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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杜甫)

작성자이영우|작성시간26.06.19|조회수34 목록 댓글 0

두보(杜甫, 712-770) 는 '시성(詩聖)'으로 불렸던 중국 최고의 시인이다.

중국의 시가 역사에서는 이백과 이름을 나란히 하여 '이두(李杜)'라 불렸다.

 

두보는 훌륭한 시와 글로 당나라 제국이 번영에서 쇠락으로 치닫는 과정을 생동감 있고 진중하게 기록하였다.

그의 작품은 조국과 백성에 대한 정으로 가득 차 있다.

 

 두보는 당나라 초기 유명 시인 두심언의 손자로,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학문이 깊고도 넓었으며, 어려서부터 배움을 즐겨 상당히 많은 책에 정통하였다.

 

 그는 7세에 시를 배워서 15세에는 시문으로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젊은 시절 두보는 낙양에서 이백과 만나 서로 벗 삼아 여행하면서 시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우정을 쌓았다.

 

두보는 중국 각지를 유람하면서 수양을 쌓고 명사들을 만나 글로 이름을 날렸지만 추천을 받아 시험만 보면 번번이 낙방했다. 당시의 재상 이임보가 농간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결혼하여 자식을 얻었으나 그의 생활은 끼니조차 잇기 어려울 만큼 몹시 궁핍했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현실은 그로 하여금 하층 빈민들의 삶을 깊이 이해하도록 했다.

 

 현종 천보 14년(755), 그가 44세 되던 해 '안사의 난'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당 제국이 흥성기에서 쇠망기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백성들에게는 무거운 고통을 안겨주었다.

 

 당시 현종은 장안을 버리고 도망쳤고, 태자 이형이 상황을 수습한 뒤 현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니 그가 숙종이다.

이 소식을 들은 두보는 혼자 숙종을 찾아가다가 반란군에게 사로잡혀 장안에 구금당했다.

 

 이 시기에 그는 생이별한 처자식과 전란으로 황폐해진 세상을 염려하여 많은 시를 썼다.

 그중 대표작이 "춘망(春望)'이다.

 

 나라는 무너졌으나 산하는 그대로이네.

장안에 봄이 오니 초목은 무성한데

 

이 시절 생각하니 꽃을 보고도 눈물이 흐르네.

이별이 한스러워 새를 보고도 놀라는 가슴

 

전란은 해가 바뀌어 삼월이 되어도 끝나지 않으니

만금을 주어서라도 가족 소식 듣고 싶구나.

 

백발이 된 머리를 긁으면 눈에 띄게 빠지니

이래서야 머리칼에 쪽이라도 꽂을 수 있으랴.

 

"춘망"은 중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랑과 칭송을 받아왔다.

두보는 만년에 거처할 곳이 없어서 가족을 데리고 여러 곳을 떠돌다가 59세 때 상강의 작은 배 위에서 병사하였다.

 

 그는 시를 통해 사회 부패에 불만을 표출하고, 천하 백성에 대한 비애를 드러냈으며, 백성들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그는 이런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내 초당이 부서져 얼어 죽는다 해도 만족하리'라고 노래했다.

두보는 "시경"이래의 현실주의 문학 전통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이후 그는 시성으로 추대되었으며 중국 문학사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되었다.(양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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