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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에 대하여

삼위일체의 발전

작성자박용진|작성시간10.06.20|조회수256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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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의 발전

역사적 발전: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

하나님의 정체성과 관련된 복잡하고 중요한 신학적 문제에는 조심스러운 표현과 사유가 요구된다. 따라서 교회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분명히 표현하는 일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해 성경이 지시하는 바른 길을 찾는 동안 때로는 잘못된 길을 걷기도 했고 과거의 전철을 되 밟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교리들은 처음부터 수용되었다.

(1)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이방 종교에서처럼 둘이나 셋이나 넷이 아니다.
(2)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세 구별된 모습으로(삼 위로) 계시되신다.
(3) 성부와 성자는 서로 다르며, 따라서 둘을 동일하게 취급함으로써 둘(두 위격)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런 과업에 적합한 개념들을 발견함과 동시에 그런 교리들을 고수하고 그것들을 분명하면서도 명료하게 표현할 방법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다.

이 문제는 2세기 교회가 점차 자신의 믿음을 헬라적 사고방식에 호소할 수 있는 표현 방식으로 해석할 필요를 느끼면서 보다 더 어려워졌다. 이것은 신앙을 견고한 성경적 표현 형식 이외에 철학적 개념으로 표현할 필요를 낳았다. 성경이 구속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에 대해 말하는 반면, 헬라 철학의 주된 관심은 ‘형이상학적 존재’(metaphysical being)에 대한 질문이었다. 사유의 방식과 표현에 있어서 이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로 인해, 교회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일에 있어서 보다 명확해져야 하는 도전을 받게 되었다.

1 사도적 교부들(The Apostolic Father)과 변증가들(The Apologists)

(1) 사도적 교부들

사도적 교부들로 불리는 1, 2세기의 기독교 저술가들은 후기 성경 저자들(복음서 이후의 성경들)의 가르침을 대부분 그대로 반복했다.

1) 제1 클레멘트(1 Clement: Bishop of Rome, c 96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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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성부(19:2),성자(59:4), 그리고 성령(45:2)이시다. 성자와 성령의 위치에 대해서는 설명되어있지 않으나, 두 분의 신성은 창조 사역에서 두 분의 성부와의 연합 사역 속에 암시되어 있다.(58:2)

2)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 c3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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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성부(Magnesians8:2), 성자(Ephesians inscription), 그리고 성령(Eph.18:2)이시다. 이그나티우스는 삼중적 형식으로(Triadic form) 세 분이 함께 일하심을 표현함(Magn.6:1;Ephesiansinscription9:1,“성부 하나님이라는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벽돌과 같은 여러분은 십자가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중기와 성령의 밧줄을 통해 높은 곳으로 들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않았다.

3) 디다케(The Didache, 1세기-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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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성부(1:2),성자(주, 8:2;종, 9:5;아들, 7:1:1),그리고 성령(7:1)이시며, 셋은 세례 형식에서 함께 일하시는 것으로 서술함.

4) 폴리캅(martyrdom of Polycarp, c155?): 삼위일체 기도(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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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2 클레멘트(2 Clement, 12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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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 하나님(1:1),성자 하나님(1:1)에 대해 서술함. 그러나 성령의 위치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음(9:5,14:4)

6) 평가: 삼위 하나님에 대한 개별적이며, 삼중적 표현이 있다. 그러나 삼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분명한 설명이 아직 나타나지않음.

(2) 변증가들

2세기 후반 헬라어를 사용하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했던 사람들을 가리켜 ‘변증가들’이라 한다. 이들은 기독교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기독교인과 철학자들 사이에 접촉점을 만듦으로써 기독교의 영향력을 확장하고자 노력했다. 이들의 목적은 기독교 신앙이 지혜의 한 형태이기는 하나 헬라의 철학적 사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었다.


1)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c100-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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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성부이시다. (1 Apology 8) 하나님은 성자이시며, 성자는 우주적 로고스이시며(1 Apol.63:15), 모든 창조물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신(begotten) 분이시다. (Dialogue61:1) 그리고 이 로고스를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1Apol.64) 이 로고스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 하셨다.(1 Apol. 33) 성자는 아버지의 의지에 의해 나셨으나,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지는 않으신다.(Dialogue61:1, 128:13). 또한 성령 하나님이 계시며(Dial 61),그 분은 예언자의 영이시다.(1Apol 33) 때로 성자와 성령이 동일한 분처럼 묘사되나(1 Apol 33), 그들은 구별되며(1Apol 13) 함께 사역하신다.(1Apol 61).

; 하나님을 성경적 용어와 철학적 용어 모두를 사용해 묘사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큰 간격에 다리가 놓이게 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로고스’(logos, 사고, 말씀, 이성)라는 헬라적 개념을 택했다. 저스틴은 헬라적 사고와 조화를 꾀하면서 그리스도가 오기 전, 인간은 ‘로고스의 씨앗(logosspermakitos)’을 갖고 있었고 그로 인해 부분적으로나마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체를 입어 인간이 되셨고 그 안에서 완전하게 구체화되셨다. 로고스로서의 예수님은 단지 명칭에서 뿐만 아니라 서열에서도 아버지와 구별 된다. 로고스의 기능은 아버지의 대리자가 되어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며, 인간에게 진리를 계시하는 것이다.

; 저스틴의 설명에 대한 중요한 질문은 로고스와 성령이 성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점이다. 로고스는 영원히 구별되는 ‘한 위’(person)인가, 아니면 창조 사역 직전에 하나님의 위를 얻게 된 하나님 안에 있는 어떤 능력인가? 이런 질문은 반복해서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저스틴의 답변은 분명하지 않다.

; 성령은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분이고, 아들과 더불어 예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나 저스틴은 또한 성자를 성부 다음에, 그리고 성령을 성자 다음에 놓아 세 위 사이에 순위를 매긴다. 이것은 세 위 중 두 위의 종속성을 보여준다.

2) 저스틴의 제자 타티안(Tatian, c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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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 하나님.(Oration to the Greeks 4) 말씀(The Logos)은 성부로부터 왔으나, 분리는 없으며(Orat 5), 세상을 창조하셨다.(Orat 5) 성령은 영혼들 안에 계시며 예언의 근원이시다.(Orat 13)

3) 안디옥의 데오빌루스(Theophilus of Anti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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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부 하나님은 보이지않는 창조의 하나님(To Autolycus1:4). 하나님의 로고스는 창조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 안에 ‘내재된’(immanent) 분이다.(Auto2:22, 2:10).성령은 하나님의 지혜이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다.(Auto2:10)

; ‘내재된’(immanent) 로고스와 ‘말씀된’(uttered) 로고스를 구분했다.

4) 평가: 변증가들은 하나님에 대해 말하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차이를 인정했다. 기독교 신학과 헬라 철학의 관계를 진지하게 다루었지만, 기술적인 용어가 부족했던 이들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였고, 대신 로고스와 성부의 관계에 집중했다.

(3) 이레니우스(Irenaeus of Lyons, c13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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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말 리용의 감독이었던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에 대한 사유와 관련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성부 하나님은 한 분 초월적인 창조주이시다.(Demonstration of the Apostolic Preaching 6) 하나님과 함께 그의 말씀(Logos)이 존재한다.(Dem. 47) 성자가 성부와 함께 영원히 함께 계심을 강조하였다.(Against Heresies2:30:9) 성부 하나님과 함께 또한 그의 영 혹은 지혜가 계심을 말함.(AH4:30:3-4) 말씀과 성령은 창조사역에서 함께 일하심.(AH4:20:1)성자의 구별된 사역은 계시(revelation)이며, 반면 성령은 구약의 성도들을 인도하시며 오순절에 인간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Dem. 6)

; 로고스를 창조 사역 이전부터 성자와 동일한 존대로 간주하였다. 또한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으로 홀로 계실 때의 하나님에 대해 말한 후에, 인간에게 계시되셨을 때의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구원의 경륜(oikonomia,economy)가운데서 이레니우스는 성자와 성령을 하나님의 사역의 ‘두 손’이라 표현했다.

; 단점으로 성자와 성령이 성부께 종속된 존재로 보았으며, 성부보다 열등한 분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는 구원의 경륜 속에서의 세 위의 사역과 그 사역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설명함으로 ‘경륜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arianism)을 설명하였다.



(4) 터툴리안(Tertullian, c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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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기에 접어들면서 서방 교회는 변증가들의 로고스 교리와 이레니우스의 경륜적 삼위일체론에 대한 반발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런 설명들은 모두 하나님의 ‘단일성’, 곧 ‘한 분 되심’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부 신학자들은 성경, 특히 구약의 가르침에 충실하려면 하나님을 자신의 단일성 안에 아무런 구별도 없는 ‘거룩한 단일자’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단일신론 혹은 군주신론’(Monarchianism)으로 알려지기 시작함. 반면에 동방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삼위의 실재성을 강조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동방 교회는 하나님의 단일성을 훼손할 의도가 없었지만, 성부는 물론 성자와 성령의 온전한 신성에 대해서도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방 교회의 신학자였던 터툴리안은 교회가 하나님을 분명히 표현하려는 노력에 일조를 했다. ‘라틴 신학의 아버지’로서 그는 하나님의 ‘세 분 되심’(threeness)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한 분 되심 및 단일성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터툴리안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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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한 본질(one substance, substantia)과 세 위격(three persons, persona)으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Trinity, trinitatis)이시다.(Against Praxeas 2)
아들과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나오신다(extrapolation).(AP 7)
성자는 창조의 목적을 위해 아버지로부터 나오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성(reason)이 영원 전부터 아들과 함께 계셨으며(AP5), 나으심을 받은 자로서 성자는 성부의 첫번째이며 유일한 아들(begotten Son)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다.(AP7)

; 터툴리안에게 있어서 삼위일체의 각 위는 ‘수적으로’ 서로 별개이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세 위는 각자 다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삼위는 ‘본질적으로’ 연합되어 있다. 삼위는 근원적 실재, 동일한 활동 능력, 동일한 본질(substance)을 공유한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 안에는 삼위일체뿐 아니라 단일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삼위는 서로 구별될 수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서로 독립되거나 분리될 수 없다.’

; 터툴리안의 기여: 터툴리안은 본질의 단일성과 위의 구별됨에 대해 강조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문제점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한 분 하나님이 아닌 삼위의 사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위’ 라는 용어를 관계적 용어로 사용했다: ‘아들이 없는 아버지가 있을 수 없고, 아버지가 없는 아들도 있을 수 없다. 그 둘은 구별되지만 분리될 수 없다. 성령도 같다.

(5) 오리겐(Origen, c18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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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툴리안이 세워놓은 틀은 오늘날까지 서방 교회가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동방 교회에서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는 오리겐이었다. 오리겐은 당시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클레멘트와 함께 당시 철학 사조인 중기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삼위일체를 그 순서에 있어서 구별된 존재로 보았다.

하나님은 세 위(threehypostases이는 persona와 같은 의미이다.)로 된 삼위일체이시다. 성부는 온전한 지적 개체(Monad)이며, 성자는 하나님이 영원히 나으신 지혜이다.(On First Principles, 1:2:2,1:2:6)비록 성자는 하나님과 ‘하나의 본질’(homoousios)이시지만, 그의 신성은 성부의 신성에 종속적(secondary)이다.(commentary on John2:6) 삼 위는 각기 구별된 활동 영역이 있다. (First Principles1:3:5)

; 오리겐의 기여: 정확한 설명은 없으나 오리겐은 삼위가 ‘동일본질’을 소유했음을 설명함. 그러나 오리겐은 성부의 신성에서 시작하여 거기에서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끌어냄으로써 여전히 성자와 성령을 성부에 종속시키는 경향을 보임.

: 오리겐 이후 동방 교회의 삼위일체론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됨. 하나는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본질적인 사귐에 대해 강조한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성자의 종속을 강조하였다.

(5) 요약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자신의 대답을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하고 헬라 철학의 영향 하에 있던 당시의 사람들과의 의사 소통이 가능한 사유의 형식을 빌려 체계화 라는 것이 필요했다. 교회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또한 서방 교회의 기독교 신자들은 라틴어를 사용하고 반면에 서방 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헬라어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교회는 의사소통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위’(person)와 ‘본질’(substance)이라는 용어들이 특별히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문제가 있었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교회마다 서로 다른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방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과 유일한 통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서방 교회 신학자들에게 하나님의 단일성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그들은 각 위의 차이를 인정했지만,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한 분이심을 견지하고자 했다. 반면 동방 교회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다원적 본질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구별된 위들에 관심을 두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단일성을 인정했지만,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 위들의 지위도 보존하고자 했다. 300년경에 이르자 보다 바른 가르침이 필요함이 분명해지게 된다. 따라서 신학자들의 관심은 성경에 근거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본질과 함께 삼위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대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할 것인가를 사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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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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