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 4. 25. 나오시마
연수 넷째 날인 4월 25일 우리는 지역사회 재건프로젝트 견학을 위한 두 번째 코스로 '현대예술의 낙원으로 알려진 나오시마(直島)'를 방문하였다. 나오시마는 행정구역상 일본 가가와(香川) 현에 속하며 ‘일본의 지중해'라고 불리는 세토 내해 (內海)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상에서 찾아보면 여러 섬들이 산재한 시코쿠 지역의 한 점 섬에 불과하고 둘레가 16㎞ 남짓한 작은 섬으로 거주하는 인구가 3,600명 정도이지만 이 섬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연 36만 명이나 되는 예술의 섬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나오시마로 들어가기 위해 우노항으로 이동하였다. 나오시마는 우노항에서 배를 타고 20분 가야한다. 여객터미널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9시 22분발 페리호를 타고 가면서 일본의 해안 풍경을 감상하였다. 페리호 객실은 호텔로비처럼 꽤 넓었고 갑판에서 바라본 해변 마을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어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진 1) 호텔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출발하기 직전에 안내원과 함께
사진 2) 나오시마를 향해 출항하는 페리호 갑판 위에서 우노항을 배경으로
사진 3) 우리가 타고간 페리호 객실
사진 4) 갑판위에서 바라본 해안가 마을 모습
나오시마에 도착한 후 우리는 먼저 '지중 미술관(地中美術館)’을 찾아갔다. 이곳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미술관이란 컨셉으로 2004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우리가 앞서 견학한 효고현립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노출콘크리트 구조로 설계했는데, 섬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3층 규모의 건물을 이름 그대로 지중(地中)에 배치한 것이 특징적이다. 지붕에는 햇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유리창이 나있는 정도이다.
이곳에는 유명한 화가인 Claude Monet, Walter De Maria, James Turrell의 작품 이 전시되어 있다. 내부의 전시실은 8명 내외가 관람하도록 입구에서 인원을 엄격히 통제했는데 관람객이 한꺼번에 몰리면 다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예약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입구 관리센터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후 순서를 기다리며 한참을 대기 하다가 차례가 되어 소로를 따라 숲속으로 200여 미터를 더 걸어 들어가 관람을 시작하였다. 땅속이라 현장에서는 외부 전경을 볼 수가 없고 내부 전시실은 사진 촬영을 못하게 했다.
사진 5) 지중미술관 관리센터(매표 및 안내소)
사진 6) 산위에서 내려다 본 지중미술관 전경(인터넷 자료)
노출콘크리트 구조로 지은 미술관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어서 우리는 전시관을 이어주는 통로를 지나면서 빛과 어두움이 조화되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건축가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7) 각 전시관을 이어주는 연결 통로
사진 8) 각 층을 연결하는 노출콘크리트 계단
순서는 기억되지 않지만 인상파 화가 모네의 '수련' 연작이 걸려있는 전시실에 들어갔을 땐 이탈리아 대리석 바닥과 자연채광으로 환하게 빛나는 전시실의 모습에는 아름다움을 느꼈으나 정작 모네의 작품에는 솔직히 실망하였다. 작가가 모네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생각하지 만일 그 주인공이 무명의 화가였다면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사진 9) "Open Sky" by James Turrell
사진 10) 모네의 '수련'
우리가 본 또 하나의 작품은 현대작가인 제임스 터렐의 '오픈 필드'이다. 어두운 실내에 들어서면 검은 돌계단위에 형광색 파란 스크린이 있는데 안내원의 말에 따라 계단을 올라가서 멈추라는 곳까지 간 후 그곳에서 뒤로 돌아서면 네온 아래 아름다운 빛이 보인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 대해 뭔가 철학적 의미를 일깨워 주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진 11) 제임스 터렐의 '오픈필드'
그리고 기억에 남는 다른 하나의 작품은 월터 드 마리아의 ‘타임/타임리스/ 노타임’이란 작품인데 천정의 일부가 유리로 덮여있어 햇빛에 따라 맨 위의 거대한 대리석 공이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제일 아래층의 휴게실을 지나 바깥으로 나가니 탁 트인 넓은 바다가 보였다.
사진 12) 월터 드 마리아의 '타임/타임리스/노타임'
사진 13) 지중미술관 1층의 휴게실 바깥에서 경남교육청 김순덕사무관과 함께
사진 14) 휴게실 바깥에 나와서 바라본 바다 풍경
12시가 넘어 우리는 지역복지관 구내식당을 이용하여 점심을 먹었다. 우리 일행의 숫자인 34명의 단체를 수용할 일반 식당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구내식당이라도 시설이 오히려 더 깨끗하고 분위기도 좋았으며 한사람이 먹기에 다소 많아 보이는 음식(돈가스와 우동)도 먹을 만 하였다.
사진 15) 나오시마 지역복지관
사진 16) 지역복지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모습
사진 17) 그날 먹은 점심
점심을 먹은 후 오후 1시 20분경이 되어 우리는 인근에 있는 '나오시마 현대미술관(Naoshima Contemporary Art Museum)'으로 걸어서 이동하였다. 베네세 하우스(Benesse House)라고도 불리는 이 미술관은 출판업에 종사하던 나오시마 문화촌의 설립자인 후쿠다케(Tetsuhiko Fukutake)가 자연과 함께하는 문화와 예술의 공간을 만들고자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와 함께 건립한 복합 문화시설로 1992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부지 내에는 미술관과 다양한 부대시설이 있으며 숙박시설도 자리 잡고 있어서 건축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하나로 융합된 유기적 문화공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18) 베네세 하우스 입구 현판
사진 19) 베네세 하우스 전경(인터넷 자료)
이젠 안도 타다오하면 노출콘크리트가 떠오른다. 이 미술관 역시 노출콘크리트로 건축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부 사진은 지중미술관에서 찍은 것인지 이곳에서 찍은 것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각 전시실을 연결하는 통로와 계단도 예사롭지 않으며 현대 예술의 감각으로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사진 20) "100 Live and Die" by Bruce Nauman(가운데 전광판)
사진 21) 전시실을 연결하는 통로와 계단(벽면에 붙어있는 것은 작품임)
노출콘크리트 벽면을 가로 지르는 홈에 잡초가 자라나고 있었는데 그것도 어느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통로를 지나 계단을 오르내리며 미술관에 전시된 여러 가지 작품을 감상하였다. 그런데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하여 자료도 충분하지 못하고 몰래 찍은 사진에 나와 있는 것마저도 어떤 의미를 가진 누구의 작품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자세히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사진 22) 잡초 "Weeds" by Yoshihiro Suda
사진 23) 어느 전시실의 작품(도미노 같은데 뭔지 기억이 나지 않음)
아래층에 내려가니 벽면에 만국기가 붙어있고 그 중에 태극기도 있어 반가웠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납작한 투명 아크릴 함 공간에 색채 모래를 채워 넣어 만든 국기 속에 개미가 지나다니며 굴을 파 자연스런 선이 만들어지게 한 작품이었다. 국기와 국기사이에는 개미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대롱으로 연결해 놓았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인간과 자연이 합작한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사진 24) 채색 모래로 만든 만국기
사진 25) 가까이서 본 모습(국기 안에 개미가 굴을 파고 지나다닌 흔적이 보인다)
아래층 바깥으로 나가니 여러 개의 수평선 사진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나타났다. 작가가 오랜 기간에 걸쳐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수평선을 찍은 사진들을 실제 세토내해의 수평선과 일치하게 전시를 해놓았는데 작품을 일부러 실외에다 전시를 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바람을 맞으며 작품이 변해가도록 의도했다고 한다. 전시 벽면의 트인 공간으론 실제 수평선이 보이고 멀리 오른쪽 언덕위에는 대형 수평선 사진이 같은 모양으로 보이도록 세워져 있었다.
사진 26) "Time Exposed" - 1980~1997, Hiroshi Sugimoto
우리는 칸 야스다의 작품인 둥글넓적한 큰 돌 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해안가 언덕 또는 모래밭 등에 군데군데 세워진 옥외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하늘과 바다와 숲 등 자연 그대로를 배경으로 걸어가는 길목마다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섬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이 되었다.
우리가 본 모든 것이 자연과 인간이 함께 하는 컨셉에 잘 들어맞았다.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그리고 거리에 따라 작품이 달리보이므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어다니며 자연과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 일정에 맞추기 위해 다소 급하게 움직였으므로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였다.
사진 27) "The Secret of the Sky" by Kan Yasuda
사진 28) 자연채광을 위한 하늘 창
사진 29) 옥외에 전시된 어느 중국작가의 작품 '노천탕'
사진 30) 그 작품위에서 한컷
사진 31) 바닷가 모래밭에 파묻힌 난파선(이것도 작품임)
사진 32) 바닷가에 전시된 또 하나의 작품
사진 34)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사진 35)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달라보인다.
사진 36) 나오시마의 상징 노란 호박 앞에서
우리는 해안가에 설치된 나오시마의 상징 노란호박 앞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이 섬의 또 다른 볼거리를 찾아 혼무라 마을로 이동하였다. 이른바 ‘이에(家) 프로젝트’를 견학하기 위한 것이다. 1998년 나오시마에 있는 오래된 마을 혼무라(本村)지구에서 낡은 가옥을 대상으로 아티스트가 이를 개조하여 집을 주제로 집의 공간과 구조 자체를 작품화한 프로젝트가 바로 '이에(家) 프로젝트'이다.
이곳에서는 각각 아티스트의 독창성이 묻어 있는 건축물의 모습과 나아가 이 지역 일본 사람들의 생활상과 전통, 미의식을 표현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7개의 시설이 개관중이며 앞으로 계속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시간에 쫓겨 다 보지는 못하고 인원을 두 파트로 나누어 다니면서 그 중 몇 군데만 관람하였다.
그 중 하나인 '카도야(角屋)'는 아트하우스 프로젝트로 탄생한 1호 작품으로 약 200년 전에 지어졌던 낡은 집을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복원하고, 미야지마 타츠오의 작품 'Sea of Time 98'을 실내에 설치한 것이다. 이 작품의 제작에는 마을 사람들도 참여했다고 한다.
다다미를 대신해 그 자리에 물을 채우고 1부터 9까지 숫자를 사용하여 칼라로 점멸되는 125개의 디지털 숫자판를 넣었다. 숫자판의 점멸을 통해 삶과 죽음을, 스피드를 통해 섬 주민 각자 느끼는 세월의 속도를 표현했다고 한다. 출입구 쪽으로는 LED를 이용하여 설치한 투명 디지털 숫자창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사진 38) 카도야 내부
사진 39) 카도야 내부 디지털 숫자창
다음으로 본 것은 스기모토 히로시의 작품인 고오진자(護王神社)이다. 오솔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니 능선위에 원두막 같은 제단이 있고 땅에서 제단까지 마치 얼음처럼 보이는 투명플라스틱계단이 놓여 있었다. 언덕 아래로 조금 내려가니 굴이 나오고 좁은 통로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가니 끝에 빛이 보이면서 지상의 제단과 연결된 투명계단이 나타났다. 이것은 어두운 지하 세계와 밝은 지상 세계를 투명계단을 통해 빛으로 연결함으로써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사진 40) 고오진자 제단
사진 41) 고오진자 제단 지하
내가 본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나미데라(南寺)이다. 남쪽의 절이라는 뜻의 미나미데라는 원래 절이 있던 장소에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이 ‘달의 뒷면 (Backside of the Moon)’이란 작품을 기획하고 그 작품의 사이즈에 맞추어 안도 타다오가 새롭게 건물을 설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안도 타다오 하면 노출콘크리트가 떠오르는데 여기에서는 콘크리트가 아닌 나오시마의 일반 가옥에서 널리 쓰는, 그을린 삼목을 얇게 켠 목재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작품을 한번 관람하는데 10분 이상이 걸리고 1회당 관람 인원을 10명 내외로 엄격히 통제하기 때문에 우리는 번호표를 배부 받아 마당에서 노닥이며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뒷 번호를 받은 나는 기다리는 것이 너무 지루하여 앞 대열에 새치기를 했는데 인원을 통제하는 안내원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내가 서있는 입장 준비 대열의 숫자를 몇 번이나 세어 보았다. 나는 그가 번호표를 보자고 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차례가 되어 다행히 들키지 않고 입장하였다. 다른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앞 뒷사람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니 앞이 전혀 안보이게 칠흑같이 캄캄하였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손을 짚어가며 오직 촉감만으로 정면을 향한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소리만 나지 않는다면 옆에 앉아 있는 여인과 키스를 해도 아무도 모를 정도의 어둠속에서 약간의 공포를 느끼는 가운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다음 정면 어딘가에서 어렴풋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어서서 서서히 밝아지는 그 빛을 향하여 앞으로 걸어갔다. 빛이 있어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사진 42) 미나미데라 입장 대기 중
사진 43) 미나미데라 외부 전경과 내부 정면의 빛 (인터넷 자료)
사진 44) 관람을 마치고 나와 화장실 앞에서
우리는 다음 코스로 녹슨 양철조각과 갖가지 폐품으로 벽을 너덕너덕 장식한 고물상 같은 집을 찾아갔다. 하이샤(はいしゃ)라고 하는데 옛날 치과의원 겸 주거지였던 건물을 오오다케(大竹伸朗)가 전체를 작품화 하였다고 한다. 별게 다 작품이 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약을 안했기 때문인지 문이 닫혀 있어서 내부는 관람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사진 45) 하이샤
사진 46) 다른 쪽 방향에서 본 하이샤
오후 5시가 넘어 우리는 나오시마 미야노우라항 여객 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우노항으로 돌아와 다시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고베로 이동하여 고베 펄시티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사진 48) 미야노우라항에서 돌아가는 배편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