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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묵상

2026년 6월 21일 (녹) 연중 제12주일

작성자이선정스테파노|작성시간26.06.21|조회수2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21일 주일

[(녹) 연중 제12주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2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연약한 우리에게 하느님 말씀을 맡겨 전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어, 우리가 결코 믿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분명하게 고백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 모두 주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으니, 주님을 찬양하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0,10-13
예레미야가 말하였다.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12-15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6-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을 26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차례나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28.31). 이 말씀은 공허한 위로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피부에 와닿는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 박해와 거절을 실감하는 제자들에게 건넨 말이기 때문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10,26).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라는 말씀은, 비밀을 폭로하라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뚫고 나오라는 초대입니다. 고통 속에서 배운 말, 상처를 통하여 들은 말은 혼자 듣고서 감내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은 상처받은 영혼들이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갈 용기를 줍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10,28). 몸은 상처 입고 쓰러질 수 있지만, 하느님 앞에 선 나의 참된 가치에는 감히 인간의 위력이나 억압이 닿지 못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위협보다 끝까지 우리를 지키시는 하느님의 약속을 더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립니다. 이처럼 값싸게 여겨지는 생명의 죽음조차 하느님의 시선 밖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어 두신다는 말씀은 세상에서 가장 사소하게 여겨지는 것들조차 하느님께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선언입니다. 버려지는 것, 잊히는 것, 이름 없이 사라지는 것들까지 모두 기억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향하여 거침없이 오셨습니다. 고통은 우리를 침묵하게 하지만, 신뢰는 우리 입을 열어 주고 우리를 행동하게 합니다. 두려움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의 소음에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기억하시는 하느님을 믿고 세상을 향하여 끝내 나아갈 것인지. 그 선택이 우리의 슬픔을 다른 빛으로 바꿉니다.(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최근에 기분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미사참례 인원이 늘어난 것입니다. 제가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 온 지 2년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주일 미사 참례 인원이 700명이 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900명이 넘는 때가 많았고, 지난 부활 대축일에는 1,155명이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하느님의 축복과 교우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성가대 모임에서도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원이 늘어서 연습실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새로운 성가를 배우고 싶은데 연습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교포 사목의 현실은 점점 고령화되고, 봉사자는 줄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본당은 오히려 봉사자가 늘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것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고, 교우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입니다.

감사한 일은 또 있었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성당 경계를 이루던 나무 몇 그루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봉사자들이 나와서 퇴비를 뿌리고, 죽은 나무를 뽑아내고, 다시 새 나무를 심었습니다. 예전에 ‘마징가 제트’라는 만화영화가 있었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나 나타나서 도와주던 정의의 로봇이었습니다. 우리 본당에도 그런 형제님들이 계십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묵묵히 나타나서 땀 흘리며 봉사하는 분들입니다. 지난 Mother’s Day를 앞두고 형제님들은 어머니들을 위해서 맛있는 고기를 준비했습니다. 형제님들이 모여서 고기를 썰었고, 정성껏 구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형제님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성모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은 참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합니다. 

30년 전인 1996년입니다. 봉성체를 가면 만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 갔다 오다가 넘어졌는데, 그것이 큰 병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점점 근육이 약해져서 걷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휠체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첫영성체를 하고 성체를 모시면서 늘 기뻐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던 친구는 어느 날 제게 짧은 시 한 편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세상은 별들이 많은 은하수 같은 것입니다./ 별들이 많기에 밤하늘이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 뒤에는 우주라는 어두운 하늘이 있습니다./ 별들이 밤하늘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처럼/ 이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는 겁니다.” 저는 그 시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맑고 따뜻했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를 보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 때문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성공한 사람 때문에만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 본당도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당 청소를 하는 분들,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분들, 주차 안내를 하는 분들, 성가대로 봉사하는 분들, 힘든 교우를 위로하는 분들, 말없이 헌금하고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신앙인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교회에는 수많은 시련과 박해가 있었습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도 있었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한국교회 역시 박해를 받았습니다. 많은 신앙인이 고향을 떠나 깊은 산속에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사제를 만나기 어려웠고, 미사를 드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이유는 화려한 건물 때문이 아닙니다. 훌륭한 제도 때문만도 아닙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아름다운 신앙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은 별처럼 빛나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사랑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모함과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억울함과 고통을 맡겼습니다. 시련은 예레미야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굳건한 믿음으로 이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두려운 일이 많습니다. 오해받을 때도 있고, 손해 보는 일도 있고, 외로운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를 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사랑 때문에 지는 십자가라면 기꺼이 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힘이 아닙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흘리는 땀방울입니다. 묵묵히 감당하는 희생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전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교회는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아름다운 신앙인이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우리들 또한 그런 아름다운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말없이 봉사하고, 기쁘게 나누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더욱 빛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중에>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7) 


기도 중에
들릴 듯 말 듯
그분께서 속삭이신다 


들리느냐
지체하지 말고
네 삶으로 외쳐라


귀를 막은 이들까지
들을 수 있도록


기도 중에
보일 듯 말 듯
그분께서 비추신다


보이느냐
두려워하지 말고
너를 살라 비추어라


어둠을 즐기는 이들까지
빛에 잠기도록


기도 중에
알 듯 모를 듯
그분께서 알려주신다


알겠느냐
주저함 없이 당당하게
네 목숨을 걸고 증언하여라


거짓을 일삼는 이들까지
진리에 무릎 꿇도록


기도 중에
느낄 듯 말 듯
그분께서 함께하신다


느끼느냐
아낌없이 남김없이
너를 바쳐 느끼게 하여라


홀로 삶에 맛들인 이들까지
더불어함께 살도록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어쩌면 두려움은 누구나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 그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다가오는 위험을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 안에 영원한 구원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우리의 존재 자체는 하느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존재의 사활과 존폐가 언제나 하느님께 달려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피조물들을 두려워하고 그것에 굴복한다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경외심을 갖고 하느님을 진정 두려워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바로 진리이시고, 하느님이 정의이시고, 하느님이 사랑이시며 하느님이 우리 존재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의 경우 목에 칼이 들어는 위협의 순간에도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하느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당당히 순교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시며 존재하게 하셨고, 그 하느님께서 나를 살게 하시고, 그 하느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행복으로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그 하느님 안에 영원한 행복의 길이자 참된 구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Aloysius Gonzaga)

신분 : 수사, 신학생

활동연도 : 1568-1591년

같은이름 : 공사가, 알로이시우스

성 알로이시우스 곤자가(또는 알로이시오)는 1568년 3월 9일 이탈리아 북부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의 후작 페란테(Ferrante Gonzaga)와 마르타 타나 산테나(Marta Tana Santena)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유하였으나, 다소 야만적이고 부도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앙심 깊은 어머니는 깊은 사랑으로 알로이시우스를 키우려고 노력하였다. 알로이시우스의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하였으나, 그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가정 교사였던 피에르프란체스코는 알로이시우스의 영혼과 정신을 길러 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577년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Felipe II, 1556-1598)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알로이시우스를 피렌체(Firenze)의 대공 프란치스코 데 메디치 궁의 시동(侍童)으로 보냈다. 2년 후인 1579년에 알로이시우스와 그의 동생 로돌포(Rodolfo)를 브레시아(Brescia) 지방 만토바(Mantova)로 옮겼다. 1581년 알로이시우스의 가족은 마드리드(Madrid)로 갔고, 알로이시우스는 펠리페 2세 궁정에서 왕자 돈 디에고(Don Diego)의 시동으로 지내면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왕자가 사망하자 1583년 8월 15일 알로이시우스는 예수회에 입회할 것을 결심하였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며, 일단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아들을 설득하였다. 이탈리아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온갖 방법으로 알로이시우스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1585년 11월 2일 로마(Roma)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한 성 알로이시우스는 밀라노(Milano)의 예수회 분원에서 몇 달을 지낸 후 만토바에서 수련을 받았다. 이듬해 2월 15일 아버지가 사망하여 잠시 집에 들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는 나폴리(Napoli)에 머물면서 형이상학을 공부하였고, 로마 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1587년 11월 25일 첫 서원을 한 뒤 곧바로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를 가르치던 교수들 중에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 바스케스(G. Vazquez, 1549-1604)가 있었으며, 훗날 성인이 된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o, 9월 17일)가 알로이시우스의 영성지도 신부였다.

성 알로이시우스가 신학을 공부한 지 4년째 되던 1590년 도시 전체에는 흑사병이 퍼졌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들을 돌보던 알로이시우스는 이듬해 3월 초 이 병에 전염되어 6월 21일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 이냐시오(Ignatius)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긍정적이고 관찰력이 탁월하였던 알로이시우스는 철학과 신학의 전 과목에 깊이 통달하였으며, 그를 가르쳤던 교수들에게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어려서부터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고, 어떠한 반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특별히 정결에 대한 은사를 받은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수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악습들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이기기 위한 수련을 끊임없이 하였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162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12월 3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 후 3년 후 알로이시우스 성인은 젊은이들의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녀 데메트리아 (Demetria)

활동년도 : +4세기경

신분 : 동정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데메뜨리아

5세기 때 로마(Roma)에 성녀 비비아나(Bibiana, 12월 2일)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고,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다프로사(Dafrosa, 1월 4일)에 대한 공경이 보편화되었지만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성녀 비비아나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신앙 때문에 고문을 받고 아콰팡당트로 추방당한 로마의 전 지사인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12월 22일)의 딸이었다. 성 플라비아누스가 죽은 뒤에 그의 아내 성녀 다프로사도 참수를 당했고, 그들의 딸인 성녀 비비아나와 동생 성녀 데메트리아 역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다시 체포되었다. 성녀 데메트리아는 이때 바로 죽었고, 성녀 비비아나는 후에 매를 맞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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