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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가톨릭기초] '세례명'에 대하여 [3편]

작성자김 홍대 토마스 아퀴나스|작성시간26.06.22|조회수67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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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
안녕하세요
김 홍대 토마스 아퀴나스 입니다

지난 시간에 '세례명"이 가톨릭 교회에서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금 도움이 되셨나요?

저도 세례명이 8~9세기 경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보다 훨씬 늦은 14세기 '비엔 공의회'에
와서야 정식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을 이번 자료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네요

'공의회'에 대해서 잘 알고계시는 분들께서도 '비엔 공의회'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공의회가 아니기에 조금은 생소한
'공의회' 입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비엔 공의회'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설명을 드리는 이유는 솔직히 이름있는 '공의회'에
대해서도 교우분들이 알기가 쉽지 않은데 이름도 생소한
'비엔 공의회'에 대하여 그냥 지나친다면
이글을 읽고 계시는 교우분들 중에서 앞으로 ...아니 ,
아마도 어쩌면 평생 접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왕 '비엔 공의회'가 언급 되었으니 이번 기회에 한번
제대로 알아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1: 공의회에 대한 설명 ]
 
제 15차 비엔공의회 ( Council of Vienne 1311~1312년)는
제195대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소집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재위기간: 1285,10.05~1314.11.29)가
제기한 제 193대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 대한 사후 재판과
십자군 원정 때 설립된 강력한 군사·종교 단체인
성전기사 수도회(Knights Templars:일명 템플기사단 )의
폐지를 교황 클레멘스 5세에게 강력하게 요구하여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클레멘스 5세 교황은 공의회 장소를 프랑스 리옹 근처에 있는
비엔으로 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비엔'이라는 장소가 거리상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고, 1349년까지 프랑스에 점령당하지 않은
실제적인 독립국가였기 때문였습니다

필리프 4세 국왕은 교황에게 강력하게 요구한 사항들에
대하여 이를 서방교회에 알리고 이문제를 해결하고자
230명의 서방교회의 주교들에게 직접 초청장을
보내었습니다.
그가 초청한 주교들 230명 가운데에 참석한 주교들은 겨우
절반이 조금 넘는 12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초청장을 보내지 않은 주교들도 '공의회'에 참석하였기에
사실상 필리프 4세의 초청장을 받고 참석한 주교들은
이보다 훨씬 적은 주교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저조한 참석률로 인하여
'성전기사 수도회'(그 유명한 템플기사단) 폐지에 대한
재판은 열리지 못하였지만 클레멘스 5세 교황은
'비엔 공의회'에서 교황의 권한으로 재판에 관계없이
'성전기사단'을 공식적으로 해산한다는 내용의
《높으신 목소리》와 성전기사단의 자산을 구호기사단에게
넘긴다는 내용의 《아드 프로비담》 등 일련의 칙서들을
연달아 반포하였고 ,이를 근거로 하여 해산을 명령하여
강제로 '성전기사 수도회'를 폐지시키게 됩니다

당시 필리프 4세 국왕은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의
심한 갈등으로 인하여 1303년 9월 7일 필리프 4세가 보낸
프랑스 군인들이 이탈리아 아나니에 머물고 있던
교황을 체포, 감금하고 폭언을 일삼으며 퇴위를
강요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작전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이 새로운 칙서를 통하여 필리프 4세를
파문하려 했기 때문이였습니다 .
'파문'이라는 영적 무기를 남발하는 교황에 대해서,
필리프 4세 국왕은 세속군주로서 무력을 동원한
실력 행사로 맞대응을 한 것입니다

기습작전의 지휘는 프랑스왕국의 법률가이자 정치가 이였던
귀족 출신의 '기욤 드 노가레'가 하였으며 로마 토착 귀족
'시아라 콜로나'가 그의 사병들을 동원하여 함께 사건에
가담하게 되었고 '시아라 콜로나'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생포한 다음 교황에게 심한 욕설과 구타를 일삼았습니다 .
작전이 성공한 이후에 '기욤 드 노가레' 는 교황을 프랑스로
압송하여 종교재판에 회부하길 원했고
'시아라 콜로나'는 즉결 처형을 주장하며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동안에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은
3일간 굶주린 채 독방에 방치되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교황이 투옥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한
아나니 시민들이 프랑스의 침입자들을 모두 몰아내고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을 구해냈으나 이 사건의 충격으로 인해
교황은 한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사경을 헤매다
결국 한달만에 사망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가톨릭 역사상 그 유명한
'아비뇽의 유수사건' 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참고 2]

'비엔공의회'에서 결정된 성전기사 수도회(Knights Templars)
해체는 당시 14세기 초 유럽에서 벌어진 정치적, 재정적
갈등의 결과였습니다
프랑스 필리프 4세 국왕은 템플 기사단에게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고 그들의 막강한 재력과 왕국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을
기해 프랑스 전역의 템플 기사단원들을 체포하는
대규모 작전을 실행하게 됩니다 .
기사단원들은 이단과 신성모독등의 허위 혐의로
고발당했으며,고문을 통해 자백을 강요받았습니다 .
이후 필리프 4세 국왕은 클레멘스 5세 교황에게 강한 압력
넣어 1312년 비엔 공의회에서 클레멘스 5세 교황의 칙령을
통해 템플 기사단을 공식적으로 해산시켰고.
성전기사 수도회의 최고 지도자인
대수도원장 '자크 드 물레'는 1314년 파리에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성전기사 수도회(Knights Templars)
즉, 우리말로는 '템플 기사단 ...' 많이들 들어본 이름이지요?
현재까지도 기사단이 비밀리에 존속하여 성배나 성궤 같은
성물을 숨겼다고 하는 이야기들로 각종 영화나 소설의
소재 뿐만아니라
중세시대를 배경으로한 각종 PC 게임등 여러분야에서
다양한 이야기꺼리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여러 미디어를
통하여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템플 기사단의 갑작스러운 종말은 중세 교회와
군주제의 권력 관계, 그리고 종교적 열정과 세속적 탐욕이
교차했던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비앤 공의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설명이 길었지만 어떠시나요 ?
이제는 비엔 공의회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지 않으셨나요?

자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세례명'다른 개신교에서는 왜 사용을 하지 않나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개신교의 세례'에 대하여
먼저 알아봐야 하겠지요 ? 그러나 개신교의 세례에 대해서
여기에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왜나하면 '개신교'에 대한 자료는 너무나도 자료가
너무 방대하기도 하고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개신교'의 교파가 혹시 몇개나 되시는지
아시나요? 한 500개 ? 너무적나요 ? 그럼 ... 1,000개 ?
조금 더 많을것 같다구요? 그럼 음 2,500 개 ?
놀라지 마세요 전 세계적으로 약 32,000~50,000개 이상의
교파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위키백과 자료를 보면 개신교의 교파가
약 374개 + α 의 교파가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개신교에서 서로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는 교파가
거의 대부분 포함되어 있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의
작은 이단 교파는 개신교측에서도 파악이 되지 않아
정확한 수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잘 모르시나 ? ...)
이단으로 불리는 교단 중 규모가 큰 교단은
그 유명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신천지교회
제 7일안식일교회,
안식일교회
여호와의 증인 교회 등의 이단교회들 이외에도
수백개의 이단 교회들이 존재하며
그뿐만아니라 대형교회들
침례교 인 '성락교회' (서울 영등포구)
대한 예수교 장로회 인 '사랑의 교회' (서울 강남구)
순복음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서울 여의도)
은혜와진리교회(경기 안양)
금란교회(서울 중랑구)
광림교회(서울 강남구)
승리의 교회(인천 미추홀구) 등등......의
이름만 들어도 알수 있는 대형 교회들 중에서는
내부에서 각종 알력 다툼들로 인하여 교회 내에서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부리는 등
저마다 각자의 이해와 이익들로 인하여 교회가 분리되고
목사(목회자)를 따라 새로 교회로 분리되는 사건이
비일비재합니다

위에서 말하는 수많은 개신교 교파가 지향하고 있는 목적도
다르고 그들이 추구하는 성경내용도 그 해석이 무척
다양합니다 (사용하는 성경해석서도 수도없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세례는 ? 과연 어떠 할까요 ?
개신교 자기들끼리도 서로 이단이다 하며 싸우고
서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서로의 세례를 인정이나 할까요?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끼리는 서로가 이단이라고 하며
거들떠도 안보는데 가톨릭에 대해서는 무슨 그리도 심한
열등감에 사로 잡혀 있는지 .....
우리가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지도 않았고 개신교에
대하여 욕을하거나 비판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가톨릭에
대하여 관심을 넘어 집착적인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사사건건 ,시시콜콜, 시도때도 없이 자기들이 가톨릭보다
항상 우월하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개신교는 이러이러한데 천주교는 ...가톨릭은 ....
심지어 여느 개신교 신도는 가톨릭과 천주교가 서로 다른
종교라고 생각하는지 가톨릭은 이게 안좋고 천주교는
이게 좋지 않다고 합니다

저도 사실 이 글을 올리기 전에 그들의 '세례'에 대하여
관심 1도 없었는데 글을 올리려고 자료를 수집하다보니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잘못된 가톨릭 지식을 정말 집착적으로
물고 늘어지고 있더군요...
'마리아교'니 '예수님'을 믿는것이 아니라 '마리아'를 믿고
있다느니 '성모상(우상숭배)을 만들어 성당입구에 나두고
토속신앙(무속인) 처럼 절을 한다느니....
입에도 담지 못 할 정말 무식하고 저속적인 표현들로
도배가 되어있었습니다
남을 비판하려면 그것이 대하여 잘 알아보고 욕을 하든
비판을 하는것이 당연한데 ... 그런 기본적인 개념도 망각하고
일단 욕부터,,, 아니면 말고 라는 식의 ...
저도 그들과 같이 욕을 한바가지 하고 싶은데 그러면 저도
그들과 동일한 사람이 되기에 생락합니다
 
그들은 성모님도 인정하지 않고 십자고상(십자가에 예수님이
계신것)도 우상숭배라고 하는데 왜 그들은 예수님도 계시지
않은 십자가를 개신교의 상징으로 할까요 ?
개신교는 성인들의 통공(기도와 희생과 선행으로 서로 도울
수 있게 결합되어 있고 서로를 나눌수 있는것 )을 믿지
않습니다
'전구(대신 예수님께 기도를 청해 주는것) ' 인정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예수님에게 직접 기도를 청하고
본인이 지은 죄를 본인이 스스로 용서 합니다
자신 저지른 죄를 본인이 진심으로 회개하였다는 것을
전재로 예수님에게 직접 죄를 용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기가 저지른 것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죄가 아니고
그것이 죄라고 할 지라도 자기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본인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게 되면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즉 자기 죄 뿐만 아니라 남이 자기에게 저지른 죄를
본인이 직접 응징을 하더라도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본인이 예수님에게 용서를 청하였다고 하면 죄는
사해 지는 것 입니다
또한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벌은 없습니다
그들의 교리에는 '연옥'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죄를
뉘우치기만하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며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오직 예수'이고 '예수만 믿으면 천국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본인과 예수님 이외에 다른 존재는 필요 없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제가 좀 과격하게 되었네요(쩝!...)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개신교는 '세례명' 을 쓰지 않는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세례명'을 쓸 수가 없습니다
개신교는 가톨릭에서 정말 중요한 전례 즉 '7성사'
루터가 종교를 개혁 할 당시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요!!)
또한 그들은 성모님도 우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개신교의 신도들에게는 성인들의 존재는 '우상숭배'
라고 생각 할 뿐입니다
 
그러나 개신교 중에서 세례를 베푸는 교파도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에서는 만약 개신교에서 세례를
받았다면 가톨릭에 개종을 하더라도 세례를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대신 3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야 합니다
첫째 : 물로 세례를 받았느냐 ?
물도 성수가 아니더라도 순수한 물이였나 (중요)
둘째 : 세례를 받을 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정확하게 받았느냐 ? (매우중요!!!)
셋째 : 그것을 증명할 공식적인 서류세례를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느냐 또는 세례를
증명할 수 있는 두명이상의 증인이 있느냐 입니다

위에서 말한세가지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가톨릭에서는
세례로 인정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세례를 감면 받았다고 하더라도 개신교의
교리와 가톨릭의 교리가 여러가지로 다르므로 예비자 교리를
별도로 새로 받아야 합니다
개신교에서 만약세례를 받았다고 인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세례명"이 없으므로 세례명을 받기위해서라도 예비자 교육을
받고 정식적으로 세례(영세성사)를 받으시는 것을 추천을
드립니다

개신교 이외에 가톨릭에서 세례인정하는 다른 종교

1. 정교회(동방교회라고도 합니다)
가톨릭과 교리·전례가 유사해 상호 인정이 일반적 입니다
특징 정교회에서는 성호경이 가톨릭과 방향이 반대 입니다
가톨릭 성호경 : 위 > 아래> 왼쪽에서 오른쪽 기도손
정교회 성호경 : 위 > 아래> 오른쪽에서 왼쪽 기도손

2, 성공회(영국성공회)
가톨릭과 교리·전례가 유사해 상호 인정이 일반적 입니다
특징: 가톨릭과 달리 여성 사제가 존재하며 사제들도
결혼이 가능합니다

상기와 같이 상기 정교회와 성공회는 가톨릭 교회와 함께
서로의 세례를 인정하고 세례명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글이 좀 길었습니다
다음 글은 마지막으로 가톨릭 신자로서 '세례명'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2026년 06월 22일
김 홍대 토마스 아퀴나스가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자유롭게 퍼가시는 것은 좋지만 퍼가신 분이 마치 본인이 작성한 것처럼
주장하시는 것은 삼가 하셨으면 합니다 ※

[참고 1]
공의회 명칭에는 반드시 지역명이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제 2차 바티칸공의회'에도 공의회가 열린
도시가 표시되지요
즉 바티칸이라는 도시에서 두 번째로 열린 공의회
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라틴어: Concilium Oecumenicum
Vaticanum Secundum)(1962.10.11.~1965.09.14)
바티칸에서 4회기에 걸쳐 열린 가톨릭교회의
제21차 보편공의회입니다
제 261대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을 하였고 ,
제 262대 교황 바오로 6세가
마무리 하였습니다

※제 1차 바티칸 공의회는 1869년 12월 8일 개막,
1870년까지 제255대 교황 비오 9세가 소집하였습니다※


[참고 2]
아비뇽의 유수사건
사건 내용 : 교황이 로마 교황청에 기거하지 않고 약 70년동안
프랑스 아비뇽에서 생활을 하게되는 사건

이 사건이후 교황들은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맙니다
1305년 프랑스 출신 추기경 베르트랑이 교황 클레멘스 5세로
즉위하면서 필립 4세의 요청에 따라 1308년에 교황청을
로마가 아닌 프랑스 남부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1309년에
아비뇽에 거처를 두게 됩니다 .
아나니 사건 이후의 처리를 위해 비엔 공의회를 열기 위한
준비를 하던 사이에, 이탈리아반도는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7세의 침략을 받아 교황은 이탈리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결국 프랑스에 계속 체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비뇽은 프랑스 왕국의 영내가 아니라 교황의 봉신인
프로방스 백작의 영지였습니다
아비뇽 유수 기간에는 프랑스 출신의 추기경들이 대거
등용되었으며 교황 또한 모두 프랑스 출신들이였습니다
교황은 이 기간 로마 교황청에 머물지 못하게 되었고
아비뇽에서 약 70년 동안 생활 하였으며
그 시기에 모두 7명의 교황이 모두 아비뇽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교황청을 다시 로마로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유럽사회에
빗발치자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1377년에 로마로
교황청을 이전하며 아비뇽 유수를 종식 시켰습니다
이것이 '아비뇽의 유수 사건'입니다
말이 유수이지 우리말로 하자면 유배생활이나 다름없는
생활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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