배우면 바로 하나를 떠드는 그런 얄팍한 공부를 경 계하고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고 싶어 다른 이에게 떠벌이는 그런 공부 또한 조심하라고 말했다. 또한 다산은 배우는 것에 치중하는 공부도 경계하였다. 그저 배우기만 하고 그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 지 못하여 자신의 성품을 다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공부하는 보람이 없다고 하였다. 세상에 보탬이 되는 공부, 백성의 삶을 좋게 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돌려서 말한 것이다.
이는 자신이 매우 많이 배웠고 기억력이 좋으며 글을 잘 짓는 데 다 말도 잘 하는 것을 뽐내면서, 온 세상이 자신보다 비루하다고
얕잡아보는 그런 공부를 다산이 매우 싫어하였다는 뜻으로도 해석 할 수 있다. 즉 많이 배우기만 하는 것이 결코 능사가 아니라는 것 이다. 다산에게 있어 공부는 자신이 배운 것에 대해서 깊이 사색하 고 의문을 품으며 분별하고 이를 실천하여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부해야 변변한 사람이 된다
우리가 다산에게 배워야 할 점은 공부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 야 하는 것이고, 또한 자신이 좀 더 훌륭한 존재로 발전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라는 그의 자세와 열정이다. 그는 세상의 부와 명예, 권력 또는 출세를 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다산은 몇 대에 걸쳐 변변한 벼슬을 하지 못해 몰락하기 일보 직전인 사대부 집안에서 자랐다. 따라서 다산은 자신보다 자녀들의 앞날을 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이러한 사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 내용들은 몰 락한 사대부라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더욱 변변치 못한 사람이 되 어 변변치 못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권학문에 가까운 편 지임을 알 수 있다.
"집에 읽을 책이 없느냐? 아니면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가 없느 냐? 그것도 아니면 너의 눈과 귀가 총명하지 못하느냐!"
다산이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 한 대목이다. 그가 두 아들 에게 얼마나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특 히 그는 아들들에게 "하늘이 몰락한 사대부들에게 재주를 내려주 는 이유는 학문을 향한 뜻이 세상에 출세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리 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몰락한 사대부라도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더 나쁜 상황이 될 수 있으므로 공부는 아무리 형편이 나쁜 사람이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다산은 강조한 것이다.
공부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세 가지 일
다산은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공부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세 가지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공부하는 선비들 사이에서는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지 않고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한다는 뜻의 '반'이 유행하였다.
젊은 선비들 중 일부는 반관을 명분 삼아 겉모습을 닦고 꾸미는 일 을 거짓과 위선이라고 생각하며 몸가짐과 행동, 심지어 예절까지 멋 대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다산은 이러한 행동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두 아 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아들들에게서 몸가짐이 단정하고 행동이 엄숙한 점을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어려웠다면서, 부디 거칠고 무 례한 행동을 삼가고 겉모습 또한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두 아 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쓰기도 하였다.
공부하는 선비라면 무엇보다도 행동과 몸가짐이 단정해야 한다 고 그는 말한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도 지난날 이러한 병폐에 심하 게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였다. 그래서 더더욱 공부하는 사 람들은 먼저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말을 조리있고 공손하게 하며 안 색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고 두 아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다산은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자신이 공부하는 서재의 이름을 '삼사'라고 이름 붙였다. 삼사는 "난폭하고 태만함을 멀리하는 것" "비루하고 천박함을 멀리하는 것" "진실을 가깝게 하는 것"이라 는 세 가지를 의미한다.
다시 한 번 다산이 말한 선비가 공부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용모를 단정하게 할 것.
2. 엄숙하게 말을 할 것.
3. 안색을 바르고 진실되게 할 것.
다산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공부뿐 아니라 몸가짐도 단정히 해야 할 것이다. 몸가짐에 따라 우리의 마음이 달라지고, 우리의 마음에 따라 몸가짐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는 천하에 공평한 것이다
다산의 방대한 학문적 성과는 결국 18년 동안의 유배시절에 대부분 이루어지고 완성되었다. 하지만 누구나 유배지에 내려가서 다 산처럼 학문적인 완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무엇 때문에 다산은 힘든 유배 생활 중에 그토록 엄청난 학문적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일까? 필자는 다산의 학문에 대한 남다른 포부와 뜨거운 헌신, 꾸준한 노력과 열정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유당전서』를 보면 다산이 이미 스무 살 때부터 커다란 학문적 포부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 적이 있다.
"유배지에 도착한 이후로는 백성과 나라에 관계되는 일들-토지, 관료, 군사, 국가재정, 조세에는 그 생각과 마음을 조금 줄일 수
있었으나, 경전의 주석과 같은 잘못을 바로잡고자 하는 염원은 그 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다산은 '학문은 천하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대인군자가 아니더라도 그 말이 이치에 맞다면, 비록 미천한 사람이나 용렬한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라 할지라도 의당 드러내 주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근대 일본의 중흥을 이끈 책 중 하나로 알려진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을 권함』이라는 책을 보면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 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학문을 권하는 이유는 학문을 통해 누구나 평등한 기회를 얻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학문을 한 만큼 자신의 발전을 이 룰 수 있고 그로 인해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산 역시 공부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고, 자신이 한 만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산 정약용의 신사 공부법]
공부는 인간의 본분이다
『여유당전서에서 다산은 책 읽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짐승과 벌 레의 부류를 벗어나 저 광대한 우주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을 만드
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본분이라고 주장하였다. 지금 한국 사회는 책을 읽는 사람이 갈수록 줄고 있다. 다산이
본다면 참으로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웃나라 일본을 지탱 하는 힘은 국민들의 높은 독서열에서 나온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교에서는 암기식 공부에 지치고 회사에서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몸과 마음에 늘 여유가 없고 지쳐 있 다. 지나치게 바쁘기 때문에 책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 라책 읽기의 재미를 느끼지 못한 채 평생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공부야말로 사람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다산의 뜻을 우리 는 이 시점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든다. 다산의 말처럼 책 읽기가 사람의 본분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면, 왜 많은 사람이 책을 읽어도 그 들의 인생이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 자가 답하는 말이 있다. “책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라는 답이다. 책 을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효과가 나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야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일까?
다산은 '널리 고찰하고 자세히 연구하는 독서를 하라고 말하였 다. 그는 “책을 그냥 읽기만 한다면 하루에 천백 번을 읽더라도 읽
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에는 한 글자라도 그 뜻 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반드시 넓고 깊게 연구하여 그 글자의 어원을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 그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이 책 저 책에서 뽑는 작업을 날마다 해나가야 한다"라고 말하 였다. 이렇게 해야 한 권의 책을 읽을 때에 아울러 100권의 책을 두루 보게 되며, 읽고 있는 책의 의미를 환하게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정을 꼼꼼하게 세우라
다산은 새해를 맞을 때마다 그 해 1년 동안의 공부 계획과 일정을 미리 세웠다. 더불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책에서 내용을 가려
뽑아 적을 것인지 등과 같은 책 읽기 계획 또한 미리 세워 놓고 책을 읽었다. 그가 남긴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중「두 아들에게 부침」
두 아들에게 부치는 편지의 내용 중 일부가 『다산집』에 수록되어 있다 (출처: 한국고전종합DB)
이라는 편지를 보면 다산이 세운 1년의 공부 계획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는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어떤 책에서 어떤 내용을 가려 뽑아 적을 것인지를 미리 계획한 다음 실천에 옮겼다. 공부에 도 방법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행동한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 역시 책이 지닌 특성과 성격에 따라 책을 읽는 방법과 접근법을 달리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책은 가볍게 맛만 볼 것이고, 어떤 책은 통째로 꿀꺽 삼켜버릴 것이며, 또 어떤 책은 꼭꼭 씹어서 소화해야 한다."
다산은 먼저 그 책이 세상과 백성, 나라에 보탬이 되는 책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라고 하였다. 그는 책에 따라 대충 보아 넘겨도 되
는 책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런 책은 세상이나 백성, 나라에 보탬이 되지 않는 책이다. 하지만 보탬이 되는 책은 절대로 구름이 흘러가 고 물이 흐르듯 대하면 안 된다고 말하였다. 모든 책이 다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두 권 의 위대한 양서에만 파묻혀서는 안 되며 다양한 책을 두루 읽어야 한다는 게 다산의 생각이다.
다산은 앞에서 이미 세상과 나라와 백성에 보탬이 되는 책은 밑 줄을 긋고 초서를 해가며 새겨 읽으라고 하였다. 그것도 지나치게 한 권에만 몰두하지 말고 다양한 책들을 읽고 수시로 내용을 뽑아 기록하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좌전』 『국어』 『한서』『사기』 『논어』 『맹자』 『장자』 『』를 다달이 바꿔 읽고 철마다 섞어 읽어야 한다고 말하며, 고전들은 두루 살펴 읽으라고 하였다.
기록하는 공부를 하라
그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강조한 또 하나의 공부법은 그때그때 기록하는 것이다. 읽을 때마다 깨달은 것을 그때그때 기록해야만 실제로 자신의 지식이 될 수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다산은 숙독해야 할 책은 차분하고 꼼꼼하게 정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책을 읽으면서 강구하고 고찰하여 깨닫고 느낀
점들을 그때그때 기록해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기록해야만 자신에게 남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이러한 다산의 기록하는 공부법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필자가 10년 이상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체험한 공부법도 이와 유사했다. 평범한 두뇌를 가진 평범한 40대 중 년인 필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그 어떤 내용도 기록하지 않고 그저 눈으로 읽기에만 급급했다. 그때 는 몇 주 동안 한 권의 책을 매우 힘들게 정독했지만 책만 덮으면 아무것도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었다.
즉 아무리 읽어도 공부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붓는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
게 책을 읽다가 어느 날 노트를 구입하여 그때그때 깨닫게 된 생각과 책의 내용 중에 좋은 내용을 담은 문장을 뽑아 노트에 기록하 는 습관이 생겼다.
이때부터 느리고 답답했던 필자의 공부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무언가 내 안에서 쌓이고 축적이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실 제로 공부의 효과도 조금씩 나타났다. 기록하는 공부법의 장점을 깨달은 지금, 필자는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손을 움직여 필 기하며 책을 읽으라고 권유하고 있다.
다산의 기록하는 공부는 중국의 마오쩌둥의 독특한 공부법과 매우 닮았다. 마오쩌둥은 "붓을 움직이지 않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다산의 공부법은 세종의 공부법인 '백백'과도 닮았다. 아버지 태종이 책을 주면 세종은 그 내용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손으로
기록하였다고 한다. 세종은 사서삼경』을 비롯해 어떤 책이든 밤을 새워가며 읽고, 한 번 읽을 때마다 동시에 한 번을 쓰고 '바를 정 '자를 표시해 나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종이 이것을 열 번이 아닌 백 번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종의 공부법은 '백 번 읽 고백 번 쓰는 공부법인 '백독백이다.
깊이 생각하는 공부를 하라
다산은 인생의 대부분을 공부하고 집필하며 보냈다고 말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책을 썼다. 다산이 후손들에게 제안하 '백독백'이라는 공부법을 실천했던 세종 는 공부법으로는 책에서 중요 한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초 서법도 있지만 깊이 생각하여 자신의 사고력을 향상하는 '신사思 공부법'도 있다.
신사 공부법은 책을 내용 위주로 암기하거나 단순히 얕게만 이해 하는 지식 습득 위주의 공부법이 아니라, 글을 읽을 때 깊이 생각 하고 곱씹어 진심으로 그 내용을 삼가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 체득 위주의 공부법이다.
'신사 공부법'에 대해 다산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그냥 읽기만 하면 하루에 천백 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마 찬가지이다. 책을 읽을 때에는 한 글자씩 볼 때마다 그 뜻을 분명하 게 알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널리 고찰하고 자세히 연구해서 그 근 본을 터득한 후 그 글의 전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한 권의 책을 읽어도 수백 권의 책을 읽은 효과가 있다고 말하였다.
또한 다산은 책을 읽을 때 깊은 사고를 통해 책의 내용을 명확 하게 판별하여 자신이 읽을 책을 가려 뽑아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
였다. 책을 읽을 때는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내용이 있으면 선별 한 후 기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조차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책 읽기를 통해 깊은 사고력을 갖추는 것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깊은 사고와 분별력으로 책을 선별한 후 내용을 읽고 뽑 조선 후기의 주택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전라남도 강진 다산초당은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와 약 10년간 머물던 곳이다(출처:문화재청)
아서 기록하며 책에 따라 공부하는 방법을 다르게 할 때, 다산은 100권의 책이라도 열흘 동안의 공부로 끝마칠 수 있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다산이 말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그의 공부법을 정리하 면 다음과 같다.
1. 공부 계획을 세우고, 책에 따라 읽는 방법을 달리 하라.
2. 기록하는 공부, 즉 손을 움직이는 공부를 하라.
3. 깊이 생각하는 공부, 즉 뇌를 움직이는 공부를 하라.
다산은 1798년(정조 22) 주목할 만한 의학서를 완성했다. 『마과회통 會通』이라고 불리는 이 책은 『마진서』를 비롯한 중국 의서와 『임신 방등 조선의 의서를 정리하고 분석한 의학백과사전이다. 이 책은 천연두로 자식을 잃은 다산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한다는 비통 한 심정을 담아 저술한 것으로, 천연두 및 홍역과 관련된 청나라와 조선 의 의술을 총망라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책이 완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약용이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귀향길에 오르면서 『마과회통』은 역사 속에 묻힐 뻔했지만, 민간에서 이 책에 소개된 치료법으로 효험을 보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귀중한 의학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출처: 선비들의 평생공부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