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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묵상

2026년 6월 6일 (녹)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작성자이선정스테파노|작성시간26.06.06|조회수3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6일 토요일

[(녹)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노르베르토 주교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우선적 사명이라고 한다. 하느님의 말씀 전파는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지배 계급의 지식인들을 책망하신다. 그들은 자기네 지식을 백성을 착취하는 데 이용한다. 반면에, 가난한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에서도 모든 것을 바쳤기 때문에 주님께 칭찬을 듣는다(복음). 

 

제1독서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십시오. 주님께서 의로움의 화관을 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1-8
사랑하는 그대여,
1 나는 하느님 앞에서, 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다스리심을 걸고
그대에게 엄숙히 지시합니다.
2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5 그러나 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되풀이하여 나열합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언어는 따뜻하고 정겨운 교훈이 아니라 진실을 찾는 논쟁의 칼날이 되고, 그 칼날은 율법 학자들을 겨눕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하느님을 향한 길이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향한 우월과 교만의 무대가 됩니다. ‘기도’조차도 제 위신을 위하여 길게 늘어뜨린 장식으로 삼으며, 그리스 말 표현에 따르면 과부들의 ‘집마저 삼키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당시 관행으로 미루어 보건대, 사회적으로 취약한 과부들을 위한답시고 재산을 맡아 주면서 부당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 성전 제의를 위하여 봉헌하라고 권하면서 재산을 빼앗은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긴 기도는 제 이익을 위한 구실이며,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더욱 무겁게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이 경고 뒤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곧바로 장면을 바꿉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헌금함 맞은쪽에서 사람들이 돈을 넣는 모습을 바라보십니다. 부자들의 많은 돈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 가난한 과부가 가장 작은 동전 두 닢을 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하느님의 눈에는 액수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가 그 가치를 결정한다고요.
부자들은 풍족한 가운데 남는 것을 바쳤으나, 과부는 부족함 속에서 ‘자기 삶 전체’를 바쳤습니다. 돌로 된 성전은 거대한 금과 은을 삼키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작은 동전 두 닢으로 한 사람의 온 생애를 받아들이십니다. 우리는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하느님께 무엇을 ‘드리는가’, 또는 무엇을 ‘내맡기고’ 있는가. 또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가진 돈과 시간과 노력, 봉사를 바라는가. 아니면 그들의 온전한 삶이 하느님께 봉헌되기를 바라는가.(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복음 선포자에게 필요한 세 가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 첫 번째인 독서 티모테오 2서 말씀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스승 바오로 사도께서 제자이자 동료 사목자인 티모테오에게 착한 목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근조근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 사제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입니다.

특히 오늘 바오로 사도의 권고 말씀은 사제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첫 번째 의무요 과제인 복음 선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간략하면서도 명쾌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① 복음 선포는 일생에 한두번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것입니다. 사제요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 선포는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입니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하십시오.” 복음 선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건강이 허락해도, 중환자실이나 요양원에 들어가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② 복음 선포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복은 선포 여정에 반대와 몰이해, 시련과 박해는 필수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덕이 끈기와 인내의 덕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면서 생명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류나 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타이르기도 하고 꾸짖기도 해야 합니다. 낙담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에게는 격려와 자극도 필요합니다.

③ 주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시련을 다시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여겨야 합니다. 높은 시련의 파도가 다가올 때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당당히 중심을 잡고,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대단한 것이, 제자들이나 동료 사목자들에게 그럴듯한 훈시 말씀만 건넨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말하고 생각하고 선포한 것을 있는 그대로 당신이 사셨습니다. 말과 행동, 가르침과 구체적인 생활이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를 향해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라로 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정신없이 달려온 복음 선포 여정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는데,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또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가, 이토록 당당하게. 이토록 자랑스럽게 자신의 지난 세월을 소개할 수 있을까요? 바오로 사도는 마치 하루를 천년처럼 그렇게 밀도 높은 삶을 살았습니다.

회심 이후 바오로 사도는 단 하루, 단 한 순간도 주님 외에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만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생애가 위대한 바오로 사도의 생애였습니다.

 

 

 

유혹과 맞서는 자는 하느님을 품지 못한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마태 2,14-15)

찬미 예수님! 성모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는 6월의 성모 신심 미사입니다.

 

오늘 복음은 한 편의 숨 막히는 추격 영화 같습니다. 잔혹한 권력자 헤로데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칼을 빼 들었고, 요셉과 마리아는 한밤중에 급히 짐을 싸서 낯선 땅 이집트로 도망을 칩니다. 겉보기에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의 가족이 세상의 권력자들을 피해 비겁하게 쫓겨 다니는 피난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아주 뼈아프고도 중대한 영적 질문을 던집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왜 천사 군대를 동원해 헤로데를 쳐부수지 않으시고, 굳이 성가정을 한밤중에 '도망치게' 만드셨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 신비를 통해, 우리가 인생의 위기와 유혹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그 진짜 영적 생존법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품에 갓난아기를 소중히 안고 길을 가는 한 어머니가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갑자기 골목길에서 사나운 들개가 침을 흘리며 덤벼듭니다. 이때 어머니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어머니가 무술을 연마한 유단자이고 손에 몽둥이가 들려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내가 저깟 개 한 마리 못 이길 줄 알아?" 하며 아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들개와 맞서 싸우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어머니는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싸우는 과정에서 행여나 흙먼지가 튀어 아기의 눈에 들어가거나 짐승의 발톱에 아기가 조금이라도 다칠까 두려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기를 꽉 끌어안은 채 미친 듯이 도망을 칩니다.

어머니가 도망치는 이유는 비겁해서가 아닙니다. 내 자존심이나 내 힘을 증명하는 것보다, 내 품에 안긴 '생명'을 지켜내는 것이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품은 자는 결코 들개와 기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체면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 이것이 생명을 품은 자의 가장 위대한 본능입니다.

이 원리는 전 세계 국가 원수들을 보호하는 최정예 요원들의 '경호 프로토콜'과도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VIP가 연단에서 연설하고 있을 때, 갑자기 군중 속에서 암살자가 총을 꺼내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경호원들은 절대로 범인이 누구인지 따지거나, 맞서 싸우기 위해 총격전을 벌이느라 그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경호원들의 제1수칙은 단 하나입니다.

 

위험이 감지되는 그 즉시, VIP의 머리를 강제로 누르고 몸을 둥글게 감싼 뒤, 어떤 질문이나 망설임도 없이 가장 가까운 안전 가옥(Bunker)을 향해 냅다 뛰어 도망치는 것입니다. 경호의 핵심은 적을 물리치는 멋진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할 '생명'을 살려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체면을 차리거나 상황을 따지고 맞서 싸우려 들면 VIP는 목숨을 잃습니다. (출처: 댄 에머리, 『시크릿 서비스: 대통령 경호의 세계』)

오늘 복음의 성모 마리아와 요셉 성인이 보여준 행동이 바로 이 '어머니의 본능'이자 완벽한 '영적 경호 프로토콜'이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하니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라고 경고했습니다. 보통의 자존심 강한 남자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니, 이 아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서요? 하느님이 벼락을 내려 헤로데를 죽이시면 되지, 왜 비겁하게 한밤중에 도망을 가야 합니까?"라며 따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 성인은 단 한 마디도 묻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저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고 기록합니다. 마리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불평 한마디 없이 남편 요셉의 이끌림에 완벽하게 순종하며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존심이나 내 편안함이 아니라, 내 품에 안겨 있는 이 고귀한 '예수님의 생명'을 지켜내는 것임을 말입니다. 내가 우주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상황의 비참함이나 도망치는 수치심에 상처받지 않습니다.

우리 영혼 안에도 요셉과 마리아처럼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할 '아기 예수님', 즉 세례를 통해 잉태된 하느님의 거룩한 생명이 숨 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헤로데와 들개들, 즉 내 안의 교만과 분노, 돈을 향한 탐욕, 음란한 쾌락이라는 마귀는 틈만 나면 내 영혼의 아기를 물어뜯어 죽이려고 이빨을 드러냅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우리 신앙인들이 가장 자주 범하는 치명적인 교만이 있습니다. 바로 유혹의 들개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 이기겠다'며 호기를 부리는 것입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술자리나 쾌락의 유혹이 넘치는 장소에 굳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신앙이 깊으니까 이 정도 유혹은 내 의지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나는 절대 취하지 않을 거야. 나는 흔들리지 않아."

이것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영혼 안에 '하느님이 살아 숨 쉬고 계시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한 자의 지독한 오만입니다. 만약 내 품에 갓난아기 예수님이 안겨 있다는 것을 진짜로 믿는다면, 어떻게 감히 그 위험한 유혹의 자리에 머물며 마귀와 주먹다짐을 하려 들겠습니까?

 

싸우는 동안 유혹의 흙먼지가 내 영혼의 아기에게 덮이고, 마귀의 발톱에 내 안의 은총이 갈기갈기 찢겨나갈 텐데 말입니다. 유혹과 맞서 싸우려 드는 자는, 아직 하느님을 온전히 품지 못한 가짜 신앙인일 뿐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왜 하필 스스로는 걷지도 못하는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어머니 품에 안겨 세상에 오셨을까요?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완벽하게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스스로 고집을 꺾고 당신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을 만큼 '겸손'해질 때까지, 우리 영혼 안에서 스스로 무력한 아기처럼 머물며 기다려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안에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생명이 잉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내 의지로 이 유혹을 이길 수 있어!'라며 뻗대는 얄팍한 '교만의 화분'에 갇혀 있는 한, 주님은 내 안에서 영원히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무력한 아기로 계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혹의 들개 앞에서 나의 한계를 철저히 인정하고, 체면을 버리고 화장실로 숨거나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는 '겸손'을 선택할 때 어떻게 될까요? 내가 교만의 화분을 스스로 깨부수는 그 순간, 내 안의 아기 예수님은 비로소 우주를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본모습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하십니다. 

 

내가 유혹을 피해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작아졌을 때, 내 안의 주님은 가장 커지시어 세상의 그 어떤 마귀와 유혹도 단숨에 짓밟을 수 있는 하느님의 능력을 내 삶에 마음껏 펼쳐 보이십니다.

이렇게 이집트에서 생명을 지킨 성가정은, 헤로데가 죽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또 장애물이 생깁니다. 잔혹한 아르켈라오스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두려워합니다. 그때 천사가 다시 꿈에 나타나 방향을 틀어 갈릴래아 '나자렛'이라는 깡촌으로 우회하도록 내비게이션의 경로를 수정해 줍니다.

왜 우주의 창조주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화려한 예루살렘이 아니라, "거기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며 멸시받던 나자렛 깡촌에 숨겨두셨을까요? 세상의 사나운 들개들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완벽한 '위장술(Camouflage)'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귀한 보물은 가장 허름한 상자에 숨겨야 도둑이 훔쳐 가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메시아를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보잘것없는 마을의 청년으로 30년 동안 완벽하게 숨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무한한 능력을 발휘해도 유혹을 보면 도망쳐야 할까요? 당연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할머니가 장성한 아들과 길을 가다가 들개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들을 믿고 개와 싸워야 할까요?

 

무서워 도망을 치면 아들도 함께 올 것입니다. 만약 유혹이 나를 따라잡을 양이면 그때 아들이 돌아서서 개와 맞설 것입니다. 그러니 어쨌거나 죄에서 도망치십시오. 이것이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오늘 밤 당장 짐을 싸서 도망치라 하시면 도망치고, 시골 구석에 숨어 있으라 하시면 기꺼이 머무르십시오. 그 철저한 도망과 침묵의 발걸음만이 내 품에 안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온전히 지켜내는 유일한 경호 수칙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처럼,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도망을 통해 내 안의 주님을 위대한 하느님으로 키워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얼마 전 ‘기술 공화국’에 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 강의에서는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투자자인 Peter Thiel의 생각도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기업가를 넘어, 기술이 앞으로 인간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저서 Zero to One에서 “0에서 1로 나아가는 창조”를 강조하며, 기존의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발전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기술 공화국’입니다. 앞으로의 사회는 기술이 중심이 되어 재편될 것이고, 그 핵심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인공지능입니다.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담당해 온 사무직과 지식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휴머노이드입니다.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로봇들은 생산 현장에서 반복적이고 육체적인 노동을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에너지입니다. 이 모든 기술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입니다. 결국 지능과 몸, 그리고 힘을 균형 있게 갖춘 나라가 새로운 문명을 선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한 가지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중심에는 결국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술은 세상을 빠르게 바꿀 수 있지만, 인간의 마음을 살리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랑과 양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의 시대를 살면서도, 더 깊은 인간성과 신앙의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얼마 전 저는 오스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서울 대교구에서 파견된 후배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1년 전, 교구의 요청으로 그 본당의 상황을 살펴보고 보고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조심스럽게 판단했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이었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에는 기대와 설렘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목을 시작하는 신부님을 만난다는 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열어 주시는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은 세 가지 다짐을 이야기했습니다. ‘하느님의 뜻’, ‘정체성’, 그리고 ‘공동체’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마음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하느님의 뜻’을 먼저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목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내 뜻’이 앞설 수 있는데, 시작하는 자리에서부터 ‘하느님의 뜻’을 먼저 고백하는 그 모습이 참 고맙고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순간, 이 신부님의 길 위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또한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다짐 속에서는 미래를 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사목이 아니라, 이어지는 사목, 다음을 준비하는 사목이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마음에서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교우들과 함께 웃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책임을 나누는 그 자리에서 교회는 살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는 신부님께 환영의 인사를 전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신부님을 통해 이 공동체에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 마음 안에도 작은 다짐이 생겼습니다. 필요할 때 함께 걸어가야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사제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제 마음에는 한 가지 확신이 남았습니다. ‘잘 되겠구나.’ 하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시작하셨으니, 하느님께서 이루어 가시겠구나.’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가 들은 사도 바오로의 권고와도 이어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디모테오에게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신앙은 거창한 업적이 아니라, 이렇게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을 알려 주십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위선과 허영이 아니라, 가난한 과부의 작은 정성을 보십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을 보십니다.

세상은 기술 공화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와 에너지가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는 전혀 다른 원리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의 위선과 허영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작지만, 정성 어린 헌금을 사랑하십니다. 구원은 능력과 업적이 아니라, 정성과 나눔에서 시작됩니다. 이 믿음을 간직하며,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작은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노르베르토(Norbert)

신분 : 대주교, 설립자

활동지역 : 마그데부르크(Magdeburg)

활동연도 : 1080-1134년

같은이름 : 노르베르또, 노르베르뚜스, 노르베르투스, 노르베르트, 놀베르토, 놀베르트, 볼베르투스

독일 산튼(Xante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노르베르투스(Norbertus, 또는 노르베르토)는 하인리히 5세 황제의 궁전에서 하사품을 관리하는 차부제로 지내며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식에 참석하고자 말을 타고 가다가 번개를 맞아 땅에 떨어졌다. 얼마 후 의식이 회복되자 방탕했던 지난 생활에 대해 깊이 통회하며 "주님, 저로 하여금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하고 옛날의 사도 바오로(Paulus)처럼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그는 쾰른 근처 지그부르크의 한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와 단식으로 시간을 보냈었다. 결국 주님의 뜻을 확신한 그는 쾰른 시로 나와 사제 서품을 준비하고 1115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서품 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왔으나 환영받지 못하였다. 그는 과거의 죄의 보속으로 이러한 모욕과 냉대를 참으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 후 그는 주임 사제직을 사임하고 소유물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보속의 길을 떠났다.

그가 북부 프랑스를 다니며 주님의 말씀을 설교한 것이 큰 효과를 내게 되어 그는 매우 유명한 설교가로 변신하였다. 이윽고 포세스(Fosses)의 성 후고(Hugo, 2월 10일)가 동반자가 됨으로써 그의 능력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1120년 1월 25일 그는 13명의 동료들과 함께 프레몽트레(Premontre)에서 성 마르티누스(Martinus)의 율수 수도회를 개혁하여 새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 수효는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소위 '프레몽트레 수도회'이다.

그는 생전에 8개의 대수도원과 2곳의 수도원을 세웠고, 교황 호노리우스 2세(Honorius II)로부터 1125년에 공식 인가를 받았다. 그 후 테오발드(Theobald) 백작이 입회를 요청하자 그는 입회를 거절하고 세상에서 수도회의 규칙을 따라 살도록 제3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그는 독일에 갔다가 황제와 교황 사절의 간청에 굴복하여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가 될 것을 승낙하였다. 그 교구에는 개혁할 일, 정리할 일들이 태산 같았다. 그가 임지에 갔을 때 주교관의 문지기는 그의 너무나 남루한 모습을 보고 거지로 착각하여 주교관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새 주교와 그의 개혁 정책에 반감을 갖게 된 이들도 많아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방해하며 심지어 그를 처치해 버리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덕행과 온화하고 용맹한 마음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였다.

1132년 그는 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고자 로마에 갔다가 중병에 걸려 4개월 간 병상에 눕게 되었으나 그 후 교구로 돌아와 2년 간 직무를 수행하다가 1134년 54세로 선종하였다. 그는 캉브레(Cambrai)에서 이단과 싸우는 친구 성 발트만(Waltman, 4월 11일)을 도와주었으며, 성체 현존에 관한 이단을 배격하는데 공로가 컸다.

그는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672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는 전세계 교회에서 그의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다.

 

 

성 라파엘 귀자르 발렌시아 (Rafael Guizar Valencia)

활동년도 : 1878–1938년

신분 : 주교

지역 : 베라크루즈(Veracruz)

같은 이름 : 발렌치아, 발렌키아

성 라파엘 귀자르 발렌시아(Raphael Guizar Valencia)는 1878년 4월 26일 사모라(Zamora) 교구에 속한 멕시코 서남부 미초아칸(Michoacan) 주(洲)의 코티자(Cotija)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인 프루덴치오(Prudencio)와 나티비타드(Natividad)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라파엘과 그의 형제들은 가정에서부터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9살 때 어머니를 여읜 라파엘은 일찍이 수도회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이어 예수회 사제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성소(聖召)는 사제직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이름 안에서 자신의 삶을 봉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1891년 코티자에 있는 소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이어 1896년에 사모라에 있는 대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1901년 6월, 23살의 나이에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직 초기에 그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사모라와 멕시코의 여러 다른 지역에서 선교 사업을 수행하는데 헌신하였다. 1905년 사모라 신학교의 영성지도 신부로 임명된 그는 성체성사에 대한 사랑과 동정 마리아께 대한 깊은 신심 안에서 신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 1910년에 일어난 멕시코 민족주의 혁명의 여파로 가톨릭 교회에 대한 정부의 박해가 심해지자 그는 이에 저항하기 위해 1911년에 종교 신문을 창간하였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불행히도 혁명 세력에 의해 폐간되고 말았다. 박해는 그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고, 그로 인해 그는 수십 년 동안 거처조차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지냈다. 그는 사생활의 제약으로 인해 고통 받았으며 그 외에도 많은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사도직을 계속 수행하기 위해 거리의 상인, 음악가, 동종요법(同種療法) 치료사 등으로 위장하여 병든 이들을 치유하고 위로하며 죽어가는 이들에게 성사를 집전하였다.

그는 혁명 세력들에 의해 쫓겨 다니며 계속되는 체포의 위험 때문에 더 이상 멕시코 지역에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1915년 말까지 미국의 남부 지방에 머물렀고, 그 다음 해에 과테말라(Guatemala)로 가서 대규모의 선교사들을 지도하였다. 선교사로서 그의 명성이 쿠바(Cuba)에까지 전해지면서 그는 그곳의 선교사들을 지도해 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쿠바에서의 그의 활동은 매우 생산적이었으며, 특별히 1919년 흑사병 희생자들을 위한 자선사업은 매우 모범적이었다. 1919년 8월 1일 쿠바에 머물고 있던 그는 베라크루즈 교구의 주교로 선출되어 그 해 11월 30일 아나바(Havana)의 주교좌성당에서 주교 서품식을 가졌다.

멕시코 혁명이 잦아든 1920년 1월 9일 라파엘 주교는 그의 교구로 돌아왔다. 그는 처음 두 해 동안 교구의 방대한 지역을 방문하며 선교사들을 지도하고 가공할 지진으로 인해 희생된 이들을 도왔다. 대지진은 베라크루즈 교구의 가난한 이들 안에서 대규모의 파괴와 죽음을 야기하였다. 그의 사명은 본당에서의 설교와 교리교육, 혼인 유효화와 고해성사를 듣는 일 그리고 지진 희생자들을 돕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는 미래의 사제들을 교육하는 일이었다. 1921년 그는 지난 1914년에 몰수된 할라파(Xalapa / Jalapa)의 오래된 신학교를 돌려받아 보수하였다. 그러나 보수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에 의해 다시 점거당했다. 그래서 그는 멕시코시티(Mexico City)로 신학교를 옮겨 15년 동안 은밀히 그 기능을 유지하였다. 이 신학교는 박해 기간 동안에 문을 연 유일한 곳으로 300명의 신학생들이 있었다.

그는 베라크루즈 교구의 책임을 맡은 이후 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고 그 후로도 줄곧 도망을 다녀야 했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교구로 돌아와 박해자들의 손에 자신의 목숨마저 맡긴 것은 용맹하고도 모범적인 행동이었다. 1937년 12월, 코르도바(Cordoba)에서 사명을 수행하던 중에 그는 심근경색으로 고통을 받으며 남은 생애를 몸져누워 지내야 했다. 임종을 앞둔 그는 전능하신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도 교구와 신학교를 어렵게 운영해 갔다. 그는 또한 매일미사를 집전하였다. 라파엘 주교는 1938년 6월 6일 멕시코시티에서 선종하여 그 다음날 할라파의 주교좌성당에 안치되었다. 그의 장례 행렬은 승리의 사건과도 같았다. 모든 이들이 성인다운 삶을 산 그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라파엘 귀자르 발렌시아 주교는 1995년 1월 29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다. 그리고 2006년 4월 28일 시성을 위한 기적 심사를 통과한 후 그 해 10월 15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다른 세 명의 복자들과 함께 시성되었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 주교로서는 처음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할라파 주교좌성당에 있는 그의 무덤은 그를 공경하는 수천의 사람들이 찾아와 도움과 전구를 청하는 순례지가 되었다.

 

 

성 마르첼리노 샴파냐 (Marcellinus Champagnat)

활동년도 : 1789-1840년

신분 : 신부,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마르셀리노, 마르셀리누스, 마르첼리누스, 말셀로

1789년 5월 20일 프랑스의 르 로지(Le Rosey)에서 물방앗간 집의 아홉 번째 자녀로 태어난 성 마르첼리누스 샴파냐(또는 마르첼리노)는 신심 깊은 부모로부터 어려서부터 신앙 교육을 받았다. 일찍이 성소의 꿈을 키운 그는 리옹(Lyon) 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1816년 7월 22일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라 발라(La Valla) 본당의 보좌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신학교 생활 이후 늘 소년들을 교육하는 수도회의 설립에 관심을 가져오다가, 마침내 1817년 ‘마리아의 작은 형제회’(마리스타 교육 수사회)를 설립하여 1836년에 공식 승인을 받았다. 그는 마리스타의 교육 이념인 학교 지침을 발간하였고, 교육 분야에서 기여하다가 1840년 6월 6일 51세를 일기로 노트르담 에르미타주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955년에 복자품에 올랐고, 1999년 4월 1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클라우디오 (Claudius)

활동년도 : +699년경

신분 : 주교

지역 : 브장송(Besanion)

같은 이름 : 글라우디오, 글라우디우스, 글로드, 끌라우디오, 끌라우디우스, 끌로드, 클라우디우스, 클로드

성 클라우디우스(또는 클라우디오)는 프랑스 동부 프랑슈콩테(Franche-Comte) 태생으로 원로원 집안 출신이며, 사제로 서품된 후 브장송 교구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그는 12년 동안 봉직하다가 스스로 은퇴하여 콘다트(Condat) 수도원으로 들어갔는데, 여기서 그는 여생을 거룩하고도 엄격한 생활로 장식하였다고 한다. 이 수도원은 후일 그의 이름을 따서 생클로드(Saint-Claude)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수도원의 원장이 된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규칙을 채택하고 건물을 세우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685년에 그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브장송의 주교로 선임되었으나,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7년 동안이나 교구를 발전시켰다. 그 후 그는 또다시 주교직을 사임하고 자기 수도원으로 돌아가서 수도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성 클라우디우스의 축일은 12세기에 와서 널리 전파되었고, 그의 유해도 발견되어 큰 공경을 받았는데, 그의 무덤에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그는 클로드(Claud)로도 불린다.

 

성 필립보 (Philip)

활동년도 : +1세기경

신분 : 부제

지역

같은 이름 :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성 필리푸스(Philippus, 또는 필립보)는 사도들로부터 선발된 일곱 보조자(부제) 중의 한 명이고(사도 6,5), 처음으로 사마리아에서 설교하였으며(사도 8,5-13), 마술사 시몬의 개종을 비롯하여 에티오피아(Ethiopia)의 내시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사도 8,26-40). 그는 주로 카이사레아(Caesarea)의 자기 집을 중심으로 하여 설교했는데 결혼하지 않은 딸 넷을 데리고 살았다(사도 21,8-9). 그리스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소아시아 서부 리디아(Lydia)의 트랄레스(Tralles) 교구의 주교였다고 한다. 그의 설교가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가끔은 그를 ‘복음사가’라고도 불렀고, 그로 인해서 사도 성 필리푸스와 때때로 혼동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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