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샤 시대의 대쟁투
1.어떠한 배경에서 11장에 기록된 다니엘서의 마지막 예언이 계속되고 있는가?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단 10:14)
"내가 도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돕고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단 11:1).
[설명] 다니엘은 7장의 "한 때, 두 때, 반 때"에 관한 계시 이후부터 하나님 백성의 장래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7:28). 그 걱정은 8장의 "2300주야"에 관한 예언이 주어지면서 더욱 깊어졌다(8:27). 9장의 "70이레"에 관한 예언을 통해 일부의 문제를 깨달았으나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라는 예고는 그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9:26 하단). 이제 10장에서 이 "큰 전쟁에 관한" 계시와(10:1), "말일(末日)"에 "네 백성"곧 하나님의 "백성이 당할 일"이 상징이 아니라, 서술 형식을 통해 구체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10:14). 이 계시를 전달하고 있는 천사는 자신이 다니엘이 기도 금지령을 어긴 탓으로 사자굴에 던져지던 다니엘서 6장의 사건 때 다니엘이 살아나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가브리엘 천사임을 스스로 소개했다.
2.계시가 주어지던 당시인 페르샤의 초기부터 그리스가 일어날 때까지 어떤 역사가 계속될 것인가?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페르샤]에서 또 세 왕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격동시켜 헬라국[그리스]을 칠 것이며"(단 11:2).
[설명] 계시가 주어진 당시는 페르샤의 국부(國父) 고레스 시대였으므로, 그 후에 페르샤에서 일어날 "세 왕"과 "넷째 왕"은 역사적으로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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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왕 : |
캄비세스 2세 - 고레스의 아들로서 이집트 원정을 떠나기 전 유능한 동생 스메르디스를 몰래 죽여 후환을 없애려 했으나 자신이 오히려 귀국 길에 변사(變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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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왕 : |
가짜 스메르디스 -캄비세스가 이집트 원정에 나간 동안 자신을 카비세스의 동생인 스메르디스라고 사칭(詐稱)한 바르디야(Bardiya)가 왕위를 찬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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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왕 : |
다리우스 1세 -가짜 스메르디스(Smerdis)를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재위 2년에 중단된 예루살렘 성전 중건령을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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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왕 : |
크세르크세스 -다리우스 1세의 아들로 에스더의 남편인데 성경에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나온다. 4년간의 전쟁 준비를 끝내고 그리스를 완전히 파멸시키려는 기세로 대원정(大遠征)에 나섰으나 패전하였다. 그 후 몇 명의 왕이 더 일어나 그리스 원정을 계속했으나 오히려 파멸에 이르게 된다. |
▶ 그리스 시대
3.그리스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어떤 특별한 인물이 등장할 것으로 예언되었는가?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리라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이 외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니라"(단 11:3, 4).
[설명] 페르샤가 주도하던 그리스 정복의 끈질긴 시도는 마침내 헬라(그리스)의 "한 능력 있는 왕" 알렉산더 대왕이 일어나면서 졸지에 역전되고 말았다.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던 헬라 반도를 통일한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더는 3만 5천 명의 소수 정예부대를 이글로 숙적(宿敵) 페르샤 정복 길에 올랐다. 그는 헬라스폰트 해협을 건너 아시아로 진격하였으며 기원전 331년 페르샤를 멸망시키고 내친 발걸음으로 서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가 한창 "강성할 그 대"인 33세가 되던 해 갑자기 요절함으로써, 다니엘서 7장의 표범에게서 "머리 넷"이 돋아났듯이, 8장의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 현저한 뿔 넷"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듯이, 알렉산더의 대제국은 유복자 외에는 후계자가 없던 상황에서 전혀 "이 외의 사람들"인 그의 네 장군들에 의하여 기원전 301년 입수스 전쟁 이후 정확히 사분됨으로써 예언을 문자 그대로 성취시켰다.
▶ 그리스의 남북왕조 시대
4.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넷으로 나누어진 그리스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는가?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君)들 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단 11:5)
[설명]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네 장군들에 의해 사분 된 네 나라 가운데,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맡았던 캇산더와 소아시아를 맡았던 리시마쿠스의 나라는 얼마 못 되어 종말을 고하고, 125쪽에 제시된 지도에 나타난 대로 시리아 쪽을 맡았던 셀루쿠스 왕조(王朝)와 이집트를 맡았던 프톨레미 왕조(王朝)가 맞대결 하는 남북왕조(南北王朝)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인 팔레스틴에 위치한 유다의 입장에서 볼 때, 셀루쿠스 왕조의 시리아는 북방 왕이었으며 프콜레미 왕조의 이집트는 남방 왕이었다.
11장 5절의 최초의 남방 왕은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 가운데 하나로 이집트를 차지한 프톨레미 1세(Ptolemy I)이며, 그 "군(君)들 중의 하나"는, 한때 불리한 상황에 처하여 남방 왕 프톨레미의 수하(手下)에 있었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강해진 첫 번째의 북방 왕 셀루쿠스 1세(Seleucus I)로서 시리아를 비롯하여 이전의 알렉산더 대왕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표-7>은 그 이후의 근동 역사를 이끌어 간 남방 왕인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와 북방 왕인 시리아의 셀루쿠스 왕조를 대배(對比)한 것인데 다니엘서 11장에 언급된 왕들만 뽑은 것이다. 성경에 이들의 존재와 역할이 예언을 통해 이처럼 상세히 언급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표-7> 다니엘서 11장에 등장하는 그리스 남북왕조의 왕들(연대는 모두 BC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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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왕 시리아의 셀루쿠스 왕조 |
남방 왕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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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11:6) (11:7~9) (11:10) (11:10~14) (11:15) |
셀루쿠스 1세 (312~281년) 안티오쿠스 2세 (261~246년) 셀루쿠스 2세 (246~225년) 셀루쿠스 3세 (225~223년) 안티오쿠스 3세 (223~187년) 안티오쿠스 4세 (175~164년) |
(11:5) (11:6) (11:7~9) (11:10~13) (11:14~15) (11:17) |
프톨레미 1세 (305~282년) 프톨레미 2세 (285~246년) 프톨레미 3세 (246~221년) 프톨레미 4세 (221~203년) 프톨레미 5세 (203~181년) 클레오파트라 6세 (51~30년) |
5.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오아 시리아는 처음에 서로의 공존(共存)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나아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이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이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단 11:6).
[설명] 남북왕조의 대결은 다음 세대인 2세에 접어들면서 본격화되었다. 처음에는 남방 왕 프톨레미 2세가 자신의 딸 베레니케를 북방 왕 안티오쿠스 2세와 혼인시켜 결혼 동맹을 맺음으로 화친(和親)을 유지하여 했다. 그러나 프톨레미 2세가 죽자, 남편을 프톨레미 2세의 딸 베리니케에게 빼앗긴 아티오쿠스 2세의 전 왕후 라오디케는 남편 안디오쿠스 2세와 베레니케와 그들이 낳은 아들을 죽임으로써 보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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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남방 왕과 북방 왕의 싸움은 어떻게 더욱 치열해졌는가?
"그러나 이 공주의 본족에서 난 자 중에 하나가 그의 위를 이어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그 은과 금의 아름다운 기구를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북방 왕이 남방 왕의 나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단 11:7~9).
[설명] 남방 왕 이집트의 새로운 왕 프톨레미 3세는 라오디케에게 죽임을 당한 베레니케의 오라비로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북방 왕 시리아를 정복한 후 수집해 둔 우상 2,500점을 노획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시리아 왕 셀루쿠스 2세는 응전(應戰)했으나 패배하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귀국했다.
7.그 후에도 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왕 시리아는 어떻게 끝없는 보복 전쟁을 계속했는가?
[해답] 예언된 대로 남북왕조의 보복적인 대결이 계속되었는데, 이 사실을 예언한 성경절에 그대로 역사를 대입하여 예언의 정확성을 성경 본문에서 확인해보자.
"그 아들들[시리아 왕 셀루쿠스 2세의 두 아들인 셀루쿠스 3세와 안티오쿠스 3세]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의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남방 왕[프톨레미 4세]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안티오쿠스 3세]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가 그[프톨레미 4세]의 손에 붙인 바 되리라 그[프톨레미 4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단 11:10~12).
[설명] 위에 인용된 세 구절의 성경 예언은 북방 왕 시리아와 남방 왕 이집트가 7만 명의 보병과 5천 명의 기병, 코끼리까지 총동원하여 기원전 217년 라피아(Raphia)에서 벌였던 대접전(大接戰)의 사기(史記)를 읽는 것 같다. 성경의 예언은 하나님에 의하여 미리 기록된 역사인 것이다.
이 전쟁에서 양측은 엄청난 사상자와 포로를 낸 후에 남방 왕의 승리로 끝났다.
8.그동안 북방 왕 시리아와의 싸움에서 우세를 유지해 온 남방왕국 이집트가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가?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대군을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강포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이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넘어지리라"(단 11:13, 14).
[설명] 라피아 전투에서 대패한 북방 왕인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3세는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동방 공략에 나서 알렉산더 대왕의 이전 영토를 대부분 탈환하는 전과(戰果)를 올린 후 남방으로 기수(驥手)를 돌려 이집트와의 재대결을 감행했다(13절). 이 때 안티오쿠스 3세는 마케도니아 왕 필립 5세와 동맹을 맺어 세력을 보강한데다가 이집트 본토인들은 이족(異族)인 프톨레미 왕조의 통치에 저항하기 시작함으로써 남방왕국 이집트는 내우외환(內優外患)에 처했다(14절 상단).
기원전 198년 북방 왕 안티오쿠스 3세는 파내우스(Panaeus) 싸움에서 이집트에 승리함으로써 백년 이상 남방 왕 이집트의 지배를 받아 온 유다를 북방 왕 시리아의 속국(屬國)으로 만들었다. 이 사실이 "네 백성[유대인]의 파괴자들[the breakers of your people, 곧 남방 왕 이집트]이 옮겨지리라(shall be lifted up)"는 뜻이 된다. 또한 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왕 시리아에 이어 유다를 침입하여 속국으로 만든 로마를 적절히 가리킬 수도 있다. "네 백성 중에서도 강포한 자"(the robbers of your people)는 히브리어 문법으로 "네 백성들의 파괴자"라는 뜻도 가능하다.
9.남방 왕 이집트와 북방 왕 시리아의 마지막 숨가쁜 대결이 어떻게 예언되어 있는가?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土城)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취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단 11:15).
[설명] 안티오쿠스 3세에 이어 그의 아들 안티오쿠스 4세가 왕이 된 후에도 남방 왕 이집트에 대한 북방 왕 시리아의 침략은 계속되었다. 특별히 안티오쿠스 4세는 기원전 169년 이집트의 견고한 성읍 펠루시움을 함락시켜 삼각주 동부를 공략하는 길을 열었다. 겨울이 오자 그는 시리아로 퇴각했는데 그것이 북방 왕 시리아에 관한 마지막 언급이다. 놀랍게도 이 북방 왕은 "마기막 때"와 연관되어 11장 40절에 다시 나타난다. 15절 이후에는 왜 북방 왕 시리아가 다시 나타지 않는지 그 이유가 16절에서 밝혀진다.
▶ 그리스의 남북왕조와 그 사이에 낀 유다
10.세계 역사에서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그리스의 남북왕조의 싸움이 이렇듯 자세하게 예언된 까닭이 무엇인가?
[해답] 마지막 때에 관한 다니엘서의 마지막 계시가 주어지기 전, 다니엘이 그토록 괴로워하고 금식하며 알기를 원했던 주제는 시련으로 가득 찬 하나님 백성의 장래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말일(末日)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깨닫게 하"기 위해 가브리엘 천사가 보내져 지금 그 주제에 관한 계시가 12장까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그 계시는 다니엘 당시인 페르샤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그리스에 이르렀는데, 그리스가 북방의 시리아와 남방의 이집트로 양분(兩分)되어 생사 대결을 벌이는 그 사이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다가 끼어 있는 상황이다. 이미 페르샤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에 관하여 무서운 적의를 드러낸 사단은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서도, 적개심에 사무쳐 보복을 계속하는 북방의 셀루쿠스 왕조와 남방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의 싸움을 고조시켜 중간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을 짓밟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일을 극대화(極大化)한 것이다.
11.실제로 북방왕국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 때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 났는가?
[해답] 다니엘서 11장 15절에 예언상으로는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북방 왕인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는 20명의 시리아의 왕들 가운데 8번째 왕으로 재위 11년(175년~164년 BC) 동안 유다를 헬라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조석으로 드리는 상번제(常煩祭)를 폐하고, 성전 앞에 우상의 단을 쌓고 돼지를 제물로 바쳤으며, 안식일과 할례를 폐하고 하나님 대신 제우스신을 섬기도록 강요했다. 이를 반대한 유대인들을 저항하지 않는 안식일일 택하여 무수히 죽였다. 마침내 시리아에 대항하는 무장 봉기와 함께 마카비의 독립운동이 일어나 끝내 독립을 쟁취했으나 기원전 63년 다시 로마의 속국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탄생 시가지 그 상태라 계속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예언을 통해 수백 년 전에 기록된 까닭은 그것이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게 될 유다의 운명에 직접으로 관계돼 있기 때문이다. 안티오쿠스 4세의 이러한 악역(惡役) 때문에, 상당수의 학자들은 그를 다니엘서 8장의 작은 뿔로 해석하고, 11장 16~39절의 주역(主役)으로 해석하지만, 그것은 전혀 합당치 않은 해석이다. 왜냐하면 그는 북방 왕 시리아의 "마지막 때" 왕이 아니라(8:23) 20명의 왕들 중 8대 왕이며, 그는 "심히 커"진 왕국의 왕이 아니라 오히려 로마에 의해 위축당한 취약한 왕이었다. 또한 그가 예루살렘 성전을 유린한 기간도 엉뚱하게 적용한 2300일이 아니라*8:14) 실제로는 3년 10일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이와 관련된 예언을 예수 그리스도 당시 이후인 예루살렘 멸망에 직접 적용시키심으로(단 9:27) 그러한 헛된 주장의 여지를 없애셨다.
▶ 로마 시대
12.그리스의 남북왕조 시대를 끝낸 신생 강대국 로마의 등장이 어떻게 예언 되어 있는가?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임으로 행하리니 능히 그 앞에 설 사람이 없겠고 그가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 손에 멸망이 있으리라"(단 11:16).
[설명] 앞서 연구한 11장 15절에서 북방 왕 시리아는 남방 왕 이집트를 거의 승복(承服)시킬 것처럼 묘사되었다. 그러나 16절에서 감자기 사태가 달라진다. 무적(無敵)의 "와서 치는 자[침략자]"가 등장하여 세상을 뜻대로 다스린다는 직설적인 예언이다. 기원전 168년 아니토쿠스 4세가 아버지 아티오쿠스 3세의 유지(遊志)를 받들어 이집트로 진격해 가고 있을 대, 로마에서 특사가 와서 퇴각하라는 명령을 받자 그는 순응(順應)하는 길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기원전 168년 로마에 의해 알렉산더의 고국인 마케도니아가 망하고, 시리아가 이집트에서 퇴각하고, 이집트는 보호령이 됨으로써 그리스 시대는 끝나고 로마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로마는 기원전 64년 마침내 북방 왕 시리아를 정복한 후 로마의 일개 주(州)로 복속(服屬)시켰으며, 이듬해인 63년에는 폼페이(Pompey)에 의해 "영화로운 땅"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성전이 유린(蹂躪)되었으며, 12,000명의 유대인이 죽임을 당하고 독립을 상실한 채 로마의 속주(屬州)가 되고 말았다. 15절의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것이다.
13.시리아와 유다를 멸망시킨 로마의 발걸음이 어떻게 이집트까지 이르게 되는가?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 나라를 패망케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단 11:17).
[설명] 16절에서 예언된 대로 시리아를 거쳐 유대까지 이른 로마의 정복의 발걸음은 남하(南下)를 계속했다. 삼두정치(三頭政治)를 펼쳐온 크라수스가 전사하고, 폼페이와 줄리어스 시이저(Julius Caesar)가 반목하면서 폼페이가 이집트로 패퇴(敗退)하자 줄리어스는 그를 추격하여 거기서 죽였다. 이집트에 오게 된 줄리어스 시이저는 거기서 프톨레미 11세의 달로 남동생과 왕위 다툼을 하던 22세의 클레오파트라를 만나 황홀한 사랑에 빠져들었다. "여자의 딸"(the daughter of women)은 "빼어난 여자"를 뜻하는 말로 세계사의 절세미인 클레오파트라에게 적합한 표현이다.
그러나 왕위와 인간의 욕망을 함께 이루려 했던 클레오파트라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아들까지 낳은 터에 남편이 된 줄리어스 시이저를 따라 로마까지 갔으나 얼마 후 그가 암살당하자 그는 황급히 이집트로 도망쳐 왔으며, 결국에는 독사에 몰려 자살하게 되는 비극의 여인이 된다. "그에게 무익(無益)하리라"는 예언의 성취였다. 그것이 기원전 30년의 일로 클레오파트라의 죽음과 함께 남방 왕 이집트도 끝나게 된다.
14.줄리어스 시이저의 운명에 관한 어떤 놀라운 예언이 기록돼 있는가?
"그 후에 그가 얼굴을 섬들로 돌이켜 많이 취할 것이나 한 대장이 있어서 그의 보이는 수욕을 씻고 그 수욕을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그가 드디어 그 얼글을 돌이켜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단 11:18, 19).
[설명] 50세가 넘은 줄리어스 시어저는 이집트를 정복하는 대신 애첩이 된 클레오파트라에게 이집트의 왕위를 물려준 뒤에 심상치 않은 국제 정세를 의식하고 해안 길을 따라 귀국하는 도중에 보스포러스, 북아프리카, 스페인 등 적어도 세 곳에서 전쟁을 치르며 로마로 개선 입성하였다. 그러나 그의 거만함과 잔혹함은 자신의 머리로 되돌아왔다. "그의 수욕(羞辱)을 씻을 대장", 롱기누스(G. Cassius Longinus)가 지휘하는 60여명의 돌료 로마인들은, 황제가 되려는 그의 야심을 간파(看破)하고 기원전 44년 3월 15일 원로원에서 그를 무참하게 암살하였다. "브루터스(Brutus), 너까지도···" 그것이 절친한 친구의 손에 죽은 줄리어스 시이저의 마지막 말이었다. 예언대로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게 된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로마 황제들
15.풀리어스 시이저 다음에 누가 로마의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는가?
"그 위를 이을 자가 토색하는 자로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 (단 11:20).
[설명] 줄리어스 시이저의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된 사람은 그의 양자였던 옥타비안(Octavian)으로 후에는 어거스트 시이저(August Caesar)가 된다. "토색(討索)하는 자"는 "세금을 거두는 자"(a raiser of taxes)라는 뜻이다. 그는 인두세(人頭稅)를 거둘 목적으로 전국에 인구 조사에 해당하는 호적령(戶籍令)을 내렸는데, 이 일 때문에 나사렛에서 살던 요셉과 만삭이 된 마리아가 자신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호적 하러 갔다가 거기서 아기 예수를 출산함으로써(눅 2:1~7), 미가서에 예언된 구주의 출생지에 관한 예언(미 5:2)을 성취시키는 원인이 된 것이다. 그는 예언대로,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이룩한 후 서기 14년 8월 19일 병상(病床)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쳤다.
16.어거스트 시이저를 이어서 로마 황제가 될 사람은 누구이며 그가 할 일이 어떻게 예언되어 있는가?
"또 그 위를 이를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퀘휼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넘치는 물 같은 군대가 그에게 넘침을 입어 패할 것이요 동맹(同盟)한 왕도 그렇게 될 것이며" (단 11:21, 22).
[설명] 어거스트 시이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사람은 티베리우스 시이저(Tiberius Caesar)였다. 그는 어거스트 시이저의 친아들이 아니라 그와 재혼한 어머니 리비아(Livia)를 통하여 황실 가족이 되었다. 어거스트 시이저는 "당신의 아들이 로마제국의 자주 옷을 입기에는 너무 비열(卑劣)하다"는 말로 리비아의 청을 거절했으나, 예언된 대로, "평안한 때를 타서 궤휼로 나라를 얻"어 황제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티베리우스 시이저이다.
예언된 대로, 그는 독일을 비롯한 각처의 소요(騷擾)를 무력으로 잔인하게 진압하여 많은 피를 흘리게 했다. 그런데 "동맹한 왕"도 그에 의해 같은 일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은 무슨 뜻인가. "동맹한 왕"의 바른 번역은 "언약의 왕"(The prince of covenant)인데 꼭 같은 용어가 쓰인 곳이 같은 다니엘서 9장 24~27절로서" 언약을 굳게 정할"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가리켰다. 참으로 놀랍게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로마이 황제가 누구일지를 그 일이 있기 500여 년 전에 주어진 다니엘서 11장의 계시를 통해 예언한 것이다.
▶ 세상 역사와 인간 운명의 갈림길 - 십자가
17.다니엘서에 예언된 대로 성취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 역사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설명] 다니엘서 11장의 연구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예언된 많은 사건들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연이 아니라 범죄 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빗나간 지구 역사의 본궤도(本軌道) 재진입(再進入)을 위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역사의 필연임을 확신하게 된다. 11장의 연구 마지막에 제시된 「역사의 의미, 내용,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에서 그 대답을 찾아보자.
▶ 십자가 이후의 역사 전개
18.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의 선과 악의 싸움은 어떻게 전개 되는가?
[해답] 우리는 지금까지의 다니엘서 11장의 연구를 통하여 페르샤 시대로부터 그리스, 그리스 남북왕조 시대, 그리고 로마 시대에 접어들었다. 11장 22절에 이르러, 다니엘서 9장의 70주일에 관한 예언에 따라,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신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께서 "언약"을 피로써 비준(批准)하기 위해(마 26:28)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언약의 왕"의 직분(職分)을 약속대로 수행하셨음을 확인했다. 이제 그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우리는 다니엘서에 기록된 세상 역사에 관한 예언이 <표-9>와 같이 사중(四重)의 구조로 이루어졌음을 알 게 된다.
우리는 이제부터의 성서 예언이 너무나 상세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나무 하나 하나를 관찰하다가 숲을 보지 못하여 숲 속에서 길을 잃은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언 해석의 안전을 보증 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다니엘서의 예언이 지닌 독특한 사중 구조를 활용하는 길이다. 즉 세상의 역사와 하나님이 구원의 계획에 관한 2장의 단순한 예언이 7장에서 더 자세히 설명되고, 8장에서 더 구체적인 초점에 맞춰 전개되고, 11장, 12장에서 가장 서술적인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어, 서로 서로를 비교 연구함으로써 전체의 개요(槪要)에 어긋나지 않는 해석을 보증 받게 된다. <표-10>의 「다니엘서 예언의 사중 평행구조」를 참조하여 11장의 깊은 연구에 들어가 보자.
<표-9> 다니엘서 예언의 사중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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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
계시의 방편 |
계시의 관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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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7장 8장 11,12장 |
네 금속과 진흙 신상 네 짐승과 작은 뿔 수양, 수염소와 뿔 직설적인 서술 |
정치적인 역사 정치 · 종교적인 역사 심판과 구원에 연관된 역사 하나님의 백성의 마지막 대 역사 |
<표-10> 다니엘서 예언의 사중 평행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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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신학교 다니엘연구 에서 발췌된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