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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수의 고향 「정읍의 진산」

작성자우공|작성시간26.06.07|조회수19 목록 댓글 0

나의 살던 고향은/안성수

내 고향 정읍 진산은 넓은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호남선이 남북으로 길게 드러누워 오가는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달리는 그 하늘 위엔 솔개들이 여유자적하던 곳, 흐트러진 풀꽃을 팔베개 삼아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푸르다 못해 뚝뚝 시린 물이 떨어질 것 같은 맑고 깨끗하고 한가롭기 그지없는 그곳이 내 고향 진산이다.

 

겨울이면 굵은 대나무를 반으로 쪼개어 앞부분을 불에 살짝 구워 휘어서 만든 멋진 스키로 마을 앞길을 한없이 신명나게 달렸으며, 굵은 철사로 스케이트를 만들어 지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또한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물에 빠져 손발이 얼어붙었고, 모닥불을 지피며 양말을 말리다 나일론 양말이 불에 녹아 붙어서 어머니한테 꾸중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의식의 한가운데 소중하게 간직된 이 추억들은 영원토록 아름답게 남아 있을 뿐이다.

 

팽이치기에 대한 기억은 또 어땠는가?

팽이는 가게에서 팔지만 용돈이 궁해서 비싼 팽이를 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만들어서 해결했다. 반듯하고 통통한 소나무를 싹둑 잘라 도끼와 낫으로 다듬어 팽이를 만들고 팽이 밑바닥엔 쇠구슬(베어링)을 박았다. 그리고 그 위에 일곱 색깔 무지개 색을 둥글게 칠해 닥나무채로 두드리면 “딱” 소리를 내며 팽이는 잘도 돌았다. 아마도 세월은 팽이처럼 빨리 도는 것 같다.

 

연에 대한 추억 또한 새롭다. 연은 어린 시절 나의 꿈을 키워 준 희망의 애드벌룬이었다. 파아란 하늘에 ‘꼬리연, 방패연’을 띄워 올려 내 꿈을 더 높이 날아오르게 애를 썼지만, 어느새 줄이 끊어져 앞산 마을까지 달아나 버리면 그 푸른 꿈을 잡고자 한없이 달렸던 텃논이 즐비했던 그곳엔 회색빛 건물들이 들어섰다. 청청하던 소년의 꿈을 피워 올렸던 장소로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게 도시화 속에 잠겨 버렸다.

 

여름날 시냇가에 나가 물장구치며 놀던 어린 시절, 모래성을 쌓았다 허물기도 했고, 친구들과 함께 족대를 대어 붕어며 피라미를 잡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그 시절 추억들도 영상처럼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밤이면 횃불을 밝혀 물 가장자리에서 잠자던 물고기를 손으로 살짝 잡아내는 즐거움에 젖다 보면 어느새 새벽달이 이슥해지기도 했지만 우리들은 준비해 간 몇 가지 양념을 넣고 즉석에서 매운탕을 끓여 먹던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지금 그 시냇가는 농약과 제초제로 인해 환경이 무참히 파괴되어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아련한 추억 속으로만 묻어두고 있을 뿐이다.

 

수박 서리 얘기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으뜸이 아닌가!

수박밭 고랑을 살금살금 기어가 수박을 무조건 쪼개어 맛을 보고는 덜 익은 수박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쳐버리든가, 놀부처럼 수박에 말뚝을 박기도 했다. 그러나 수박 서리해서 먹을 땐 주인에게 들킬까 봐 가슴이 두근두근하지만 그 맛을 어디에다 비교하랴! 훔쳐먹는 것이 역시 맛은 최고이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에 수박 서리하다 발각되면 절도죄로 은팔찌를 차야 하는 신세가 된다. 세상 인심은 이렇게 각박하게 변해 버린 것이다.

추억을 함께 만들었던 그 친구들은 지금은 직장 따라 뿔뿔이 흩어져 각박한 삶 속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명절이나 성묘 때가 되어 아이들을 앞세우고 고향을 찾아가도 세월 따라 자꾸 낯설어가고 쓸쓸해지는 마음의 공허를 어찌할거나.

돌아오는 일요일에는 모처럼 내 살던 뒷동산에 올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지나온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워 보고 싶다.

아! 지나간 과거는 추억 속에 아름답고, 모두들 떠난 마음의 공허는 나이 따라 왜 이렇게도 새삼스럽기만 한지 모르겠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先山) 지킨다는 말이 있듯, 내 이제 등 굽은 한 그루 소나무라도 될 수 있다면······.

고향을 지키는 이름 없는 후손으로 나의 살던 고향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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