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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묵상

2024년 3월 29일 (홍) 주님 수난 성금요일

작성자이선정스테파노|작성시간24.03.29|조회수8 목록 댓글 0

2024년 3월 29일 금요일

[(홍) 주님 수난 성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성찬 전례를 거행하지 않고,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이어지는 주님 수난 예식을 거행한다. 본디 이날의 전례는 말씀 전례가 중심을 이루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십자가 경배와 영성체 예식이 들어와 오늘날과 같은 전례를 거행하고 있다. 오늘은 금육과 함께 파스카 단식을 한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하신 주님의 종께서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가셨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십니다.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를 통하여 주님의 고통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종은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고 한다(제1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순종을 배우셨다고 한다(제2독서).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이다(복음).

 

제1독서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2,13―53,12
13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14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15 그러나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53,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2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3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4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7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8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9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께 묻혔다.
10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11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4-16; 5,7-9
형제 여러분, 14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15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16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5,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 해설자 + 예수님 ● 다른 한 사람 ▣ 다른 몇몇 사람 ◎ 군중
○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18,1―19,42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가셨다.
거기에 정원이 하나 있었는데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들어가셨다.
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여러 번 거기에 모이셨기 때문에,
그분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곳을 알고 있었다.
3 그래서 유다는 군대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
그들은 등불과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있었다.
4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닥쳐오는 모든 일을 아시고
앞으로 나서시며 그들에게 물으셨다.
+ “누구를 찾느냐?”
5 ○ 그들이 대답하였다.
▣ “나자렛 사람 예수요.”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나다.”
○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6 예수님께서 “나다.” 하실 때, 그들은 뒷걸음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7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 “누구를 찾느냐?”
○ 그들이 대답하였다.
▣ “나자렛 사람 예수요.”
8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나다.’ 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들은 가게 내버려 두어라.”
9 ○ 이는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사람들 가운데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고
당신께서 전에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10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코스였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셨다.
+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12 ○ 군대와 그 대장과 유다인들의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하고,
13 먼저 한나스에게 데려갔다. 한나스는 그해의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이었다.
14 카야파는 백성을 위하여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유다인들에게 충고한 자다.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사제와 아는 사이여서,
예수님과 함께 대사제의 저택 안뜰에 들어갔다.
16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는데,
대사제와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17 그때에 그 문지기 하녀가 물었다.
●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요?”
○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 “나는 아니오.”
18 ○ 날이 추워 종들과 성전 경비병들이 숯불을 피워 놓고 서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서서 불을 쬐었다.
19 대사제는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은밀히 이야기한 것은 하나도 없다.
21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이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
22 ○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서 있던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의 뺨을 치며 말하였다.
● “대사제께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23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내가 잘못 이야기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 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
24 ○ 한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로 카야파 대사제에게 보냈다.
25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오?”
○ 베드로는 부인하였다.
● “나는 아니오.”
26 ○ 대사제의 종 가운데 하나로서, 베드로가 귀를 잘라 버린 자의 친척이 말하였다.
● “당신이 정원에서 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27 ○ 베드로가 다시 아니라고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다.
28 사람들이 예수님을 카야파의 저택에서 총독 관저로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이 더러워져서 파스카 음식을 먹지 못할까 두려워,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29 그래서 빌라도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나와 물었다.
● “무슨 일로 저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오?”
30 ○ 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였다.
▣ “저자가 범죄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께 넘기지 않았을 것이오.”
31 ○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여러분이 데리고 가서 여러분의 법대로 재판하시오.”
○ 그러자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 “우리는 누구를 죽일 권한이 없소.”
32 ○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 가리키며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33 그리하여 빌라도가 다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불러 물었다.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34 ○ 예수님께서 되물으셨다.
+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35 ●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36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37 ○ 빌라도가 물었다.
●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38 ○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진리가 무엇이오?”
○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다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39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내가 파스카 축제 때에
죄수 하나를 풀어 주는 관습이 있소.
내가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원하오?”
40 ○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외쳤다.
◎ “그 사람이 아니라 바라빠를 풀어 주시오.”
○ 바라빠는 강도였다.
19,1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군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하였다.
2 군사들은 또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나서, 3 그분께 다가가 이렇게 말하며 그분의 뺨을 쳐 댔다.
▣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4 ○ 빌라도가 다시 나와 말하였다.
● “보시오, 내가 저 사람을 여러분 앞으로 데리고 나오겠소.
내가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라는 것이오.”
5 ○ 이윽고 예수님께서 가시나무 관을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신 채
밖으로 나오셨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자, 이 사람이오.”
6 ○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보고 외쳤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빌라도가 말하였다.
● “여러분이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죄목을 찾지 못하겠소.”
7 ○ 그러자 유다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였다.
◎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이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하오.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
8 ○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9 그리하여 다시 총독 관저로 들어가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은 어디서 왔소?”
○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는 당신을 풀어 줄 권한도 있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11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네가 위로부터 받지 않았으면 나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긴 자의 죄가 더 크다.”
12 ○ 그때부터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외쳤다.
◎ “그 사람을 풀어 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
13 ○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로토스는 히브리 말로 가빠타라고 한다.
14 그날은 파스카 축제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 “보시오, 여러분의 임금이오.”
15 ○ 그러자 유다인들이 외쳤다.
◎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여러분의 임금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이오?”
○ 수석 사제들이 대답하였다.
▣ “우리 임금은 황제뿐이오.”
16 ○ 그리하여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넘겨받았다.
17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18 거기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을 가운데로 하여 이쪽저쪽에 하나씩 못 박았다.
19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2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히브리 말, 라틴 말, 그리스 말로 쓰여 있었다.
21 그래서 유다인들의 수석 사제들이 빌라도에게 말하였다.
▣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나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 하고 저자가 말하였다고 쓰시오.”
22 ○ 빌라도가 대답하였다.
● “내가 한번 썼으면 그만이오.”
23 ○ 군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그분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저마다 한몫씩 차지하였다.
속옷도 가져갔는데 그것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다.
24 그래서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 차지가 될지 제비를 뽑자.”
○ “그들이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래서 군사들이 그렇게 하였다.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 이어서 그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말씀하셨다.
+ “목마르다.”
29 ○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 “다 이루어졌다.”
○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무릎을 꿇고 잠깐 묵상한다.>
31 ○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
38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39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40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
4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42 그날은 유다인들의 준비일이었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인간은 좋은 가르침이나 교육만으로는 바뀌지 않습니다. 혹독하게 주입된 정보나 지식이 우리를 결코 참다운 인간으로 변모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은, 불행하게도 고학력 사회인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쉽게 확인되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을 참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누군가의 정직한 희생과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여 인간의 성숙과 성장은 ‘주입’이 아닌 ‘발견’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구원을 완성하신 이유는, 죽음까지 넘어서는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제자들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내내 그분의 가장 가까이에서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면서도 변하지 않던 제자들은, 십자가의 온전한 사랑과 희생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이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매우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그의 흉한 몰골에 많은 이가 질겁하고,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의 처참함을 받아들이는 사랑, 우리의 병고와 고통을 짊어지는 사랑,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입을 열지 않는 사랑,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이들을 위하여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고 기도하는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을 만날 때 비로소 인간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며 불행해하지 않게 됩니다. ‘완전한 사랑’으로 충만하여지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다 이루어졌다.”라는 구절이 라틴 말로 “Cosummatum est!”(다 소모되었다, 완전히 소진되었다)인 것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소모적인 신비입니다.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조차 남기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다 써 버린 사건을 기념하는 성금요일, 이날은 우리를 위한 사랑의 완성과 승리를 기억하는 날입니다.(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기쁨의 고통, 기쁨의 십자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젊은 사제 시절 저는 갈곳없는 아이들을 위한 소규모 아동 양육 시절 책임자로 있었습니다. 제가 주로 담당했던 역할은 각 집에서 사고뭉치 아이들, 문제아들이 생기면 본부로 데리고 와서 모아서, 같이 지내는 일이었습니다.

학교 보내면 백 퍼센트 땡땡이치고, 선생님들 괴롭히고, 제가 모아서 공부를 좀 시키려 하면 즉시 졸아버리고, 저는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에 하루 온 종일, 일년 사시사철 아이들과 놀았습니다.

아침 먹고 축구하고, 점심 먹고 농구하고, 저녁 먹고 게임하고, 주말 되면 피시방, 노래방, 등산 낚시 다니고, 정말이지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습니다.

한번은 아이들 네 명을 데리고 동네 목욕탕을 갔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절대로 크게 떠들거나 장난치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줬습니다. 그런데 장난꾸러기들이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냉탕 속에서 수영을 하고, 물장구를 치고, 크게 떠들고 싸우고,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어르신 몇 명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여기 아이들 보호자 누구요?”

그때 저는 온탕 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너무 창피한 나머지 몸을 더 깊숙이 탕속으로 담구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저에게 다가와서 그러는 겁니다. “이 신부님이 우리 아빠예요!”

그러자 어르신들이 눈이 휘둥그래지며 그러셨습니다. “세상 말세네. 요즘은 신부님들도 장가를 가시나?”

돌아보니 참으로 그리운 시절입니다. 그때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매알 아이들 때문에 상습 피로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그때 늘 1톤 트럭에다가 아이들 생필품 싣고 각 집에 배달을 다녔는데, 이집 저집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 넘었습니다.

어떤 때 운전하다가 심각한 교통 정체가 생기면, 너무 피곤한 나머지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려놓고, 일분, 이분, 핸들에 머리를 쳐박고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가 뒤차가 빵빵 하면 일어나서, 다시 운전을 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늘 온 몸이 피곤하고 뻐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겪은 고통은 괴로움의 고통이 아니라 기쁨의 고통이었습니다.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하면서 겪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인 것입니다.

오늘 성금요일 우리는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을 묵상합니다. 예수님의 고통 역시 그런 고통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내 한 몸, 몸이 으스러지도록 고통스럽지만, 나로 인해 너희는 살겠구나, 너희는 구원받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겪는 기쁨의 고통말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떨리는 단말마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이 고통 잠시 후면 끝날 것이고, 내 인내와 희생으로 너희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인내하는 기쁨의 고통이 예수님의 고통이었음을 확신합니다.

고통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고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통에 가치와 의미가 부여되면, 그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은총이요 축복으로 변화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재임 중에 한국을 2번 방문하였습니다. 1984년 5월에는 103위 시성식을 위해서 방한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신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여의도에서 시성식이 있었고, 저는 현장에서 자리를 정리하는 질서요원으로 봉사했습니다. 1989년에는 제44차 성체대회를 위해서 방한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신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여의도에서 파견미사가 있었고, 저는 성체분배를 하였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참가자들에게 행사장소로 안내하는 봉사를 하였습니다. 교황님께서 신학교에서 미사를 하였을 때입니다. 저는 중앙 통로 자리에 있었고, 하혈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져서 하혈이 멈추었던 것처럼 교황님의 제의가 제 발에 스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발을 살짝 통로 쪽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어쩌면 사제가 되고자 하는 간절함이 제게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제가 되었고, 33년 동안 사제로 지내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그때 교황님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2009년 2월에 선종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세요.” 교황님과 추기경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복음을 전하셨고, 말씀과 표징으로 새로운 권위를 보여주셨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7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 일곱 가지 말씀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삶을 통해서 꼭 실천하도록 권고합니다. 오늘 성금요일을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용서는 나의 영혼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반당하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3번이나 넘어지시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극한의 고통 중에 하느님의 침묵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십니다. 그러니 절망 중에, 고통 중에 예수님께 의탁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짐을 진 자들은 모두 나에게 오노라.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다.’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목마르다.’입니다. 2000년 전에는 제자들의 배반 때문에 목이 마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의 외침 때문에 목이 마르셨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위선과 교만 때문에 목이 마르셨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목이마르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세상의 뜻을 먼저 찾으려는 신앙인들 때문에 목이 마르십니다.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내기 보다는 취미 활동과 재물에 더 관심이 있는 사제들 때문에 목이 마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드렸던 베로니카처럼 우리들도 주님의 목마름을 우리들이 희생과 선행으로 채워드려야 합니다. 네 번째는 ‘다 이루었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은 곳에 우리가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 중에는 ‘이만하면 되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기까지 우리는 신앙의 길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다섯 번째는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습니다. 성모님도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습니다. 요셉성인도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여섯 번째는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입니다. 예수님 곁에 있던 죄인은 삶이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가시면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 죄인은 구원받았습니다. 하느님의 평가는 상대평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평가는 절대평가입니다. 아무리 우리 죄가 커다랄지라도, 아무리 우리 죄가 많다할지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유다는 희망을 버렸고, 구원의 길에서 멀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절망을 버렸고, 뉘우치고 회개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 중에는 ‘나는 안 돼!’라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새도, 들의 꽃도 다 헤아리시는 분입니다. 일곱 번째는 ‘어머니 이 사람이 아들입니다. 이분이 어머니시다.’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제자를 아들로 돌보아 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는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성금요일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의 ‘가상칠언’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목마르니 참으로>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목마르다.”(요한 19,28)


빛이
빛이기에
꺼뜨려지는 순간에도
여전히 빛에 목마르니
참으로 빛이다


사랑이
사랑이기에
버림받는 순간에도
여전히 사랑에 목마르니
참으로 사랑이다


베풂이
베풂이기에
빼앗기는 순간에도
여전히 베풂에 목마르니
참으로 베풂이다


섬김이
섬김이기에
짓밟히는 순간에도
여전히 섬김에 목마르니
참으로 섬김이다 


살림이
살림이기에
죽임당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살림에 목마르니
참으로 살림이다

 

 

 

오늘의 성인

 

성녀 글래디스(Gladys)

신 분 : 은수자

활동지역 : 뉴포트(Newport)

활동연도 : +6세기경

같은이름 : 글라디스

성 군들레우스(Gundleus)는 웨일스(Wales)족의 족장이었는데 글래디스라는 여성과 결혼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신부의 부친이 극구 반대하므로 그 딸을 납치한 뒤에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어쨌든 이들 부부는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첫 아들 성 카독(Cadoc, 1월 24일)을 낳고부터는 생활을 일신하여 웨일스 남동부 만머스셔(Monmouthshire)의 뉴포트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여 성공하였다. 그 후 성 군들레우스와 성녀 글래디스는 합의하에 서로 별거한 후 뉴포트에서 은수자로서 여생을 보냈다.

 

 

성 세쿤도 (Secundus)

활동년도 : +119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아스티(Asti)

같은 이름 : 세군도, 세꾼도, 세꾼두스, 세쿤두스

일부 지방에서는 성 세쿤두스(또는 세쿤도)의 축일을 3월 30일에 지낸다. 그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Piemonte) 지방 아스티의 귀족으로 황제군의 하급 장교였다. 성 세쿤두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치하의 아스티에서 참수되었으나 그는 테반(Theban) 군단의 순교자들 중의 한 명으로 기억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말과 함께 있는 젊은 전사로 표현되며, 때때로 성 마우리티우스(Mauritius, 9월 22일)와 성 엑스수페리우스(Exsuperius, 9월 22일)와 함께 등장한다

 

성 루돌포 (Ludolf)

활동년도 : +1250년

신분 : 주교

지역 : 라체부르크(Ratzeburg)

같은 이름 : 루돌푸스, 루돌프

성 루돌푸스(Ludolphus, 또는 루돌포)는 프레몽트레 회원으로 1236년에 라체부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수도자의 생활을 그대로 보전하였고, 자기 교구의 사제들에게 성 노르베르투스(Norbertus, 6월 6일)의 회칙을 실천케 하였다. 또한 그는 교회의 자유 때문에 그 지방의 공작인 알베르트와 갈등이 많았으므로, 여러 번 투옥되거나 고문까지 받다가 결국은 그 후유증으로 운명하였다. 그래서 그는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다.

Ludolf was a Norbertine priest (a canon regular of the Premonstratensian Order). In 1236 he was chosen to become bishop of the German see of Ratzeburg. While fulfilling his episcopal duties, he continued the practices of his Norbertine religious life. For his courageous defense of the Church, he was imprisoned and harshly treated by Duke Albrecht of Saxony-Lauenburg. Subsequently he fell ill and died from what he had suffered. A soldier tormented by excruciating pains in his head resulting from an arrowhead that had become embedded in his flesh during battle invoked the intercession of Saint Ludolf. Soon afterward, he found that the arrowhead had shifted to the surface of his head wound, so that he was able to extricate it with his hand. In thanksgiving to God, the Blessed Virgin Mary, and Saint Ludolf, the soldier donated to the Church a lavishly decorated missal and several beautifully adorned liturgical vestments.

 

성 군들레오 (Gundleus)

활동년도 : +6세기경

신분 : 은수자

지역 : 뉴포트(Newport)

같은 이름 : 군들레우스

성 군들레우스(또는 군들레오)는 웨일스(Wales)족의 족장이었는데 글래디스(Gladys)라는 여성과 결혼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신부의 부친이 극구 반대하므로 그 딸을 납치한 뒤에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어쨌든 이들 부부는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첫 아들 성 카독(Cadoc, 1월 24일)을 낳고부터는 생활을 일신하여 웨일스 남동부 만머스셔(Monmouthshire)의 뉴포트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여 성공하였다. 그 후 성 군들레우스와 성녀 글래디스는 합의하에 서로 별거한 후 뉴포트에서 은수자로서 여생을 보냈다.

성 베르톨드(Berthold)

신 분 : 은수자

활동지역 : 카르멜산(Mount Carmel)

활동연도 : +1195년

같은이름 : 베르톨도, 베르톨두스

St. Berthold of Mt Carmel

San Bertoldo Priore generale dei Carmelitani

Sec. XIII (1198~1231)

12세기 말경에 일단의 프랑스 계통의 은수자들이 솔리냑의 성 베르톨드의 지도아래 팔레스티나의 가르멜 산에서 생활하였다.

베르톨드는 프랑스의 리모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수학하였으며, 이곳에서 서품되었다.

그는 친척 에이메릭과 함께 십자군에 가담하였으나, 안티오키아에서 사라센인들에 의하여 체포 투옥되었는데, 그는 이때 크리스챤 군인들의 나쁜 길을 포기하고, 그들을 개혁시키라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가르멜 산에 일단의 은수자 집단을 모으고 원장이 되었다.

따라서 그는 가르멜 수도회의 창설자 중의 한사람이며, 거의 45년 동안 수도회를 육성하였다.

베르톨드가 임종할 때에는 프랑스 계통인 성 보로카드가 원장직을 승계하였는데, 그는 예루살렘의 라틴계 총주교이던 베르첼리의 성 알베르토가 만든 규칙에 따라 사는 은수자들의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가르멜 수도회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으로 현재까지 이해되고 그러나 이 두 장상들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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