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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진리연구╂

3단계구원이야기.

작성자박용진|작성시간02.11.12|조회수73 목록 댓글 0
3단계구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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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제로 한번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믿으면 구원받았다면 왜 또 성령 받아야 하는 것-

성령 받아서 계속 무엇 하려는 것일까요"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꾸 받아야 하는

또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예수 믿고 구원받았는데 뭐 성령 받을려고 힘쓸 일이 있습니까



받는다는 목적에만 맞추지 말고 그 주시는 이유도 생각해 봅시다



대속을 통하여 우리는 당연한 죽음에서는 이제 해방되었습니다

율법을 어긴 것이 애초의 죄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제 모두에게 큰 복음이겠지요 그리고 이제 자녀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요구가 있습니다



출 애굽할때 홍해를 건너는 것은 오직 은혜로 구원(칭의)을 받은 것의 상징

이지만 이때는 율법 따져서 믿는 자를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원하는 자는 율법준수관계 없이 따라 나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음 예수믿을 때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광야 40년을 돌고 요단강 건너갈 때는 은혜로 율법을 앞세우며

건너갔다는 것은 믿는 자는 이제 율법 준수하는 생활없이는 하늘 가나안에

갈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표상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품성의 분량까지 끌어올려 천국생활에 합당한 자로

만드는 작업인 것입니다 칭의 때에는 이런 요구가 필요없이 누구나

믿는 자마다 자녀로 삼았습니다

물론 성화에서도 인간이 의롭게 되기 위해 자기 행위에서 나온 노력을

가미하는 것은 아니고요



또 즉각적인 성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참된 성화란 생명이 유지되는 한 계속되는 매일 매일의 과업이며 매일의 유

혹과 더불어 싸우며 자신의 죄된 성향을 극복하고 또 마음과 생활의 성결을



구하는 자들은 성결하다고 하는 자만스러운 주장을 하지 않고 더욱 율법에서

요구하는 높은 표준과 자신의 죄를 볼 때 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더욱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부정, 자기희생, 자선, 친절, 사랑, 인내, 불굴의 정신, 그리고 그리스도인적

신뢰는 하나님과 참으로 연결된 자들에게 매일 열리는 열매이며 그들의 행위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을지도 모르나 그들 자신은 날마다 악과 싸워서 시험

과 불의에서 귀한 승리를 얻고 있을 겁니다

(※제가 이런 상태에 다 도달했다고 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라고 어느 개인을

기준을 잡을 수도 없겠지요



썩은 인간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사랑이라고 인정되는 것이 다 사랑의 표준이

아니지요



육신적 인간은 이무리 사랑해도 하나님 보실때는 이기적이요 자기 義 일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외에 인간 세상에는 사랑의 기준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공자 말이나 부처의 말에도 완전한 진리적 사랑의 기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십계명에 나타난 사랑의 원칙만이 완전한 사랑의 기준점이 되는 것

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그의 계명을 하나님의 품성과 똑같은 사랑의 위치에

두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그의 품성의 사본임을 알아야 합니다



1)하나님이 사랑이듯이 그의 계명도 사랑입니다

(요일4:8)----(마22:35),(눅10:25-)

2)하나님이 진리이듯이 , 그의 계명도 진리입니다

(시31:5)--(시119:151)

계명이 진리라고 하는데도 안식일계명(4째)은 폐할 수 있을까요

진리는 폐할 수가 없는 것이 진리입니다

부분만 폐하거나 또는 대체하는 것이 진리의 율법이 될 수 없겠지요

예수님도 그런 일을 하려고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가 계명과 일치하는 삶을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이유는

진리로만 우리가 성화 되기 때문입니다(요17:17, 19)



3)하나님이 온전하듯이 , 그의 계명도 온전합니다

(마5:48)--(시19:7)

그래서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일치하는 삶이 완전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의 증거입니다



4)하나님이 영원하듯이, 그의 계명도 영원합니다

(딤전1:17)--(시111:7, 8)

그래서 안식일 계명도 폐할 수 없는 것이고 새 하늘 새 땅에서도

지킨다는 말이 맞는 것입니다(사66:23)(히4;9)

하늘정부의 원칙인데 십계명의 원칙이 폐한다면 하나님 보좌를

폐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5)하나님이 의롭듯이 , 계명도 의롭습니다

(시145:17)--(시119:172)

바울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롬7;12)



계명이 의로우므로 , 성령받은 우리 의인이 , 의로운 계명을 지키게 되는 것

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일치될 수밖에 없는 은혜이지요

그런데 왜 안식일 계명은 의로운 취급을 못 받아야 할까요?

3위 하나님은 다 뜻대로 통일하십니다



다른 말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은 전부 아버지의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새 계명도 아버지의 계명과 같은 계명입니다



교회에서 정말회개하고 성령은혜 많이 받은 자들은 사랑으로

남에게 봉사하는 것을 눈으로도 볼수 있을 겁니다



그런 자의 생애를 잘 관찰 해 보세요

도덕적 율법과 어기는 삶이 잘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도 빠지지 않고,,,, 부모공경하고 , 거짓말하지 않고,,,,,



그래서 어떤 분은 십계명 관계없이 사랑하면 되지 ! 하지만

참된 사랑은 그냥 마음대로 하게 하는 사랑이 아니라 , 아버지의 계명과

같은 사랑을 하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계명의 원칙을 벗어난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 사랑 계명따로, 아버지 계명 사랑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믿음있는 자가 십계명의 열가지만 가지고 따지고 지키려

한다는 뜻이 아니지요

십계명은 모든 사랑계명의 표준 적인 것으로 10가지로만 나타낸 상태입니다

율법의 내면의 요구는 깊고 넓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꾸어 말하면

믿음믿음 하면서 ---계명에 일치하지 않는 삶의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라는 말이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지워진 상태이므로

6000년 간의 대속의 목적은 다시 하나님의 형상 즉, 그 품성(인격)대로

만드는 작업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표준을 열 가지로 만들어주신 것이 율법(도덕률)이며



인간의 마음에 다시 법(계명)을 심어 놓는 것이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법이 마음에 있다면 그 법의 원칙이 사랑이므로 절로 사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을 인간이 스스로 법을 지켜서 획득할 수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 것으로 만들 때 그 속에 있는 아버지의

뜻(법)이 우리에게 새겨지는 것이지요(계14:1)

그래서 지켜지게 되는 결론입니다



그 은혜를 받는 방법은 우리가 더욱 죄인 되는 길, 즉,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더욱 죄인인 것을 깨닫는 길이 더욱 의인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회개한 죄인을 구원하려 온 것이며 스스로

의인인 체하는 자를 구원하려온 것이 아니지요



즉 참된 의인들은 자신이 의인이라는 말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구원을 받고 있는 자는 나는 구원받았다!는 것을 떠벌이는 자가

될 수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령께서 율법의 거울을 우리에게 비춰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이 거울의 묘미를 맛 본 자입니다



(롬7: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로마서의 내용이 그 "거울"(율법)을 자랑하고 갈등하는 책이지요

미안하지만 어떤 분들은 로마서의 믿음이 율법을 반대하는 믿음의 책으로

알고 있더군요

율법"의 반대가 믿음"이 아니라 ,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것을 배제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율법을 두 가지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지요



현시대가 온전한 십계명중 일부를 현저하게 파괴하고 변경했으므로

특히 바르게 세우는 것이 마지막 남은 개혁자들의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사58: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

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니리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우리의 싸움은 인간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부터 전쟁이 있었습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계12;7) 하늘에서 전쟁이 있으니.......

이 땅에서도 계속 되고 있는 것입니다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사망에서 건진 대속은 끝났지만

구속의 경륜의 끝은 아직 미완성이요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단이 아직 이 지구에 살아있는 이상, 인간들의 구원문제는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단이 살아있는 이상 , 미혹과 유혹은 계속되고 예수님의 중보사업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속의 끝은 우리의 품성에서 죄가 끝나야 합니다

죄의 용서차원이 아니고, 죄의 도말 차원이 끝나야 끝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만약 끝났다면 지금이라도 예수님이 재림 하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자유를 지금누리고 구원받았다! 고 몇백번 주장한다 하더라도

영광의 천국에 가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지금 누리는 구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론적 칭의 구원이 구원아니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섭리의 구원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더욱 광분하는 이상 우리는 아무도 구원받았다고 하며 안주하는

자세는 금물이지요 그렇다고 매일 슬퍼하는 생활이 될 필요는 없고요

율법에 메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

이제 이야기를 바꿔

(3단계구원이야기)를 예로 들겠습니다



예를 들어

1) 물에 빠진 우리를 지나가던 고기잡이 배가 다가와서 화물이 많아

더 태우지는 못하고 대신 로프를 던져 주어 우리가 그 로프를 잡고 (믿음)

있는 한 잡고 있는한 "구원"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의 초기 칭의 상태를 말합니다)

----<과거>--본질적 구원(칭의 구원이라고 하지요)---(엡2:5)(롬8:24)

(일부 개신교에서는 이부분만 매우 강조하는 교리일 것입니다

물론 제일 중요합니다)



2)그러나 그 손(믿음)을 놓으면 물에 빠져 죽습니다

꼭 붙잡고 배에 매달려 해안으로 끌려오고 있을 때는 , 구원받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문제가 없는 한 구원을 당연히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물러가거나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이때는 자기가 손을

놓는 행위이므로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현재>---경험적 구원(성화)---(고전15:2)(빌1:6)(빌2:12)



<이 과정에서는 지식도 매우 필요할 것입니다

마치 성소의 진설병에서 떡 (말씀)을 먹듯이 말입니다

-사단이 오류지식도 여러가지로 깔아놓았으니 이 과정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노선에 고장이 잘 나거나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 님들이 이 과정에서 잘 넘어집니다 >



그래서

해안에 도착하여 발을 완전히 올려 놓았을 때에야 진짜 구원이지요

---<미래>---궁극적 구원(영화, 완전)--(롬13:11)(행15:11)(눅21:28)(마24:13)



여기까지 와야 완전한 구원아닙니까

어떤 분들은 1단계에서 바다 속에 끌려오는 중인데도

마치 완전한 구원을 강조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는 분이 있더군요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즉 칭의 구원이 중요하고 물론 전체적인 주제이지만,

구원은 실제요, 현실이기 때문에 재림때까지 믿음을 보존하고

성장하며 지키는 자만이 참된 구원을 얻는 것이 됩니다





1) 십계명의 4째는 중간에 변경된 기독교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것도 다 예언되었지요(단7;25)

2)율법이 완전히 회복되고 모든 인류에게 율법이 바르게 증거될 때라야

재림하실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심판도 집행 가능합니다

이일을 남은 무리들이 해야 합니다



3)복음을 그치르게 하는 왠 날짜 타령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언된 주제제목

이기 때문에 믿는 자들에게 특별히 제시됩니다

그땐 생명을 좌우하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예수를 믿으라! 고도 많이 외쳤겠지만 ,,,비가 오니 방주에 타라!

고 더 외쳤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구약 때에 예수를 전했는가?:라고 의아한 발언을 하시는데

아브라함 때에도 지금과 똑같은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갈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

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

으리라 하였으니



(요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

느니라



또 예언적 안식일을 외치는데 ---어떤 분은 예언을 모르니

안식일 이 칭의 구원의 조건론으로 생각하는 줄 알고 구원의 자격쪽으로

놓고 안식일을 질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4)지금은 누구든지 믿고 죽으면 받은 빛에 따라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마지막 재림직전에 사는 우리 성도들은

온전한 율법회복과 온전한 품성을 가져야 하므로 4째계명을

지키지 않는 생애로는

절대로 온전한 은혜와 품성형성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충만한 생애가 되지 못합니다



지식으로 구원을 가름질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은 믿음과 분명히 비례합니다

안식일은 성화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겔20:12)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표징입니다



5) 특별히 안식일계명은 하나님께 충성의 표이며, 우리가 성화되는

계명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쩜 사단이 제일 싫어하는 계명일 것입니다

시대마다 특히 안식일 어긴 백성이 멸망한 역사를 보세요



이것을 깊히 연구하셔야 합니다ㅣ



예를들어 교단 전체적 생애를 살펴보면 또 어느 정도 알지요



진리가 적은 교단일수록 대체적으로 문제의 발생빈도가 높습니다

물론 겉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 교회도 있겠지만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말씀으로부터 오는 의"라고 도 할수 있습니다



개신교 단이 수백 개로 갈라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개인, 또는 진리와 율법을 보관하고 전수하는 교단은

거룩과 경건 성을 최대한 풍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자라고 같이 가다가 마지막 위기 때에

그 품성이 드러납니다 지금은 서로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입니다





끝으로

복음은 율법과 조화를 이루도록 역사하며 생애에서 의로운 율법이

나타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바로 회복이요, 그리스도의 품성과 일치하는 결과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은 =마음에 율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좋은 복음 같은 이론도 하나님의 도덕법을 조금이라도

경시하려는 믿음이나 생각이나 논리는 전부 잘못된 것들입니다

대쟁투는 율법을 두고 싸우는 주제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믿음이 중요한것이지요



(잠28: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사51: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이상.

두서 없는 저의 글을 읽어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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