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1일 목요일
[(자)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다마소 1세 교황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온갖 죄로 벌레와 구더기 같은 삶을 살아온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심을 자처하시며 당신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신다(제1독서). 세례자 요한은 모든 예언자가 그러하듯이 박해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다(복음).
제1독서
<나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너의 구원자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1,13-20
13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14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15 보라, 내가 너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날이 많은 새 타작기로 만들리니
너는 산들을 타작하여 잘게 바수고 언덕들을 지푸라기처럼 만들리라.
16 네가 그것들을 까부르면 바람이 쓸어 가고 폭풍이 그것들을 흩날려 버리리라.
그러나 너는 주님 안에서 기뻐 뛰놀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안에서 자랑스러워하리라.
17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물을 찾지만
물이 없어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탄다.
나 주님이 그들에게 응답하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18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들리라.
19 나는 광야에 향백나무와 아카시아, 도금양나무와 소나무를 갖다 놓고
사막에 방백나무와 사철가막살나무와 젓나무를 함께 심으리라.
20 이는 주님께서 그것을 손수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그것을 창조하셨음을
모든 이가 보아 알고 살펴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1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13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인 이사야서에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식이 두드러집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41,14) 벌레와 구더기라는 표현 자체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라는 말씀에서 그 표현들이 애틋한 사랑에서 나왔음을 알아차리게 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할머니나 엄마가 아기에게 볼을 비비면서 “아이구, 내 강아지! 내 새끼! 요 못난이!”라고 하듯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말할 때 스스로 아기가 되어 아기처럼 말하고 아기의 몸짓을 합니다. 그들은 사랑으로 다가가면서 아기가 되는 것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벌레 같은 야곱, 너는 작은 벌레 같은 존재, 아주 조그만 존재이지만. 나는 너를 많이 사랑한단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하나가 되시고자 내려오시는 하느님의 겸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말하는 “구원자”(41,14)는 히브리 말로는 ‘고엘’입니다. 고엘은 살해당한 친족을 위하여 대신 복수하는 자(민수 35,19 참조), 과부의 보호자를(룻기 2,20 참조) 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위하여 몸소 이 몫을 맡으시면서 다가오십니다. 이 대림 시기에 우리도 하느님의 방식대로, 자신을 낮추는 겸양과 다정함과 사랑으로 형제들에게 다가갑시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내 오른손을 꼭 붙들고 계시는 주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바깥 일을 하다 보면 틈만 나면 만나게 되는 것이 벌레요, 구더기요 지렁이입니다. 처음에는 섬뜩했지만 습관이 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려니 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습니다.
뱀이나 두더지, 고라니 정도 되면 호기심을 갖고 유심히 들여다보곤 하지만, 벌레나 구더기나 지렁이는 하찮은 미물로 여기고,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정녕 놀랍고도 은혜로운 말씀을 우리에게 건네십니다.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이사 41,13-14)
하느님께서 벌레 같고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시고 눈여겨보시겠답니다. 하느님께서 벌레 같고 구더기 같은 오늘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당신 친히 우리의 오른손을 붙잡아주시겠답니다. 만사 제쳐놓고 우리를 도와주시겠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며 황홀한 말씀인가요?
아마도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작고 미천한 존재를 각별하게 사랑하시는 특별한 분이 틀림없습니다. 나름 난다긴다하는 사람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존재들은 사정없이 내리치십니다. 대신 벌레나 구더기 같은 미물인 존재들, 가련하고 안쓰러운 존재들을 눈여겨보시며 알뜰살뜰 챙기십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사람, 병고나 죽음, 실패나 좌절은 나와는 별개의 것이라며 희희낙락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으시고 외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심연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어 가슴이 미어지는 사람들, 한꺼번에 불행이란 불행이 들이닥쳐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을 각별히 눈여겨보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들의 십자가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당신 친히 십자가를 나눠 짊어지시리라고 확신합니다.
결국 따지고 보니 우리가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과 자리를 듬뿍듬뿍 받고 싶다면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큰 존재, 엄청난 존재,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존재, 도움이 필요한 존재, 그래서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신학에 따르면, 유다 왕국의 멸망, 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하느님 없이 스스로 서려는 인간 측의 교만’이었습니다. 주님 없이도 잘 할수 있다는 오만, 주님을 향한 신뢰의 심각한 결핍이 결국 유다 왕국을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사야 예언자는 ‘임마누엘 신탁’을 강조합니다. ‘언제나 우리 사이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두려워 말고 주 하느님께 의지하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장시간 비행기를 타면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에 ‘영화 시청’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비행기에서 보여주는 영화를 함께 봐야 했습니다. 요즘은 좌석 앞에 모니터가 있어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영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된 영화는 장르별로 모여 있습니다. 10시간이 넘는 긴 장거리 비행도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3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했던 이순신 장군의 승리를 담아낸 ‘노량’을 보았습니다. 2018년에 제작되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상영이 중단되었다가 개봉한 ‘바이러스’를 보았습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던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Mickey 17)’을 보았습니다. 노량에서는 이순신을 연기한 김윤식 배우의 카리스마를 보았습니다. 이로써 명량, 한산, 노량으로 이어지는 이순신 장군의 승리가 빛난 3대 해전을 모두 보았습니다. 바이러스에서는 배두나 배우의 멋진 연기를 보았습니다. 과학의 발전이 때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미키 17의 감상평을 나누고 싶습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생체 프린팅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윤리적인, 종교적인 문제가 있어서 지구에서는 금지되었지만, 다른 행성에서는 실행할 수 있는 기술이 되었습니다. 지구의 삶에서 생존하기 어려웠던 미키는 생체 프린팅 사업에 지원합니다. 기억은 매번 업그레이드되면서 죽으면 다시 몸이 프린팅됩니다. 이렇게 17번 죽었습니다. 미키는 죽을 수밖에 없는 극한의 작업 현장에서 일하였습니다. 영화는 미키 17이 죽지 않았는데 미키 18이 만들어지는 상황이 됩니다. 멀티플 상황이 됩니다. 영화는 생체 프린팅 기계를 폭파하면서 마무리됩니다. 미키를 사랑하는 주인공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과학과 문명의 발달이 과연 인간에게 축복인가!’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보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축복인가!’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같은 물을 마시지만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됩니다. 뱀이 마시면 독이 됩니다. 같은 칼을 사용하지만, 요리사가 사용하면 맛있는 음식이 됩니다. 강도가 사용하면 사람을 해치는 무기가 됩니다. 인류는 과학이라는 물을 발전시켜 왔고, 문명이라는 칼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때로 과학은 인간이 짊어져야 하는 멍에와 짐을 가볍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끔찍한 폭력과 전쟁의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때로 문명은 종교와 윤리의 꽃을 피웠습니다. 문명은 예술과 문학의 꽃을 피웠습니다. 인간의 품위를 높였고,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나 문명은 야만과 폭력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서구 문명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착취하였고, 자원을 수탈했습니다. 유럽의 제국주의 문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지배하였습니다. 문명이라는 당위성을 내세워 소수 인종의 문화와 언어를 파괴하였습니다. 문명 건설을 이유로 많은 생명이 멸종되었고, 소중한 지구의 자연이 파괴되었습니다.
한문으로 ‘宗敎(종교)’는 “으뜸가는 가르침”을 뜻합니다. 영어 단어 Religion은 “엉킨 관계를 다시 묶는다”라는 의미에서 나왔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엉켰을 때,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 종교는 그 실타래를 다시 잇는 역할을 합니다. 그 핵심은 ‘비움’입니다. 자신을 비우고, 집착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참된 평화와 깨달음에 다가갑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회개와 회심을 통해 새롭게 이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하늘나라는 성적이나 순위로 결정되는 곳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향한 열정, 양심에 충실한 삶, 이웃을 위한 사랑과 봉사가 그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는 절대평가의 나라,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 한다.” 오늘, 이 말씀은 경쟁과 업적, 권력으로 천국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심을 경고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으로 이뤄지는 공동체입니다. 과학이 만든 세상이 하느님 나라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지식의 세계가 하느님의 지혜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힘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믿음과 희망과 사랑입니다.
“주님, 우리가 가진 지식과 문명, 과학의 힘이 서로를 지배하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사랑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하느님 나라의 질서가 우리의 마음과 세상 속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늘나라다운 사람>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2)
하늘나라를
붙잡으려 하지 마세요
하늘나라가
붙잡게 하세요
하늘나라를
가지려 하지 마세요
하늘나라가
가지게 하세요
하늘나라를
차지하려 하지 마세요
하늘나라가
차지하게 하세요
오늘의 성인
성 사비노(Sabinus)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피아첸차(Piacenza)
활동연도 : +420년
같은이름 : 사비누스, 싸비노, 싸비누스
피아첸차의 성 사비노(Sabinus) 이탈리아 피아첸차의 주교인 성 사비누스(또는 사비노)는 일찍부터 교회를 위해 봉사했다.
그는 교황 성 다마수스 1세 (Damasus I, 12월 11일)에 의해 멜레티우스(Meletius) 이교를 가라앉히기 위해 안티오키아(Antiochia)로 파견되었었다.
그는 또한 밀라노(Milano)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의 절친한 친구로서 정기적으로 성 암브로시우스의 저작물 초본을 받아 읽은 후 비평 및 의견을 제시하는 글을 써 보냈다.
그는 381년 아퀼레이아(Aquileia) 공의회에 참석하여 아리우스파(Arianism)를 단죄하는데 앞장섰고, 9년 뒤에는 밀라노 교회 회의에서 요비니아파를 격렬히 비난하여 정통교리를 수호하였다.
성 다마소 1세(Damasus I)
신분 : 교황
활동연도 : 305?-384년
같은이름 : 다마수스, 다마쑤스
에스파냐 혈통을 가진 성 다마수스(또는 다마소)는 아마도 로마에서 태어난 듯하고, 사제였던 자신의 부친 교회에서 부제가 되었다가, 366년의 치열한 선거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때 교황 선출에서 패배한 반대파는 우르시누스(Ursinus)를 대립교황으로 옹립하는 비극을 맛보아야 했다. 결국 이 분쟁은 반대파가 비극적 종말을 맞는 것으로 끝났다. 즉 우르시누스가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로부터 유배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평정되었으나, 성 다마수스 교황을 반대하는 무리들은 그의 재임 기간 동안에 늘 도전하였다. 그의 선출은 로마 교회회의에서 무혐의로 판정되었다.
성 다마수스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강력한 반대자였고, 381년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 대리자를 파견하여 아리우스주의를 단죄하는 교황청 교서를 수락케 하였으며, 성령은 신성이 없다는 마케도니우스(Macedonius)의 교리를 단죄하였다.
재임 기간 중에 그는 동서방의 황제이던 테오도시우스 1세로 하여금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종교로 선언토록 하여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성서학자이던 성 다마수스는 성경의 정경을 발표하였고, 374년의 로마 교회회의를 통하여 올바른 성경을 명시하는 업적을 쌓았다. 유명한 성서학자인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그의 비서였다.
그래서 성 다마수스는 성 히에로니무스에게 성경 주석을 비롯하여 불가타 성경 번역을 부탁하였다.
많은 잡음이 있었지만 그의 재임 기간에 이룩한 일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또한 그는 로마가 교회 중의 최고 교회임을 선언하였고, 많은 성당을 건축하고 카타콤바와 순교자들의 무덤을 복원하여 그곳을 순례하는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도록 격려하였다. 위대한 교황이었던 그는 사후 자신이 아르데아티나(Ardeatina) 가도에 건축한 성당에 묻혔다가 후에 산 로렌초 인 다마소(San Lorenzo in Damaso)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성녀 마리아 마라비야스 데 헤수스(Maria Maravillas de Jesus)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연도 : 1891-1974년
같은이름 : 마라빌라스, 메리, 미리암, 예수스, 지저스
성녀 마리아 마라비야스 데 헤수스는 1891년 11월 4일 에스파냐의 마드리드(Madrid)에서 아버지 루이스 피달 이 몬(Luis Pidal y Mon)과 어머니 크리스티나 치코 데 구스만 이 무뇨스(Cristina Chico de Guzman y Munoz)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교황청 주재 에스파냐 대사였고, 그녀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다.
마리아 마라비야스는 이미 8살 때 정결 서원을 하며 자비로운 일에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 후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2월 14일)과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ia de Avilla, 10월 15일)의 저작들을 접하면서 맨발의 카르멜회 수녀가 되려는 성소(聖召)를 느꼈다.
1913년 그녀를 신앙적으로 도와주던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했을 때 어머니는 맨발의 카르멜회에 들어가려는 마리아 마라비야스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그녀는 1919년 10월 12일 마드리드의 엘 에스코리알
(El Escorial)에 있는 맨발의 카르멜회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1924년 5월 30일 종신 서원 전에 이미 마리아 마라비야스 수녀는 하느님으로부터 체로 데 로스 안젤레스의 카르멜회(the Carmel of Cerro de los Ángeles)를 설립하라는 특별한 소명을 받았고, 1926년 10월 31일 다른 세 명의 카르멜회 수녀들과 함께 수도회를 설립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이는 맨발의 카르멜회의 수도 규칙에 따라 설립된 테레지안 카르멜회의 첫 번째 수도회였다.
성녀 마리아 마라비야스는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하거나 맨발의 카르멜회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를 설립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예수의 성녀 테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정신과 이상을 더 깊이 살고 전파하는 것만을 추구했다. 1926년 6월 28일 마드리드 알칼라(Madrid-Alcala) 교구의 주교는 그녀를 새로운 수도회의 원장으로 임명했다.
1933년 그녀는 인도(India)의 코타밤(Kottavam)에 수녀원을 설립했고, 여기서부터 여러 분원이 인도 안에서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역할은 수녀원장으로서 자연적인 반감과 책임 있는 직책을 수행하기에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일생동안 설립한 수녀원들이 영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녀는 강한 정신력과 성실함으로 교회와 수녀들에 대한 순명과 사랑의 의무를 수행하였다.
그녀는 종종 자신이 설립한 수녀원의 빈곤함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했다. 수녀들은 가구도 제대로 없는 작은 집에서 텅빈 벽에 성경 구절이나 카르멜회 출신 성인들의 말씀을 걸어 놓고 살았다. 에스파냐 내전이 발발했을 때 체로 데 로스 안젤레스 수녀원의 수녀들은 수녀원을 빼앗기고 마드리드의 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런 와중에도 1937년 9월 살라망카(Salamanca)의 바투에카스(Batuecas)에 또 하나의 수녀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1939년 내전이 끝나면서 체로 데 로스 안젤레스의 수녀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토록 엄청난 박탈과 박해의 한가운데서도 성녀 마리아 마라비야스 원장은 늘 용기와 행복을 주입시켰고 수녀들이 감탄할만한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같은 회의 수녀들조차 알지 못한 심연이 있었다. 오직 그녀의 영적 지도자들만이 그녀의 생애 전체를 관통했던 영혼의 어둔 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 영혼의 어둔 밤은 그녀에게 극심한 영적 건조함과 시련을 주었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뜻에 전적인 신뢰와 포기로 응답하도록 이끌어주었다.
그 후로도 여러 해 동안 에스파냐의 여러 지역에 수녀원들이 설립되었다. 성녀 마리아 마라비야스 원장은 자신이 처음 입회하였던 엘 에스코리알의 맨발의 카르멜회에 수녀들을 보내 회복을 도왔고 아빌라에 있는 유서 깊은 강생의 수도원에도 그렇게 했다. 그녀가 직접 설립한 수도원과 같은 목적을 가진 다른 수도원들과의 결합을 위해 그녀는 성녀 테레사회를 설립하였고, 1972년 교황청으로부터 공식 승인을 얻었다.
1974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성녀 마리아 마라비야스 원장은 병자성사를 받고 마지막 노자성체를 영했다. 그리고 12월 11일 마드리드 인근 라알데우엘라(La Aldehuela)의 카르멜회 수녀원에서 여러 수녀들에 둘러싸여 선종하였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면서 “카르멜회 회원으로서 죽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말을 반복해서 되뇌었다고 한다.
그녀는 1998년 5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3년 5월 4일 마드리드의 콜론(Colon) 광장에서 100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른 네 명의 복자들과 함께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녀는 마리아 마라비야스 데 헤수스 피달 이 치코 데 구스만(Maria Maravillas de Jesus Pidal y Chico de Guzman)으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