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라면의 <숨겨진 일화>
삼양라면, 20년 전 ‘그 훈훈했던 프랑스 추억’
2008년 6월. 벌써 2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어느 대학 기숙사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한 십여 명 있었습니다. 낯선 이국 생활이라 당연히 고국음식이 그리웠지요. 당시만 해도 한국 음식점이 주변에 없었고, 어쩌다 명절 때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밑반찬을 받아보기 무섭게 게 눈 감추듯 했습니다. 라면이라도 마음껏 먹어보는 것이 모두 소원이었지요.
프랑스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기에 식품점에서 라면을 팔기는 했는데, 홍콩인지 싱가포르에서 만들어서 "출전일정" 일본상표를 붙인 조잡한 제품이었고, 첨부한 중국식 돼지고기 맛 스프가루를 타서 요리하면 웬만큼 비위가 좋지 못한 사람들은 그 느끼함에 다 토해버릴 정도. 그래서 스프가루 넣는 대신 소금, 양파, 고춧가루로 맛을 내고는 했지요.
우리나라 우리 맛 라면을 너무나 먹고 싶은 마음에 하루는 꾀를 내었습니다. 기숙사 외국 학생들이 모두 삼백여 명쯤 되었는데, 학교 식당에서 모두에게 대한민국 라면파티를 멋지게 열어주자고, 그래서 우리나라 우리 맛 라면의 진수를 전 세계에 보여주자고. 그런 내용을 써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삼양라면 사장님께(다만 본사가 당시 서울 종로 청진동에 있었다는 것만 알고) 도와주십사 라는 편지를 진담 반 장난 반 올렸습니다.
물론 무모하고 황당한 요청임을 잘 알기에 저희는 삼양라면에 대해 답신조차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파리 오를리 공항 세관에서 제게 소환장이 날아왔습니다. 외국산 식료품이 무려 2 큐빅톤이나 제 앞으로 왔는데, 학생신분이라면서 혹시 밀수꾼이 아니냐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날 밤차를 타고 파리에 상경, 새벽에 오를리 공항에 가서 여차여차 사정을 말하고 물건을 찾아왔습니다. 세관원들은 거의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짓더군요. 말이 2 큐빅톤이지 작은 봉고차에 가득 차는 엄청난 물량이, 당시 돈으로도 수백만 원 넘는 특급 항공운임표를 붙인 채 제 앞에 쌓인 모습, 라면 상자 산더미는 제 생전 처음 보는 장관이었지요.
마치 오르기 어려운 높은 산을 정복했노라 하는 성취의 뿌듯함에 앞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보잘것없는 일개 학생 편지 글만을 믿고, 라면 백여 상자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운임까지 지급하여 특급우편으로 보내주신 삼양라면 사장님 마음 쓰심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고 말더군요.
과연 어떤 분이실까? 뵙고 싶었습니다. 감사하고 황송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존경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 라면파티는 대성황으로 끝났고요.
외국학생들에게는 "짜짜로니"이었던가요, 자장면 류가 대인기를 끌었지요. 작은 대학도시였지만, 라면파티 한 번으로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년도 더 지나고, 국민기업 삼양라면이 처했던 어려움도 그저 남의 일인 냥 지나쳐버리고, 이런저런 핑계로 삼양라면 사장님께 그 흔한 그림엽서 한 장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오늘 우리나라가 위기를 맞았지만, 삼양라면 사장님의 신념과 배려의 마음을 떠올리며 저희는 희망으로 삼습니다.
삼양라면!
사랑합니다. 영원히 사랑합니다.
* 전중윤 씨는 42세이던 1961년 삼양식품을 설립, 2년 뒤인 1963년 국내 처음으로 라면 생산에 나섰다. 먹을거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1960년대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초 강원도 고지대인 대관령에 600만 평 초지를 조성, 대관령목장을 개척하고 라면스프용 쇠고기와 우유 유제품 등을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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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라면 우지파동 진실
현재 우리나라 라면시장에서 농심이 60%를 넘는 과점 사업자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1989년도까지만 하더라도 삼양식품공업(지금의 삼양식품)이 60%의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이른바 우지파동으로 완전히 뒤집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만큼 우지파동은 삼양식품에 있어 치명타였고, 한때 파산 직전에 이른 적도 있을 만큼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랬던 삼양식품의 라면 중 일부 제품에 유통기한을 넘긴 중국산 김치를 국산으로 속여 스프로 첨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미 시민들은 분노하고 이내 우지파동 기억을 떠올리며 '역시 그놈'이라며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많은 사람이 아직도 우지파동을 삼양의 비양심과 욕심이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포털 뉴스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열에 일고여덟이 그렇게 알고 있다.
우지파동은 1989년 가을, '라면을 공업용 우지(牛脂:쇠기름)로 튀긴다'는 내용의 익명 투서가 검찰에 접수되며 시작되었다. 팜유를 사용하던 농심을 제외한 거의 모든 라면 제조업체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었고, 100억 원대 라면제품이 수거되었다.
삼양은 3개월간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져 그 피해는 막심했지만, 가장 큰 타격은 회사 이미지가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97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결국 모든 혐의가 무죄로 드러났지만, 연루된 업체들은 이미 도산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그러면 도대체 '공업용 우지'란 것이 무엇인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우지파동 이전에는 공업용 우지라는 개념조차 없었다는 사실이다. 투서내용과 검찰 기소요지에 따르면 해당업체들이 사용한 우지는 미국에서 비식용으로 분류된 2~3등급 우지이며, 이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공업용 제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미국은 우지를 총 12등급으로 분류하는 바, 그중 최상급에 해당하는 1등급 우지는 소의 부위 중 특히 신장에서 추출된 것을 가리키는데, 별도 가공 없이 바로 사람이 떠먹어도 될 정도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차등 우지들도 그 품질에 따라 등급을 나누며 이때 분류 기준이란 것은 추출부위 차이일 뿐, 단순히 우지 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말로, '공업용'으로 따로 분류된 우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품질에 따라 나누어진 편의적 개념이란 얘기다. (비근한 예로, 1등급 우유만 시중에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2~3등급 우유는 분유 및 기타 유제품 생산원료가 된다.)
이것은 우리나라와 서구의 문화적 차이의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사실상 서구에서 '소'라는 가축은 육류를 제공하기 위한 사육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비단 소량 소비되는 1등급 우지 이외 우지나 사골, 우족, 내장 등은 사실상 폐기물 취급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알고 있는 '공업용'이란 개념의 진정한 의미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우리네 곰탕이란 것은 미국인들 위치에서 볼 때, 공업용 폐기물로 국을 끓여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간과한 채, 공업용 우지를 사용해 라면을 튀겼다고 흥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코미디다.
그럼 농심은 왜 팜유를 썼는가?
농심이 당시부터 엄청난 광고를 했던 소위 '식물성 팜유'라는 것은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팜유는 기름야자 과육에서 짜낸 기름을 말한다. 이것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은 산화가 매우 잘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용 기름 계통에서는 저질유(低質油)로 분류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중질유인 우지보다 훨씬 싸다.
이거 재미있지 않은가.
만약 라면업체들이 비양심적이고 돈에만 눈이 멀었다면 더 싸구려 기름을 사용해 수익을 올렸을 텐데 왜 비싼 우지를 썼을까(?) 말이다.
싼 팜유를 두고 굳이 돈을 들여가며 우지를 사용하는 것은 우지로 튀긴 라면이 더 '맛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판결문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80년대 이전만 해도 대표적 라면 소비국인 일본에서는 거의 업체에서 2~3등급 우지만을 사용해 라면을 튀겨냈으며, 지금도 우지, 돈지(豚脂:돼지기름), 팜유를 1:1 비율로 섞어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지가 가진 유일한 문제점은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다는 것뿐이다. 농심이 팜유를 쓴 건 단지 이 때문이다. '우지'라서 안 쓴 게 아니다.)
결국 '공업용 우지'라는 터무니없는 신종용어가 국민의 불안감과 혐오감을 부추겼고, 그 피해는 직접적으로 삼양 등의 업체에 돌아갔다.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 말인가?
혹자는 이렇게 강변한다. 2~3등급 우지가 몸에 해롭지 않다는 건 어떻게 입증 하느냐고. 피해망상은 자유지만, 가까운 예를 찾아본다면 쇼트닝을 들 수 있다. '쇼트닝 오일'이라고도 불리는 반 가소성 유지제품인데, 여러분이 매일 먹는 빵이나 비스켓 류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첨가물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이 쇼트닝을 바로 그 2~3등급 우지나 돈지로 만들어 왔다.(지금은 가격이 싼 콩기름으로 만드는 예가 많다.) 그뿐인가. 마가린을 만드는 올레오유도 우지로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소위 공업용 우지로 만드는 식품들인 셈이다. 저질유인 팜유보다 훨씬 비싼 그 우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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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사건 대법원 “무죄” 판결
삼양식품
① 우지사건 피해를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그중에서도 60%에 달했던 시장점유율이 급격히 하락하여 대부분 시장을 잃어 상대사에 탈취당했다. 1,000여 명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사태가 빚어졌으며, 100억 원 이상이 되는 시중 제품이 반품되어 폐기하는 등 그 피해는 수천억 원 대 달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40년 동안『정직과 신용』을 바탕으로 국민 건강 증진에 노력해 온 회사 명예가 하루아침에 실추된 것이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시련이었다.
② 또한 사건 발생 이전까지 만해도 "삼양라면"은 라면의 원조로서 국내 인증은 물론 세계 식품업계로부터 공인받아 수출상품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일순간에 불량식품으로 전락해 수출시장도 대부분 잃게 됨으로써 수십 년간 공들여 조성해 놓은 국제 시장에서 기반이 붕괴하는 아픔을 겪었다.
경쟁사(친일파 기업 ㄴㅅ)는 미주지역에서까지 역선전을 반복함으로써 당사는 시장점유율이 60%에서 15%로 감소하는 비참한 상황 가운데도 삼양식품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확실한 증거와 증언을 통하여 진실을 밝히는데 온 힘을 다해 왔고, 그 결과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러한 대법원의 최종 무죄판결은 사필귀정의 신념과 법은 정의 편이라는 진실, 진실은 언젠가 꼭 밝혀진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③ 그러나 수년간 법정공방을 통해 무죄판결을 거둔 승리의 기쁨보다는 회사가 그동안 겪었던 인고의 시간을 생각할 때 비애감이 먼저 앞선다. 공권력 남용으로 한 모범기업이 하루아침에 소비자 불신을 받고 그 탓에 기업의 사기와 의욕저하를 일으켰음은 물론 국내외적으로 인증된 제품의 신용상실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줘왔다.
④ 앞으로 우리가 겪었던 전철을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식품성분에 대한 유해성 논란 문제는 전문가 단체에 의한 과학적 분석과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 결과에 따른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법적으로는 비록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명예회복 외에는 더는 실질적 보상의 길이 어렵기 때문이다.
출처: 웹사이트에서 읽고 정리함