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원의 하나님
수학에서 점이 선을 따라 움직일 때 그 점의 위치를 하나의 죄표로 나타 낼 수 있다.
그러나 점이 평면위에서의 움직이는 위치를 나타 낸다면 2개의 좌표가 필요하다. 공간에서 점의 위치를 나타내려면 3개의 좌표가 필요하다. 그래서 선을 1차원 평면을 2차원 공간을 3차원의 세계라고 말한다. 선을 1차원으로 하고 선이 넓어진 것을 2차원인 평면이라고 하고 평면이 두꺼워지는 것을 3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들을 우리는 이러한 차원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 식물들은 고정된 자리에서 자라나고 꽃피우고 할 뿐 자기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자유가 없다. 바람이나 물 햇빛, 등의 영향을 받아 생장과 생식 능력을 행사 한다.
동물 중에서는 선을 따라 움직이는 1차원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2차원 높이 뛰거나 날아다니는 3차원의 동물을 생각 할 수 있다.
사람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3차원의 생활을 한다.
지구상의 생물들은 모두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데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을 선으로 생각해 보면 상위 차원인 4차원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3차원의 세계처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현재라는 하나의 좌표만이 계속적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4차원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존재이다. 만약에 4차원의 자유를 누리는 존재가 있다면 과거와 미래를 자유로 왕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를 말한다.
타이마신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만들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마치 비디오를 되돌리거나 빠르게 또는 천천히 돌릴 수 있는 것처럼 시간을 조절 하는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의 개념은 지구의 궤도를 벗어나고 태양궤를 번어날 때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과 공간 문제로 넓혀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주과학자들은 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차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우주에는 10차원의 세계까지 존재한다고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만을 생각하는 시간의 선을 4차원으로 생각을 한다면 시간의 넓이를 생각해 보는 5차원과 시간의 두께를 생각하는 6차원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리되면 시간은 곧 공간을 축소 내지 확대시키는 가능성과 연관이 되게 된다.
결국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여 시간의 넓이를 생각하는 5차원의 세계 그리고 시간의 두께를 생각하는 6차원의 세계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초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과학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천사나 사단도 분명히 우리 3차원의 인간보다는 차원이 높은 존재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적어도 7차원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다.
우리가 4차원인 미래로 가는 시간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만을 가진다고 해도 해도 중력을 지배하므로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사뿐하게 내려 앉을 수 있고 축지법을 사용하여 여행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과거에 그런 존재가 되었던 적은 없는지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에집트의 피라밋이나 스톤헨지 우리나라 고인돌 들의 무게는 지금의 최첨단 기중기나 지게차로도 공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중력을 해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고대인들이란 성경으로 보면 노아홍수 전이나 바벨탑 사건으로 각처로 흩어진 직후로 생각되어짐)
요즈음 유전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로는 우리 사람의 유전자의 90% 이상이 활용되지 않는 감금 상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뇌신경 세포의 5-10%만을 사용하는 등 모든 세포의 유전자가 그가 원래 가지고 있는 기능의 10% 정도만이 활성화 되어 있고 그 외는 모누 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감금된 유전자 중에는 시공을 초월하여 초능력을 행사하는 유전자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조절한다는 생각은 인체 탐험이라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우리 몸을 한없이 크게 또는 한없이 작게 만들 수 있다고 할 때 마음의 상태를 읽을 수도 있고 조종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하나님의 전지 전능과 무소 부재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전자의 복제기술이 발달되므로 처녀 마리아의 몸에 예수님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는가
또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과 예수님이 물위를 걷고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자를 살리신 이적들 역시 다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서 나는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두뇌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정신 세계를 읽으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단이나 천사도 하나님이 허락한다면 어느 정도 그 일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이 없지만 우리에게 일임한 것이 있다.
우리의 마음을 강제로 하지 않으시고 자발적인 선택을 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강제로 하시지 않고 우리가 선택하도록 기다리신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랑과 믿음은 자유의지라는 토양위에서 자라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 즉 대 우주의 법칙인 것이다.
하나님과 사단의 우주적인 대 쟁투의 격전장은 우리의 뇌 속의 정신세계라는 것과 하나님이나 사단은 우리의 선택을 통하여 일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대 쟁투의 실상을 알아야 하고 우리의 정신세계를 하나님께서 지배 하시도록 함으로 나의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이 승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계 3: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 시간도 내 몸과 마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을 해야하고 사단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불행하게 대부분의 사람들 기독교인 조차 사단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면서 하나님을 위한 선택이라고 착각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그것을 밝히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토록 알려주시고자 하시는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선택하기 위해 우리는 성경과 우주의 법칙 즉 하나님의 섭리를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